황제의 길

엘돌란의 그림자4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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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엘돌란의 그림자4

 

 

엘돌란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들이 평민 구역의 사람들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잃어버린 희망 빈민 구제소

엘사는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느라 상당히 바빠 보였다.

 

"혹시 뭐 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아, 죄송해요. 지금 정신이 없어서……."

아나스타샤는 엘사에게 무시당했지만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빈민 구제소의 일로 바쁜데,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는 아나스타샤 본인조차도 하지 않는, 빈민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나스타샤 기준에 가장 대단하고 선량한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엘사 씨의 일을 도와주고, 쉬는 틈에 물어볼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코스모스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동의했다.

"엘사 씨, 뭐 좀 도울 일 없을까요? 그냥 바쁘시길래 저희도 돕고 싶어 그래요."

엘사는 환한 표정으로 아나스타샤들을 바라보더니, 몇 가지 일을 할당해 주었다.


클라인은 고람이라는 하프오크 남자와 빈민 구제소에서 사용하는 장작을 패고 날랐고, 아도니스는 엘사와 건물의 방 청소를 하러 갔다. 아나스타샤는 10대로 보이는 일사라는 인간 여자아이와 빈민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 음식을 코스모스가 나누어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자 빈민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구제소 안에는 방을 사용하는 열댓 명의 인원만 남아있을 뿐, 아까처럼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아나스타샤들과 고람, 일사는 부엌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엘사 역시 일이 끝났는지, 남은 음식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 아나스타샤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고하셨어요. 아직 점심 못 드셨죠? 남은 음식이긴 하지만 괜찮다면 이걸로 점심 식사를 하죠."

식사는 간단한 감자 스튜에 통밀빵이었지만, 일을 하고 온 다음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게 느껴졌다. 테이블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전부 말없이 빠르게 음식을 해치웠다.


그중, 같이 요리를 하며 친해진 일사가 아나스타샤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야가 음식을 굉장히 잘하네~ 밍숭맹숭한 감자 스튜가 오늘따라 더 맛있어~"


"하하, 내가 또 스튜같이 대량 생산하는 음식에는 자신 있거든.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맛있게 만드는 타입이라."


"앞으로도 여기 살면서 계속해주면 안 돼?"


"어머, 얘는……."

일사가 아나스타샤에게 달라붙어 조르자, 엘사가 그를 말리며 미안해했다.

"죄송해요. 일사가 아직 어려서……. 아나스타샤 씨가 정말 좋은가 봐요."


"아니에요. 저도 엘돌란에 오래 머물 수 있었으면 계속 돕고 싶었는 걸요."


"아……. 후계자 경연 대회 때문에 여행 중이라고 하셨죠?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 일을 도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이렇게 도와주셨는데 저희가 드릴 게 없어서 죄송하네요. 이 구제소도 대사제님의 지원금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해서 마을 상인분들께 기부금을 받는 실정이라………"

엘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뒷목을 메만지며 말했다.

"별로 무언가 바라고 도와드린 건 아니에요!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바빠 보이셔서요. 그리고 엘사 씨도 무언가 원해서 빈민들을 도와주시는게 아니잖아요."


"정말 좋으신 분이네요. 그런데 물어보고 싶은게 뭔가요? 아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대답해 드릴게요."


"어제 호객 광장에서 있었던 좀비 사건 아시죠?"


"아……. 정말 큰 일이었죠.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쳤더라고요. 제가 싸울 줄 몰라서, 좀비가 사람들 근처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게 전부였었어요."


"그곳에 계셨으면 좀비들의 얼굴도 보셨겠네요?"


"네, 몇 명이 아는 얼굴이라서 경비관께도 말씀해 드렸어요. 최근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좀비가 되어 나타날 줄이야…."

엘사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그의 옆에서 묵묵히 스튜를 먹던 고람이 처음으로 반응했다.

"은방패대 녀석들…… 엘사님께서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다고 신고했을 때는 빈민들이란 게 원래 여기저기 흘러가는 사람들 아니냐며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만, 결국 일이 터진 거죠."

고람의 말에 일사가 거들었다.

"이게 다~ 뇌물이 부족해서야~"

고람은 그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 실종되었다가 좀비로 나타났다는 사람, 누구인가요?"


"한 명은 톨부스 리스라는 이름의 군단병으로 일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던 중년의 인간 남자였어요. 또 다른 한 명은 코락 스톤슨이라는 구제소에서 곧잘 자고 가던 드워프고요. 둘 다 평민 구역의 주민이고, 일도 구걸도 구제소 근처나 그리핀 광장에서 했어요. 그래서 매일 보던 사람들이었는데 못 본 지 열흘 정도 됐나……. 그런데 그 사이에 죽은 거로군요………."


"엘사 씨……. 이번 일 같은 일은 더 이상 겪지 않도록 바랄게요."


"위로 고마워요."

아나스타샤는 엘사의 양손을 잡고 위로했다. 엘사는 덤덤한 척하려고 애썼지만,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엘사 화이트로즈에게 이번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좀비에게 습격당할 뻔한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도와주는 사람들의 허무한 죽음이라니. 그런 건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생하면서 빈민들을 돕고자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엘사를 생각하면 여기서 질문을 끝내고 싶었지만,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아직 남아있었다.

"사실 이번 사건, 범인들을 잡기 위해 조사하고 있거든요. 엘돌란에 시체왕의 수하가 있는 것 같아요."

시체왕이란 단어에 엘사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대사제를 모신다는 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 돼요."


"오늘 아침에 망자의 금고의 한 사제가 시체왕의 수하라는 걸 밝혀냈어요."


"그럴, 수가……."


"그 첩자의 쪽지 내용에, 평민 구역의 꿈팔이와 파울로스를 찾아가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혹시 꿈팔이가 뭔지 아세요?"


"아니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파울로스도 이 근처에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에요."

엘사가 고개를 젓자, 일사가 번쩍 일어나 소리쳤다.

"나! 나! 그거 들어봤어. 칼리아한테서."


"정말이야? 그 애가 어디 있는데?"


"지금쯤이면 한 탕 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일사는 칼리아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칼리아는 합숙실의 한 구석에서 겉옷을 챙기며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막 나가려는 것 같았다.

"어이~ 지금 나가?"


"뭐야, 바쁘니까 말 걸지 마."


"네가 지금 하려는 심부름보다 더 도움이 되는 거라면 너도 듣고 싶을걸~?"

칼리아라고 불린 짧은 머리의 하프엘프 소녀는 아나스타샤들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일사를 쳐다보았다.

"흥, 별 일 아니면 가만 안 둬."

 

여전히 관심 없다는 태도였지만, 들어는 주겠다는 투였다.
아나스타샤는 정중하게 물었다.

"칼리아, 저희는 지금 꿈팔이랑 파울로스란 사람을 찾고 있어요. 혹시 뭔가 아는 게 있나요?"

칼리아의 눈썹이 잠깐이지만 들썩였다.

"아는 게 있으면요? 어쩔 건데요? 저는 당신들 상대하는 거 말고도 할 일이 많아서."

칼리아의 대답에 일사가 아나스타샤를 쳐다봤다. 손으로 동전 표시를 하고 있었다.

"지금 하려는 일, 보수가 어떻게 돼요?"


"………은, 아니, 금화 1개."

말하려던 건 은화 같은데. 아무래도 원래 보수보다 훨씬 높게 부른 모양이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에게는 흔하게 오지 않는 기회일 테니까.

"그 보수의 3배를 줄게요. 3gp면 됐죠? 어때, 오늘은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줄 수 있겠죠?"

아나스타사는 그 정도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액수를 올렸다.
사실 정말로 아나스타샤에겐 별로 아쉽지도 않은 금액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그래서라기보단, 자신과 같은 하프엘프 소녀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칼리아는 금화를 받아 들고선 두 눈이 동그래졌다.

"우, 우와 나 금화 처음 봐…… 앗, 흠흠. 그래서 꿈팔이에 대해 물어봤죠?"

소녀는 금화를 받아들고 눈을 반짝였지만, 곧바로 아나스타샤들을 의식하곤 평정을 되찾았다.

"맞아요."


"꿈팔이들은 마약상이에요. 꿈 잎사귀라는 마약을 팔기 때문에 꿈팔이라고 불리는 거고."


"마약?"


"네, 톨부스라는 나이 많은 친구가 그 꿈 잎사귀에 중독되어 있었거든요. 듣기로는 꿈속을 헤메이는 것 같은 감각과 환상을 보여준다나 뭐라나."

톨부스라면 엘사가 말한, 평민 구역에서 실종되었다가 좀비로 나타난 이였다.
……확실히 마약상이라는 '꿈팔이'는 이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 있어 보였다.

"근데 꿈팔이를 만날 거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좀, 위험한 소문도 많고 그렇거든요."


"어느 마약상이나 다 그렇죠, 뭐."


"아니 아니, 이건 진짜예요! 그냥 몇 대 맞고 돌아오는 수준이 아니라니깐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던 칼리아는 한꺼번에 폭발하듯이 분출해냈다.

참았기 때문이다. 계속 말하지 못하고 참았기 때문에, 멀쩡해 보이던 풍선이 한순간에 터져 버리 듯, 칼리아의 감정도 터져버린 거다.

 

"아까 말했던 톨부스가 꿈 잎사귀를 살 돈이 없어서 쩔쩔 메고 있었거든요. 막 손도 심하게 덜덜 떨고. 근데 어느 날, 톨부스가 새 약장수를 찾았다는 거예요. 그가 꿈 잎사귀를 절반 가격에 팔고 있다고. 돈 좀 빌려달라길래 남는 은화 몇 닢을 전부 톨부스한테 줬죠."

 

"어째서요?"

 

"그…… 내가 그 친구한테 신세 진 게 있어가지고. 내가 쥐잡이 패거리한테 두들겨 맞을 때 도와줬거든요. 어쨌든! 그 돈을 들고 꿈팔이한테 가더니, 한 일주일간은 그를 못 봤어요. 근데, 근데 갑자기 엘사님께서 좀비가 된 톨부스를 봤다는 거예요……!"

 

칼리아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혹시라도 그들의 근거지 위치를 알려줬다가 잘못되면, 정말 앞으로가 걱정되고 무서워서………"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꿈팔이에 대한 두려움도, 친구를 잃은 외로움도, 그가 좀비가 되어버렸다는 슬픔도, 혼자 안고 있어야 할 비밀도.


"걱정 말아요. 저흰 생각보다 강하고, 평민 구역 사람들이 더 이상 좀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할 거예요."

칼리아는 얼마간 말없이 아나스타샤를 바라봤다.

"…한 번 믿어볼게요. 같은 하프엘프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나요?"

아나스타샤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꿈팔이는 여기서 몇 블록 정도 떨어진 옛 극장 건물에 있어요. 우연히 지나가다가 꿈팔이를 실제로 본 적도 있는데, 이 근방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였어요. 평민 구역에 살던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 아마 이 구역에 새로 와서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겠죠."

 

'외지인인가? 시체왕의 근거지에서 왔다던가…….'

 

"그리고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인간이고, 입은 옷은 마치 옷가게 주인처럼 휘황찬란하긴 한데…… 어디서 주워다 입은 옷인 건지 전부 구겨지고 낡은 옷이었어요. 차림새만 보더라도 '아, 저 사람이구나'하고 알 수 있을 거예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 근데 말 좀 편하게 해요. 괜히 낯간지럽네. 일사한텐 안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럴까? 너도 편하게 부를래?"


"그러지, 뭐. 나는 언니가 말 안 놓는다고 해도 놓을 생각이었어! 친구에 나이가 어딨어?"


낯선 골목을 조심하세요

아나스타샤들은 빈민구제 소를 나왔다. 그리고 칼리아가 말했던 옛 극장 건물을 찾기 위해, 주변의 노숙자들을 탐문하고 다녔다.

톨부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동네 마약의 주거래층이 노숙자들이었으니까 뭔가 알겠지.

 

쓰레기 가득한 좁은 골목을 지나며 탐문을 계속하던 때, 벽에 기대서 단도로 손톱을 정리하고 있는 날씬한 사람이 하나 보였다. 16세나 17세쯤 되어 보이는 인간 청년이었다.

그는 아나스타샤들을 보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여행자분들. 차림새가 번듯하시군요. 귀찮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만 여러분은 길을 좀 벗어나신 것 같습니다. 허리에 차신 주머니에 든 돈이 저랑 나눠가지기 충분할 정도로 많아 보이는데요. 지금 돈주머니를 던져 주시면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하는 도중에, 세 보이는 청소년들이 근처 골목과 쓰레기 더미 뒤에서 나타나 아나스타샤들의 앞 뒤를 막았다. 모두가 한 손을 등 뒤에 감추고서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의 검게 썩은 이가 드러났다.

그들과 아나스타샤들은 좁은 골목의 병목에 서 있었다. 여기서 벗어나면 길의 폭이 다시 넓어지겠지. 아나스타샤들의 10m 정도 뒤에는 다른 골목이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고, 20m 정도 앞에는 사거리가 있었다. 골목의 좌우 건물들은 돌을 쌓은 벽이었지만, 약간 앞쪽의 오른쪽 편에는 잠긴 나무 문이 하나 있었다. 그 건물의 높이는 7~8m 정도이고, 나무 문의 반대쪽 건물 5m 높이에 두 사람이 들어갈만한 발코니가 있지만 셔터는 잠겨있었다.
건달패와 아나스타샤들은 서로 단거리에 있었고 그들은 앞뒤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말을 걸어왔던 리더로 보이는 청년이 바로 맞은편에, 발코니에 숨어서 벽돌을 던지려 하는 벽돌수 하나, 그리고 길거리의 건달 12명이 앞 뒤로 6명씩 총 12명.

 

10대 건달들이라. 수가 밀리긴 하지만, 별로 불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웃으며 말했다.

"좋지, 친구끼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근데 나는 친구가 이미 충분해서 말이야. 물론 네가 여기서 무릎 꿇고 빌어본다면 예외로 여겨줄 의향은 있어."


"……하하, 이런 상황에서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별로 좋게 지내고 싶은 의향이 없으신가 본데, 조금 거칠게 놀아드려야겠습니다."

리더가 고갯짓을 하자 건달패들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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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잡이패 건달
"뭘 쳐다봐? 꼬우냐?"
1레벨 조무래기 [인간형]
행동순서 : +3
단도/몽둥이/뾰족하게 간 뼛조각 +7 vs 장갑 : 3피해
순수 16+_건달이 더러운 수를 써서 대상은 2피해를 더 입습니다.
수적 우세 : 공격의 대상이 동료 둘 이상과 접전중이면 건달은 +1 피해를 더 가합니다.
체력 5 / 장갑 16 / 신방 15 / 정방 11

쥐잡이패 벽돌수
"이거나 먹어라!"
1레벨 궁수 [인간형]
행동순서 : +3
벽돌로 후려치기 +5 vs 장갑 : 2피해
원.벽돌 던지기 +7 (높은 곳이라 +8) vs 장갑 : 4피해
순수 짝수 명중_대상은 다음 자기 차례가 끝날 때까지 어지러워집니다.
우월한 위치 : 쥐잡이패 벽돌수는 공격자보다 높은 곳에 있으면 장갑과 신방, 그리고 원거리 공격에 +1을 받습니다.
체력 25 / 장갑 16(17) / 신방 15(16) / 정방 12

뚜껑따개 (쥐잡이패 리더)
"그 허리띠 정말 멋있군요. 내가 차도 어울리겠어요."
1레벨 리더 [인간형]
행동순서 : +7
숨겨 놓은 쇠막대 +7 vs 장갑 : 4피해
순수 짝수 명중_뚜껑따개는 대상으로부터 이탈하고, 자유행동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원.단도 +9 vs 장갑 : 3피해
사용제한_전투마다 한 번.
애들아, 덤벼라 : 뚜껑따개가 공격할 때마다, 단거리의 동료 하나가 자유 행동으로 근접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체력 32 / 장갑 17 / 신방 12 / 정방 14


배치


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 (22), 벽돌수 (22), 클라인 (19), 아도니스 (16), 뚜껑따개 (14), 코스모스 (10), 건달 1,2,3,4,5,6 (10), 건달 7,8,9,10,11,12 (8)

아나스타샤, 벽돌수에게 원거리공격, 5피해, 이동행동, 문쪽으로 접근, 짧은행동, 문의 자물쇠 부수기 기능판정, d20(19)+민첩(2)+레벨(1)+뒷전(4) vs 보통(15) 성공.
벽돌수, 코스모스에게 벽돌던지기, 빗나감.
클라인, 건달6에게 접근,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건달5에게 냉기광선, 완전히 빗나감, 1피해, 클라인에게도 1피해, 이동행동, 문 안으로 들어감.
뚜껑따개, 아나스타샤에게 단검 던짐, 3피해, 이동행동, 코스모스에게 접근.
코스모스,
뚜껑따개에게 근접공격, 9피해, 자유행동, 후광,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 실패.
건달1,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건달2,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완전히 빗나감, 자신에게 3피해.
건달3,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건달4, 코스모스에게 접근.
건달5, 코스모스에게 접근
.

건달6, 클라인에게 공격, 완전히 빗나감, 자신에게 3피해.
건달7, 뚜껑따개 뒤로 이동.
건달8, 뚜껑따개 뒤로 이동.
건달9, 뚜껑따개 뒤로 이동.
건달10, 뚜껑따개 뒤로 이동.
건달11, 뚜껑따개 뒤로 이동.
건달12, 뚜껑따개 뒤로 이동.

 

아나스타샤는 발코니에서 공격하며 방해하는 벽돌수 먼저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좁은 골목에서 머리 위로 화살을 쏘아봤자 소용없겠지.

 

'저 발코니로 올라가서 접전을 벌이거나, 맞은편 건물 위로 올라가는 것이 최적의 방법 같네.'

 

발코니의 반대편 건물을 보니 자물쇠만 부순다면 열릴 수 있을 법한 문이 보였다. 아나스타샤는 곧바로 자물쇠를 부쉈다.

아도니스는 자물쇠를 부수는 것만 보고도 의도를 파악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신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1층의 건달들은 두 명의 의중을 모른 채, 단순히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짧은행동, 무기바꿈, 뚜껑따개에게 쌍수 근접공격, 빗나감, 2피해, 이동행동, 문 안에 들어감.
벽돌수, 코스모스에게 벽돌던지기, 빗나감.
클라인, 건달6에게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10피해.
건달6, 전투불능.
건달1, 전투불능.
건달2, 전투불능.
건달3, 2피해.
클라인, 자유행동, 건달3 이어베기, 6피해.
건달3, 전투불능.
건달4, 3피해.
아도니스, 이동행동, 곡물창고의 3층 창가에 섬, 벽돌수에게 냉기광선, 9냉기피해.
뚜껑따개,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4피해.
코스모스,
뚜껑따개에게 근접공격, 12피해, 이동행동, 물러서기, 판정 성공, 발코니 아래로 이동.
건달4, 클라인에게 공격, 빗나감, 이동행동, 물러서기, 판정 성공, 뚜껑따개 뒤로 숨음, 자유행동, 코스모스에게 공격, 3피해, 순수 16이상으로 2추가피해.
건달5,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완전히 빗나감, 자신에게 3피해.
건달7,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3피해.
건달8,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3피해.
건달9,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건달10, 클라인쪽으로 이동.
건달11, 클라인쪽으로 이동.
건달12, 클라인쪽으로 이동.

 

하지만 리더 쪽은 달랐다.


"뭐하는 건가요! 이대로 뒀다간 망치머리가 당할 거라고요!"

 

리더는 문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아나스타샤를 공격했고, 아나스타사는 빠르게 검을 꺼내 들어 응수했다.

 

"뻔히 보이는 수에 당하지 않는다는 건가. 역시 우두머리는 좀 다르네. 아도니스, 먼저 올라가요!"

 

"쳇………."


리더 뚜껑따개는 아도니스란 남자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작 한 합인데도 아나스타샤의 완력이 자신을 능가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 정면승부를 한다면 자신이 확실히 지게 될 거다.

거기다 1층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저 붉은 머리의 남자는 대체 무슨 괴물인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우리 쪽 애들 셋을 베어 넘겼다. 나까지 자리를 뜬다면 전세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1층이 소란스러운 사이, 아도니스는 건물 안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내부는 곡물 창고였는데 창문이 열려 있고, 건너편 발코니의 위치보다 높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좋은 자리 선점이 가능했다.

창 밖으로, 1층을 내려다보는 벽돌수가 보였다. 건너편 건물에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하는 건지.

아도니스는 벽돌수를 향해 냉기 광선을 쏘았다. 벽돌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꽁꽁 얼어 1층으로 떨어졌다.

 

"망치머리가 쓰러졌다!"

 

"흐이익!"

 

건달의 상태를 보고 한 명은 도망쳤다. 다른 건달들도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곡물창고의 지붕으로 올라감, 짧은행동, 무기교체, 벽돌수에게 원거리 공격, 빗나감, 1피해.
벽돌수, 아도니스에게 벽돌던지기, 완전히 빗나감, 아래층의 건달12가 맞음, 2피해.
클라인, 건달8에게 근접공격, 치명타, 정밀공격 16피해.
건달8, 전투불능.
건달7, 전투불능.
클라인, 이동행동, 건달5에게 접근.
아도니스, 뚜껑따개에게 냉기광선, 15냉기피해.
뚜껑따개, 코스모스 공격, 4피해, 이동행동, 물러서기, 판정 성공, 건달들 사이로 숨음.
코스모스,
건달9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이동행동, 물러서기, 판정 성공, 클라인 뒤로 이동.
건달4, 클라인 접근, 공격, 3피해.
건달5, 클라인 공격, 완전히 빗나감, 건달4에게 3피해.
건달4, 전투불능.
건달9, 클라인 접근, 공격, 빗나감.
건달10, 클라인 접근, 공격, 치명타 6피해, 순수 16이상, 2추가피해, 수적우세로 1추가피해.
건달11, 클라인 접근, 공격, 빗나감.
건달12,
클라인쪽으로 이동.

 

하지만 리더는 그럴 때일수록 실력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코스모스 쪽을 파고들어 공격했다. 그리고 특유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무기 사정권 밖으로 물러났다.

 

"봤지! 아직 뚜껑따개가 있다고! 불쏘시개, 뚜껑따개를 엄호하자!"

 

솔직히 뚜껑따개라고 불린, 리더로 보였던 청년이 가장 싸움에 소질이 있었고, 그 외에는 별 볼일 없었다.

다른 이들도 그런 점을 아는 건지 리더에게 상당한 의지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뚜껑따개가 공격에 성공하면 다른 건달들의 사기가 올라갔고, 공격에 실패하면 사기가 떨어졌다.

 

참모 격으로 보이는 녀석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는지, 모든 공격을 뚜껑따개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뚜껑따개를 엄호하는 진형으로 바꾸었다.


고조주사위3
아나스타샤, 벽돌수 원거리공격, 치명타 11피해.
벽돌수, 전투불능.
클라인, 건달10에게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정밀공격 12피해.
건달10, 전투불능.
건달12, 전투불능.
건달9, 2피해.
아도니스, 뚜껑따개에게 냉기광선, 치명타 25냉기피해.
뚜껑따개, 전투불능.
코스모스,
건달9 근접공격, 9피해.
건달9, 전투불능.
건달5, 자유행동, 극복판정, 판정 실패, 도망쳐서 전투이탈.
건달12,
자유행동, 극복판정, 판정 실패, 도망쳐서 전투이탈.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지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이미 아도니스가 최적의 자리 선점을 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엄호를 해도, 머리 위가 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도니스는 뚜껑따개를 향해 냉기 광선을 쏘았다.

 

결국 뚜껑따개와 건달들 두엇만 남게 되었다. 집중 공격을 받았던 뚜껑따개는, 되려 남은 건달들보다 쌩쌩해 보였다.

 

'뚜껑따개라고 했나? 건달 주제에 제법인걸…….'

 

아나스타샤는 말없이 쌍수와 발차기로 건달 두 명을 밀치고, 뚜껑따개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뚜껑따개는 공격을 막았지만, 힘에 밀려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남은 건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선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가버렸다. 뚜껑따개가 자신들 뒤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기고만장했던 거였지만, 그가 쓰러졌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멍청하고 눈치가 없더라고, 자신들만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파악할 머리는 있었다.

 

뚜껑따개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혼자가 됐다는 걸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저건 어떤 의미의 웃음이었을까. 실망? 납득? 자조? 뭐가됐든 뚜껑따개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제법인걸. 아직도 더 상대하겠다는 거야?"

 

"하, 하하…….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제 쪽인데, 끝장은 봐야지 않을까요? 저도 체면이란 게 있어서 말입니다."

 

"흐음……."

 

아나스타샤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뚜껑따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뚜껑따개는 단검 하나로 머리를 보호한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뚜껑따개는 생각했다. 아, 정말로 끝이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끝'은 시작되지 않았다. 뚜껑따개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뚜껑따개의 바로 앞에 없다는 거지, 있기는 있었다. 쓰러진 동료들의 소지품을 뒤지는 4명이.

 

"허………."


전리품 : 꿈 잎사귀 한 뭉치.

아나스타샤들은 쓰러진 건달들과 뚜껑따개에게 더 이상의 숨겨둔 무기가 없는지 조사했다. 죽인 건 아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다시 일어서서 공격해오면 곤란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나온 건 잎사귀 한 뭉텅이밖에 없었다. 예상컨데, 이 잎사귀가 꿈 잎사귀라는 마약초일 것 같았다.

 


 

"뭐…… 하시는 건가요?"

 

"이 녀석들 깨어나서 공격하면 안 되잖아. 무기는 회수해야지. 아, 너도 무기 내놔."

 

아나스타샤는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밀었다.

 

"호오…… 죽은 거 아니었나요?"

 

"죽긴 왜 죽어? 고작 삥 뜯는 건달들 죽여봤자 꿈자리 사나워."

 

"그렇군요."

 

"무기 내놓으라니까? 아직도 말 안 들어?"

 

빨리 무기를 반납하지 않는 뚜껑따개 때문에, 아사스타샤는 짜증 내며 그쪽을 쳐다봤다.

뚜껑따개는 멍한 표정으로 아나스타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전투 의사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인 모습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 녀석이네. 화난 것도 아니고, 비굴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갑자기 저런 표정은 왜 짓는 거야?'

 

멍하니 서있던 뚜껑따개의 상체가 갑자기 아래로 푹 꺼졌다.

 

"저를 받아주세요!"

 

"뭐, 뭐야?!"

 

뚜껑따개가 아나스타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까 무릎을 꿇고 빌면 부하로 받아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언제!"

 

생각해보니 이 녀석이 친구 어쩌구 하길래, 그런 식으로 대응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게 진짜 받아준단 소리는 아니고 너흴 무릎 꿇리겠다, 그런 비유였던 거지! 진짜로 받아달라고 할 줄이야!

 

"이렇게 빌겠습니다!"

 

머리까지 바닥에 박았다.

 

"환장하겠네……."

 

방금까지 버터를 칼로 가른듯한 말솜씨로 시비를 걸었던 녀석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대담하고 저돌적인 행동이었다.

본래는 여유롭고 능수능란한 지략가 스타일이 아닌, 이런 막무가내에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소년의 모습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저 이제 쪽팔려서 건달 짓도 못합니다. 받아주세요!"

 

"이게 어디서 수작질이야!"

 

멀찍이 있던 아도니스가 달려와 뚜껑따개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아, 아도니스. 그건 좀 심하잖아요."

 

"괜찮습니다! 받아주시기만 한다면!"

 

"하……. 그래, 어차피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잘됐다. 너 이 이파리 뭔지 알지?"

 

뚜껑따개는 고개를 살짝 들어 잎사귀를 확인했다. 자신의 쥐잡이패 부하들이 말아 피우던 꿈 잎사귀였다.

 

"네, 꿈 잎사귀입니다."

 

"이 꿈 잎사귀를 어디서 났는지 말해주면 생각해볼게. 꿈팔이를 찾아야 할 일이 있거든."

 

"그런 거야 간단합니다. 그 녀석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장소를 빌려준 게 저희니까요."


"그럼 그 장소로 안내해 주겠어?"

 

비열한 웃음만이 얼굴에 서려있던 뚜껑따개는, 답지 않게 환하게 웃었다. 저런 미소도 지을 수 있구나, 정말 놀랐다. 평범한 10대의 모습이 거기 있어서.

"물론이죠, 누님."

 

미소 속에 드러난 그의 이는, 다른 건달들과 달리 까맣게 변해있지 않았다.


극장에 다가가기

"근데 내가 왜 네 누님이야?"

 

"그거야, 이제부터 제 두목이시니까 누님이죠!"

 

"왜 그렇게 계속 혼자 앞서가냐. 생각해 본다고 했지, 받아준 적은 없는데. 그리고 약쟁이들에게 그렇게 불려봤자 별 감흥 없어."

 

"……그러니까 저는 약쟁이가 아닙니다. 꿈 잎사귀를 뭉텅이로 가지고 있던 건, 일종의 당근이었죠. 부하들을 잘 부리기 위한 그런 거 말입니다."

 

아나스타샤들은 뚜껑따개에게 안내를 받으며, 꿈팔이가 자리 잡은 버려진 극장 건물로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뚜껑따개는, 아나스타샤가 마약에 대해 질색하는 기색을 보이자, 자신이 중독자가 아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영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아, 그래."

뚜껑따개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저는 아직 18살입니다. 두목님이 아니어도 누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래. 불러라 불러."

 

아나스타샤는 포기한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근데 왜 이렇게 내 부하 자리에 집착하는 거야?"

 

"원래 건달의 세계에서 자신보다 강한 자 밑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죠. 그리고 누님이 이 그룹의 리더 신 것 같고요. 아무튼 전 지금 도장깨기, 그런 거 당한 상태랍니다."

 

"하…. 구역을 침범한 건 미안하다고 생각해. 여기가 처음이라 잘 몰랐거든. 하지만 너희도 상대를 잘 보고 골랐어야지."


"아뇨! 저희 구역을 침범해 주셔서 완전 감사하고 있습니다. 누님을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더 솔직한 심정은 이렇게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두목으로 모시게 되어서 떨리고 영광………"


아도니스는 뚜껑따개가 별로였다. 도장깨기? 두목? 누님? 웃기고 있네. 저건 그냥 아나스타샤에게 치근덕거리는 거다.

그럼에도 잠자코 있는 이유는, 그가 지금으로써는 아나스타샤에게 도움이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내심도 한계점에 다다랐다.

"좀 적당히 하지 그래?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이러다 우리가 꿈팔이를 찾으러 가는 거 동네방네 소문나겠네."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법사님. 이곳은 저희 구역이고 제가 동행하는 이상,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

뚜껑따개가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대답하자, 아도니스는 헛웃음을 뱉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사람에게 약했다. 화를 내거나 빈정대면 똑같이 해줘야 오고 가는 게 있는데, 이런 식이면 제 혼자 화내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나?

"그래서 아직 멀었어?"


"아뇨, 이제 도착했습니다. 저 2층 건물이지요."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왜 꿈팔이를 찾으시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으실 건가요? 마약 거래……는 아닌 것 같은데요."


"글쎄, 알려줘야 하나?"


"알려주신다면 제가 누님께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어차피 동네 건달인데 말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아냐, 돈이 필요해서 우리가 시체 왕의 하수인을 찾으려 꿈팔이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팔아넘길 수도 있어.'

"의심하고 계시단 건 알지만, 방금 싸움으로 깨달았습니다. 저는 누님과 그 동료 분들이랑 더는 척을 지고 싶지 않아요. 그래 봤자 아까처럼 당하고 말 텐데요. 그리고 그때에는 살아남을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없겠죠. 차라리 누님의 편에 서서 가르침을 받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멋들어진 아부나 칭찬이 아니라, 철저한 손익계산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마도 아나스타샤의 의중을 눈치챈 걸 테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앞서 했던 말보다 이 계산적인 말이 더 신뢰가 갔다. 형체 없는 마음에 기대기보다, 정확한 이득과 계산을 확인하는 것이 훨씬 안심됐다.

 

그리고 이 구역 생리(生利)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뚜껑따개를 데려가는 것도, 마약상 패거리를 상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결국 그에게 말해주기로 결심했다.

"………엘돌란에 있을 시체왕들의 하수인을 찾고 있어. 그들이 호객 광장의 좀비 사건을 일으켰고, 우린 습격받았지. 그리고 꿈팔이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찾아서 조사 중이야."


"그렇군요. 시체왕이라……."

뚜껑따개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곧 싱긋 미소 지었다.

"응, 역시 누님 편을 든다고 하길 잘했군요. 저 사람들이 정말 시체왕과 연관되어 있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장소를 알려준 순간부터 저희 쥐잡이패 역시 표적이 될 겁니다. 살아남겠다고 정보를 판 들,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뭐가되었든 죽은 자들을 부리는 자들과 연관이 되어봤자 좋을 것도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 '조사'에 저도 끼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뚜껑따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내었다.
아나스타샤는 그의 객관적이고 여러 수 앞을 보는 판단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뚜껑따개, '영입'되어 환영하는 의미로 한 가지 더 질문할게. 저 건물에 잠입할만한 루트는 있어?"


"아니요. 길이라고 할만한 건 없어요. 거기다 보시다시피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인지라, 2층은 밟기만 해도 부숴질 겁니다. 올라갔다가 크게 다칠까 염려되는군요."


"잠입은 어렵겠네…. 1층 창가는 어때, 거기도 무너질까?"


"지난번 갔을 때, 건물의 1층과 지하는 튼튼했어요. 몸싸움이 벌어지더라도 괜찮을 테죠. 다만…… 토르사, 그러니까 꿈팔이는 동네 꼬마들을 이용해서 극장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면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부에도 감시하는 자들이 있을 테고요. 수상한 움직임은 들킬 겁니다."

 

"정면돌파밖에 없겠네."


"그래도 처음엔 대화를 시도해보죠. 의외로 말이 통하는 약장수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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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돌란의 그림자3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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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엘돌란의 그림자3



나는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다만 의무를 다 하지 않고 사는 것을 겁낸다.

 


 

등잔 공방에는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

등잔 공방에 도착할 무렵, 엘돌란에는 밤이 찾아오고 거리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며, 찾아오는 어둠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하지만 단 한 곳만은 안장 구역의 어느 곳보다도 가장 환하게 빛났다. 등잔 공방은 그 이름처럼 건물이 등잔이라도 되는마냥 빛을 발했다. 이 곳에 있으면 거리에 어둠이 찾아왔다는 걸 모를 것만 같았다.

 

공방은 도시의 불을 밝히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무척 부산스럽고 바빠보였다.

 

이렇게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환하게 빛나는 곳이 과연 시체왕과 관련이 있는 걸까? 내막은 모르겠지만, 일단 겉보기에는 언데드와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장소였다.


하지만 점등사 길드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그레이슨에 대해 더 조사를 하려면 이 곳을 조사하는 수밖엔 없었다.

 

아나스타샤들은 공방에 들어가 접수대로 보이는 곳에 갔다.

"여기가 점등사 길드가 운영하는 곳이 맞나요?"

접수대에 앉아서 석간 신문(夕刊 新聞)을 읽던, 금색의 곱슬머리가 아름다운 여성이 대답했다.

"네, 맞아요. 도시의 밤을 밝히는 일을 하기위해 이 곳에서 등잔을 만들고 점등사들이 일을 하죠.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오셨나요?"


"사람을 한 명 찾고 있는데요, 그레이슨이라고."


"그레이슨? 죄송하지만 그런 사람은 저희 길드에 없는데요."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거, 이 길드의 목걸이 아닌가요?"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슨에게서 얻은 점등사 길드의 목걸이를 보여줬다.

"어? 저희 길드의 목걸이가 맞아요. 어디서 나셨어요?"


"그레이슨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더라구요. ……잃어버린 것 같던데 여기 오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아나스타샤는 약간의 거짓말을 보탰다.

"음, 어디서 분실물을 줍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출근자들 중엔 목걸이가 없는 사람은 없었는데……."

 

접수원은 등잔 공방의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양 손을 맞부딪혔다.

 

"아! 아브로스가 잃어버린 걸 수도 있겠어요."


"아브로스?"


"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몇 주동안 휴가를 낸 사람인데, 지금 인원들 중에서 목걸이의 주인이 없다면 그 사람밖에 없겠네요."


"아브로스가 갈색머리에다가 숨겨진 장막의 도학자들 출신의…… 그, 평범한 인상의 마법사인가요?"


"음, 그런 편이죠. 조금 인상이 흐릿한…… 아시는 분인가 봐요?"


"아…… 조금."


"그 사람, 그렇게 안 생겨서는 의외로 발이 넓나 보네요. 이번 휴가만해도 그래요. 몇 주동안의 휴가를 허락받다니, 케스미르 가문이나 아를리사 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인가?"


"케스미르 가문이요?"


"어머, 엘돌란에 온지 얼마 안 된 분이신가봐요? 케스미르 가는 대대로 점등사 길드의 길드장을 맡아왔던 가문이에요. 아를리사 덴트 님은 등잔공방의 담당 마법사로, 길드장님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고요."


"아아………."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슨으로 추정되는 아브로스에 대해 몇 가지 더 물어봤다.

 

접수원은 목걸이를 돌려주러 온 주제에 길드원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것에 대해 수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묻는 말에 전부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등잔 공방 사람들은 해당 사건과 전혀 연관이 없는 평범한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호객 광장에서 일어난 좀비 사건을 두려워하기도 우스꽝스럽게 여기기도 하는 거리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등잔 공방에서 얻은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브로스에 대한 것도 별거 없었다. 등잔 공방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했다. 말수가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게 아브로스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그레이슨, 아니 아브로스는 그냥 점등사 길드에 소속되어 있을 뿐, 길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나스타샤를 바라보며, 접수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목걸이는 아브로스가 휴가가 끝나고 돌아오면 돌려주도록 할게요. 여기까지 가지고 와주셔서 고마워요."


"아, 여기 로브도 같이 있어요."


"어머나, 로브 채로 잃어버렸나 보네……. 웬일이래."

목걸이와 로브를 동시에 잃어버렸고, 그걸 등잔 공방에 대해 캐묻는 자가 가지고 왔다. 수상하게 여길 법도 하건만, 안이한 접수원은 아무런 의심 없이 로브를 건네받았다.


"여기서 실마리가 끊겼군요."

클라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네요. 그래도 아직 범인이 있을만한 곳이 남아있잖아요? 사원 구역이요."


"거기서 화장한 시체가 좀비 중 하나로 나타났다고 했었지요."


"네, 아브로스가 호박 수레를 준비하면서 사원 구역의 시체까지 손을 썼다고 보기 힘들잖아요."


"화장한 시체가 좀비가 되었을리는 없으니, 분명 사제 중 하나가 빼돌린 거겠군요."

 

"분명 공범이 있을 거에요. 주모자라면 좋을텐데."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제 중에서 시체왕의 추종자가 있다라……. 개인적으론 믿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과연 그런 자를 사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지…… 시체와 너무 오래 있었던 걸까요. 그게 그를 오랫동안 시험에 들게 한 걸지도."


"글쎄요. 사람은 자신의 적에게마저도 공감을 해서 타락한다고들 하잖아요. 반대로 그런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해질 수도 있고. 하지만 이해에도 여러 방법이란게 있잖아요. 시험에 들었더라도 전부 시체왕의 추종자가 된다던가, 극단적으로 바뀌지 않아요. 만약 사제 중에 흑마법사가 있다면, 그건 배교자(背敎者)가 아니라 처음부터 빛의 신을 믿지 않은 자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 코스모스."

 

"그렇겠지요……."

 

"그나저나 사원 구역의 사제가 관여되었다는 명확한 물증이 없어서 걱정이네요."

 

아나스타샤들은 망자의 금고를 조사하기 위해 몰래 잡입한다든가, 사제에게 매료 마법을 쓴다든가, 황제의 어명이라고 월권(越權)을 사용한다든가,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봤다.

 

"어찌되었든 지금 사원 구역을 찾아가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지금 찾아간다면 몰래 잡입하는 것조차 변명의 여지 없이 무덤 도굴꾼으로 오해받기 십상일 것입니다."

 

코스모스의 말이 옳았다. 범인이 사제라면 어쩔 수 없이 계속 사원에 머물러야 할테니, 날이 밝은 다음 찾아가기로 했다.

아나스타샤들은 새 숙소를 구하는 걸 우선시했다.


안장 구역의 '공중 침대'라는 여관은 보다도 고급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특히 침대가 일품이었는데, 깃털로 만들어진 침대는 상당히 푹신해서 공중에서 잠드는 기분이 들었다. 실로 여관의 이름에 어울리는 시설이었다.

아나스타샤들은 혹시모를 암살자들을 대비해 4명이 같은 방에서 자기로 했다.

 

다행히도 간밤에 침입자는 없었으나, 클라인이 제대로 잠을 못이룬 것 같았다. 불침번을 선 모양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아직 클라인과 어색했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라인, 음…… 안 피곤해요?"


"네, 괜찮습니다. 하루이틀 밤새는 일은 별 일 아닙니다. 이런 때이니, 불침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나름대로 경계하며 선잠 자고 있으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편하게 주무세요. 제 귀가 왜 이렇게 길고 크겠어요?"

 

자신의 귀를 쭉쭉 늘이듯이 만지며 클라인을 설득했지만, 그는 그저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었다.

'들을 생각이 없군.'

 


 

망자의 금고

아침이 밝자마자 아나스타샤들은 사원 구역으로 향했다. 사원 구역은 평민 구역의 동쪽에 있는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었다.

꽤 멀리까지 돌아 도착한 사원 구역은, 평민 구역이나 안장구역에 비하자면 작은 곳이긴 하지만 있어야 할 것들은 전부 자리하고 있었다. 사제들을 위해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식당도 있었고, 예배를 보러오는 이들을 상대로 부적이나 팔찌 같은 잡동사니들도 파는 종교적인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납골당의 위치를 모르는 아나스타샤들은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사제들에게 망자의 금고 위치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때로 길이 막힐 때는, 가장자리에 앉아 돈을 받고 점을 쳐주는 예언자라 하는 점술가들에게 오늘의 운세 같은 걸 보면 길을 알려주곤 했다. 그 길이 전부 맞는 건 아니었고, 돈만 받고 사기치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알려준 길로 갔으나 막다른 길에 도착해 버렸을 땐,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사기꾼을 찾아갔지만 이미 도망간 뒤였다.

 

어찌저찌 망자의 금고에 도착했을 때 본 건물은, 헤멨던 것이 무색하게도 사원 구역의 크고 작은 사원과 신전들 중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이었기에 허망함은 더했다.

"처음은…… 정직하게 시도해 볼까요? 들어가서 조사하게 해달라고."

 

클라인이 말했다.

 

"그 다음은 소속을 밝히도록 하죠."

 

그리고 아도니스가 말했다.

 

"그래도 퇴짜 맞으면 마법을 걸어요."

 

코스모스는 말이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숨을 고르고, 망자의 금고의 입구에 들어섰다. 그러자 그 앞에서 경비를 서던 사제 두 명이 앞을 막아섰다.

"이 곳은 아무때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저희는 전 날 호객 광장에서 일어났던 좀비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어요. 탐문을 하니, 좀비 중 하나가 이 망자의 금고에 안치되었던 시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망자의 금고에서 장례를 받았을 터인 시신이 좀비가 되어 광장에 나타났다는 말에 사제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둘 중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자가 사제를 진정시키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오데사님을 불러오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금발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 사제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다른 사제들도 입은 빛의 사제의 정식 복장에 대사제의 상징을 붙였을 뿐인데도 상당히 권위 있어 보였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 납골당에서 장례를 치른 시신이 좀비가 되었다는 소리를 하시던데, 킁."

 

"호객 광장의 상인이 자신의 친구 콜른이 좀비가 되어 나타났다고 하던데요. 일주일 전 여기서 장례를 치뤘다는데……"

 

"그런 황당무계한 주장만 믿고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저희들은 죽은 사람들이 영면에 들 수 있도록 킁, 장례의 절차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거기다 화장까지 된 유골이 시신이 되었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비염 끼가 있는 듯, 종종 코를 훌쩍이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크음, 그런 말도 안되는 주장은 덥썩 믿으시면서 사제들은 믿지 못하시니 통탄을 금치 못할 따름입니다."

 

주변의 사제들은 늘상 있는 일인 것처럼, 오데사가 코를 훌쩍이는 것보다 오데사의 기분을 더 신경 썼다. 아나스타샤들이 더 이상 오데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를 노심초사 하면서.

 

"네, 아무래도 그게 믿기지 않아서요. 사제님들을 못 믿는다기보단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애초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일개 개인의 말의 신빙성을 왜 증명해 드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조사랍시고 납골당을 휘저으면 죽은 이들의 영면을 방해할 뿐입니다, 킁."

 

오데사는 조사를 하게 해줄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코스모스, 오데사 교섭, 기능 판정 : d20(11)+매력(1)+레벨(1)+종교인(1)+대사제(2) vs 보통(15) / 성공

 

그 때, 코스모스가 앞으로 나섰다.

 

"……아나스타샤, 제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코스모스에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코스모스는 결심을 굳힌 표정이었다. 거기다 그는 빛의 신이 직접 그 손으로 창조했다고 일컬어지는 종족인 신성족이기도 하고,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빛의 신을 섬기는 일을 했다고도 하니, 맡겨보기로 했다.

 

"사제분들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빛의 신을 섬기는 이들이 신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는 같은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을테니 말입니다."

 

사제들은 코스모스의 말에 집중했다.

 

사제들은 신성족을 환영하는 많은 부류 중 대표적인 하나였다. 빛의 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빛의 신의 피조물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데사 역시 화를 누그러트리고 코스모스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빛의 신을 모독하는 자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공존하고 있고, 그들은 신과 사제들을 음해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분들이 자신의 일을 충분히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궁지에 몰아넣고자 사원과 납골당에 잠입해서 몰래 일을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킁, 저희는 망자의 금고의 경비도 충분히 서고 있습니다. 낮에는 저희가 금고에 있고 밤에는 은방패대 분들이 직접 이 곳을 순찰해 주시니까요."

 

"악의 무리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습니다. 경비가 있음에도 숨어드는데 도가 튼 자들이 넘쳐나고 말입니다. 저희처럼 당당하게 정문으로 출입을 하는 자는 드물겠지요."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큼, 이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소리 아닌가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데사 님. 오데사 님도 아시겠지만, 빛의 신께선 행동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저희의 요청은 그저 어차피 늘상 하는 신앙의 재확인, 그 뿐이지 않습니까. 내부에 숨어든 적이 없다면 평소와 다름 없는 납골당 관리 증명에 빛의 신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만약, 존재한다면요?"

 

"적이 숨어든 것이 어찌 사제 분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빛의 신께서 보시기에 아직 어린 양들입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행동을 보여 숨어든 적을 처리한다면 그야말로 이곳과 대사제님과 빛의 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일이 되겠지요."

 

오데사는 대사제라는 말에 잠깐 반응했다. 그 반응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작은 동요였다. 코스모스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저희는 황궁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황태자 후보이신 아나스타샤 님께서 후계자 선발 대회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좀비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오데사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분명 황제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황제의 큰 우군인 대사제님께서도 좋아하실테고 말입니다."

 

오데사는 후계자 경연대회의 후보자에 대해 잘 몰랐다. 그만이 그런 건 아니었으니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황제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대회인만큼 그 대회 자체에 대해서는 제국 곳곳에 알음알음 알려졌지만, 선발 대회에 참여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였다. 제국은 넓은 곳이고 황제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후계자도 아니고 후보자를 어찌 알겠는가?

후계자 선발 대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태생이 황족이니 참여할 수 있었겠거니 하는 정도.

 

오데사가 가진 지식도 딱 그 정도였다.

 

오데사는 생각했다. 코스모스네 일행이 황제의 후계자가 되든 말든, 어찌되었건 황족은 황족. 그렇다면 자신이 추후에 산타 코라에 있는 빛의 성당에 들어가서 일하게 될 때의 연줄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가 이들의 신분은 확실하다. 신원이 증명된다면 납골당에서 몹쓸 일을 저지른다거나, 좀비 사건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 짓을 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킁, 그래요. 쓸데 없는 오해는 더 이상 받기 싫으니, 이번 한 번만 조사를 허락해 드리지요. 단, 저희 측 사제도 같이 동행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당연한 요구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데사는 아나스타샤들에게 토마스라는 하급 사제 한 명을 붙여주었다.


토마스는 25세의 청년이었다. 나이와는 다르게 반질반질하게 기름이 뜬 얼굴과 정수리가 벗겨진 머리가 눈에 띄는 남자였다.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대화에 굶주려 있었던 것처럼 아나스타샤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다. 특히나 엘돌란 바깥의 일들을 상당히 궁금해 했다. 그는 엘돌란은 커녕 사원 구역 밖으로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그를 적당히 상대해주면서 따라갔다.

모든 사제들의 가시돋힌 시선을 받는 와중에, 토마스에게까지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골함들을 보관하는 납골당은 상당히 깊은 곳에 있었다 몇 번이고 계단을 내려가고 장례실도 몇 개를 지나서야 납골당에 들어갔다. 입구에는 안치된 사람들의 이름이 철자 순으로 적혀 있었다. 이곳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공간이 부족할 때마다 구멍을 파서 만들어서인지 길이 상당히 복잡하고 많았다. 마치 개미굴 같기도 미로 같기도 했다.

 

토마스는 등잔을 들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 아마도 콜른을 비롯한 평민들이 안치된 곳으로 안내했다. 평민 납골당은 다른 곳들보다 비좁은 통로 좌우에, 한 칸에 유골함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크기의 구멍이 뚫린 선반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선반이 유골함을 보관하는 묘실 같았다.

묘실들은 모두 구멍에 딱 맞는 벽돌로 봉해져 있었고, 그 위에는 시체왕의 부름에 시신이 답하지 않도록 성호(聖號)가 그려져 있었다. 역시나 오래된 곳인만큼 성호도 많이 바래져 있었다.


콜른이 안치된 묘실에 다다랐을 때, 토마스는 이상함을 느꼈다. 사제인 토마스가 아니라 문외한인 아나스타샤가 봐도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콜른의 묘실로 확인되는 벽돌 뚜껑은 성호가 긁혀서 지워져 있고, 석회도 제대로 발라지지 않아 누군가 쉽게 손 댈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마스는 서둘러 벽돌을 치워 보았다. 유골함 안에 있어야 할 유골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자,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랜든! 랜든을 찾아야 합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자가 랜든 사제입니다. 그가 왜 유골이 없는지 알 겁니다. 단순히 다른 곳에 안치한 것일 수도 있고요……."

 

토마스는 혼란스러운 듯이 랜든의 이름만 반복했다.

그의 말대로 랜든이란 사제를 찾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랜든을 찾기 위해 그의 인상착의를 묻자, 소년 같이 높은 목소리가 묘실에 울려퍼졌다.

 

"멍청이들아! 대사제와 허접한 의식 따위가 너희를 영원히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했냐? 두고 봐라. 외눈의 왕이 승리하시는 날이 올 거야! 그러면 너희들도 그 발 밑에 엎드릴 거고! 아니, 너희들은 아니지…. 왜냐하면 여기서 죽을테니까!"

 

말소리가 끝나자, 주문 몇 마디를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데드를 일으키는흑마법 주문이에요! 아나스타샤, 무기를 준비하세요!"

 

아도니스가 경고하자마자 랜든의 의식 마법이 발동했다. 납골당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모두를 다 죽이라 명령했다.

 

"랜든!!! 이 빌어먹을 자식!! 망자의 금고 사제들과 대사제님을 배신했구나!"

 

토마스는 부들부들 떨며, 욕설을 퍼부었다. 납골당에 울려퍼진 목소리의 주인이 우리가 찾으려던 랜든인 것 같았다.

 

랜든은 쉰 한숨 같은 소리를 냈다. 납골당이 좁은데다 통로가 많으니 소리가 이리저리로 울려퍼져, 그가 있는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곧 이어 벽돌이 돌바닥에 턱, 턱,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석회가 발라져 있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묘실들이었다.

 

그곳에서 등잔 빛 가장자리에 뼈와 힘줄로만 된 사람 그림자가 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한두 구가 아니었다. 뒤를 따라 줄줄이 비슷한게 더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어떤 놈들은 텅 빈 해골 눈 구멍에서 푸르스름한 보라색 빛을 뿜고 있었다. 총 두 집단이 앞 뒤를 전부 포위한 채로 아나스타샤들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에 아까까지 욕짓거리를 내뱉던 토마스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아나스타샤는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아나스타샤들을 공격하려 다가오는 두 집단은 스켈레톤(skeleton) 8구였다. 눈에 불을 켠 해골은 차림새—화장은커녕 안치실에 보내진 시체에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인지, 생전에 입었으리라 추측되는 로브가 입혀져 있었다—로 보아 마술사로 확인되는 해골 2구, 비교적 평범한 해골이 6구.

 

그리고 아나스타샤들이 서 있는 곳은 가로 10m 세로 20m 정도의 방이었고, 앞뒤로 3m 폭의 아치가 있어 복도로 이어져 있었다. 그 복도는 작은 복도들이 여러 갈래 뻗어나가는 구조였다.

 

스켈레톤들은 두 출구에서 접근해와 완전히 포위하는 형태였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양조장에서 봤었던 드워프 해골처럼.

 

"마법사 스켈레톤은… 죽어서도 마법을 쓰나요?"

 

"시체에도 잔여 마력은 남아있으니까요. 애초에 흑마법으로 부활한 몬스터들이니 생전에 쓰던 마법이 아닌, 리치(Lich)들처럼 흑마법을 구사할 거에요."

 

아도니스의 말대로라면 가장 뒤에 있는 저 해골들은 마법도 쓸 것이다.

 

'위험하겠는데……. 마법을 쓰는 스켈레톤만 두 구라니.'

 

불리한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던 아나스타샤는 언데드들이 신성에 취약하다는 걸 기억해 냈다.

 

"토마스 씨, 신성을 사용하실 수 있죠? 사제니까요."

"저, 저 그게…… 저는 하급 사제이기 때문에 정식 신성 주문은 사용할 줄 모릅니다. 그, 의식의 절차만 기억하고 있어서… 전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토마스는 눈을 피했다.

 

'………챙겨야 할 것만 늘었군.'

 


 

하급사제 토마스

"제발 여기서 도망치게 해주세요!"

보통 0레벨 비전투자 [인간형]
행동순서 : +3

날 해치지 마 : 토마스는 구석에 숨으려고 합니다. 누가 막지 않으면 한 둘 정도는 토마스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토마스는 벗어나기를 시도하고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게 해줘! : PC들이 양쪽 출구를 탄탄히 지키고 있으면 토마스는 매 라운드 극복 판정을 합니다. 실패할 경우 토마스는 PC들을 지나쳐 도망치려다가 해골들에게 막힙니다.

체력 15 / 장갑 12 / 신방 11 / 정방 11

 

망자의 금고 해골
"아아아아아아……"
1레벨 조무래기 [언데드]
행동 순서 : +6
취약 : 신성
뼈 손가락 +6 vs. 장갑 : 3 피해
무기 저항 16+ : 해골들은 무기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공격 판정이 16+가 아니면 피해를 절반만 입습니다.
망자의 신속함 : 특수한 의식 마법 덕분에, 이 해골이 속한 무리는 행동 순서를 판정할 때 d20을 두 번 굴리고 높은 쪽을 취합니다.
체력 6 / 장갑 16 / 신방 14 / 정방 11

 

해골 마술사
"우리의…… 안식을…… 방해하지 마라."
2레벨 술사 [언데드]
행동 순서 : +7
취약 : 신성
갈퀴 같은 뼈 +6 vs. 장갑 : 4 피해
원.푸른 광선 +6 vs. 신방 (같은 집단에 있는 단거리의 적 둘까지) : 4 마력피해
순수 짝수 명중_대상은 해골 마술사의 다음 차례가 시작될 때까지 취약해집니다.
무덤의 부름 : 전투마다 한 번, 해골 마술사는 짧은 행동으로 보통 극복 판정을 하여 쓰러진 조무래기 동료를 도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공하면 1d2구의 망자의 금고 해골이 그 무리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일어납니다. (그때가 될 때까지 이 해골들은 공격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무기 저항 16+ : 해골들은 무기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공격 판정이 16+가 아니면 피해를 절반만 입습니다.
체력 30 / 장갑 17 / 신방 12 / 정방 16


배치

 

 


300x250

 

행동순서 판정 : 망자의 금고 해골 1,2,3 (26), 해골마술사1 (25), 아나스타샤 (21), 토마스 (21), 해골 마술사2 (16), 코스모스 (13), 망자의 금고 해골 4,5,6 (12), 아도니스(11), 클라인 (5)

 

망자의 해골1, 아도니스에게 접근.
망자의 해골2, 코스모스에게 접근.
망자의 해골3, 코스모스에게 접근.
해골마술사1, 앞으로 전진, 코스모스에게 푸른 광선, 4마력피해 .
아나스타샤, 해골4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토마스, 왼쪽 관 뒤로 이동해 숨음.
해골마술사2, 아나스타샤에게 푸른 광선, 빗나감.
코스모스, 이동행동, 해골2에게 접근, 근접공격, 5피해.
해골4, 아나스타샤쪽으로 이동.
해골5, 클라인쪽으로 이동.
해골6, 클라인쪽으로 이동.
아도니스, 해골 마술사1에게 냉기광선, 16냉기피해.
클라인, 이동행동, 해골5에게 접근, 해골5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자유행동, 만회의 일격, 정밀공격, 7피해.
해골5, 전투불능.
해골6, 2피해.
언데드에게 유리한 환경 극복판정 : 쉬움(6) 성공.


스켈레톤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토마스는 소리를 지르며 왼편의 묘실 선반 뒤로 몸을 숨겼다. 차라리 그 편이 토마스를 신경 쓰지 않고 전투를 할 수 있어 다행일지도 몰랐다.

 

'언데드들에게 들키지 말고 잘 숨어 있으세요.'


아나스타샤들은 차분히 근처의 스켈레톤부터 해치워 나갔다. 스켈레톤들은 양조장의 드워프 해골이랑 달리, 내구성이 약해 픽픽 쓰러졌다.

 

"급하게 만들었나? 왜 이렇게 약해?"

 

아나스타샤가 그 말을 하기 무섭게 랜든의 주문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납골당의 공기가 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구역질 나는 냄새, 온몸에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역한 나머지 숨을 들이킬 수 없었다.

 

"시체의 부패 가스를 풀어 놓은 것 같습니다. 제가 한 번 중화 시켜보겠습니다."

코스모스는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러는동안 숨을 참으면서 코스모스가 공격 당하지 않게 보호했다.

코스모스 부정한 기운 정화 기능판정 : d20(11)+민첩(2)+레벨(1)+종교인(1) vs 보통(15) / 성공

코스모스의 기도가 끝났을 땐, 공기가 한층 가벼워졌고 해골 마법사를 제외하고 모든 스켈레톤들을 쓰러트린 후였다.

 

"……액시스에서 유행하던 전담 소설에서 해치웠다, 약하네, 죽은 건가, 이런 말을 하면 적들이 일어나 다시 공격해 온다는 클리셰가 있었어요. 딱 그 꼴이네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야 겠어요…."

 

아나스타샤는 흑마법사 주제에 쪼잔한 녀석이라며 투덜거렸다.

고조주사위1
해골1, 아도니스에게 접근, 아도니스 공격, 3피해.
해골2, 코스모스 공격, 3피해.
해골3,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3피해.
해골마술사1, 코스모스에게 푸른 광선, 4마력피해.
아나스타샤, 짧은행동, 무기 교체, 해골3에게 접근, 쌍수 근접공격 , 완전히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에게도 피해, 2피해.
토마스, 여전히 숨어있음.
해골마술사2, 앞으로 전진, 클라인에게 푸른 광선, 4마력피해.
코스모스, 짧은행동, 자신을 안수치료, 5회복, 해골2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해골2, 전투불능.
코스모스, 이동행동, 해골3으로부터 물러서기 판정, 물러나기 실패.
해골4, 토마스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토마스, 물러서기 판정 , 물러나기 성공, 북서쪽의 관 뒤로 숨음.
해골6,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아도니스, 이동행동, 해골1로부터 물러서기 판정, 물러서기 성공, 방의 중앙으로 이동, 아도니스 해골4 냉기광선, 빗나감, 1피해.
클라인, 해골6 근접공격, 대성공, 24피해.
해골6, 전투불능.
해골4, 전투불능.
클라인, 이동행동, 빠르게 남쪽 출구로 이동, 자유행동, 해골마술사2 이어베기, 8피해.


스켈레톤들과의 싸움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하기사 소설 속 클리셰를 말하며 실없는 소리를 말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새 해골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해골 마법사는 해골 조무래기들이 쓰러지자,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덤의 부름을 받은 해골 조무래기들이 다시 뼈가 맞춰지기 시작하며 일어섰다.

"다시 되살아 났어……! 이래선 끝이 없겠어요!"

 

아도니스는 타겟을 바꾸기로 했다. 해골 마법사를 먼저 쓰러트리면 조무래기들도 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클라인과 코스모스도 아도니스의 생각을 눈치채곤 해골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끝없이 되살아나는 조무래기 해골들이 그들의 앞을 막았다.

 

아나스타샤는 또 다른 해골 마법사를 향해 활을 조준하며 외쳤다.

 

"반대편의 해골 마법사는 제가 상대할게요. 코스모스와 클라인은 조무래기들을 막아주세요!"

고조주사위2
망자의 금고 해골 7,8 남쪽 출구에서, 해골 마술사3 북쪽 출구에서 등장.


행동 순서 판정 : 망자의 금고 해골 1,3 (26), 해골 마술사 1 (25), 아나스타샤 (21), 토마스 (21), 해골 마술사3 (20), 해골 마술사 2 (16), 망자의 금고 해골 7,8 (15), 코스모스 (13), 아도니스 (11), 클라인 (5)

해골1, 아나스타샤 공격, 빗나감.
해골3, 코스모스 공격, 3피해.
해골마술사1, 토마스에게 푸른 광선, 4마력피해.
토마스, 도와달라고 소리침.
아나스타샤, 해골1 쌍수 근접공격, 빗나감, 2피해.
토마스, 남쪽의 관 뒤로 숨음.
해골마술사3, 앞으로 전진, 아나스타샤에게 푸른 광선, 빗나감, 자유행동으로 무덤의 부름, 해골4,5 준비.
해골마술사2, 코스모스에게 푸른 광선 , 빗나감, 자유행동, 무덤의 부름, 해골6 준비.
해골7, 클라인쪽으로 이동.
해골8, 해골마술사2 뒤로 이동.
코스모스, 해골3 근접공격, 13피해.
해골3, 전투불능.
해골1, 전투불능.
코스모스, 이동행동, 북쪽출구쪽으로 이동.
아도니스, 해골마술사3에게 산성화살, 빗나감, 5부식피해.
클라인, 해골마술사2 강타 선언, 해골마술사2 근접공격, 11피해, 강타, 6추가피해.


아나스타샤는 해골 마법사의 마법을 피하며 활을 쏘아댔다. 아무래도 '해골'인지라 뼈 사이사이로 화살이 빠져나가 맞추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화살 한 개가 해골 마법사의 빛나는 눈구멍을 뚫고 지나갔다.

해골 마법사는 갑자기 목을 360도로 돌리며 기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끼기기긱기긱!!

 

고장난 인형처럼 움직이던 해골은 그대로 관절 마디마디 부숴졌다.

 

아나스타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해골 마법사들의 약점이 눈인가 봐요!"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의 말을 듣고 해골 마법사의 두개골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양쪽 입구를 막던 해골 마법사는 전부 쓰러지고, 해골 조무래기들도 더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소란이 잠잠해지자, 묘실 선반의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토마스도 나와 주변을 살폈다.

 

"저, 전부 해치운 건가……?"

 

"아니, 그런 말은 하지 말라니까요!"

 

토마스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버럭 소리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북쪽 복도에서 해골 마법사 한 구와 그것이 이끄는 해골 조무래기 무리가 더 나타났다.

 

"으아아악!!"

 

해골 마법사는 나타나자마자 눈 앞의 토마스에게 푸른색의 광선을 쏘았다. 광선에 직통으로 맞은 토마스는 고통에 바닥을 구르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쯧."

 

아나스타샤는 혀를 차곤, 해골 마법사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고조주사위3
해골4,5,6 부활.


행동 순서 판정 : 해골 마술사 1 (25), 아나스타샤 (21), 토마스 (21), 해골 마술사 3 (20), 해골 마술사 2 (16), 망자의 금고 해골 7,8 (15), 망자의 금고 해골 4,5,6 (15), 코스모스 (13), 아도니스 (11), 클라인 (5)

해골마술사1, 코스모스에게 푸른 광선, 4마력피해.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북쪽 출구로 이동, 짧은행동, 무기교체, 해골마술사1 원거리공격, 11피해.
토마스, 일반행동, 여기서 벗어나게 해줘, 극복판정 실패, 남쪽 출구에서 막힘.
해골마술사3, 아나스타샤에게 푸른 광선, 빗나감.
해골마술사2, 클라인에게 푸른 광선, 빗나감.
해골7, 토마스 공격, 3피해, 자유행동, 살려달라고 소리침.
해골8,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해골4, 아도니스 접근, 공격, 3피해.
해골5, 토마스 접근, 공격, 3피해.
해골6, 클라인 접근, 공격, 3피해.
코스모스, 해골마술사1 접근, 근접공격, 11피해.
해골마술사1 전투불능.
아도니스, 이동행동, 물러서기 판정 성공, 해골4로부터 뒤로 물러남, 해골4 냉기광선 , 16 냉기피해.
해골4, 전투불능.
해골5, 전투불능.
해골6, 4피해.
클라인, 해골마술사2 근접공격, 11피해.
해골마술사2, 전투불능.


북쪽에서 나타난 해골 마법사가 끝이 아니었다. 남쪽 복도에서도 새로운 해골 마법사가 등장했다.

 

코스모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신의 장례 의식을 치르지 않은 건지. 이건 죽은 자들에 대한 모독이자 직무유기입니다."


그동안 토마스는 진정이 됐는지 스켈레톤이 정리된 북쪽 통로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나스타샤는 차라리 토마스가 탈출하는 건을 도와 지원 병력을 부르는게 빠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씨, 빠져나가게 되면 꼭 신성을 사용하실 수 있는 사제 분들을 지원 병력으로 데려와 주세요."

 

"네, 네! 그럼요!"

 

아나스타샤는 토마스를 에워싼 조무래기 해골 몇을 처치했다.

토마스는 스켈레톤들이 없어지자마자 빠르게 납골당을 빠져나갔다.


고조주사위4
아나스타샤, 해골마술사3에게 원거리 공격, 8피해.
토마스, 일반행동, 이 곳에서 나가게 해줘 판정 성공, 무사히 빠져나감.
해골마술사3, 아나스타샤에게 푸른 광선, 빗나감.
해골7,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3피해.
해골8, 클라인 공격, 빗나감.
해골6, 클라인 공격, 3피해.
코스모스, 해골마술사2 신앙의 투창, 8신성피해.
해골마술사3, 전투불능.
아도니스, 해골7 냉기광선, 10냉기피해.
해골7, 전투불능.
해골8, 4피해.
클라인, 해골8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이후 남쪽에서 나타난 스켈레톤들도 빠르게 처리했다.

 

잠시 쉴 틈이 생겨 한숨 돌리는 사이, 쓰러진 스켈레톤들의 뼈 사이로 장신구 몇 개가 보였다. 스켈레톤들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유족들이 납골함에 같이 넣어달라고 전달한 것들이겠지.

 

아나스타샤는 해골들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해골들도 원래는 평범한 사람들이였겠죠. 죽어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이런 일에 이용되다니……."


고조주사위5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방의 중앙으로 이동, 해골6 원거리공격 , 빗나감, 1피해.
해골8, 클라인 공격, 빗나감.
해골6, 클라인 공격, 빗나감.
코스모스, 해골6에게 신앙의 투창, 빗나감, 1피해.
해골6, 전투불능.
아도니스, 해골8 냉기광선, 21냉기피해.
해골8, 전투불능
.


분노할 틈도 없었다. 양쪽 복도에서 또다시 삐걱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들은 다시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삐걱대는 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도 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급한 구두 소리, 기도문을 외는 사람들의 목소리,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하얀 빛.

 

"토마스가 사제들을 불러왔나 봐요."

오데사와 사제들이 도착했다.

 

그는 납골당에 나타난 해골 무리에,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토마스가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려는 때, 오데사의 뒤에서 토마스가 나타났다.

 

"랜든의 짓입니다! 그 녀석, 대사제님을 배신하고 시체왕에게 붙은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정말로 자신이 운영하는 납골당에, 시체왕의 수하가 사제로서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충격을 받든 말든,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지원 병력이 왔다면, 아나스타샤들은 랜든을 쫓아야 했다.

 

"랜든을 찾아야해요!"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오데사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아…… 아뇨, 안 됩니다. 우선 현장의 조사부터. 킁, 훌쩍, 이게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 겠어요.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어차피 랜든을 붙잡는 건 어려울 겁니다. 이 곳은 묘실도 많고 길도 많아 비밀 통로가 상당히 많거든요. 그는 이곳의 전담 사제였으니, 킁, 진작에 빠져나갔을 겁니다."

 

"아직 모르잖아요! ……아니, 일단 빨리 조사해 보세요. 끝나고 알아서 추적해 볼테니."

 

괜히 의심을 심어줄 필요는 없었다. 떳떳하다는게 증명된다면 어쩌면 사제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존, 당신은 마법으로 마력 흔적 조사를. 그리고 신성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들은 대사제의 의식을 진행해서 납골당 전체를 진정시키세요. 나머지 사제들은 해골들을 일으키는 마법진을 찾아 지우고 대사제의 상징을 다시 새기시고요."

 

오데사는 사제들에게 역할을 분담해 현장의 조사를 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의 사용 흔적이 랜든에게서 나온 것이 맞다는 것을 밝혀냈다. 해골들도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세부적인 조정은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건 사제들의 몫이였다.

 



조사가 끝나길 기다리던 아나스타샤는 결과가 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끝났으면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킁, 그 부분에 관해서는…… 죄송하지만 이 곳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 개미굴 미로 같은 곳에서 길을 잃기라도 하신다면 저희 측에서 바로 찾아낼 수도 없고요. 설마 시체들 사이에서 조난 당하고 싶으신 건 아니시겠죠? 킁, 일단 마법으로 랜든의 경로를 탐색할거긴 하지만 넓이가 넓이인지라 며칠은 걸릴 겁니다."

랜든을 당장 붙잡기 어렵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다.

 

'범인을 놓칠 줄이야……. 이래선 사건을 더 조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대신에 랜든의 방을 조사하는 걸 허락해 드리죠. 이 정도의 언데드라니…… 킁, 하루 이틀 한 짓이 아니란 소리겠죠. 지금까지 그 자의 행실을 꿰뚫어 보지 못한게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어쩌면 그 자의 방을 뒤져보면 무언가 더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랜든의 방이라도 조사할 수 있는게 다행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들은 오데사의 뒤를 따라서 납골당을 나와 사제들의 방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랜든의 방에서 몇가지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먼저, 점등사 길드의 지난 일주일 간의 가로등 점등 스케줄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

 

엘돌란의 거리는 가로등이 많아, 밤에도 환한 편에 속해서 비밀스러운 범죄를 저지르기에 적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종일 밝은 건 아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점등사들이 불을 켜기까지의 공백 시간이 존재했다.

랜든은 그 시간대에 시체를 옮기려 했을 것이다. 스케줄 표를 어떻게 구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사제들이 굳이 점등 스케줄을 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 증거물이 현 상황에서 딱히 도움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것만 놓고 보면 시체왕의 추종자라고 확신하기도 힘든 증거였으니까.

 

다음으로 찾은 증거는 책 한 권이었다.

 

기도책들이 놓인 작은 선반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신성을 쓰는 자가 죽은 인간형 생물의 잔여 생명력을 거두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한 권 있었다.

일반적인 사제가 이런 흑마법을 다루는 책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흑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 원리에 대해 탐구하는 경우가 왕왕 있긴 했지만, 실제 흑마법을 사용한 랜든이 사제로서 이 책을 읽었을 리 없었다. 납골당에서 해골들을 일으킨 것도 이 책에서 배운 것을 활용한 것이었겠지.

 

더불어 그 책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더 있었다. 책 사이에 대충 접혀서 끼워져 있는 메모였다.

 



랜든이여, 네 노력이 가상하다. 주인님의 최근 명령에 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그 분의 힘은 매 주 강해진다.


재고가 부족함은 알고 있지만, 작업이 중대한 지점에 달해 신선한 시체가 더 필요하다.

어쩌면 이번 습격에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평민 구역의 꿈팔이와 함께 있는 파울로스를 찾아가 지시를 받아라.



"그 분이란 건 역시 시체왕………. 어쨌든 랜든이 이번 좀비 습격에 관여된 공범 중 하나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왔네요."

 

옆에서 아도니스가 메모를 같이 들여다 봤다.

 

"이 메모를 작성해서 랜든에게 건네준 이는 누구일까요? 이 자가 시체왕과 소통하는 주동자(主動者)인 것 같은데."

 

"글쎄요. 어쨌든 1보 전진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여기 메모에 나와있는 꿈팔이와 파울로스를 찾으면 주동자도 찾을 수 있겠죠. 우릴 공격하려던 이유도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

 

"평민구역의 꿈팔이파울로스라…… 평민 구역은 엄청 넓은데 찾을 수 있을까요."

 

아도니스의 걱정에, 클라인이 끼어들었다.

 

"벌써 잊었나, 마법사. 엘사 화이트로즈라는 이가 평민 구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코스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파렐레스라는 엘돌란의 경비관에게 직접 들은 것이니 확실 할겁니다."

 

클라인에게 지적당한 아도니스는 뚱해진 채로 말했다.


"그럼 꿈팔이나 파울로스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바로 찾아가 보죠."

랜든의 방을 나서자, 방 밖에서 기다리던 오데사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일은…… 킁, 감사했습니다. 설마 진짜 저희 납골당에 첩자가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얼마나 오만했던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뇨. 그만큼 자신의 사람들을 믿고 있었다는 의미니까요. 조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데사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저의 안이함때문에 지하에서 습격을 당하셨는데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군요."

 

오데사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다.

 

"…사실 불러세운 이유는 이번 일을 도와주신 답례로 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입니다."


전리품 : 모험가급 치유물약 2병, 마개가 달린 할라티르의 거룩한 눈물 한 병, 대사제의 상징이 찍힌 토기목걸이 (음에너지 저항의 부적)

 

오데사는 치유 물약 2병과 대사제의 상징이 찍힌 토기 목걸이, 반짝이는 흰 액체가 든 병 하나를 주었다.

치유 물약은 체력이 약한 아도니스와 전방에서 싸우는 클라인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특히 액체가 든 예쁜 유리병은 용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럴줄 알았다는 듯, 오데사가 입을 열었다.

"토기 목걸이는 일종의 부적입니다. 1회성이긴 하지만, 마력을 불어넣으면 5분간 음(陰)에너지를 막아줄 겁니다. 보시다시피 대사제님의 가호가 어린 물건이니, 킁, 빛의 신의 사도가 착용하는게 효과가 좋을겁니다."

마치 코스모스를 생각하고 준비한 보상 같았다.

"그리고 이 병은 엘돌란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인 할라티르 님의 거룩한 눈물을 담은 성수입니다. 언데드나 악귀를 상대할 때 사용하시면 신성한 힘으로 물리치실 수 있을 겁니다. 무기에 바르면 효과가 더 좋고요."


"그렇군요. 귀한 선물 감사합니다."


"앞으로 있을 시체왕의 수하들과 전투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흑마술사의 습격

아나스타샤들은 사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꿈팔이파울로스를 찾기 위해 평민 구역으로 나왔다. 사제들에게 물어보니, 엘사 화이트로즈가 있는 빈민 구제소는 사원 구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리핀 광장 쪽에 있다고 했다.

 

"휴, 사람이 좀 줄었네요. 좀 쉴까요?"

 

망자의 금고에 가서 스켈레톤들을 상대하고 랜든의 방을 조사하며 잠시도 쉬지 않았다. 평민 구역에 나와서도 좁고 번잡한 길, 수많은 거리의 사람들 때문에 한숨 돌리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좁은 거리만은 사람이 드물었다. 길목에는 건물들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한 낮인데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장소였다. 그늘이 햇빛을 가리니 더위도 한 풀 꺾여 서늘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은 잠시동안의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아나스타샤들의 주변에 심상치 않은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의 눈에, 로브를 입고 해골 가면을 쓴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가면 쓴 남자는 아나스타샤들에게 다가오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도움 안 되는 잡것들. 우리는 너희의 훼방질에 지쳤다. 그러나, 쓸데없는 네 놈들도 시체라면 쓸모가 있다는 걸 알려주겠다!"

남자는 삼류 악당처럼 외치더니 막대기 같은 것들을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어느 부위인지 모를 뼈였다. 그 뼈는, 남자가 주문을 읊자 해골 병사가 되어 일어났다.

스켈레톤은 총 4구였다. 그것들은 해골 가면의 흑마법사의 앞에 반원을 이루고 서서 가로막았다. 또 다른 기척에 주변을 둘러보니, 가까운 지붕 위에 다크엘프로 보이는 여자 한명이 더 있었다. 그도 이들과 한 패로 추정되었다.
또한, 랜든과는 다르게 상당한 실력자들로 보였다.

 



해골 병사
말 없이 칼을 겨누고, 군무를 추듯 움직입니다.
보통 2레벨 병사 [언데드]
행동순서 : +8
취약 : 신성
+8 vs 장갑 : 6피해.
무기저항 16+ : 해골들은 무기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공격판정이 16+가 아니면 피해를 절반만 입습니다.
체력 26 / 장갑 16 / 신방 14 / 정방 11

흑수선, 자객 궁수
"......"
보통 2레벨 궁수 [인간형]
행동순서 : +8
숨겨둔 단검 +7 vs 장갑 : 5피해.
원.단궁 +8 vs 장갑 : 7피해.
순수 16+_대상은 +1d6 피해를 더 입습니다.
잔인한 사격 : 흑수선의 원거리 공격은 대성공 범위가 고조주사위만큼 확장됩니다.
이러기엔 보수가 너무 적어 : 흑수선은 비틀거리게 되면 지붕을 타고 도망칩니다.
지붕의 여왕 : 흑수선은 자기를 공격하는 적보다 높은 곳에 있으면 모든 방어에 +2를 받습니다.
체력 36 / 장갑 17(19) / 신방 15(17) / 정방12(14)

사무엘, 탐구회 마법사
"네 송장은 유용하게 써 주마."
보통 2레벨 술사 [인간형]
행동순서 : +4
날카로운 뼈칼 +5 vs 장갑 : 5피해
원.마력의 화살 +7 vs 신방 : 6마력피해
순수 홀수 명중_사무엘은 짧은 행동으로 다른 대상 하나에게 마탄을 쓸 수 있습니다. 공격 판정은 없고, 대상은 2d4마력피해를 입습니다.
원.탈진의 광선 +7 vs 신방 (같은 집단의 적 1d2명) : 4음에너지 피해. 대상은 다음번 이동 행동을 잃습니다.
순수 16+_대상에게 임시체력이 있는 경우, 모두 없어집니다. 더불어 대상의 다음 차례가 끝날 때까지 원기를 쓰면 통상의 1/2밖에 체력을 회복하지 못합니다.
사용제한_전투마다 2회.
안개구름 : 전투마다 한 번, 사무엘은 짧은 행동을 써서 영역을 짙은 안개로 채울 수 있습니다. 이 안개는 다음 번 사무엘의 차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안개 속에서 보거나 듣기 위한 판정은 -5 페널티를 받습니다. (인접해 있으면 면제), 그리고 단거리나 장거리에서 이 캐릭터에게 가하는 공격은 -4 페널티를 받습니다. 또한 안개 속에서 이루어지는 물러서기 판정에는 +5 보너스가 붙습니다.
마법방패 : 전투마다 한 번, 사무엘은 원거리 공격에 맞았을 때 자유행동으로 절반 피해만 입기로 할 수 있습니다.
체력 33 / 장갑 16 / 신방 13 / 정방 16


배치

                        흑
====================
               해1
   해2
    해3 사
               해4

====================



행동순서 판정 : 해골병사4 (24), 아나스타샤 (23), 해골병사2 (22), 해골병사3 (21), 클라인 (20), 흑수선 (20), 사무엘 (20), 코스모스 (19), 아도니스 (17), 해골병사1 (10)

해골4,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6피해.
아나스타샤, 일반행동으로 할라티르의 거룩한 눈물을 화살에 바름, 이동행동으로 코스모스 오른편으로 이동.
해골2,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해골3, 뒤로 물러서서 사무엘 앞을 막음.
클라인, 해골2에게 강타 선언, 11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강타 4추가피해.
흑수선, 이동행동으로 모습드러냄,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사무엘, 아도니스에게 마력의 화살, 빗나감.
코스모스, 이동행동으로 물러나기, 판정 실패, 짧은행동으로 자신에게 안수치료, 6회복, 해골4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흑수선에게 냉기광선, 14냉기피해, 짧은행동으로 코스모스에게 치유포션 전달.
해골1,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6피해.

 

해골들을 본 아나스타샤는 방금 오데사에게 받았던 할라티르의 눈물을 써 볼 기회라고 여겨, 자신의 나무 화살에 바르기 시작했다.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가 무기에 성수를 바르는 사이 그를 보호했고, 이전의 전투로 상당히 지쳐있었기에 해골들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그 모습에 아도니스는 자신의 치유물약을 코스모스에게 건넸다. 코스모스는 안수치료 후에 포션의 힘까지 더하여 완전히 회복했다. 

 

고조주사위1
해골4,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아나스타샤, 이동행동으로 뒤로 살짝 물러남, 해골4 원거리공격, 치명타 19신성피해.
해골2, 클라인 공격, 빗나감.
해골3, 사무엘 앞을 지킴.
클라인, 해골2 근접공격, 치명타 정밀공격 23피해.
해골2, 전투불능.
클라인, 자유행동으로 해골1에게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무기저항으로 5피해.
흑수선,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완전히 빗나감, 방심해서 숨지 못함.
사무엘, 아나스타샤에게 탈진의 광선, 아도니스도 같이 피해, 4음에너지 피해.
코스모스, 해골4에게 근접공격, 무기저항으로 6피해.
해골4, 전투불능.
코스모스, 짧은행동으로 치유물약 섭취, 14회복, 이동행동으로 앞으로 전진.
아도니스, 흑수선에게 냉기광선, 빗나감 1피해.
해골1, 클라인 공격, 6피해.

 

할라티르의 거룩한 눈물을 나무 화살에 전부 바른 아나스타샤는 바로 해골들을 쏘기 시작했다. 효과는 아주 굉장했으며, 해골 병사들은 맥을 못추리고 쓰러져 나갔다.

아나스타샤의 사격에 당황한 흑마법사는 그에게 탈진의 광선을 사용했다. 근육이 풀려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활을 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였다. 활을 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였다. 흑마법사는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당혹스러워 하는게 보였다. 그는 해골 1구를 자신의 앞에 세워, 화살이 자신에게 오지 않도록 방패막이로 삼았다.

 

지붕 위의 자객은 공격을 시도할 때만 잠깐 몸을 드러내었다. 그 공격은 상당히 빠르고 피해가 컸는데, 클라인은 해골을 상대하면서도 손쉽게 화살을 피해냈다.

자신의 공격을 아무렇지 않아하는 그모습에 자객은 몸을 숨길 타이밍을 놓쳤고, 아도니스의 냉기광선에 스치고 말았다.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해골3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해골3,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빗나감.
클라인, 해골1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 성공, 사무엘쪽으로 이동.
흑수선,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이동행동으로 안쪽에 숨음.
사무엘, 클라인에게 마력의 화살, 빗나감.
코스모스,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 실패, 해골3에게 근접공격, 13피해, 자유행동으로 후광을 비춤.
아도니스, 이동행동으로 아나스타샤 앞 쪽으로 이동, 사무엘에게 냉기광선, 9냉기피해.
사무엘, 자유행동으로 마법방패로 냉기광선 막아 4냉기피해만 받음.
해골1, 코스모스에게 접근, 공격, 6피해.

 

지붕 위의 자객은 공격을 시도할 때만 잠깐 몸을 드러내었다. 그 공격은 상당히 빠르고 한 발 한 발이 강력는데, 클라인은 해골을 상대하면서도 손쉽게 화살을 피해냈다. 자신의 공격을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에 자객은 몸을 숨길 타이밍을 놓쳤고, 아도니스의 냉기광선에 스치고 말았다.

"큿!"

새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동안은 자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 정도로 쓰러지진 않았을텐데……. 도망간 걸까?'

 

클라인은 성가시게 하는 자객이 사라지자, 바로 흑마법사가 방패막이로 세워둔 해골을 처치 후 그 앞에 섰다. 흑마법사는 뒤로 물러나며 마력의 화살을 쏘았지만 클라인이 너무 근접해 있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반면에 클라인의 검은 정통으로 맞아 큰 피해를 입혔다.

 

고조주사위3
아나스타샤, 해골1 원거리공격, 6신성피해.
해골3, 코스모스에게 공격, 빗나감.
클라인, 사무엘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14피해.
흑수선, 이동행동으로 모습 드러냄,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사무엘, 클라인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실패.
코스모스,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 성공, 해골1과 3에게서 벗어나 뒤로 물러남, 해골1에게 신앙의 투창, 치명타 15신성피해.
해골1, 전투불능.
아도니스, 흑수선에게 냉기광선, 14냉기피해.
흑수선, 비틀거림, 이러기엔 보수가 너무 적어, 흑수선 도망감.

 

흑마법사의 목소리에 자객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클라인을 저격하느라 한 눈이 팔린 사이, 아도니스가 그를 다시 한 번 공격했다. 이번엔 스친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피해를 입었다.
자객 흑수선은 비틀거리며 생각했다. 더 이상 남아있다가는 위험해질 것이란 것을 예감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일하기엔, 자신은 시체왕의 목적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또 합당한 보수도 아니었다.

그는 흑마법사를 버리기로 하고 더 높은 지붕을 타고 사라졌다.

"크흑, 흑수선… 감히 그냥 도망쳐? 젠장……. 이런 쓸모 없는 녀석인 줄 알았으면 다른 녀석을 고용할 것을.……"

흑마법사는 크게 분노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고조주사위4
아나스타샤, 해골3 원거리공격, 9신성피해.
해골3, 아도니스에게 접근, 공격, 6피해.
클라인, 사무엘 근접공격, 완전히 빗나감 1피해.
사무엘, 기회공격, 빗나감, 클라인에게 근접공격, 5피해,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 실패.
코스모스, 해골3 신앙의 투창, 치명타 12신성피해.
해골3, 전투불능.
아도니스, 사무엘 냉기광선, 빗나감 1피해.

 

클라인이 흑마법사와 대치 중인 한 때, 그의 뒤에서는 다른 세 명이 남은 해골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특히 코스모스가 신성족만의 종족 특기인 후광─듣기로는 육체의 방어도를 올리며, 빛을 발해 상대의 시야를 차단시키는 능력이라고 했다─을 발하며, 전방에서 해골의 공격들을 받아냈고, 아나스타와 아도니스가 뒤에서 힘을 합쳐 전부 해치웠다.


고조주사위5
아나스타샤, 사무엘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 사무엘 근접공격, 10피해.
사무엘, 비틀거림, 짧은행동으로 안개구름 사용,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 성공, 클라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안개 속에 숨음.
코스모스, 자유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3)+통찰(2)+레벨(1)+모험가(1)-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짧은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6)+통찰(2)+레벨(1)+모험가(1)-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이동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13)+통찰(2)+레벨(1)+모험가(1)-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아도니스, 자유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13)+통찰(1)+레벨(1)+수석(3)-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짧은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14)+통찰(1)+레벨(1)+수석(3)-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이동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12)+통찰(1)+레벨(1)+수석(3)-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자신의 해골들까지 완전히 처리 된 것을 본 흑마법사는 더 이상의 싸움은 힘들 것이라고 여겼는지, 주문을 외더니 안개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곤 그 안개 속으로 숨어 들었다.

"도망치려는 건가봐요!"

아나스타샤들은 그를 찾아내기 위해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고조주사위6
아나스타샤, 자유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12)+통찰(0)+레벨(1)+뒷전(4)-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짧은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9)+통찰(0)+레벨(1)+뒷전(4)-패널티(5) vs 보통(15) 실패, 이동행동으로 사무엘의 위치 기능판정, d20(16)+통찰(0)+레벨(1)+뒷전(4)-패널티(5) vs 보통(15) 성공, 사무엘에게 원거리공격, 13신성피해.
사무엘, 전투불능.

 

아나스타샤들은 그를 찾아내기 위해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아나스타샤의 긴 귀에 흑마법사의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는 처음에 왔던 길로 도망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혼신의 화살을 쏘았다. 이 화살이 마지막 일격이 될 수 있도록.

그 화살은 흑마법사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했고,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쉽네요.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흑마법사를 죽인 것이 아나스타샤여서 그런지, 아도니스는 크게 짜증내지 않았다.

"별 수 없죠. 안개 때문에 그의 위치를 찾은 것만 해도 기적이였으니까요."

전리품 : 10gp, 마법재료 라벤더 주머니, 20gp 은제 외눈 해골 목걸이 장착-현상금 30gp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나스타샤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뭇내 아쉬웠던 것인지, 흑마법사의 시체를 뒤졌다. 다른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찾기 위해서. 그의 로브 안에선 10개의 금화와 마법재료가 담긴 주머니가 나왔다. 이외의 소지품은 찾을 수 없었다.

"소지품도 별게 없네.…"

아나스타샤가 시체를 뒤지는 것을 바라보던 코스모스가 입을 열었다.

"저 자가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 시체왕의 하수인이라는 상징입니다."

코스모스가 가리킨 목걸이는 은으로 된 외눈 해골 목걸이였다.

"용 제국의 적법한 도시라면 시체왕의 상징을 지닌 자들을 생사불문하고 잡아들입니다."

"그랬었지……. 그럼 은방패대에 이 녀석의 시체나 넘겨주고, 여행 경비나 받아와야 겠어요."


아나스타샤들은 은방패대에 시체를 넘겼다.

경비대들의 조사에 따르면, 흑마법사의 신원은 사무엘이라는 등잔 공방의 마법사였다. 점등사 길드의 마법사 두 명이 이 일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상당히 수상했지만, 이미 전에 조사를 했을 때는 별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의 계획대로 꿈팔이와 파울로스를 찾기로 했다.

실제로 경비대들조차 점등사 길드를 별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기사, 납골당에서도 시체왕의 수하가 나온 마당에 점등사 길드가 꼭 본거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 괜히 들쑤셨다간, 역풍을 맞고 경비대에게 끌려가는 것은 자신들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희망'이라는 이름의 빈민구제소는 노숙자들로 북적거렸다. 모두들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적당한 잠자리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온 것 같았다.

 

노숙자들 사이로 눈에 띄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있었다. 엘사 화이트로즈였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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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돌란의 그림자2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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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엘돌란의 그림자2

 

 

쇠뿔은 단 김(機會)이요, 호박 떡은 더운 김(熱氣)이라.

 



안장 구역으로 가기 위해 평민 구역의 북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호객 광장 부근에서는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눈치를 채지 못했었는데, 외진 곳으로 들어갈수록 누군가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나스타샤, 추적자 발견, 기능 판정 : d20(13)+통찰(0)+레벨(1)+뒷전(4) vs 어려움(20) / 실패
코스모스, 추적자 발견, 기능 판정 : d20(9)+통찰(2)+레벨(1)+모험가(1) vs 어려움(20) / 실패
클라인, 추적자 발견, 기능 판정 : d20(16)+통찰(0)+레벨(1)+전쟁영웅(2) vs 어려움(20) / 실패

 

아나스타샤들은 자신들에게 미행이 붙은 걸 인지했다는 사실을 추적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눈을 굴려 위치를 확인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덕분에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코스모스가 조용히 말했다.

"분명 누군가 저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습격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겠습니다."


결국 뒤를 쫓던 자를 알아내지 못한채, 안장 구역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럼니의 친구

안장 구역에 들어서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자 곧 파자리우스가 운영하는 마굿간이 나왔다.

하지만 마굿간과 잡화점은 모든 문과 창문이 닫혀 있었다. 정문에는 '오늘 쉽니다'라는 팻말이 걸려 있기까지 했다.

 

오늘은 영업을 쉴만한 날도 아니었고, 보통 상점들이 문을 닫을만한 시간도 아니었다. 그러니 더더욱 수상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팻말을 자세히 보니, '오늘 쉽니다' 아래에 나흘 정도 휴업한다고 덧붙여져 있었다.

말도 안 된다. 마굿간의 안쪽에는 말이나 노새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나흘이나 쉬면서 저 동물들을 그냥 두고 간다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잡화점 바깥쪽의 상자들에는 식품들이 들어있는 상자도 있었는데, 그냥 두었다간 썩어버릴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닐텐데 매입한 물건들을 팔지도 않고 썩혀서 손해를 볼 리가.

 

파자리우스는 분명 집 안에 있을 것이다.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에게 켕기는 무언가가 있으니 사람들을 피하는 걸 것이다. 더더욱 그를 만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나스타샤, 문 두드리기, 기능 판정 : d20(20)+근력(0)+레벨(1)+뒷전(4) vs 보통(15) / 성공


아나스타샤는 뒷전에서 봤던 사채업자들이 문을 부술듯이 두드리던 방법을 떠올리곤, 손목 스냅을 이용해 잡화점 문을 마구 두드렸다.

 

쾅쾅!

"파자리우스! 가게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잠시만 나와보세요!"

 

온 동네의 그의 이름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쾅쾅! 쾅쾅쾅!

 

이 정도면 쪽팔려서라도 나오겠지. 이웃한 상점이나 공방 사람들도 저 자식은 집에 있으면서 왜 안나와 시끄럽게 하는 거냐고 생각할 것이다.


"아, 그만 좀 두드려!"

역시나 문을 미친듯이 두드린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파자리우스가 위층 창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무슨 일이야? 휴업이라는 글 안보여?"
"럼니씨 소개로 왔어요.
호객 광장의 좀비 사건과 관련해 조사하고 있는데 도움을 좀 주세요. 호박 수레가 당신 거라는거 다 알고 왔으니까 허튼 오해 사기 싫으면 조사에 응해주는게 좋을 거에요."

아나스타샤는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다. 소문을 듣고 이미 겁을 먹어 숨어있는 상대다. 관련이 없다면 약간의 협박과 회유만으로도 금방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줄 것이다.

"끙………."

파자리우스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하더니, 예상대로 1층 밖으로 내려왔다.


그는 오른쪽 뺨에 오래 된 흉터가 있어 조금 위험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그의 인상이 무섭다는 뜻이기도 했고, 뭔가 위태로워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는 의미였다─ 하프엘프 남자 상인이었다.


"뭐가, 궁금한 건데. ……좀비가 든 수레라면 절대로 내가 갖다놓은게 아니야."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네요. 수레에 좀비가 든 건 어떻게 알았대."

"………!! 그, 그거야 호객 광장에 갖다 온 상인 동료들에게 들었으니까! 네 마굿간에서 빌려주는 수레에 좀비가 들어있었다고…."

 

파자리우스는 자신의 검은 머리칼을 손으로 마구 흐트리며 말했다.

 

"아…… 아아! 이럴줄 알았어, 젠장! 이봐들, 난 범인이 아냐! 어차피 조사하면 다 알테니 말하겠지만, 수레는 내 게 맞아. 하지만 거기까지 가져다 둔 적은 없어! 나에게 굳이 죄를 묻는다면, 수레를 판 죄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왜 숨어있던거죠?"
"지금처럼 나한테 불똥이 튈까봐 그런거였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누구한테 팔았나요?"
"그게… 얼마 전에 농부 한 명이 농기구 값으로 호박을 주고 가는 바람에, 시장에 가서 팔 생각으로 수레에 담아놨어. 근데 바로 어제, 가게에 남자 하나가 들어와서 호박이 담긴 수레를 통째로 사겠다는 거야. 수레를 끌 노새까지! 근데 무려 35gp를 지불하겠대! 골칫덩이를 한 번에 해결해 주다니!"

파자리우스는 전 날 일을 회상하며 파란 눈을 반짝였다.

"음……. 너무 값이 좋지않나요? 노새나 수레를 다해봤자, 한 15gp할 것 같은데."
"그, 그건 그렇지…….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던건 아닌데, 그런 큰 돈 앞에서 그 사람을 의심할 수 있었겠어? 그랬다가 가버리기라도 한다면 내가 곤란하다고………. 35gp라면 하루에 노새 4마리를 팔거나 마차 대여를 20번 해줘야 되는 돈이라고. 그렇게 장사가 잘 됐으면 더 큰 도시로 진작에 이사갔지."

일반적인 상인들은 주로 은화를 사용한다. 파자리우스는 마굿간을 운영하다 보니 금화를 만질 일이 꽤 되겠지만, 그런 그에게도 상당히 큰 액수일 것이다.

거기다 의심스럽기는 해도 대놓고 위험한 부탁도 아니고 고작 호박들과 수레를 비싼값에 치뤄주겠다는데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호박으로 할 수 있는 나쁜 짓이 뭐가 된다고.

파자리우스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범인이 아니라면 상당히 억울하겠지. 불안해서 장사도 못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수레를 사갔던 사람의 이름은 몰라요?"
"영수증을 작성하면서 이름을 들었는데…… 그레이슨이라고 했었어. 당시엔 몰랐는데,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지 생각해 보면… 모습도 이상했던 것 같아."

"어떻게요?"

"음, 옷은 노동자들이 입을 법한 낡은 갈색 튜닉이랑 바지를 입고 있었거든. 근데 돈을 받을 때 봤던 손에는 굳은 살이 하나도 없고 궂은 일과도 영 거리가 멀어보였어. 하긴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막일이나 할 것 같진 않은데……."

 

'옷은 그냥 신분을 숨기려고 입은 걸 수도 있겠네.'

 

"그러고보니 목에 특이한 모양의 놋쇠 목걸이를 걸고 있었어. 어디 노동자 길드에 소속 된 사람 아닐까? 거기서 사무업이라도 하는 거면 그럴 수 있을지도."

 

특이한 목걸이란 말에 아나스타샤가 크게 반응했다. 정말 그게 어딘가의 상징이라면, 그레이슨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거! 그 목걸이는 어떻게 생겼어요?"

"익숙한 모양이긴 했는데 기억이 잘……."
"정말 기억 안 나요?"
"기억 안 나, 정말로. 애초에 계산만 하면서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실례기도 하고."
"하……. 다른 특징은요? 아니면 그 사람이 어디서 사는 사람인지 알 것 같다던가. 물건 살 때 주소 같은 것도 물어보잖아요."
"배달도 아닌데 주소는 안 물어봤지. 음, 인상이 흐려서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데. 흔한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이라……. 아! 그 남자, 일행이 있었어. 계산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서 누군가랑 대화하는 목소리를 들었거든."

"정말요?!"

"응, 그……… 수레를 옛 양조장에 보관한다고 했었나?"

클라인의 조사에 따르면 호객 광장에 수레를 엎어놓은 사람은 두 명이었다. 파자리우스에게 수레를 산 인물과 범인이 동일 인물이란게 확실한 것 같았다.

"옛 양조장으로 간건가……."
"근데, 개인적으론 진짜 거기로 간 건지는 잘 모르겠어."
"무슨 소리예요? 얘기를 들었다면서요?"
"아니…… 들은 건 맞는데. 거기가 그거거든. 유령."
"엥?"

순간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파자리우스는 정말 진지해 보였다.

"양조장은 안장 구역 북쪽, 부두 구역 가는 길목에 있어. 지금은 쓰지 않으니까 옛 양조장이라고 불리는 거지. 거긴 엘돌란이 작은 마을일때부터 있던 곳이었는데, 안장 구역 중앙에 있는 '맥주의 달인들'이란 드워프들이 일하는 양조장의 전 건물이 거기 있었대. 당시에, 도시가 커지고 수요가 많아지니까 그 작은 양조장에서 물량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건강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빨리, 급하게 일했나 봐. 그래서 별의별 사고가 빈번했던 거지. 그래서 더 큰 건물로 옮기고 직원도 더 채용해서 지금의 맥주의 달인들이 된 건데……"

"그런데요? 옛 양조장의 역사, 이런 건 별로 안 궁금한데."

"끝까지 들어 봐! 아무튼 건물이 아까우니까 실험적인 술을 만드는 용도로 간간히 사용했나 봐. 하지만 급할 것도 없으니까 안전 수칙을 지키면서 사용했는데도 계속 사고가 나서 완전히 폐쇄했대. 그 사고가 난 이유가, 양조장에서 죽은 사람들이 유령이 되어 나타나서 그렇다는데……. 난 이렇게 죽었는데 아직도 이 양조장이 장사가 잘 되다니, 억울해…… 억울해……… 하고……."

아도니스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시 한복판에 유령?"
"아니, 진짜야! 거기서 노숙하려다 유령을 봤다던 노숙자나 부랑자들도 한둘이 아니라니까!"

 

아나스타샤도 마찬가지로 미심쩍은 눈빛이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심해서 나쁠건 없으니까요."

알아낼 건 전부 알아냈다고 생각한 아나스타샤들은 파자리우스에게 인사를 하고 뒤로 돌아섰다.

"자, 잠깐! 지금 그 수레를 샀던 사람이 좀비 사건의 범인인거지?!"
"아마도요."
"젠장, 그런 녀석이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사서 이런 일에 이용한거라면 우리 가게의 평판도 떨어질거라고! 저기, 제발 이 일에서 내 얘기는 빼줄수 없을까, 응?! 그 녀석들이 수레를 산게 우리 가게라고 다른 곳에서 밝히지 말아줘!"
"……알았어요. 굳이 말은 안 하겠지만, 광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수레를 알아본 것까진 어떻게 못할 거에요."
"하………. 역시 소란이 가라앉을 동안은 소리소문 없이 숨죽여 있어야 하나……."

파자리우스는 어깨를 떨구고, 터덜터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양조장

도착한 '옛 양조장'은 버려진지 오래되었는지 굉장히 낡은 건물이었다. 아나스타샤들은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주변을 둘러보며 탐색 했다.

가운데 커다란 자물쇠로 잠긴 두 짝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문 하나, 안팍으로 못질이 되어있는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작은 문을 건드려 봤지만 어찌나 단단하게 막아놨는지 부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들은 자물쇠를 여는 쪽으로 결정했다.

아도니스, 잠금해제 소마법, 기능 판정 : d20(19)+지능(5)+레벨(1)+수석(3) vs 보통(15) / 성공

아도니스의 마법으로 자물쇠를 손쉽게 해제했다. 기뻐하기도 잠시,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호를 대라."
"경비 마법…!"

아도니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허름한 차림새로 신분을 숨긴 거였네요. 마법사라면 대부분 학파나 길드에 소속되어 있을테니, 얼굴을 안다면 훨씬 신원 추적이 쉬울테니까."

암호를 대답하지 않고 제들끼리 떠들자, 비명소리같은 경보가 미친듯이 울려댔다.
아나스타샤는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좀 더 수월하게 싸우기 위해서 적들이 오기 전에 내부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찢어지는 소리에 귀를 막고 양조장 내부를 급히 훑어보았다.

 

아나스타샤들이 서 있는 곳은 마루 위였고, 바로 오른쪽엔 1층으로 향하는 난간 없는 낭떠러지였다. 아래층까지 높이가 10m 정도로, 꽤 위험해 보였지만 머리부터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1층에는 커다랗고 둥근 텅 빈 나무통 둘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술을 제조했었던 툰(Tun)일 것이다. 그리고 툰을 가로지르는 좁은 구름다리가 마루에 놓여 있었는데, 길이는 12m로 이 다리 역시 난간이 없어 아주 위험해 보였다. 건너편에는 문 하나와 1층으로 내려가는 나선 계단이 있었다.

 

건너편 문이 열리면서 뼈가 굵은 키 작은 해골이 나타났다. 드워프 해골로 만든 스켈레톤(Dwarf Skeleton)이었다. 스켈레톤들은 구름다리로 올라가 그 앞을 막아섰다. 스켈레톤 뒤로는 남자 두 명이 따라 나왔다. 그 중 로브를 입은 자가 비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폐가 탐험이라도 하려고 했나 보지? 멍청한 것들. 너희는 여기 와서는 안 됐어. 유령이 나온다면 알아서 피해갈 것이지, 겁도 없는 놈들이 많다니까."

 

'갈색 머리에 갈색 눈. 평범한 외모의 로브를 입은 인간 남성. 사람들이 말했던 인상착의와 일치해. 저 자가 그레이슨인가.'


"이게 너희의 마지막 실수가 될 거다! 해골들아, 다리를 지켜! 잘렌, 너는 나와 해골들을 엄호하는 거다!"

드워프 스켈레톤은 아나스타샤들이 구름다리 위로 접근 하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듯, 살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잘렌이라 불린 남성도 반대편 마루에서 쇠뇌를 장전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시도하거나 회유해 볼 틈도 없이,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해골
"삐걱……. 삐걱…삐걱…."
보통 1레벨 수호자 [언데드]
행동순서 : +3
취약 : 신성
뼈 주먹 +6 vs 장갑 : 5피해
순수 짝수 명중_해골의 뼛조각이 상처에 박힙니다. 대상은 5지속피해를 입고, 드워프 해골은 1d6 피해를 입습니다.
끈질긴 적 : 드워프 해골보다 행동순서가 느린 적은 드워프 해골로부터 물러서는 판정에 -5 페널티를 받습니다.
무기저항 16+ : 드워프 해골은 무기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공격 판정이 16+가 아니면 피해를 절반만 입습니다.

숙련 된 가로막기 11+ : 라운드당 한 번, 접전중인 드워프 해골은 적으로부터 이탈하여 자기를 지나치려는 적을 가로막으려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보통 극복 판정에서 성공하면 가로막은 것이 됩니다.

체력 25 / 장갑 15 / 신방 14 / 정방 13

잘렌

"바보야, 이제 너도 구울 밥이다!"

1레벨 궁수 [인간형]

행동순서 : +4

단도 +5 vs 장갑 : 4피해

빗나감_2피해

원.쇠뇌 +6 vs 장갑 : 5피해

순수 짝수 명중_대상은 균형을 잃습니다. 위험한 곳 (구름다리나 마루 가장자리)에 있다가 난이도 15 기능 판정을 하여 실패하면 떨어집니다.

순수 18+_대상은 3피해 더 입습니다.
체력 25 / 장갑 17 / 신방 14 / 정방 12

그레이슨, 탐구회 마법사

"이게 네 마지막 실수다!"

2레벨 술사 [인간형]

행동순서 : +5

뼈 마법봉 +6 vs 장갑 : 6피해

원.마력의 화살 +7 vs 신방 : 7마력피해. 대상은 균형을 잃습니다. 위험한 곳 (구름다리나 마루 가장자리)에 있다가 난이도 15 기능 판정을 하여 실패하면 떨어집니다.

원.무덤의 파동 +7 vs 신방 (단거리에 있는 같은 집단의 적 1d3명) : 4음에너지피해

순수16+_대상은 취약해집니다.(극복가능)

접.유령의 손 +7 vs 정방 (그레이슨과 접전중인 적 모두) : 2음에너지피해. 대상은 유령 손에 당겨져 그레이슨으로부터 이탈합니다.

사용제한_전투마다 한 번. 짧은행동.

죽음을 향해 한 발짝 : 그레이슨이 비틀거리면 몸이 마치 유령처럼 변하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마력피해를 제외한 모든 피해에 대한 저항이 16+가 생깁니다.

체력 33 / 장갑 17 / 신방 13 / 정방 16


배치

 




행동순서 판정 : 드워프 해골 (23), 아나스타샤 (19), 클라인 (19), 아도니스 (12), 잘렌 (12),
그레이슨 (8), 코스모스 (6)

드워프해골, 이동행동, 다리 중앙으로 이동.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부숴진 수레 뒤로 숨기, 그레이슨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 이동행동, 다리 중앙으로 이동, 드워프 해골과 접전, 드워프 해골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자유행동, 만회의 일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드워프 해골, 냉기광선, 6냉기피해.
잘렌,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5피해, 균형 유지 기능 판정, d20(9)+민첩(-1)+레벨(1)+영웅(2) vs 보통(15) / 실패, 다리 밑 나무통 속으로 떨어짐, 통이 썩어 지하까지 떨어짐, 4피해.
그레이슨, 짧은행동, 지하의 빗장을 푸는 마법장치 사용, 구울 4마리 지하에 등장, 아도니스에게 무덤의 파동, 4음에너지피해, 코스모스 휘말림, 4음에너지피해.
코스모스, 이동행동, 다리로 이동해 드워프 해골과 접전, 응징 선언, 17피해.
드워프 해골, 전투불능.


아나스타샤는 안전하게 활을 쏘기 위해서 엄폐물을 찾았다. 근처에는 수레 몇 대가 엎어져 있었다. 그는 수레 뒤쪽으로 몸을 숨겨 그레이슨에게 화살을 쏘았다. 그레이슨은 화살에 스치고선 아나스타샤를 노려봤다.

 

"이봐, 한 놈은 저 하프엘프를 공격해!"

 

스켈레톤들은 아나스타샤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것들을 클라인이 가로막았다. 그는 좁은 다리 위에서 움직이기도 힘들텐데, 그저 힘만으로 스켈레톤 하나를 부쉈다.

잘렌은 자기편의 스켈레톤이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았다. 클라인을 추락시킬 목적으로 쇠뇌를 클라인의 다리에 쏘아댔다. 클라인은 쇠뇌살(Bolt)을 가뿐히 피했지만, 남은 드워프 스켈레톤의 공격과 그레이슨의 마법으로 인해 다리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클라인!"

 

우지끈! 쾅!!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구름다리 밑에 있던 툰의 바닥은 아주 낡아서, 그대로 뚫고 더 깊이까지 떨어졌다. 툰의 속은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숴지는 소리가 완전히 멈추자, 클라인의 대답이 들려왔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하에 공간이 있던 모양이었다.

 

"아도니스, 클라인 쪽을 밝혀줄 수 있겠어요?"

"네!"

"남은 스켈레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클라인의 모습을 확인할 때까지 코스모스가 적들의 공격을 막기로 했다.

그동안 아도니스는 지팡이를 몇번 휘드르더니, 그 끝에서 밝은 빛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마력의 성질을 발광물질로 변환 시키는 소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빛 덩어리를 클라인이 추락한 곳에 날려 보냈다.

 

아래에 클라인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도 다친 곳도 없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절벽에서 추락했었지. 그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무사한데, 다쳤을리가.'


그레이슨은 멀찍이서 아나스타샤들의 표정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클라인이 무사하단 걸 눈치챈 것이다. 그는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하며 완드를 휘둘렀다.

 

"……! 아가씨, 그레이슨이 마법을 쓰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세요."

 

코스모스가 방패로 스켈레톤의 공격을 막으며 외쳤다.

아나스타샤도 그레이슨이 마법을 시전하는 걸 목격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어디선가 철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지하에 구울이 있습니다!"

클라인의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 봤다. 툰의 바닥에 난 구멍 사이로, 구울(Ghoul) 4마리가 보였다.

……그레이슨의 주문은 구울을 숨긴 방의 빗장을 여는 주문이였던 것이다.

 

클라인은 지하에서 혼자 구울과 싸우기 시작했다.

 

"바보들! 이제 곧 그 남자는 구울 밥이 될 거야! 너희도 똑같이 만들어 주지!"

 

아나스타샤는 잘렌을 노려봤다. 잘렌은 그 눈빛에 잠시 움찔했지만, 다시 삼류 악당이라도 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저도 내려갈게요."

 

구울은 좀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의식과 지능이 없이 움직이며 피와 살점을 뜯는다, 란 명령만 입력된 시체인 좀비와는 달리, 구울은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구울은 명확한 배고픔과 포식 본능에 의해서 사람을 뜯어 먹는 시체의 모습을 한 짐승이었다. 짐승답게 훨씬 민첩하고 지능적이었으니, 클라인을 혼자 두기 불안했다.

 

"구울 정도는 문제 없습니다. 게다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구울이군요."

 

클라인이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보다 위 층의 상황을 우선해 주시길."

 

클라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은 드워프 스켈레톤이 전부 쓰러졌다. 코스모스와 아도니스가 해치운 것이다.

 



갓 깨어난 구울
"우리 배가 고파아아."
2레벨 조무래기 [언데드]
행동순서 : +5
취약 : 신성
긁적이는 발톱 +7 vs 장갑 : 3피해.
순수16+_대상은 구울의 다음 차례가 끝날때까지 언데드의 공격에 취약해집니다. (대상에 대한 공격은 대성공 범위가 2만큼 확장됩니다.)
한 근의 살 : 갓 깨어난 구울의 발톱과 이빨 공격은 취약해진 대상에게 +2 피해를 줍니다.
체력 9 / 장갑 17 / 신방 15 / 정방 11

 


300x250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코스모스 뒤 쪽으로 이동, 그레이슨에게 원거리공격, 5+1피해.
클라인, 이동행동, 구울4에게 접근, 구울4 근접공격, 치명타, 정밀공격, 16+1피해, 구울2도 피해입음.
구울4, 전투불능.
아도니스, 그레이슨에게 산성화살, 12+1산피해, 5지속부식피해.
그레이슨, 비틀거림, 죽음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감.
잘렌, 코스모스에게 원거리공격, 5피해.
그레이슨, 코스모스에게 무덤의 파동, 4음에너지피해, 아도니스도 피해.
코스모스, 취약해짐, 극복판정 성공, 짧은행동, 자신을 안수치료, 7회복, 이동행동, 잘렌에게 다가감, 잘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구울1, 클라인 공격, 3피해.
구울2, 클라인 공격, 3피해.
구울3, 클라인 공격, 빗나감.


코스모스는 잘렌과 그레이슨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두 명은 자신들을 막아주던 스켈레톤이 전부 사라지자, 코스모스도 지하로 떨어트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공격을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와 같이 잘렌과 그레이슨을 활과 마법으로 공격하며, 주문 시전이나 쇠뇌 장전을 방해했다. 코스모스는 방패로 몸을 가리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레이슨의 코 앞까지 도착해, 전투도끼로 그를 내리 찍었다.

 

"으아악!!"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그레이슨이 쓰러졌지만, 잘렌은 별로 겁먹지 않은 모양새였다.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도 있나?'


의심을 품기 무섭게, 그레이슨의 몸이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코스모스, 조심해!"

 

반투명해진 그레이슨은 코스모스의 뒤를 습격했다.

다행히도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코스모스는 그레이슨의 검은 마법 광선을 피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그 질문에는 아도니스가 답했다.

"흑마법의 일종일 겁니다. 자신의 몸을 영체화 시킨 걸 거에요. 그렇다해도 상당히 어려운 주문일텐데……. 어쩌면 시체왕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본인이 강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표상급 인물의 힘을 빌려왔기에 쓸 수 있는 거겠죠."
"좀비, 구울, 유령………. 확실히 전부 시체왕과 연관이 있는 몬스터이긴 하네요."

아나스타샤는 어쩌면 옛 양조장에 유령 소문이 퍼진 건 영체화 마법을 쓴 그레이슨 때문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유령처럼 변한 그레이슨은 검은 연기와 파동을 뿜어내며 공격했다. 끔찍한 시체 썩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무덤을 갓 파낸 것 같았다. 잘렌은 예상했던 바인지, 방독면 비슷한 걸 쓴 지 오래였다. 
아나스타샤와 아도니스는 근원지에서 거리가 있어 피해가 적었지만, 코스모스는 상당히 괴로워 보였다. 코스모스는 한 손으로는 자기자신을 안수치료 하며, 한 손으로는 전투도끼를 휘두르며 버텼다.

하지만 코스모스의 도끼는 그레이슨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영체화 되어서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듯 했다.

 

"그레이슨은 내가 상대할게! 코스모스, 너는 잘렌을 쓰러트려!"

 

아도니스의 말에, 코스모스는 타겟을 변경했다. 아나스타샤도 잘렌을 향해 화살을 쏘며 코스모스를 도왔다.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일반행동, 웰가에게 도움요청, 기능판정, d20(11)+매력(2)+레벨(1)+술꾼(3) vs 어려움(20) / 실패.
웰가, 아나스타샤를 붙잡음.
클라인, 구울3 근접공격, 정밀공격, 11+2피해, 구울1도 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구울3, 전투불능.
아도니스, 구울2 냉기광선, 8+2냉기피해.
구울2, 전투불능.
구울1, 전투불능.
잘렌, 코스모스 근접공격, 4피해.
그레이슨, 5부식피해, 아나스타샤에게 마력의 화살, 7마력피해, 극복판정 성공.
코스모스, 잘렌 근접공격, 9+2피해.


그 무렵, 클라인은 지하에서 구울을 하나씩 쓰러트려 가고 있었다. 혼자서 여러 마리의 구울을 상대해야 하기에 피해도 적잖이 입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위층의 상황이 걱정되었다. 상대편에 마법사가 있기에 더더욱.
그러던 그의 눈에 구울들 뒤로 어떤 희끄무리한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마냥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렁거리더니 위층으로 천장을 뚫고 지나갔다.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클라인은 위층에 있을 아나스타샤에게 외쳤다.

"아나스타샤, 방금 뭔가가 위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네? 대체………"

아나스타샤는 잘렌에게 화살을 쏘며 고슴도치로 만들고 있는 와중에 눈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놀라 말을 멈췄다. 나타난 건 유령이었다. 더벅머리와 지저분한 수염을 가진 드워프 유령으로, 반투명한 몸체가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했다.
유령은, 유령일텐데도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리며 소리쳤다.

"이봐, 뭐하는 짓이야! 댁들이 지금 양조장을 전부 부수고 있잖아! 장난해?!"

그리고 이번엔 구름다리 근처에서 그레이슨에게 냉기광선을 쏘고 있는 아도니스의 앞에 서서 시야를 가렸다.

"아이고, 아이고!! 너 그러다가 떨어진다! 그럼 안돼! 사람이 다치면 사장님이 화낸단 말이야!"

'사장님? 무슨 소리야.'

드워프 유령은 마치 자기가 이 양조장에서 일하는 사람인 양 굴었다. 이 곳이 아주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유령은 아나스타샤와 아도니스 말고도, 양조장 이곳저곳을 휘적거리며 그만 싸우라고 소리쳤다.

그러는 도중, 여러 물건들과 사람들에게 몸을 부딪히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진짜 몸이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잡으면 정말 잡힐 것 같았다.

………아니, 정말 잡혔다. 아나스타샤 쪽이 유령을 잡은게 아니라, 유령이 아나스타샤를 잡은거긴 했지만.

 

"너 말이야. 화살 좀 픽픽 쏴대지마! 위험하잖아!"

유령이 활 시위를 당기는 아나스타샤의 손목을 잡았다.


"앗!"

"아나스타샤!"

 

그레이슨을 공격하던 아도니스가 드워프 유령을 노려봤다.

 

"잠깐만요. 일단 이 유령, 공격하지 말아봐요. 한 번 이용해 보자고요."

"이용이요……?"

"아, 쫑알쫑알 뭐라는 거야! 그만 시끄럽게 해!"

 

아나스타샤는 유령에게 대답했다.

 

"이봐요."
"이봐가 아니라 웰가야."
"그래요, 웰가 씨. 
저희가 이러고 있는 건, 저 사람들이 스켈레톤으로 싸움을 걸어서라고요. 저희도 가만히 있고 싶어요."

 

아나스타샤는 코스모스를 공격하는 그레이슨과 잘렌을 가리켰다.

 

'곧 쓰러질 것 같아보여. 치료하면서 싸우는 것도 한계가 있을테니……. 이 유령이 말을 들어야 하는데.'

고조주사위3
아나스타샤, 웰가에게 붙잡혀 있음, 일반행동, 웰가에게 다시 도움요청, 기능판정, d20(18)+매력(2)+레벨(1)+술꾼(3) vs 어려움(20) / 성공, 웰가에게서 벗어남.
웰가, 잘렌에게 가서 잘렌을 붙잡음.
잘렌, 웰가에게 붙잡힘.
클라인, 이동행동, 위층으로 올라옴.
아도니스, 그레이슨에게 냉기광선, 빗나감, 1피해.
잘렌, 웰가에게 붙잡혀 버둥거림.
그레이슨, 코스모스 근접공격, 6피해.
코스모스, 체력소모로 비틀거림, 잘렌에게 근접공격, 9+3피해.


"저기 저 남자들 안보이시나요? 저희가 가만히 있어도, 저 사람들이 이미 여길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술에 취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시야가 좁아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해 그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그가 신경을 쓰는게 자신들이 아니라 그레이슨 쪽이길 바랬다. 유령끼리라면─실제 그레이슨은 유령은 아니지만─서로의 공격이 먹혀 들어갈 것 같아서.

 

다행히도 웰가라는 이름의 유령은 그레이슨과 잘렌을 쳐다봤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야! 양조장에서 싸우지 말라니까! 계속 난동부리네! 아이고, 다 무너진다!"

웰가는 순식간에 아나스타샤의 존재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잘렌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레이슨을 밀치고 나아가 잘렌을 붙잡았다.

"이런 미친, 뭐하는 짓이야! 그레이슨 씨, 이 유령은 뭡니까!"
"나도 모르는 유령이야!"

그레이슨은 코스모스를 향해 공격을 하다말고, 유령을 쫓기 위해 지팡이를 마구 휘둘렀다.

 

"아야! 아야!! 이거 깡패들 아냐? 너희들 건넛길의 맥주 양조장에서 보낸 녀석들이냐?! 이 양조장을 망하게 할 속셈인 거지!"


웰가는 잘렌을 앞장세워 그레이슨의 지팡이를 막았다.

 

"악!! 악!! 아파요!"

 

그 사이, 코스모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웰가의 뒤편에서 전투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전투도끼는 웰가의 몸을 통과해, 그대로 잘렌의 머리를 두 쪽으로 만들었다.

"으아악!!!"

 

잘렌의 머리에서 검은 피가 꿀럭이며 흘러 내렸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만한 상처에 바로 쇼크사 했겠지만, 놀랍게도 잘렌은 숨이 붙은 채 고통 속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고조주사위4
웰가, 잘렌을 풀어줌.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구름다리 접근, 그레이슨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 이동행동, 나선계단 타고 올라감.
아도니스, 잘렌에게 냉기광선, 대실패, 코스모스가 1냉기피해.
잘렌, 코스모스에게 근접공격, 4피해.
그레이슨, 자유행동, 다리의 룬을 작동시켜 파괴함.
아나스타샤, 다리근처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아도니스 손을 잡음, 극복판정 성공.
코스모스, 잘렌 근접공격, 5+4피해.
잘렌, 전투불능.


잘렌의 끔칙한 비명에, 웰가는 유령 주제에 깜짝 놀라 사라져 버렸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그의 영체가 흩어졌다고 보는게 타당할지도. 완전히 사라진 건지, 잠시 사라진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으윽, 빌어먹을 유령 자식……. 구울 밥이 되는 건, 내가 아니라 저 녀석들이어야 하는데………."

 

그 말을 끝으로, 잘렌은 피를 철철 흘리며 비틀거리다가 지하로 떨어졌다.

 

"쇠뇌를 쓰던 인간이 죽은 겁니까?"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나스타샤가 답했다.

 

"네! 거기 상황은 어때요?"

"구울들이 지금 떨어진 시체를 포식하려 한 눈 판 사이, 전부 처리했습니다. 이제 올라갈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군요."

 

더 이상 클라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설사 혼자 올라올 방법을 못 찾더라도 우리가 위층에 있는 한, 이 전투가 끝난 뒤에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니까.

 

혼자 남은 그레이슨은 분노에 잡아먹혔다. 그는 영체화된 몸을 공중에 띄우더니, 구울을 꺼낸 마법장치의 시동(始動)어를 외던 것처럼 또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그가 또 구울이라도 숨겨놓은 건가 싶어 클라인에게 조심하라고 외쳤다. 코스모스가 소리친 건 그와 동시였다. 

"아나스타샤, 다리 쪽에서 떨어지세요!"

구름다리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근처에 있던 아나스타샤의 몸이 다리 아래로 기울었다.

"아나스타샤!"

아도니스가 빠르게 다가와 아나스타샤를 붙잡았다. 하지만 아도니스의 힘만으로는 아나스타샤를 끌어 올릴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를 안심시키고 몸을 윗 쪽으로 휙 꺽어 마루 바닥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제가 도울 필요가 없었나 봐요."

"아니에요. 덕분에 쉽게 올라왔어요. 고마워요, 아도니스."
"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아나스타샤들이 서 있던 마루 바닥 밑에 폭파의 룬(Run)을 새겨 놓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아래로 떨어져도 조금 다치는 정도일텐데. 저 흑마법사는 구울이 전부 쓰러졌단 걸 모르나 보네.'


아나스타샤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코스모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그레이슨을 경계했다.

"말도 안돼! 이제 이 마법도 곧 끝날텐데!"

그레이슨이 머리를 쥐어싸자마자, 그의 몸이 점점 색을 되찾고 실체가 나타났다.


고조주사위5
아나스타샤, 그레이슨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그레이슨, 전투불능.


그리고 코스모스는 그레이슨을 간단히 제압했다. 그도 더 이상 마법을 쓸 마력이 남아있지 않은지, 맥없이 붙잡혔다.

클라인이 계단을 타고 올라온 것도 그때 쯤이었다.

 

"지하에 구울을 가두려면 반드시 위층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위층으로 뚫린 구멍으로 올라가기 좋게 만들어진 흙더미가 있더군요."

"다행이네요. 저희는 보다시피 그레이슨을 붙잡았어요."

 

'붙잡았다' 그 소리에 그레이슨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아나스타샤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레이슨에게 말을 걸었다.


"호객 광장의 좀비의 원인이 당신이야?"
"……평범한 거리의 부랑자가 아니었군. 그래! 내가 이 도시에 좀비를 풀었다!"
"아닐텐데. 아까도, 지금도 너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있어. 하지만 호객 광장의 좀비는 마치 우리를 노리는 것 같았지."
"……?!"
"거기다 시체는 한 두 구가 아니었어. 저런 조수 한 명 데리고서 너 혼자 저지를만한 규모가 아니란 소리겠지. 뒤에 누군가 더 있지? 네 조수 꼴 나기 싫다면 말하는게 좋을텐데."

 

아나스타샤의 말에 그레이슨을 바닥에 눕혀 제압 중이던 코스모스가 그를 더 강하게 옥죄었다.


"왜, 날 죽이려고? 하! 그럴테면 어디 그래 봐라!"

아나스타샤는 단검을 꺼내 그의 어깨와 쇄골 사이에 꽃았다.

"으아아아아악!"
"사람을 죽이지 않고 고통스럽게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아나스타샤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광장에서도, 지금도, 너 때문에 몇 번이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레이슨의 표정이 고통으로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어짜피 죽을 목숨이라면, 차라리 여기서……! 어차피 '그 분'께서 성공하신다면 날 다시 죽음에서 되살려 주실 거다!"

그레이슨은 갑자기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숨을 쉬지 못 하는 사람처럼 켁켁대며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벌려진 그의 입 속에는 혀가 사라져 있었다. 그의 타액에는, 아마 직전까지 혀였을 것이라 추측되는 재가 섞여 나왔다. 그는 완전히 눈이 뒤집힌 채로 숨을 거두었다.

"………죽었습니다."

그의 맥을 짚어보던 코스모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나스타샤들은 다른 증거를 찾기 위해 그레이슨의 시체를 뒤졌지만 건진 건 없었다. 마법 재료로 쓰일 법한 말린 로즈힙 주머니와 25gp, 룬 문자가 새겨진 은 반지와 해골 모양 흑마노(黑碼瑙, Black Agate) 반지 뿐이었다.

전리품 : 25gp,로즈힙 주머니,20gp 상당의 해골 흑마노반지, 10gp 가치의 위험과 죽음을 뜻하는 룬문자가 새겨진 은반지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별게 없네요."

 

반지의 룬 문자를 해석하던 아도니스도 같이 한숨을 쉬었다.


"네, 이 반지도 죽음을 뜻하는 룬 문자가 새겨져 있을 뿐이에요. 아마 이 반지의 룬을 발동시켜 자결한 것 같아요."
"이 자가 죽기 전에 말했던 '그 분'은 시체왕을 말했던 걸까요?"

"글쎄요. 그렇다 하더라도 시체왕이 직접 움직였을 리는 없어요. 그는 네크로 폴리스에 갇혀 있을테니."

"그렇담 시체왕의 명령을 이행한 주모자가 따로 있다는 소리겠네요."

 

시체왕의 추종자가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에 코스모스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처음엔 단순히 황실에 적대하는 자의 소행인줄 알았습니다만…… 시체왕의 추종자들이 벌인 일이라면, 그들이 왜 저희를 노린 건지 모르겠습니다. 시체왕의 목표는 용 제국에 시체왕의 공포를 퍼트리는 것.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공격하는게 나을 건데, 아무리 황제와 연이 닿는 자라고 해서 특별히 저희를 공격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시체왕은 황제 뿐 아니라, 오크 두령과 투장 등 모두와도 적대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클라인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어쩌면…… 이번 일을 벌인 시체왕의 추종자가 우리와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지. 원한을 가졌다던가 말이다."

 

아나스타샤는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법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으음, 원한을 가진 사람………. 너무 많지 않나…. 아니, 원한을 가졌다해도 그게 좀비를 이용해 죽일 정도인가?"

"어차피 범인을 잡게 되면 이유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겠죠? 그럼 양조장을 계속 둘러봐요."

 

아나스타샤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저 자의 로브는 엘돌란의 세 학파 중, 숨겨진 장막의 도학자들이라는 학파의 로브에요."
"그레이슨이 이 학파의 사람인 걸까요?"
"로브 정도야 원한다면 얼마든지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으니, 학파에 이 인물이 존재하는지 직접 확인 전까진 모를거에요."
"그렇군요. 그럼 저 문 안쪽까지 살펴보고, 별다른게 없으면 숨겨진 장막의 도학자들에 가서 한 번 확인해 봐요."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레이슨과 잘렌이 나왔던 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양조장이 운영되던 시절에 사무실로 쓰였을 법한 공간이 나타났다. 안쪽에는 방이 2개 있었는데, 방 하나는 쇠뇌의 화살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잘렌의 방으로 추측되었고, 남은 하나가 그레이슨의 방으로 추측되었다.

 

잘렌의 방은 쇠뇌 이외에 별다른게 없었다. 애초에 그는 마법사도 아니고, 그저 용병 겸 조수였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로 방을 나와 그레이슨의 방에 들어갔다. 그레이슨의 방에는 쓰다만 마법 재료와 여분의 옷이 놓여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그 중에서 자주색 로브 하나를 집었다.

 

"흠……. 마법사들은 로브를 정말 좋아하네요. 자주색 로브도있네."

 

아도니스가 웃으며 말했다.

 

"로브 같은 천 옷이 마법을 부여하기 무난하거든요. 아, 그건 엘돌란의 점등사 길드 로브네요."

"점등사 길드? 방금 전에는 그레이스가 숨겨진 장막의…… 암튼 뭔 학파라고 하지 않았어요?"

"학파는 소속하는 곳이고 길드는 일하는 곳이니까요. 두 군데에 동시에 속할 수 있겠죠. 음,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학파는 종족 무리이고 길드는 살고 있는 도시이다. 이렇게 비유하면 되겠네요. 종족은 바뀔 수 없지만 살고 있는 도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런 거죠."

"아하……. 그렇담 학파에서 쫓겨난다는 건, 무리에서 쫓겨난 것이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사회 활동이 어렵다는 소리이기도 하겠네요…."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파에서 쫓겨난, 이라는 비유가 마치 하프엘프를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구나. 그럼 그레이슨이 이 로브를 가지고 있는 건, 점등사 길드 소속이기도 하단 소리네요?"

 

아나스타샤는 더 찾을 건 없는지, 로브의 주머니도 뒤적거렸다. 그러자 주머니에서 가로등 모양의 장식이 달린 놋쇠 목걸이가 나왔다.

"이 목걸이는 뭐죠? 그러고보니 파자리우스가 그레이슨이 놋쇠로 된 목걸이를 하고 있었댔는데. 이게 그건가?"
"아, 이 가로등 모양…… 점등사 길드의 상징이에요! 길드의 상징은 옷이랑 달리, 쉽게 위조할 수 없으니까 본인 것이 확실할거에요."
"잘 됐네요. 그럼 바로 점등사 길드에 가서 확인해 봐요. 그레이슨의 배후가 거기 있는지."

전리품 : 점등사길드 로브, 점등사 길드 놋쇠 목걸이.


"점등사 길드원들은 등잔 공방이 근거지일 거에요. 점등사 길드가 하는 일이 그런 것들이거든요. 등잔을 만들고, 가로등을 수리하고, 거리의 불을 켜고."

 

아도니스의 말에 따르면 등잔 공방은 안장 구역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옛 양조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증거 수집을 끝내고, 옛 양조장에서 나가기 위해 못질 된 문을 발로 걷어차고 있을 때였다.

"이제야 가는 건가?"
"으아악!!"

아나스타샤는 갑작스런 웰가의 등장에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귀청 떨어지겠네!!"
"뭐에요! 저야말로 깜짝 놀랐거든요?! 갑자기 나타나지 마세요!"
"나름 기척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양조장에서 소란피우면 안 된다고. 다음 견학은 조용히 해라. 난 그럼 일하러 가야 돼서."

 

웰가는 술이 깬 모습─애초에 유령이 술에 취하거나 깨거나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린채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갔다.

 

"그나저나 다들 일하다말고 어디로 사라진건지……."

아나스타샤는 웰가의 마지막 말이 괜히 신경쓰였다. 정말이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한 유령이었다. 그냥 전투를 방해한 녀석인데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건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저 유령…… 자신이 죽은걸 모르나보네요."

 

하지만 오지랖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려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굳이 나서서 알려줄 필요는 없겠죠."

 

유령은 단순히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일 뿐이다. 성불하게 되면 자연히 사라질.

하지만 이 유령들은 때에 따라, 악령이 될 수도 망령이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을 저주하고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고, 현세에 원한이 많아 악에 받힌 유령은 일부러 저승에 가지 않고 남아서 악령이 된다. 그리고 그 악령에게 당하거나 저주를 받아 죽은 영혼은 가고 싶다해도 자의적으로는 절대 저승에 갈 수 없는 망령이 되어 그 억울함을 사람들에게 푼다.

 

만약 웰가처럼 자신이 죽었는지 모르는 유령에게 사실을 알려준다면 어떻게 될까?

알려줘서 고맙다고 쉽게 납득하고 성불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애초에 죽음을 부정하는 이들은 대부분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한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크게 분노하고, 그 분노의 방향을 사실을 알려준 자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실을 왜 알려준 거냐면서. 가장 최악의 경우는 몸을 뺏으려 하는 경우까지 있다.

선의로 한 행동이 반드시 선의로 받아들여지지만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어쩌면 그냥 착각하도록 두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었다.


다른 이들도 아나스타샤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웰가가 안타깝기는 하나, 굳이 현실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그에겐 성불하는 것보다, 계속 양조장의 노동자로 살아가는게 나을 수도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은 더 머무르지 않고 옛 양조장에서 떠났다.


적자

등잔 공방의 방향으로 향하는 등 뒤로, 또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느껴져요?"
"또 누군가 따라 붙었군요."

 

클라인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양조장에서 나오자마자 인기척이 느껴지다니,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본데요."


아나스타샤, 추적자 발견, 기능 판정 : d20(16)+통찰(0)+레벨(1)+뒷전(4) vs 어려움(20) / 성공

아나스타샤들은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 없어지자, 추적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몸을 틀지 않고, 단검만 빼내어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던졌다.

 

"으악!!!"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나스타샤를 제외한 세 명은 비명 소리가 났던 곳으로 빠르게 달려가, 남자를 붙잡았다.

아나스타샤는 붙잡힌 남자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누구야? 우릴 왜 따라오는 거지?"
"으, 아, 아……."
"너도 그레이슨과 한 패거리냐?"

갈색 피부에 짧은 밀색 머리를 가진 하플링 남성이였다. 그는 오른쪽 어깨에 단검이 꽃힌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렇게 겁 많은 놈이 시체왕의 추종자? 아니, 그냥 건달 따까리 정도 되보이는데.'

"좀비라니! 나, 난 그저 너희를 감시하라는 의뢰를 받았을 뿐이야……!"
"의뢰?"
"그래! 그냥, 그냥 돈을 좀 준다고 하길래……! 너희 행적만 보고하면 된다고 해서…! 부디 목숨만은 살려줘!"

 

그는 자신이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할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젠장할……. 난 그저 집 나간 아들래미를 미행하거나 바람난 남편 뒷조사나 하던 놈이라고…. 가, 가끔은 물건을 빼돌리기도 하는데…… 대부분 합법적인, 아니, 정의구현에 사용되는……… 이게 이렇게 위험한 일일줄은……. 으으, 너무 아파………."

 

남자의 중얼거림도 무색하게, 클라인은 냉정하게 말했다.


"아나스타샤, 어찌하실 겁니까? 저희 행적이 노출될 수도 있는데, 후환을 남기지 않도록 처리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히이익………!!"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을 만류했다.

"이 자가 저희를 미행한 건 꽤 됐어요. 어차피 정보는 어느정도 넘어갔겠죠. 죽여봤자 의미 없어요. 대신 역으로 정보를 캐내보죠."

클라인은 검에서 손을 떼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아나스타샤는 하플링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정보를 캐낸만큼, 너도 네가 가진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면 살려보내주겠어. 우선 네 이름이 뭐지?"
"맵스……! 맵스라고 해! 프리랜서로 의뢰를 받아 정보 수집을 하고 있어! 그, 일종의 사립 탐정……"

 

아나스타샤는 쓸데없는 사족은 잘랐다.


"그래, 맵스. 널 고용한 이가 누구지?"

"그, 그건 나도 잘 몰라."

맵스의 어이없는 대답에, 맵스의 어깨에 박힌 단검을 살짝 건들였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그는 고통에 몸부림 쳤다.

"으아아아악!! 정말 몰라! 로브를 입고 있었다고! 돈은 선불로 지불하고 정보를 가져다 줄 때마다 돈을 더 줬어! 그때도 로브를 쓰고 있었고! 정말 모른다고!"

'뭐, 그 정도 위장이야 당연히 했으려나…….'


"그래, 그럼 무슨 로브를 입었지?"
"잘 기억이………"
"다시 기억이 나게 해줄까?"

 

아나스타샤는 가볍게 손을 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시간을 줘!! 회색이였나 은색이였나…… 그, 그래! 은색인 것 같아. 미스릴, 미스릴이 분명해!"
"그래? 그들한테 지금까지 어떤 정보를 전달했지?"
"숙소와 너희들이 향하는 장소, 사용하는 무기, 싸움 실력, 그런 것들. 그게 전부야…."
"우리 정보에 대해 거의 전달했다고 봐도 되겠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했지?"

"주로 직접 만나서인데, 오늘은 전서구로……. 아까 너희가 양조장에서 싸울 때 딱 한 번 보냈어."

 

'쯧. 이럴줄 알았다면 피요르를 밖에 감시로 세워뒀어야 했는데. 다음부턴 조심해야지.'


"흑흑………. 이젠 아는 것도 더는 없어…. 더 이상 미행도 안할거고 그냥 숨어만 있을게. 제발 살려보내줘, 부탁이야……. 아까 너희가 양조장에서 싸우는 걸 봤단 말이야. 난 그렇게 만신창이로 죽기 싫어……."

아나스타샤는 맵스의 어깨에서 단검을 빼내곤 가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맵스는 피가 흐르는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은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클라인 녀석의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저렇게 보내도 괜찮을까요?"

"저 정도 겁 많은 사람이면 굳이 더 위험을 감수할 것 같지 않은데요. 게다가 이젠 더 넘어갈 정보도 없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미행이 들켰다?"
"그렇긴 하지만……."

 

아도니스는 맵스를 놓아준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반해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의 결정을 옹호했다.

 

"이미 놓아줘 버린 이상 별 수 없지요. 쓸모 없는 살생은 화를 부릅니다. 그보다 오늘 지낼 숙소에 대해 생각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의 행적이나 숙소 위치가 노출된 이상, 에 계속 머무르다간 암살자를 마주칠지도 모를테니까 말입니다. 아무래도 숙소를 바꾸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나중에 안장 구역 쪽에서 숙소를 하나 알아봐요. 고급 상점가이니만큼 적어도 평민구역보단 안전하겠죠."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미스릴 학파의 로브라니. 아까 그레이슨이 입고 있던 로브는 다른 학파의 로브였죠? 그 학파들이 공모한게 아니라면, 다른 공통점이 있다는 건데……."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의 기운을 북돋웠다.


"어찌 되었든 모든 일은 꼬리를 완전히 숨기기 힘든 법입니다. 계속 조사하다 보면 언젠가 진상에 다다를 겁니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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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돌란의 그림자1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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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엘돌란의 그림자1

 

 


연고주의와 족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엘돌란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도시일지도 모른다.

 



하수구에서 나온 뒤 냄새가 빠지지 않아 얼마나 씻었는지 모르겠다. 아나스타샤들은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잠들기 전에도,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도 씻었지만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첫번째 목욕 때는 목욕탕 안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밖으로 나가고, 여관 주인은 목욕탕 물을 갈 돈을 더 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왕 돈을 더 지불한김에 목욕탕에서 살 기라도 할 것처럼 씻어대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임무인 이니고 샤프를 찾는 일을 하기 위해, 은색만으로 가기 전에 정비가 필요했다.

아나스타샤들은 각자 준비가 끝나면, 엘돌란의 정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평민 구역의 호객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흩어졌다.


클라인은 새 검과 건틀릿(Gauntlet)을 보러, 코스모스는 새 둔기와 방패를 보러 대장간에 갔다.
아나스타샤와 아도니스는 보고서의 작성 및 전달을 위해, 여관 의 방에 남아있었다. 작성이 끝난 보고서는 사본을 황궁에 편지로 부쳤다. 보고서가 중간에 분실되면 다시 보내야 하니까.
엘돌란에서의 우편서비스는 마법의 힘을 이용한 것으로, 가격을 지불하자마자 하늘에 날아다니는 편지 행렬에 섞여 높이 날아갔다.


좀비들의 습격

오후가 끝나가자 호객 광장을 두르고 있는 회색 삼층 석조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어져 있었다. 상인들의 목소리도 걸인들의 목소리도 한 층 더 높아지는게 느껴졌다.
호객 광장의 중앙과 가장자리에는 온갖 상품과 음식을 파는 천막과 가건물이 서 있었고, 길 가에서 담요를 깔거나 책상을 놓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게다가 광장에는 단순히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지나치는 사람들로도 가득했다.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클라인의 붉은 머리는 눈에 띄었다. 광장의 중앙 즈음의 가판대에 있는 갑옷 입은 남성.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니,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클라인이었다. 그 옆에 그보다 머리 하나 작은 코스모스도 함께 있었다. 클라인에게 가려져 있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그들 쪽을 향해 나아갔다.

갑자기 시장 바닥의 얽히고설킨 목소리들 위로 큰 충돌음이 들렸다. 호박을 가득 싣고 광장 서쪽 출구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수레가 뒤로 넘어가, 길에 호박이 굴러다니기 시작해 들린 소란인 듯 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긴장했던 사람들은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웃음 소리를 뚫고, 여자의 비명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군중들이 물러서자, 누군가가 은방패대의 경비병 하나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레에 막히지 않은 두 출구 중 북동쪽 출구의 근처였다. 그 곁에 있는 여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비병과 싸우는 사람이 몸을 날려 경비병의 목을 물어뜯고 입가에 피가 흥건한 모습을 보자, 그 여자가 왜 소리를 질렀는지 알 것 같았다. 일반적인 주먹다짐이 아니었다.


소란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광장 중앙의 나선 계단에서는 사람 같은 것들이 나와 남은 은방패대 두명을 빠르게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광장에는 비명소리만 늘어갔다.

자세히 보니, 경비병을 습격한 것은 인간형 종족이었다. …그리고 한 때는 살아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아닌, 그런 것들이었다. 그것들 하나하나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고 내장이나 허파나 심장이나 눈이 없는 것이 보였다.


아나스타샤와 아도니스 근처에서도 빠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클라인과 코스모스가 어두운 그림자와 보라색 증기의 돌개 바람에 둘러싸인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정처없이 이리저리로 움직이던 좀비는 보라색 증기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그들에게로 일제히 몸을 돌리고 다가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감히 그것들의 앞길을 막지 못하고 비켜서서, 마지막 남은 남서쪽 출구로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수레 안에서도 얼굴이 새겨진 호박을 머리에 뒤집어 쓴 좀비가 나타났다. 마치 만성절 전야제(萬聖節 前夜祭, Halloween)처럼.

모두가 도망치고 이제 좀비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나스타샤들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클라인과 코스모스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싸우는 수 밖에 없었다.

 



휘청대는 좀비
"으어어어…"
1레벨 조무래기 [언데드]
행동순서 : +0
취약 : 신성
썩어가는 주먹 +5 vs 장갑 : 3피해
순수 16+_좀비와 대상이 모두 1d4 피해를 입습니다!
머리에 한 방 : 휘청대는 좀비는 대성공으로 명중 당하면 2배가 아니라 3배 피해를 입습니다.
체력 10 / 장갑 14 / 신방 12 / 정방 8

썩어가는 인간 좀비
"긁적…긁적…… 쾅."
2레벨 병사 [언데드]
행동순서 : +1
취약 : 신성
썩어가는 주먹 +7 vs 장갑 : 6피해
순수 16+_좀비와 대상이 모두 1d6 피해를 입습니다!
머리에 한 방 : 좀비는 대성공에 맞으면 체력이 0이 됩니다.
체력 60 / 장갑 15 / 신방 13 / 정방 9

좀비 호박 투척수
"……퍽,철퍼덕."
2레벨 궁수 [언데드]
행동순서 : +3
취약 : 신성
근.양손 호박 내려찍기 +7 vs 장갑 : 6피해
순수 16+_대상은 머리에 호박을 맞은 충격으로, 또는 호박 속이 흘러서 얼굴을 덮는 바람에 자기의 다음 차례가 끝날 때까지 쇠약해 집니다.
원.호박투척 +7 vs 장갑 : 8피해
순수 짝수 명중_대상은 끈적거리는 호박 속에 덮여 다음 자기 차례가 끝날 때까지 장갑과 신방에 -2 패널티를 받습니다. 더불어 모든 민첩성 기능판정에 -2 누적 페널티를 받습니다.
머리에 한 방 : 좀비는 대성공에 맞으면 체력이 0이 됩니다.
체력 50 / 장갑 15 / 신방 14 / 정방 9


배치

 

 



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 (25), 클라인 (20), 휘청대는 좀비 1.2.3.4.5 (14), 아도니스 (13), 코스모스 (9), 휘청대는 좀비 6.7.8.9.10 (8), 썩어가는 인간 좀비 (7), 좀비 호박 투척수 (4)

아나스타샤, 짧은행동, 활시위를 겨눔, 휘청8에게 원거리 공격, 7피해.
클라인, 이동행동, 휘청10에게 접근, 휘청10에게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정밀공격, 10피해.
휘청10, 전투불능.
클라인, 자유행동, 옆의 휘청9에게 이어베기, 10피해.
휘청9, 전투불능.
휘청1, 광장 중앙으로 이동.
휘청2, 광장 중앙으로 이동.
휘청3, 중앙 계단 앞으로 이동.
휘청4, 중앙 계단 앞으로 이동.
휘청5, 남서쪽으로 이동.
아도니스, 휘청5에게 냉기광선, 10냉기피해,
휘청5, 전투불능.
아도니스, 이동행동, 호박수레가 있는 서쪽 출구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향함.
코스모스, 이동행동, 한걸음 앞으로 이동, 휘청7에게 신앙의 투창, 취약공격, 8신성피해, 자유행동, 후광.
휘청6, 이동행동,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을 공격, 3피해, 순수 16이상 명중, 3피해.
휘청7, 클라인 공격, 빗나감.
휘청8, 아나스타샤 공격, 빗나감.
인간좀비, 광장 중앙으로 이동.
투척수, 아도니스에게 호박투척, 8피해.


클라인과 코스모스는 수상쩍은 연기에 휩싸였지만 당황하지 않고 휘청대는 좀비무리들을 하나둘 쉽게 제거해 나갔다. 코스모스는 안수 치료 외에도 신성의 힘을 쓸 수있었는데, 특히 신앙의 투창이라는 신성으로 만든 화살은 언데드인 좀비(Zombie)들에게 효과만점이였다.

아나스타샤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여기고, 자신 주변의 좀비들에게 집중했다.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짧은행동, 무기를 교체, 휘청8에게 쌍수 근접공격, 치명타 10피해, 휘청3과 휘청7이 휘말림.
휘청8, 전투불능.
휘청7, 전투불능.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앞으로 한걸음 이동.
클라인, 이동행동, 휘청6에게 접근, 휘청6에게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10피해, 휘청4 휘말림.
휘청6, 전투불능.
휘청1, 서쪽의 아도니스쪽으로 향함.
휘청2, 클라인쪽으로 이동, 클라인 공격, 빗나감.
휘청3, 아나스타샤에게 접근,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순수 16이상 명중, 4피해.
휘청4, 클라인쪽으로 이동, 클라아 공격, 빗나감.
아도니스, 이동행동, 북쪽으로 이동, 이동하다 마주친 휘청1에게 냉기광선, 11냉기피해, 휘청3 휘말림.
휘청1, 전투불능.
휘청3, 전투불능.
코스모스, 이동행동, 클라인의 근처로 이동, 휘청2에게 신앙의 투창, 빗나감, 1피해.
인간좀비, 클라인쪽으로 이동, 클라인 공격, 6피해, 순수 16이상 명중, 3피해.
투척수, 아도니스에게 호박투척, 8피해, 순수 짝수 명중.
아도니스, 호박 투척 당함, 장갑과 신방과 민첩 기능판정에 -2 페널티.


아도니스는 쓰러진 수레 근처에서 단단한 늙은 호박을 던지며 공격하는 좀비 투척수가 성가셔 먼저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조준을 위해 조금씩 다가가던 도중, 좀비 투척수는 아도니스를 발견했다. 좀비의 수를 하나둘 줄여나가며 전진하던 아도니스는, 좀비 투척수의 호박을 직통으로 맞아 깨진 호박 속을 뒤집어 썼다.
호박에 맞아 아픈 것보다 몸이 더러워진게 아도니스에겐 더 큰 충격이었다.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휘청4에게 단검으로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이동행동, 아도니스쪽으로 이동, 짧은행동, 무기 교체.
클라인, 인간좀비에게 강타 선언, 빈틈만들기 성공, 정밀공격, 15피해, 강타, 5추가피해.
휘청2, 클라인 공격, 3피해.
휘청4, 클라인 공격, 3피해.
아도니스, 이동행동, 가판대에 몸을 숨기려 시도, 민첩 기능판정, d20(10)+민첩(0)+레벨(1)-패널티(2) vs 보통(15) / 실패, 가판대 뒤에 어정쩡하게 서게 됨, 투척수에게 냉기광선, 11냉기피해, 극복판정 실패.
코스모스, 휘청4에게 근접공격, 12피해, 휘청2 휘말림.
휘청4, 전투불능.
인간좀비, 클라인 공격, 빗나감.
투척수, 아나스타샤에게 호박투척, 8피해.

 

그 때문에 그는 끈적한 불쾌감에 신경쓰여 집중력이 흐트러져 뒤에서 습격하는 또 다른 좀비를 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아도니스가 좀비 밥이 되기 전에 아나스타샤가 좀비를 쓰러트렸다.

 

"고, 고마워요."

"어차피 저 이상한 연기때문에 좀비들은 전부 클라인과 코스모스에게로 향하고 있어요.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요. 저희는 좀비 투척수들을 처리하죠. 저들이 싸우는데 방해되지 않게요."

"네!"

"………저 투척수들을 잡을 효과적인 방법은, 저것들이 있는 이 넓은 광장의 끄트머리로 직접 가는 것보단 아도니스의 원거리형 마법으로 처리하는 거겠죠?"

"하지만 거리가 있어서……. 50m 이상의 원거리 마법은 시전 시간이 필요해요."

"그럼 저번에 청갈기 용병단과 싸울 때의 클라인처럼, 이번엔 제가 몸빵할테니 아도니스는 마법을 준비해요!"

"몸빵이요?!"

"아……… 미끼 역할……?"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아나스타샤에게 그런 걸 맡길 순……"

 

좀비 투척수들이 날린 호박이 코스모스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클라인은 그 호박을 손으로 쳐내고, 마저 좀비와 대치했다.

 

"빨리!"

 

아나스타샤는 달려나가며 좀비 투척수들에게 화살을 쏘아 그들의 주위를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아도니스는 그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고조주사위3
아나스타샤, 투척수에게 원거리공격, 11피해, 자유행동, 아도니스에게 원호 부탁, 이동행동, 투척수 방향으로 이동.
클라인, 인간좀비에게 근접공격, 빈틈만들기 성공, 16피해.
휘청2,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아도니스, 이동행동, 뒤로 한걸음 물러남, 투척수에게 냉기광선, 8냉기피해, 극복판정 성공.
코스모스, 이동행동, 휘청2와 접전중에 왼쪽으로 이동, 휘청2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인간좀비, 클라인 공격, 6피해, 순수 16 이상, 1피해.
투척수, 아나스타샤에게 호박투척, 8피해.


고조주사위4
아나스타샤, 투척수 원거리공격, 13피해, 이동행동, 투척수에게 접근, 짧은행동, 무기 교체.
클라인, 인간좀비에게 근접공격, 치명타, 정밀공격, 18피해.
휘청2,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아도니스, 투척수에게 냉기광선, 11냉기피해, 이동행동, 인간좀비 뒤쪽으로 이동.
투척수, 전투불능.
코스모스, 휘청2에게 근접공격, 13피해, 이동행동, 좀비인간에게 접근.
휘청2, 전투불능.
인간좀비, 클라인 공격, 빗나감.


아나스타샤는 날아오는 호박을 주먹이나 팔꿈치로 부쉈다. 어느새 온몸이 호박씨로 끈적하게 변했다. 아나스타샤는 끈적함에 무기를 휘두르는게 거슬릴 뿐, 아도니스처럼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그렇게 겸사겸사 좀비 몇 마리를 해치우며 호박 너덧을 부쉈을 때, 아도니스의 마법이 옆을 스쳐 좀비 투척수들에게 연달아 명중했다.

고조주사위5
아나스타샤, 이동행동, 광장 중앙으로 이동, 짧은 행동, 무기 교체, 클라인과 접전중인 인간좀비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 인간좀비에게 근접공격, 12피해.
인간좀비, 전투불능.


클라인과 코스모스 쪽 좀비들도 전부 쓰러진 것도 그 때쯤이었다.

 



"하아, 하아……."

전투가 끝나자 클라인과 코스모스를 감싸던 돌개 바람이 완전히 사라졌다. 좀비들은 전부 정리되었지만, 30구라는 상당한 수였기 때문에 호객 광장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아나스타샤들은 좀비가 나왔던 광장 중앙의 나선 계단쪽으로 모였다. 이 나선계단은 하수구로 통하는 입구로, 바로 전 날에 아나스타샤들이 황토 젤리 퇴치를 위해 들어갔다 나온 곳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좀비는 고사하고 시체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숨을 고르며 피와 호박으로 더러워진 몸을 소매로 훔치고 있을 때, 북동쪽 출구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출구 쪽의 은방패대가 그 쪽에 있던 좀비들을 완전히 처리한 모양이었다.

 

"좀비가 광장 중앙에만 있는게 아니었나 봐요."

 

여덟명의 은방패대들은 이 곳의 상황을 보기 위해 광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출구 쪽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좀비 사체와 피투성이가 된 현장에 놀라면서도, 아나스타샤들과 남동쪽 출구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숨어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라며 취조를 개시했다. 그와 동시에, 좀비가 또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광장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부대를 지휘하는 파렐레스 경비관이 나타나, 병사들에게 부상자를 치료소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치료소로 옮겨질 대상에는 아나스타샤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들 것에 실려 나가면서 본 호객 광장은, 엘돌란의 마법사들과 관리들이 도착하며 더욱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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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할 일

아나스타샤들은 평민 구역에 임시로 만들어진 치료소에서 사제들을 통해 말끔하게 치료 받았다.
치료를 받으며 사제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 습격에 의해 사람들 사이에 걱정과 불안감이 퍼지는 중인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사원과 예배당을 찾는 평민들의 수가 늘기 시작했다고. 물론 모두가 공포에 떠는 건 아니었다. 사상자가 나왔음에도, 치료소를 찾은 가벼운 경상에 그친 부상자의 보호자들 중에는, 좀비가 호박을 쓰고 호박 수레에서 나왔다던가 호박을 던졌다는 소리에 약간의 웃음이 섞이기도 했다. 직접 겪지 못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일행의 상태를 확인하며, 이번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번 공격, 누군가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 분명해요. 바로 전 날, 정오 전까지만 해도 하수구에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쥐 몇 마리랑 황토 젤리 빼고. 그런데 갑자기 좀비라니."
"맞습니다. 마을 한 복판에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좀비라니, 누군가 고의적으로 일을 벌인 느낌이였죠."
"거기다가 아까 그 수상한 연기……. 왜 클라인과 코스모스를 감싼걸까요?"

코스모스는 잠시 고민하곤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저희가 황실 관계자라는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제 학교 구역에 다녀오며 엘돌란에 황실에서 파견 된 사람이 왔다는 건 알음알음 퍼졌을테니까 말입니다."

그 말에 아도니스는 표정이 굳었다.

"황제에게 적대하는 누군가가 엘돌란에 있다는 걸까? 이건 황실에 대한 도전이겠네."

"우리 얘기를 도시 경비대에게 얘기해 주면, 그들이 습격의 주모자를 찾을 때 수사망이 좁혀져서 도움되지 않을까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클라인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 건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아무래도 은방패대는 이 건에 대해 깊이 파고들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네?! 어째서요? 도시에 사상자가 이렇게 많이 나왔잖아요. 이 치료소에만 해도……."
"물론 액시스에선 이런 일은 절대 눈감고 넘어갈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듣자하니 이곳의 경비대는 인원이 모자라 다른 일에 투입되기 어렵다고 하고, 도시를 이끄는 마법 학파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빠 해결 의지가 없는 모양이더군요. 일종의 정치 싸움에 바빠, 도시의 일은 나몰라라 하는거죠."
"허!"

엘돌란의 무책임함에 아나스타샤는 할 말을 잃었다.
샤리사 때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으니, 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아요."
"당연하죠! 황제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 황제가 될 아나스타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구요!"

아도니스는 상당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네. 그것도 그렇지만, 제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것도 용서못해요. 클라인과 코스모스를 노렸잖아요."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의 말에 미소를 보이며, 제안을 했다.


"그럼 사건이 일어났던 호객 광장에 다시 돌아가서 좀비의 경위에 대해 조사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날 오후부터 오늘 오전 사이동안 좀비가 옮겨진 거라면, 분명 본 사람이 있을테니까요."


호객광장을 차지했던 좀비들의 시체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경비대인 은방패대가 처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체만 없다뿐이지, 여전히 난장판이였던 광장은 상인들이 돌아와서 다시 장사를 재개하기 위해 청소 중이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와중에도 평민 구역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들 살아가기 위해 다시 이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고통에 아파할 시간도 슬퍼할 시간도 없으며, 공포에 불안할지언정 계속 무서워할 수 없었다.

빠른 조사를 위해, 4명은 각자 흩어져서 탐문을 하기로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아나스타샤들은 상인들에게 좀비가 나오기 전 특이한 일은 없었는지 묻고 다녔다. 광장에 계속 자리를 지키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라면 무언가를 봤을 확률이 클 테니까.

 

 


 

단서 추적

클라인이 조사를 시작한 곳은 좀비가 기어나왔던 곳 중 하나인 호박 수레가 있던 곳이었다. 수레는 서쪽 출구를 완전히 막고 있어, 이 곳으로의 통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이 많았던 광장이니만큼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것일수록, 주목을 받기 쉽다. 분명 수레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근처 가판대 상인들이 보았을 것 같았다.

 

클라인, 길거리 교섭, 기능 판정 : d20(19)+매력(1)+레벨(1)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은 서쪽 출구에 인접한 상점들 중에, 바로 수레를 마주보고 있는 위치의 가판대에 들렀다.

"말 좀 묻겠다."
"어쩐일이오?"

가판대의 주인은 드워프 장인으로, 돌 조각상을 판매하고 있었다. 검은 수염에는 옥구슬 같은 작은 돌이 엮어져 장식되어 있었다. 그의 말투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반경어체였지만, 공용어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짧은 대답에서도 강하고 딱딱한 드워프 억양이 느껴졌다.

"좀비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 저 호박 수레가 언제 여기로 왔는지 알고있나?"
"아~ 알다마다! 내 저 놈의 수레때문에 이쪽의 손님 통행이 확 줄어드는 통에 아주~!!"

드워프 장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듯 주먹을 꽉 쥐고 목소리가 커졌다.

"하………. 됐소. 지금와서 화내서 뭐하겠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상당히 화가 났기에, 묻지 않아도 알아서 상황에 대해 말할줄 알고 기대했으나,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조용해 졌다. 결국 직접 대답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레는 언제부터 있었지?"
"좀비가 공격하기 직전이오."

그의 말대로라면 좀비가 담겨있던 호박 수레는 이곳에 놓여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얼마되지 않은 증거일수록, 범인을 추적하기가 더 좋아진다.

"누가 여기로 옮겼는지는 보았나?"
"보았지."
"………."
"…………."
"누구였는지 자세히 설명해보게."

절대 스스로는 입을 열지 않는 이였다. 귀찮은 건지, 천성이 무뚝뚝한 건지, 둘 다인 건지,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물으면 묻는대로 대답하기는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드워프 장인은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 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음, 로브를 입은 사람 둘이 여기로 수레를 몰고 왔소."
"얼굴은 봤나?"
"후드를 쓰고 있어서 보지 못했소."
"……………."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물어도 대답이 영 시원찮고 영양가 없는 대답이었으니. 이래선 시간만 낭비할 뿐이었다.

클라인은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지만, 일단 질문에 응하고는 있는 그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는 이이긴 해도.


클라인은 원만한 조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 보았다. 1차적으로 생각하자면, 상인이니까 물건을 팔아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임에도 나쁘진 않았다. 그는 항상 남아도는게 돈이었으니까.


그는 가판대의 물건 중 하나를 가리켰다. 새가 날개짓하는 흰색 조각이였다. 실제 새의 사이즈와 비슷하게 조각 되어, 돌 받침대에 올려진 조각상은 아나스타샤의 피요르를 떠오르게 했다.

"이 조각 하나, 액시스로 보내주게."
"구입하시는 거요? 이 조각은 요 날개에 온 정성을 들인 작품이라오. 가격은 5gp."

클라인은 즉석에서 금화 5개를 건넸다.

"허허, 고맙소. 액시스 어디로 보내면 되겠소? 주소를 불러주시오."
"액시스에 카스펜서 저택이라고 쓰면 알 거다."

돌조각처럼 딱딱한 표정을 가진 드워프 장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쓸데 없는 말이 많지 않아 일일이 귀찮게 굴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그는 카스펜서 저택이라고 소포 영수증을 적었다. 클라인은 그 영수증에 싸인을 하고, 수레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래서 로브를 입은 자들이 수레를 여기에 가져다 놓기만 했나?"

"……사실 가져다 놓은 것도 짜증나는데, 그것보다 더 어이없는 행동을 하긴 했소. 아니, 갑자기 노새에서 수레를 풀더니 바닥에 뒤집어 버리는게 아닌가? 나도 처음엔 화가 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행동을 하는게 미친 놈들이 아니고선 안 할 것 같아서 쫓아가 뭐라하진 않았소. 괜히 해꼬지를 당할 것 같아서."

 

장인은 아까랑 달리, 묻지도 않은 부분에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짓을 하더니 바로 수레만 두고 자리를 떴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들이 나타났고, 그 넘어진 수레에서도 좀비가 기어나왔다오. 그 뒤의 일은 보시는대로, 난장판이 났지. 지금 생각하면 그냥 미친 놈도 아니고 엄청 수상한 미친 놈이긴 하네만…… 어쨌든 그들은 얼굴은 모르지만, 체격으로 봐선 분명 인간 남자였소."

"엘프일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인간 남성이라고 추측하는 거지?"

"추측하는게 아니오.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엘프나 드워프라면 있어야할 그게 없잖소."

"……? 아, 귀말인가."

"그렇소."

 

엘프나 드워프의 귀는 뾰족하게 솟아있다. 특히 엘프의 귀는 드워프보다 훨씬 길고 크다. 그런 큰 귀가 후드를 쓴다고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엘프라면 모자가 가로로 툭 튀어나온 모양새가 되겠지.

 

이 도시에 널린게 인간과 엘프이니, 범인이 인간이라면 체격과 종족만으로 추측하는건 어려웠다.

드워프 장인은 조각상을 구입하기 전보다 말이 많아졌긴 하지만, 사실상 도움이 될 만한 단서는 아까와 똑같았다. 범인들이 사건 현장에 직전까지 있었다는 것.

게다가 로브라는 것도, 엘돌란은 마법사들의 도시 아니랄까봐  로브를 안 입는 사람이 더 드물 정도였다. 결국 범인을 추측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정보였다.

 

"흠…. 알겠다. 시간 내줘서 고맙군."

 

클라인은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드워프 상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파자리우스 녀석……. 수레를 빌려줘도 참………."

"방금 그 수레가 어쨌다고 했지?"

"아? 파자리우스요. 저 부숴진 수레가 파자리우스의 것이거든."

 

파자리우스. 수래와 노새는 당연히 범인의 것일테고, 저 드워프 장인은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으니, 굳이 주인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런데 수레의 주인을 알고 있다니?

 

"파자리우스 레인이라고 그 녀석이 안장 구역에서 수레랑 노새를 빌려주는 일을 한다오. 내가 그 녀석 노새에 손을 물린 적이 있어서 알아 봤지. 저 수레의 노새를 봤을 때 나를 보는 노새의 눈빛이 영 좋지 않은게, 그 녀석의 노새라고 말이야. 수레랑 노새, 둘 다 파자리우스 것일 거라오. 흠……. 하필 이런 일에 연루되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만……."

 

실마리를 잡은 클라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 남자는 자신의 친구인 파자리우스를 전혀 의심하고 있진 않았다. 당연히 로브를 쓴 남자와 노새를 가져다 놓은 사람이 다른 사람일 거라 생각해,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겠지.

보통 범인들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제 3자의 물건을 범행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종종 안이하게 자신의 물건을 사용해 현장에 증거로 남겨놓기도 한다.

어쩌면 로브를 쓴 남자는 파자리우스 본인이거나, 그와 관련 된 사람일 가능성도 있었다. 설사 연관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수레를 빌려간게 누구인지 찾는데 도움은 될 것이다.

 

"그 파자리우스라는 자는 어디서 만날 수 있지? 수레를 누구에게 빌려줬는지 묻고 싶은데."

"안장 구역에 있는 내 공방 근처에서 마굿간과 잡화점을 경영하는 하프엘프라오. 럼니 투실버스의 소개로 왔다고 하면 그 녀석도 조사에 순순히 응해줄 거라오. 쓸데없는 오해는 빨리 풀고 장사나 계속 하는게 낫지."

"고맙네. 아, 조각품들이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던데 나중에 하인들을 보내서 더 구입하도록 하지."

"아~ 이거, 매일 누름돌이나 찾는 손님들과는 다르게 예술을 알아보는 분이시군!"

 

럼니는 크게 웃으며, 잘가라고 손짓까지 했다.

 


 

아도니스는 호객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탐문을 하기로 했다.

 

아도니스, 길거리 교섭, 기능 판정 : d20(17)+매력(-1)+레벨(1) vs 보통(15) / 성공

 

그러다 행인 한 명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아도니스는 엘돌란에 사는 평민 마법사처럼 굴며 말을 붙였다.

 

"오늘 이 광장에서 좀비 사건이 있던거 알지? 당신은 좀 괜찮아? 난 여기 지나가다가 당할 뻔했지 뭐야. 휴……."

"아, 그쪽도 그랬나? 하……. 나도 잠깐 장 좀 보려다가 봉변 당할 뻔 했다니까. 장이고 뭐고 겨우 도망쳐 집으로 갔더니, 마누라가 왜 아무것도 안 사왔냐며 다시 다녀오라고 성화를 부려서……. 에휴, 여기에 다시 오기 싫었는데."

"고생이 많겠네. 직접 안 본 사람들은 모른다니까? 좀비가 호박을 쓰고 나왔다니 뭐니 하면서, 만성절 전야제의 예행연습 아니냐고 하는데 정말……"

"내 말이!! 하…. 여기서 같은 피해자를 만나 다행이군. 안 그랬으면 억울해 죽을 뻔 했어."

 

남자는 아도니스의 반응에 만족스러워 보였다. 대화가 쉽게 흘러갈 것 같자, 질문을 시작하기로 했다.

 

"근데 말이야, 그 좀비들…… 어디서 나온걸까? 내가 마법을 조금 배워보려다 말아서 잘은 모르지만, 듣기로는 좀비를 만드려면 시체가 있어야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생각엔, 납치를 해서 사람을 죽인 다음에 그 시체로 좀비를 만든 것 같아."

"납치?"

"아니, 요 근래에 실종이 많이 늘었지 않은가. 쉬쉬한다 해도 실종 된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여야지.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나 마찬가지야."

"아아………. 나도 들은 것 같아. 무서운 세상이지. 오늘 일도 그렇고 더 조심해야겠어."

"자네도 이 구역에 사나?"

"그렇지."

"에휴……. 그래, 평민구역 사는 동지끼리 힘내자구. 자네도 혹시 자식이라도 있다면, 혼자 집에서 반경 100m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말이야. 이 구역이 실종자가 제일 많으니까 몸 좀 사려야지."

 

행인은 그 말을 끝으로, 장을 보기 위해 떠나갔다.

 

과연 평민구역의 실종 사건이 이 좀비 사건과 연관이 있을까?

 


 

코스모스는 광장의 북동쪽 출구 쪽에서 아직도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파렐레스 경비관과 대화를 시도했다.

모두들 사건을 대충 수습하고 돌아갔지만, 그래도 그 만큼은 광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니 괜찮은 정보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길거리 교섭, 기능 판정 : d20(5)+매력(1)+레벨(1)+하녀(5) vs 보통(15) / 실패

 

코스모스는 조심히 다가가 말을 붙였다.

 

"호객 광장의 좀비에 관해 말씀 좀 묻겠습니다."

 

하지만 경비관은 코스모스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했다.

 

표상 관계 판정 (황제) : 5 (어려움 : 미행하는 자가 붙음.)

 

코스모스는 굴하지 않고, 황실의 이름을 빌리기로 했다. 실제로 자신은 아나스타샤의 하녀이니, 상관 없었다.

 

"액시스의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지나가다가 좀비 사건에 휘말려서 정확한 사항을 보고하고 싶은데, 도움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경비관은 그제서야 코스모스를 쳐다보았다.

 

"황실에서 일하고 있다고? 흐음……."

 

일개 소도시의 중간 관리자에게 황실 사람과의 연줄이란, 잡고 싶은 동앗줄일 것이다. 그 연줄이 필요 없더라도 굳이 척을 질 필요도 없을테니, 관심을 끌기에 좋았다.  역시나 파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궁금한데 그러시오?"

"좀비들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그냥 솟았을 것 같진 않고 누군가의 시체를 사용했을텐데, 그들의 신원을 알고 싶어 여쭤봤습니다."

"정확한 신원은 그들의 개인정보라 함부로 알려드리기 곤란하오. 다만 그들이 이 곳의 주민이였던 건 사실이지."

 

개인정보라 함부로 알려주기 어렵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제국은 지금까지 일부 귀족을 제외하곤 남의 정보 관리에 신중했던 적이 없으니. 단지 이 사건이 엘돌란 밖으로 누설되어 이미지가 실추 될 걸 걱정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가 좀비들의 신원을 모를수도 있고.

 

"이곳의 주민이라 하면……?"

"평민구역의 주민들말이오. 평민 구역엔 거주하는 자가 원체 많으니 나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던데, 엘사님은 한 눈에 척척 알아보시니 신기할 따름이였지."

"엘사?"

"아, 액시스에서 왔다고 했었지, 엘사 화이트로즈님은 엘돌란의 천사라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빈민들을 거두어 먹여 살리는 분이지. 그 분 덕분에 개과천선한 놈들도 한 둘이 아니고."

 

코스모스는 파렐레스가 말한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좀비들의 신원을 찾을 때, 이 사람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공무 중 바쁘실텐데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고."

 

코스모스는 꾸벅 인사를 하고선 뒤를 돌았다.

자신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아나스타샤는 광장의 남쪽에서 상인들 상대로 하나하나 말을 붙였다. 하지만 그럴듯한 수확은 없었다.

 

아나스타샤, 길거리 교섭, 기능 판정 : d20(15)+매력(2)+레벨(1)+뒷전(4) vs 보통(15) / 성공

 

이번에는 이미 가판대의 수리와 청소가 끝나, 장사를 재개한 키가 큰 하플링 상인에게 말을 붙였다.

이번이 다섯 번째 시도였지만 늘 그렇듯, 아나스타샤는 몇 번을 실패해도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엔 뭐라도 걸려라~'

 

"안녕하세요."

"어서오십쇼~ 무엇을 찾으십니까? 파이프? 담뱃잎? 사장님은 담배를 안 피실 것 같은 분위기인데, 선물이신가?"

"사실 좀비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어서요. 여기는 다행히 좀비에게 피해를 적게 입었나 봐요."

"아……. 아닙니다~ 저도 피해가 장난 아니라구요~ 제가 손이 빨라 매대를 이렇게 저렇게 금새 정리한거죠."

 

하플링 상인은 그의 빠른 말 속도처럼, 현란한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하하, 정말 손이 빠르시네요. 그럼 좀비 사태의 전후로 계속 이 곳에 있으셨겠네요? 혹시 여기서 뭐 본 거 없으세요?"

"네네, 여기 있었죠. 어? 거기 모자 쓰신 남자 분! 여기 이 담배 어떠십니까? 트위스프(twisp) 지방에서 직접 공구해온 상품입니다!"

 

그는 아나스타와 대화하면서도 자신의 상품이 팔릴 것 같은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말을 걸며 정신이 없었다.

 

"아……. 그냥 가시네. 그래서 뭐라고 했죠?"

"여기서 누가 수상한 물건 옮기는거 본 적 없으세요? 좀비 시체를 담을만한 거나 호박 수레라던가."

"그런 건 본 적 없어서 모르겠고…. 여기 돌아왔을 때 좀비 시체를 얼핏 봤는데 그 중 낯익은 얼굴이 있긴 했읍죠, 네."

 

무덤덤하게 말한 것 치고는 엄청난 정보였다.

 

"정말인가요?  그게 누군데요?"

"아앗~! 어서오십쇼! 이 파이프를 사신다고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 파이프로 말할 것 같으면 하플링 장인이 한 땀 한 땀 섬세하게 만든 것으로……… 아무튼! 같은 하플링으로서 이 파이프 장인의 솜씨는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 갑작스럽게 손님이 등장했다. 그리고 상인은 주위는 온통 그 곳으로 쏠렸다.

아무리 급해도 그의 생계수단을 방해 할 수는 없어, 아나스타샤는 손님이 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한 명의 손님이 가자마자 무섭게 또 다른 손님이 왔고, 그 손님이 가자 또 다른 손님이 왔다.

 

"아~ 오늘따라 장사가 너무 잘 되네. 손님이 알아서 뚝딱뚝딱. 어? 아직도 거기 계셨쇼?"

"……바쁘신 것 같아서. 이제 말씀해 주실 수 있죠?"

"네? 뭘 말입니까?"

"………좀비 중에서 아는 얼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아니 글쎄 좀비 중 하나가 제 친구…… 아니아니, 사장님 어떻게 딱 그렇게 좋은 물품을 알아보시고 집으십니까? 허, 보는 눈이 장난 아니시네~"

 

또 손님이 왔다. 이래서야 이야기에 진전이 없을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몇 년 전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났다. 건강에 좋지 않다며 끊을 것을 권유했던 남자도 생각이 났다. 일이 자꾸 늘어지기만 하니, 가만히 기다리는 동안 오만 별 잡생각이 들었다.

 

'젠장, 그 자식……. 그냥 지 친구들에게 예쁘고 고상하고 우아한 엘프 여자친구를 보여줘야 하는데, 길거리 시정잡배 마냥 거리에 쭈그려서 담배 피는 모습이 아니꼬와 그랬던 거였지. 내 건강은 개뿔. 그 전까지는 나랑 좋다고 같이 피웠으면서. 아주 지가 엘프를 꼬신 능력자라며 기고만장해 졌을 때가 진짜 꼴보기 싫었는데. 지가 능력자인게 아니라 내가 사귀어 준 거겠지. 아니, 그런 놈이랑 사귀어 주다니. 옛날의 나도 어지간히 정신이 나갔었구만? 아~ 엘프들이 그런 놈들의 판타지 속에 있는게 싫다, 정말.'

 

"트위스프 산(産) 말은 담배 한 개피."

"아이고, 여기 있습니다. 바로 피우실거죠? 불도 여기여기."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껏 만났던 남자들은 다 그랬지. 뭔가 나 자신보단 내 외모나 종족에 더 관심있는 느낌. 어짜피 그런 놈들만 만날거라면, 나도 조금 더 외모를 볼걸 그랬나. ………외모?'

 

아나스타샤의 머릿 속에 갑자기 클라인이 스쳐지나갔다.

 

'클라인도… 잘 생겼지. 아니, 잘 생겼다고 끝내기엔 뭔가 아쉬운데. 그러고보면 처음에 귀족이란답시고 체면 차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다정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야. 내가 변덕스럽게 마음이 금방 식었던 건,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그저 그런 놈들이여서 그런거 아니었을까? 합리적인 의심이야. 솔직히 그래. 누가 클라인에게 질리겠어? …………나?'

 

"헤헤, 한 개피 더 드릴까요?"

 

하플링 상인은 내 담배가 짧아진 것을 보더니, 재빠르게 담배 하나를 더 내밀었다. 아나스타샤는 말 없이 1sp을 지불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아까 저에게 뭐 물어보시지 않았나요?"

"………?"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끊은 하플링 상인을 미간을 찡그리며 쳐다봤다.

 

"……아 맞다, 좀비!! 그래, 낯익은 좀비가 있었다면서요."

"아! 그런 질문이였죠! 아니 글쎄, 쓰러진 좀비 중 하나가 제 친구인 콜른과 쏙 빼닮아 있지 뭡니까! 그 피범벅이 되어서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한 눈에 딱! 알아봤습죠. 그 사람과 알고 지낸게 한 두 해가 아니거든요."

"그 자는 죽은 사람인가요?"

"네 맞아요, 맞아요. 벽돌공으로 일하고 있던 친구인데, 딱 일주일 전에 일을 하던 중에 근처에서 날뛰는 말에 밟혔답니다. 참…… 안타까운 죽음이었죠."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나요? 땅 속에?"

"에이, 요즘이 어떤 때인데 땅에 함부로 묻습니까? 엘돌란에는 납골당이 있거든요. 콜른의 가족들이 돈을 지불하고서 그 납골당에 안치했습니다. 거기서 간소하게 장례식도 치뤄졌는데, 저도 그의 장례식에 참여했고요."

"장례식에서 시신은 확인한거죠?"

"으음~ 그런 건 사제님들이 할 일 아닙니까? 애초에 저희같은 일반인들이 말에 밟힌 시체를 봤다간, 며칠동안은 밥도 못 먹죠. 그냥 화장한 유골함을 보긴 했는데…… 사제님들이 그게 콜른의 유골이라 했으니 맞지 않을까요?"

 

한 마디로 장례식 때 봤던 유골 가루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근데 그 녀석이 텅~ 빈 뱃 속을 드러내고 광장 한 복판에 널브러져 있으니, 제가 안 놀라겠습니까? 아니, 정식으로 화장되어 납골당에 들어간 사람도 저런 좀비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그의 말처럼, 용 제국에선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가족의 시신이든, 하물며 원수의 시신이든, 돈을 주고서 정식 장례를 치르는 이유 중 하나가 언데드 발생의 방지 때문이다. 시체왕이 살아있는 한, 죽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시체를 화장(火葬)한다면 아무리 시체왕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재가 된 유골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먼지를 일으키는 것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나스타샤가 알기로는 이미 재가 된 시체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 같은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가 봤다던 유골함은 콜른이라는 사람의 유골 가루가 담긴게 아니며, 콜른의 시체는 화장되지 않은 거겠지.

 

"감사합니다. 친구가 죽어서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서 크게 상심 하셨겠지만,이 일은 제가 납골당에 가서 조사해 진상을 밝히도록 할게요."

"아이고~ 낯선 분이 감사합니다."

"납골당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저~기 이 구역 동쪽으로 가면 사원 구역으로 들어 갈 수 있는데, 그 곳에 망자의 금고라고 있을겁니다. 망자의 금고가 납골당이에요."


아나스타샤와 클라인과 아도니스, 코스모스는 각자 조사를 끝내고 호객 광장의 중앙에 모였다. 좀비가 나왔던 하수구 입구 근처였다.

 

먼저 입을 열은 건 아도니스였다.

 

"요새 엘돌란에서 실종 사건이 많은가봐요. 특히 평민 구역 사람들이 많이 실종된다고 하던데, 이번 사건으로 실종된 사람들이 좀비가 된게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까지 도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그 납치범들의 실마리는 얻지 못했어요."

"아, 그 실종이라면 소문이 어느정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경비관 파렐레스가 좀비 시체들이 평민구역의 거주자들이라고 하더군요."

 

코스모스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반응했다.

 

"허, 아무나 죽인건 아니라는 거네? 하기사, 귀족들을 죽이면 꼬리를 금방 잡힐테니까."

"좀비들의 정확한 신원을 알고 싶으면 엘사 화이트로즈를 찾아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구역에서 빈민 구제소를 운영하고 있어, 평민 구역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아나스타샤 역시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말했다.

 

"아마 납치만 한 건 아닌가 봐요. 일주일 전,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해 화장한 시체도 좀비 중에 있었다던데. 아마 범인은 사원 구역쪽에 숨어있는게 아닐까요?"

 

코스모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경우랑 달리, 사제들은 제국에서의 입장이 공고하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구두적인 증거로 그들을 의심해서는 별로 좋은 꼴을 보지 못하게 될 겁니다. 빛의 신을 섬기는 자들인데, 시체왕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니……. 그들은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예민하게 반응할 겁니다. 이미 좀비 사체가 치워진지라 증거가 없으니, 바로 추궁하기는 어렵겠지요."

"음……. 사원 구역의 방문은 보다 더 정확한 증거를 가졌을 때 방문하는게  좋다는 거네요."

 

사원구역의 방문이 뒤로 밀어지자, 클라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안장 구역에 방문해 보죠. 좀비가 나왔던 호박 수레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안장구역의  파자리우스 레인이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를 찾아가면 좀비가 든 호박 수레를 가져다 놓은 범인을 찾을 수 있겠죠."

"좋아요. 그럼 제일 먼저 안장 구역으로 가죠. 범인을 잡을 가장 빠른 길일 것 같네요."

 

발걸음을 옮기던 때, 작고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도니스 님, 아도니스 님~ 배달이요, 배달~"

 

아도니스를 부른건 자두색의 아주 작은 빛무리였다. 그 빛무리는 작은 가방 비슷한걸 둘러 메고 있어, 마치 허공에 가방이 떠다니며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응? 대마도사님의 정령 자두잖아."

"아도니스 님! 대마도사님이 아도니스 님에게 선물을 보냈어요!"

 

자두색의 빛무리는 가방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 아도니스에게 떨궜다.

 

"음 에너지 저항 물약이네."

"아도니스 님께서 황제 폐하의 후계자 선발 대회를 돕는단 소식을 들으시고, 보내시는 선물이래요!"

"뭘 이런걸 다. 대마도사님은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대마도사는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온 현자이자 마법사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그는 아도니스가 조금 '특별한' 존재이고, 그 쌓아온 시간 덕분에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대마도사에게 비견되기에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자신 다음의 대마도사가 될 잠재력이 높은 아도니스를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이번 선물도 선발 대회를 돕는다는 걸 격려한다는 명목을 구실삼아 보내고 싶은 선물 중 하나를 보낸 걸 것이다.

그렇다해도 이번처럼 대마도사 같은 표상의 선물이 갑작스럽게 오는 경우는 좀 특이하긴 했지만. 원래 도시의 출입은 제대로 된 신원 확인이 필요하고, 거물급 인물이나 그 사절단일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알리는게 보통이니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선물받거나 하사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엘돌란은 호라이즌에서 가까운 소도시니까 제국법을 따르고 황제의 통치를 받기는 해도 대마도사의 영향이 더 컸다. 그랬기에 자신의 대리인이나 다름 없는 정령을 비공식적으로도 마음대로 출입시킬 수 있었던 거겠지.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직 맡기신 일이 많거든요."

 

빛무리는 아도니스의 머리 위를 빙빙 맴돌더니 그대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귀엽다……."

 

마법 정령을 처음 본 아나스타샤는 자두색 빛무리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정령이라는게 원래 저렇게 다 귀엽나요?"

"아니요…."

 

아도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두가 유달리 귀여운 편이에요. 원하신다면 나중에 호라이즌에 갔을 때 대마도사님께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해 볼게요."

 

정말 대마도사의 호의를 등에 얹고 있는 자 다운 발언이었다.

 

"정말요? 아, 호라이즌이 코 앞인데 가지 못한다는게 아쉽네요. 빨리 지금 사건을 해결하고, 다른 임무들까지 완수해서 시간이 남으면 꼭 호라이즌에 놀러가요!"

 

호라이즌은 아도니스의 홈 그라운드였다. 언젠가 아나스타샤에게 그곳을 안내할 생각에, 아도니스는 그 어느때보다 신이 났다. 전생에 이미 여러 번 안내했던 곳이였음에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하는 건 언제나 좋았다.

 

"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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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의 황토 젤리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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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하수도의 황토 젤리

 



"방금 저 웅덩이 움직이는 거 너도 봤어?"


 

엘돌란으로

이른 아침부터 카스펜서 저택 앞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클라인이 엘돌란에 가기 위해 준비해둔 마부와 마차였다.


엘돌란은 마법 도시 호라이즌에서 북동쪽으로 30km정도 떨어져 있는, 호주머니만(彎)에 인접한 도시였다. 이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차를 타고 지름길인 대로(大路)를 통한다고 해도 반나절은 더 걸렸다.
도착한다면 지낼 숙소도 알아보고 짐도 정리해야 하고 지리도 파악해야 되기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했다.

 

아나스타샤들은 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액시스의 성문을 지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익숙한 건물들의 풍경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창문 밖 경치에 눈을 떼지 못 했다.

 

"아도니스는 용 제국의 이곳 저곳을 다녔지 않아요?"

"네, 그래도 용 제국의 웅장한 자연은 언제봐도 경이롭네요."

 

여전히 시선은 창 밖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 바깥에 흰 색 물체가 눈에 띄었다. 마차를 따라 날아오던 피요르가 아도니스가 내다보던 창가 쪽으로 접근해 온 것이었다.

 

"헤헤, 이젠 피요르가 저를 경계하지 않나 봐요."

 

아도니스는 피요르가 도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아나스타샤 쪽을 보았다.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아나스타샤는 반대편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했었기에 몰랐었는데, 아나스타샤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나스타샤의 맞은 편에 앉은 클라인도 평소였다면 '짜증나게도' 아나스타샤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시선을 내린 채로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두 명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그들이 밤동안 싸우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아나스타샤가 클라인에게 화가 난 거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엘돌란에 도착하고 평민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숙소를 하나 구했다. '달'이라는 여관으로 주점없이 숙박업만 진행하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여관은 조용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나무로 된 내부는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가격 역시 합리적이였는데 2인실이 14sp였다.

아나스타샤는 코스모스와 같이 방을 쓰게되어 두근거렸다. 평소에는 하인된 몸으로 주인과 같은 방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여관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클라인과 아도니스였는데, 두 명의 반발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들은 각자 개인실을 쓰기로 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개인실은 20sp로 2인실보다 약간 더 비쌌다.


아나스타샤들은 방에 짐을 풀고서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수구 입구의 위치를 파악해 뒀다. 시간이 늦어 바로 들어갈 일은 없었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러면서 둘러 본 엘돌란은 나름대로의 독특함이 있는 도시였다. 소도시다보니, 당연히 수도인 액시스랑 비교 안 될 정도로 작았지만, 그래도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고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은 곳이었다.

 

엘돌란은 마법 도시 호라이즌에 가깝기 때문인지, 신비한 느낌이 있었다. 완전히 별세계인 호라이즌처럼 미로 같다든가, 건물이 있으면 안 될 곳에 세워져 있다든가, 형형색색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익숙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마법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이 숙박하는 도 그렇고, 이곳의 건물들에는 보호진(保護陳)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대마도사의 기후 조절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어서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상적인 날씨가 유지되는 도시였다.

하늘에는 편지가 마구마구 날아다녀 피요르를 어깨에 앉혀 쉬게 할 정도였는데, 아도니스의 말에 따르면 마법을 이용한 편지 배달이라고 했다. 저러다 누군가 가로채는게 아닌지 걱정하자, 수신인이 아닌 자에게는 잡히지 않게 열심히 도망다니니 괜찮다던가. 생물도 아닌 편지에게 측은감이 들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붉은 로브를 입은 점등사(點燈士)들이 도시 곳곳을 돌며 가로등에 불을 붙이는 것도 엘돌란만의 특별한 점이긴 했다.

보통의 도시, 특히 평민들이 사는 곳에는 가로등이 이곳처럼 많지 않을뿐더러, 우연히 지나가는 순찰병이나 근처 거주하는 사람이 '진짜 불'을 이용해 가로등을 밝히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하지만 이곳은 점화 마법을 사용해 번지지 않는 마법 불로 가로등들을 켜는 '점등사'가 별도로 존재했다. 어쩌면 늦은 밤의 치안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이 곳이 조금 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경비대들이 밤중의 평민 구역의 경비를 허술하게 했기에 별 반 차이는 없었지만.

모든 도시들이 전부 그렇 듯이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거리에 쥐가 많았다는 것이다. 더러운 골목이나 쓰레기통이 아닌데도 길거리에서 간간히 쥐가 보였다.

어쩌면 이건 하수구에 생겼다는 문제 때문에 생긴 일일수도 있었다. 하수구를 황토 젤리가 막고 있고, 거리의 미화에 힘쓰라고 했으니까. 거리의 미화가 쥐를 말하는 걸 수도 있었다.

쥐 말고도, 아나스타샤가 생각하기에 또 다른 단점은 각 도시 내의 각 구역이 높은 절벽과 성벽으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었다. 그 성벽은, 이 도시가 얼마나 계급 간 왕래가 없는지와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으니까. 반대로 상류층의 입장에서야, 이 단점이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층민과 섞이는 걸 극도로 꺼려하니까 말이다.


도시를 처음 봤을 때는 신비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점점 이유모를 찝찝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날 저녁, 다른 이들이 엘돌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아도니스는 하수도의 입구 위치만 파악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준비할 것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액시스에서의 전투에서 느낀 바로는, 전투에서 아군이 상대에게 피해를 입는 빈도가 많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이번 임무는 토벌 임무다보니 전투가 필수 불가결로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낙하 주문 같은 기능성 주문 대신, 잔상 주문을 익혀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도니스는 필요한 마법 재료를 챙기고 마법서를 본 후,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나에 주문들을 새겨놓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부디 자신의 마법이 아나스타샤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엘돌란의 학교 구역

전투에 있어서 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아나스타샤들은 '황토 젤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신비의 지배자들의 학파 건물로 향했다.

이 의뢰는 엘돌란을 나누는 세 학파 중 하나인 신비의 지배자들이 직접 황실에 의뢰한 것이었다. 단순 토벌 의뢰를 모험가 길드나 용병 길드 같은 곳에 맡기는게 아니라 황실에 의뢰한 것을 보면, 아마 황궁의 높은 사람들과 연줄이 있어서겠지.

세 학파들의 연구소(Laboratory)가 있는 학교 구역의 교정으로 가기 위해선 안장 구역에 들어가 '샤줄의 문'을 통과해야 했는데, 평민 구역에서 안장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 통행료를 내야했다. 같은 도시 내에서 통행료를 받는다는게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어쨌든 인당 2cp의 통행료를 지불했다.

안장 구역 동쪽의 샤줄의 문은, 여러 마법 장치와 보호막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물론 보호막이 있다고 해서 문지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통행료를 받는 안장구역을 입장할 때보다 철통보안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돈을 낸다고 입장할 수 있는게 아닌, '볼 일'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학교 구역이라길래 단순히 부잣집 자제들의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왠지 관청 구역보다도 이곳이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 짐작됐다.

 

아나스타샤는 문지기들에게 지령서를 보여주며, 황명임을 알리고 문을 통과했다.


샤줄의 문을 통과하고, 북쪽으로 길게 나 있는 큰 길을 따라갔다. 학교 구역의 가장 높은 곳에서 웅장하게 자리한 건물이, 그들이 찾고 있던 건물임이 쉽게 짐작이 되었다.

높은 사람은 높은 곳에 산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이 도시에 참으로 어울리는 말 아닌가 싶다.


길을 따라 올라가며 학교 구역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 도시에 살지 않기 때문에 이번 임무만 아니라면, 엘돌란에 또 온다고 하더라도 학교 구역에는 다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 구역은 엘돌란의 마법 학파들의 마법사들이 제자를 받아 가르침을 주었던 곳이 커져서 생긴 구역이었다. 그만큼, 주거지가 밀집된 일반적인 도시의 지역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다수의 건물들이 교실과 기숙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학업 장소로서의 용도 뿐 아니라, 주점이나 여관, 상점들도 존재했고, 학생들이 휴식을 보낼만한 장소도 존재했다.

호라이즌의 제국 마법 아카데미 출신인 아도니스는 익숙한 풍경에 감회가 새로운 듯 했다.

"아도니스, 구경하고 싶으면 교정에 들렀다가 돌아갈 때 잠깐 둘러볼까요?"
"앗……!"

 

아도니스는 정말 구경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아나스타샤를 쳐다봤다.

 

"아니에요, 임무로도 바쁜데 시간을 허비할 수 없죠."

 

애써 관심 없는 척 했지만, 전부 숨길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그의 그런 모습이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곳이 굉장히 신기한걸요? 잠깐 구경해요~"
"……네! 배려해줘서 고마워요, 아나스타샤."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준다는게 기뻤다. 마치 데이트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물론 군식구가 딸려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코스모스야, 아나스타샤의 하녀이니 그렇다 치고, 클라인마저 따라오는 것은 솔직히 별로였다.


교정은 샤줄의 문보다 훨씬 강한 마법적 보호를 받고 있어, 외부인인 아나스타샤들끼리 함부로 출입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샤줄의 문에서 마법 전령을 통해 보고 받은 내부 사람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은 '신비의 지배자들'의 교수 중 하나로, 아나스타샤들을 석좌 교수인 샤리사 다크볼트에게로 안내했다.

 

신비의 지배자들의 연구실은 주로 하이엘프와 하프엘프로 구성 된 곳이었다. 그들은 전부 기하학적인 은색 룬이 자수로 들어간 푸른 로브를 입고 있었기에, 그 사이에서 아나스타샤들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샤리사 다크볼트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소속의 마법사 하나가 슬라임(Slime)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법사의 관리 미숙으로 그 실험에서 만들어진 황토 젤리 하나가 탈출해 버렸죠. 처음엔 금방 찾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희끼리 조용히 해결하려 했는데 못 찾겠더라고요. 도시 내에서도 봤다는 사람도 없고 문제도 없으니 내버려 두기로 하고, 이제 한 달 정도 됐나……. 어느 기점으로 엘돌란의 하수구가 막혀, 비가 오는 날이면 역류하고 쥐들이 하수구를 빠져나오더군요."

"하수구를 막는게 그 황토 젤리라는 거군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샤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요."

"어딨는지 알게 됐는데, 왜 직접 가시지 않으시고요? 학생들을 시켜도 될 것 같은데."

"우리 중에는 하수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뭔……. 하수구에 들어가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발견한다면 그 황토 젤리는 처치해도 괜찮아요. 다만, 연구 지속을 위해 일부를 이 시험관에 넣어주시면 좋겠네요."


아나스타샤는 유리 시험관을 받아들였다.

"그 황토 젤리가 진짜 '젤리'라도 되나요?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면 좋을텐데요."

아나스타샤가 알기에는 황토 젤리라는 몬스터는 없었다. 슬라임이야 대체로 특징이 비슷하긴 했지만,, 마법사들이 연구한 실험체인만큼 단순히 황토색의 점액체가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갖췄을 수도 있었으니 알아두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샤리사가 웃기 시작했다.

"슬라임을 본 적 없으신가 봐요? 황궁에서 왔다길래 기대했는데, 이거 괜찮으려나."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아나스타샤는 기분이 나빠졌다.

"슬라임이라면 알고 있죠. 전 단지 황토 젤리라길래, 연구한 실험이라는 것이 먹던 노란색 젤리에 발이라도 다는 실험이라도 됐던 건지 궁금했던 거에요."

아나스타샤의 빈정거림에 샤리사의 표정은 자신의 차가운 눈색처럼 굳었다. '하프'인 엘프에게 무시당한게 하이엘프의 자존심이라도 건드린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그 모습에, 그가 이 학파에 있는 수많은 하프엘프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해졌다.

"흥, 단순히 기존의 젤리형 슬라임이 가진 검은 색상을 보기 좋게 바꾼 거에요. 이름 그대로 황토색이고 다른 슬라임이랑 다를 건 없어요. 이제 볼 일은 끝났죠? 다음에 볼 때는 임무를 완수했을 때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나스타샤들은 샤리사에게 쫓겨나 듯이 밖으로 나왔다.


교정을 나온 아나스타샤들은 학교구역 양 끝에 밀집된 상점가를 둘러보았다.
아도니스는 샤리사에게 문전박대 받던 기억은 금세 잊고, 신이 나 제일 먼저 달려나갔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사온 건지 솜사탕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왔다.

"아나스타샤, 여기요!"
"고마워요. 냠."

아나스타샤는 솜사탕을 받아들어 한 입 물었다. 설탕의 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단 음식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처럼 신이 난 아도니스의 얼굴을 보면, 솜사탕도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가 아도니스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편해진 것처럼 아도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솜사탕을 베어물고, 자신을 향해 작게 눈웃음 짓는 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보다도 솜사탕이 훨씬 달게 느껴졌다.

 

아나스타샤는 솜사탕을 다 먹고, 형형색색의 로브를 파는 상점을 바라보았다. 마법학교의 구역이다 보니 로브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방어구 상점이 있는것 같았다.

옷장 모양을 모티브한 것 같은 상점은, 건물 모양도 모양이지만 안에 팔고 있는 로브의 색상들이 화려해서 작은 상점임에도 눈에 확 띄었다.


"저기 가볼까요? 마법사의 옷장……? 점액체 몬스터를 퇴치하는거면 방어구 좀 바꾸고 싶은데."


상점에 들어가자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여자가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찾으시는게 있으신가요?"
"비닐로 된 로브나 겉옷은 없나요?"

점액체류의 몬스터는 강한 산으로 되어 있어 살가죽을 녹이고 금속을 부식시킨다. 하지만 모든걸 녹이는 건 아닌지라, 비닐과 유리는 산에 대한 대항책으로 쓰였다. 샤리사 유리로 된 시험관을 준 이유였다.
애초에, 슬라임이 위험하기는 해도 뭐든지 녹이는 생물이었다면, 그 생명체가 지나는 땅들도 전부 녹아서 진작 지하에 처박혔을 것이다. 그런 생물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악귀가 아니라 슬라임들이 제일가는 재앙이었겠지.

"특이한 걸 찾으시네요~ 우비로 쓰시려면 방수 마법이 걸린 로브도 있는데……. 하지만! 놀랍게도 저희 가게엔 그런 특이한 로브도 잔뜩 있답니다! 짠!!"

주인은 상점의 안 쪽에서 로브가 걸린 의상 행거를 끌고 나왔다. 행거에는 비닐로 된 투명한 로브부터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다채로운 비닐 로브가 걸려있었다.

"이렇게까지는……"

마치 준비라도 해놓은 것마냥, 화려한 비닐 로브들의 향연에 당황스러웠다.

 

"우와……. 이건 별 무늬에요. 비닐에 굳이 이런 무늬를 새기다니, 마력 낭비………."

 

하는 말과는 다르게 흥미로워 하는 표정이었다.

 

"어머, 고객님도 로브에 마법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고 계시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아도니스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못들은 척, 로브를 구경했다.

 

'저 별 무늬랑 아도니스의 로브 무늬가 같은 취급 당했어……. 마력 낭비 문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디자인의 문제에 관심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평소엔 잘 반박하면서 왜 반박을 안하는 거에요, 아도니스.'

 

"뭐, 실용적인 기능이 아니더라도 마법이 쓰여진게 좋으니까… 저는 이 로브로 할게요."

 

아도니스는 다른 로브를 구경하는 척 하다가, 다시 직전의 별 무늬 로브를 들어올렸다.

 

아나스타샤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설마 이 로브 디자인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네, 괜찮지 않나요?"

"지금 입은 옷이랑 차이가 좀 심하지 않아요? 너무 화려한 것 같은데."

 

지금 아도니스의 로브는, 처음 만났을 때 입은 그 로브였다. 고급스러운 민무늬 흰 색 천에 화려한 금빛 무늬가 새겨졌던.

하지만 지금 들어올린 비닐 로브는 쨍한 청보라빛 색에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형광 핑크 별이 잔뜩 새겨진 것이었다.

 

"그런가요…. 지금 입은 거랑 느낌이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음, 아도니스 본인이 좋다면 좋은 거겠죠."

 

'마법사들의 미적 감각은 다… 저래……?'

 

아나스타샤가 아도니스의 옷 고르는 센스를 보고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코스모스가 대신 의문을 풀어줬다.

 

"아마 아도니스 님이 말씀하신 비슷한 느낌은 로브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말하는 것일겁니다. 마법사들은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현실을 인식하는 눈이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고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건 외관의 미감을 따진다면, 마법사들에겐 그것이 잘 보이지 않고 자연의 마나 흐름, 물건에 짜여진 마력의 모양 같은 것이 대신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럼 아도니스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네? 겉모습이 안 보인다면 대체 마법사들은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는거야?"

"겉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 건 아닐겁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도 길을 걸을 때 개미가 몇마리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쪽에만 신경을 집중하면 알 수 있겠지만요. 설사 외관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사람과 물건마다 그 흐름과 모양이 전부 달라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도니스 님 기준에서 저 별 무늬 로브는 입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마력이 정교하게 짜여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말씀을 하신걸겁니다."

 

코스모스의 자세한 설명에,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가 자신의 영혼만큼은 알아볼 수 있다고 했던게 떠올랐다.

 

'아도니스에게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걸까.'

 

"근데 코스모스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거야? 코스모스도 마법의 조예가 있나?"

"마법은 아니지만, 저도 신성을 다루지 않습니까. 신성 사용자도 마법사들과 비슷한 감각으로 세상이 보입니다."

"그렇구나……."

 

아나스타샤는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이번 일이 아니라면 몰랐을 지식이었다.

 

'아직도 용 제국엔 내가 모르는 것이 많구나.'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의 취향에 대해 어느정도 의문점이 풀리고, 자신도 로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도니스의 로브 옆에 걸려있던 반투명한 연두색 로브를 집었다. 로브의 형태는 모자와 단추가 달린 사파리 코트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거기다 생각 외로 두툼하고 질긴, 폴리염화비닐(PVC) 비닐 재질이었다.
클라인과 코스모스 역시 옆에서 비닐로브를 집어들었다. 그들은 각각 무난한 검은색과 흰색을 들었다.

"가격은 각각 1gp입니다~"

아나스타샤와 아도니스는 돈을 지불하자마자 입어보았다.

"귀여워요, 아나스타샤."
"생각한 것보단 맘에 드네요. 다들 안 입고 가요?"

코스모스는 자신의 로브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아무래도 가서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클라인도 코스모스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300x250

이 가게, 저 가게 구경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금세 학교 구역의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아나스타샤는 너무 아쉬웠다. 흔치 않은 조합인, 전직 궁정마법사와 제국 기사단 사단장, 황궁 하녀가 함께하는 이 휴식은, 정말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계속 함께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샤줄의 문으로 향하려 할 때, 코스모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저기 있는 골동품 가게에 들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응? 당연히 괜찮지. 근데 골동품점엔 왜?"
"지금 가진 제 방패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바꾸고 싶습니다."

코스모스가 등 뒤에 메고 있는 방패는 철 방패였다. 점액체와 싸우게 된다면 부식되거나 녹을 것이다.

 

"응, 바꾸는게 좋겠네."


아나스타샤들은 골동품점인 유물 사냥꾼에 들어갔다. 출입문의 바로 왼쪽에 있는 카운터에는, 머리 위가 벗겨진 늙은 마법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아나스타샤들이 들어오자, 자신의 회색이 섞여있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반갑게 맞이했다.

"아, 손님이신가요? 저는 유물 사냥꾼을 운영하는 가라도스입니다."

코스모스는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방패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우선 이 방패를 팔고, 다른 방패를 보고 싶습니다.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코스모스, 흥정, 기능 판정 : d20(14)+매력(1)+레벨(1)+모험가(1) vs 보통(15) / 성공

 

가라도스는 카운터 뒤에서 모노클을 꺼내더니 코스모스의 방패를 유심히 보았다.

"뭔가 특별한 점이 더 없나 봤지만, 그냥 흔한 철 방패군요. 이런거면 돈을 거의 쳐드릴 수 없겠는데요. 한 10cp 어떠십니까?"
"액시스제입니다. 액시스의 방패는 제국 최고의 품질이죠. 타 지역에서는 액시스의 수입무구는 비싸게 팔텐데요? 10sp에 사셔서 2gp에만 팔아도 물건 볼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살 겁니다."

코스모스는 자연스럽게 1gp가 아닌 10sp로 단위를 바꿔말해 가격을 많이 올리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동시에 판매 예상금액은 gp를 이용해 가격이 높아보이도록 혼동시키는 기술을 사용했다. 예사롭지 않은 흥정방법이였다.

"하지만…… 여긴 학교구역이에요."

코스모스가 아무리 흥정 실력이 뛰어난들, 가라도스는 골동품을 계속 팔아왔다. 그는 단순한 잔꾀가 아닌 제대로 된 이유로 반박했다.

"학교 구역에서 중장갑이나 철 방패 같은걸 쓰는 마법사는 드뭅니다. 제가 이익을 보기전에 이 방패는 애초부터 잘 팔리지 않을거에요."
"황궁의 병사가 쓰던 물건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가라도스는 무슨 말인가 싶어 코스모스를 쳐다봤다.

"저는 황궁의 하녀입니다. 기사가 아니다보니 보급 무기를 받을수도, 받았어도 팔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기사나 병사들과 안면은 있겠죠. 그들에게 자신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조언받아 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겁니다."

코스모스의 말은 청산유수였다.

"황궁의 사람들이 아무 무기나 쓰겠습니까? 필시 좋은 품질의 무구겠지요. 무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가치를 알아보고 반드시 살 겁니다. 그게 아니여도, 황궁의 사람이 쓴다는 이름이 있다면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마법사라고 해도 말입니다. 황궁에 관심 가지는 자들은 많은 건 가라도스 씨도 알지 않습니까."

가라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5sp로 하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들은 평민구역의 하수도 입구로 향했다.

그러는동안 코스모스는 유물 사냥꾼에서 산 나무방패를 앞치마로 닦았다. 일회용으로 쓰기 위해 산거라, 낡기도 했거니와 얼룩도 군데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도스라는 자는 마법사이지 무구를 관리하는 자가 아니였을테니, 괜찮은 무구 관리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이 방패를 코스모스에게 판매할 때는, 가라도스 본인도 재고처리를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2gp라는 방패치곤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흥정을 정말 잘하네요."
"모험을 하며 여러 장사꾼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분 정도면 그 사기꾼들과 비교하기 실례입니다만."

아나스타샤는 언젠가 꼭 코스모스에게 흥정의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얻을게 없는 싸움

하수구의 입구에 도착해 원형의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자, 길이 끊기고 양 옆으로 탁 트인 터널같은 공간이 보였다. 끊긴 길 아래를 내려다보니, 터널의 진행 방향으로 나 있는 길 하나가 사다리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수구 자체의 어두컴컴한 분위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수질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저기에 빠지고 싶진 않았다. 하수구의 물은 결국, 빗물을 받아 내리는 것 외에도 가정 폐수도 섞여 있을테니까.

 

아나스타샤들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왼쪽으로 먼저 향할지 오른쪽으로 먼저 향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왼쪽 길 끝에서 무수한 발톱 소리가 들려왔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을 보아 쥐로 예상되었지만, 문제는 한 두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질색했다.

 

"으……. 쥐 떼………. 그냥 피해 갈까요? 놔두면 하수구 밖으로 나가겠죠. 도시 안에서 쥐를 보는 것도 찝찝하긴 한데, 그래도."

 

하지만 반대편에서도 무언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소리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둔탁한 짐승의 발소리였다. 왠지 그 짐승은 자신들을 발견한다면 바로 달려들 것만 같았다.

 

"……피할 수 없겠군요."

아나스타샤들은 정체모를 짐승에 대비해 무기를 준비했다.



괴수 쥐
큰 놈들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목을 물어뜯을 수 있습니다.
1레벨 조무래기 [짐승]
행동 순서 : +2
더러운 이빨 +5 vs 장갑 : 4지속피해
흉포 : 괴수 쥐의 공격은 빗나갔을 때, 자기 레벨만큼의 피해를 줍니다. 비틀거릴 때는 빗나가는 공격이 자기 레벨의 2배만큼의 피해를 줍니다.
떼거리 공격 : 공격 대상마다 접전중인 다른 괴수 쥐 하나마다, 공격에 +1 보너스를 받습니다.
체력 6 / 장갑 15 / 신방 15 / 정방 10 

쥐 떼

작고 날카로운 발톱 수백 개가 바닥에 부딪히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2레벨 방해자 [짐승]
행동순서 : +4
접.덮쳐오는 이빨들 +7 vs 신방 (단거리의 적 1d3명) : 3피해, 공격 후 쥐 떼가 대상 중 하나와 접전에 들어갑니다.
순수 짝수 명중_대상은 다음 자기 차례가 끝날 때까지 저해 됩니다. 대상이 쥐 떼를 공격하거나 쥐 떼가 체력이 0으로 떨어지면 저해 효과도 끝납니다.
기회 없음 : 쥐 떼는 기회 공격을 하지 못하고, 적들도 쥐 떼에게 기회 공격을 하지 못합니다.
집단 저항 :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쥐는 지난번에 자기들이 공격하지 않은 적이 주는 피해에 대해 저항 +18을 얻습니다.
체력 39 / 장갑 18 / 신방 16 / 정방 12


배치

||    떼2   |
||괴2 괴3 |
||   괴1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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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떼1   |




행동순서 판정 : 쥐떼2(20), 괴수쥐3(18), 괴수쥐1(17), 쥐떼1(13), 클라인(12), 아나스타샤(9), 코스모스(6), 괴수쥐2(6), 아도니스(4)


쥐떼2, 쥐들의 가장 앞으로 이동.
괴수쥐3, 코스모스 앞으로 이동,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1피해.
괴수쥐1, 클라인 앞으로 이동, 클라인 공격, 4지속피해.
쥐떼1, 아나스타샤 앞으로 이동,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클라인, 괴수쥐1 근접 공격, 13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지속피해 극복판정 보통, 실패.
괴수쥐1, 전투불능.
괴수쥐3, 전투불능.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 공격,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 후광 사용, 쥐떼2에게 접근, 빗나감, 0피해.
괴수쥐2,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 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쥐떼1에게 냉기광선, 4냉기피해.

고조주사위1
쥐떼2, 코스모스 접근,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코스모스 저해됨.
쥐떼1,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아도니스도 3피해.
클라인, 4지속피해, 쥐떼2에게 강타 선언, 빗나감, 2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만회의 일격 성공, 7피해, 극복 판정 성공.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 공격,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 극복판정 성공, 쥐떼2 응징 선언, 쥐떼2 근접공격, 빗나감, 4피해.
괴수쥐2, 클라인 공격, 4지속피해.
아도니스, 쥐떼1 산성화살, 빗나감, 5부식피해.

고조주사위2
쥐떼2,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쥐떼1, 아나스타샤 공격, 아도니스도 피해, 3피해, 아나스타샤 저해.
클라인, 4지속피해, 괴수쥐2 근접공격, 9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극복판정 성공.
괴수쥐2, 전투불능.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공격,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 쥐떼2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에게 안수치료, 13회복.
아도니스, 쥐떼1에게 색채분사, 12정신피해.

고조주사위3
쥐떼2,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쥐떼1,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클라인, 쥐떼2 근접공격, 치명타 9피해.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공격, 5피해.
코스모스, 쥐떼2 근접공격, 14피해.
아도니스, 쥐떼1 냉기광선, 12냉기피해.
쥐떼1, 전투불능.

고조주사위4
쥐떼2, 코스모스 공격, 클라인과 아도니스도 피해, 3피해, 코스모스 저해.
클라인, 쥐떼2 근접공격, 빗나감, 묵직한일격, 5피해.
쥐떼2, 전투불능.

 



오른편에서 나타난 짐승은 쥐였다. 대신 어린아이의 크기만한 괴수 쥐였지만 말이다.

 

"저게 쥐라고? 대체……"

 

괴수 쥐에 한 눈 팔기 무섭게 왼편에서 달려오던 쥐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그들의 온 몸을 물어뜯었다.

아나스타샤는 기겁하며, 달라붙은 쥐를 칼로 베며 외쳤다.

 

"쥐가 사람을 봤으면 도망이나 갈 것이지, 얘넨 뭔데 이렇게 흉포해요?!"

아도니스가 쥐들을 떼어내 하수구의 물 속으로 던지며 말했다.

 

"보통 쥐가 아니에요! 이 쥐들, 마력을 품고 있어요!"

"마법 도시의 쥐는 쥐 마저도 마법의 재능을 품고 있나 보죠?!"

 

쥐들과의 싸움은 예상 외로 상당한 난전이였다. 쥐들은 작고 재빨라서 검을 휘두르는 족족 빗나갔으며, 지능이 높은지 빠르게 급소를 파악해 파고드는 통에 무기를 든 손의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공격성이 크고 민첩하긴 했지만, 솔직히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괴수 쥐의 합공과 처음에 쥐라고 방심했던 점이 실책이긴 했다. 아나스타샤들은 겨우겨우 그 떼거리 속을 빠져나와서야 처치할 수 있었다. 클라인과 코스모스의 공이 컸다.


아나스타샤는 쥐들과의 접촉으로, 아도니스는 익숙치 않은 근접전으로 인해 목표와 싸우기 전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그 두 명을 위해 하수도에 앉아 잠시나마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더러운 물이 옆에 흐르는 하수구 안이긴 했지만.

 

"다들 하수구에서 쉬고 싶지 않을텐데,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아나스타샤."

 

아도니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쥐들이 아직도 하수구에 남아 있었네요. 전부 지상으로 빠져나온 건 아니였나 봐요."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였으면 좋겠네요. 또 나오더라도 이번엔 방심하지 말아야지……. 그냥 화살 몇 방이면 됐는데."

클라인은 쉬면서도 하수구의 양쪽 방향을 둘러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쥐들이 달려든 건, 저희가 하수도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예민해져서 그런 걸 겁니다. 그런데 왼쪽 방향에서 쥐떼가 더 적게 나왔죠."
"덩치가 어린 아이 크기 정도 됐지만요."
"그래서, 아무래도 왼쪽 방향에 쥐가 적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괴수 쥐가 나온 이유라던가."
"흠……. 쥐를 괴수로 만든 무언가라니, 상상하기 싫은데… 그것도 아니면 황토 젤리가 오른편에 있어서 쥐들을 먹어치웠을 수도……. 그럼 오른쪽 방향으로 갈까요?"


아나스타샤들은 휴식을 마치고, 쥐가 적게 나왔던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기로 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길을 걷는 내내 쥐 같은 건 더 나타나지 않았다. 하수구에는 웅덩이에 물 떨어지는 소리와 아나스타샤들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퍼졌다.
……문제는 막다른 벽에 다다를 때까지도 아무것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쥐능 커녕, 목표였던 황토 젤리도, 박쥐도, 먼지하나 없었다.

"아무것도 없네. 잘못 생각 했나봐요. 반대편으로 향하죠."

발걸음을 돌리자 무언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 육감, 기능 판정 : d20(18)+통찰(0)+레벨(1) vs 어려움(20) / 실패
코스모스, 육감, 기능 판정 : d20(11)+통찰(2)+레벨(1)+모험가(1) vs 어려움(20) / 실패
클라인, 육감, 기능 판정 : d20(19)+통찰(0)+레벨(1)+영웅(2) vs 어려움(20) / 성공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던 클라인은 본능적인 감이 무척 뛰어났다.
클라인은 불길한 예감에, 빠르게 뒤를 돌아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의 예감이 맞았다. 막다른 곳 구석에 고여있던 흙탕물이 흐물흐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형체를 잡으며 슬라임의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누가 봐도 저것이 황토 젤리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 탁한 노란색이었다.

 

클라인은 그것이 형태를 완전히 갖추기 전에 선공하려 달려들었다.



황토 젤리
"방금 저 웅덩이 움직이는 거 너도 봤어?"
대형 3레벨 강적 [점액]
행동순서 : +2
접.산에젖은 위족 +8 vs 신방 (단거리의 서로 다른 적들에게 최대 1d4회까지) : 6산피해
분열 : 황토 젤리는 처음으로 1회의 공격에 20이상의 피해를 입었을 때 보통 크기의 젤리 둘로 나뉩니다. 각각의 체력은 분열 당시 본체의 체력을 둘로 나눈 것보다 2d6 많습니다. 새 황토 젤리들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칩니다. 한 번 나뉜 젤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습니다. (살아남으면, 도로 합쳐질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체력 90 / 장갑 18 / 신방 17 / 정방 16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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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순서 판정 : 클라인, 아나스타샤(19), 코스모스(17), 아도니스(9), 황토젤리


클라인,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만회의 일격 7피해.
아나스타샤, 활시위를 겨눔, 황토젤리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코스모스, 황토젤리 신앙의 투창,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아나스타샤에게 잔상 주문.
황토젤리, 클라인 공격, 코스모스와 아도니스도 피해, 6부식피해.

 

황토 젤리는 클라인의 공격을 받고 약간 움츠라들었다. 하지만 황토 젤리의 체액때문에 검날이 약간 상했다. 클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활로 원호할게요."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나무 화살이 무기 손상 없이 황토 젤리에게 상처 입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뒤로 물러나 활 시위를 당겼다. 몇 발의 화살이 황토 젤리에게 박혔지만, 그것은 그저 화살을 먹이라도 되는마냥 집어 삼킬 뿐 큰 데미지는 없었다.

코스모스도 투척 무기를 준비하려다 그 모습을 보고 모닝스타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크기가 커서 화살 같이 작은 무기의 충격은 젤리형 몸으로 완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쳇……. 그럼 단검을 빼들어야 겠네요."

 

무기를 교체하는 와중에 갑자기 몸에 신비한 빛이 감돌았다.

 

"아나스타샤, 잔상 마법을 걸었어요! 이제 저 황토 젤리에게 아나스타샤가 여러 명으로 보여서 제대로 공격을 명중 못 시킬 거에요!"

 

"그, 그런 마법은 저보다는 클라인이나 코스모스에게 쓰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마법을 받으면 앞으로 돌진해야 할 것 같잖아…!!'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고 황토 젤리에게 달려들었다.


고조주사위1
클라인, 황토젤리 근접공격, 완전히 빗나감 1피해, 공격하며 3피해 입음, 빈틈만들기 성공.
아나스타샤, 황토젤리 원거리 공격, 5피해.
코스모스, 황토젤리 접근,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황토젤리 냉기광선, 12냉기피해.

황토젤리,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함, 극복판정 쉬움 성공.

 

황토 젤리는 클라인과 코스모스, 아나스타샤이 공격에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사이즈도 처음보다 많이 작아졌고 슬라임들이 가진 '핵'에도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타로 클라인이, 산으로 인해 이젠 완전히 새까매진 검으로 황토 젤리를 한 번 더 가를 때였다.

 

황토 젤리가 둘이 되었다.

 

"괜찮아! 다들 방심하지 마! 슬라임들은 위기에 처하면 마구 분열해대니까. 분열한다고 더 강해지지는 않아! 더 약해진 슬라임이 두 마리가 되는 것 뿐이지!"

 

아도니스의 말처럼 황토 젤리의 크기는 1/2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보통 남은 한 녀석은 전투에서 이탈하려고 하더라지."

 

아도니스는 도망치는 황토젤리2—아나스타샤는 속으로, 자신과 대치중인 황토젤리를 황토 젤리1, 도망치려는 황토 젤리를 황토 젤리2라고 이름붙이고 있었다—를 냉기 광선으로 얼리며 말했다.

꽁꽁 얼어 노란 얼음 덩어리가 된 황토 젤리는, 코스모스가 방패날로 내리치자 핵과 같이 산산조각나서 사라져 버렸다.


고조주사위2
클라인, 황토젤리 근접공격, 12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아나스타샤, 황토젤리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코스모스, 황토젤리 응징 선언함,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5피해.
아도니스, 황토젤리 색채분사, 빗나감.
황토젤리,
코스모스 공격, 아도니스도 피해, 6부식피해.


고조주사위3
클라인, 황토젤리를 강타한다고 외침,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2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아나스타샤, 황토젤리 원거리공격, 치명타 13피해.
코스모스, 부식피해 극복판정 실패, 6부식피해, 자신에게 안수치료, 3회복, 황토젤리 근접공격, 치명타 19피해.
아도니스, 뒤로 한걸음 물러남, 황토젤리 산성화살, 12부식피해.
황토젤리, 전투불능.

 

남은 황토 젤리는 클라인이 일격으로 죽어, 평범한 산성 점액체가 되었다. 황토 젤리가 작아져, 긴 검이 작아진 황토 젤리의 핵까지 바로 닿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리품 : 황토 젤리의 점액



아나스타샤는 가방에서 샤리사에게 받은 유리 시험관을 꺼내, 이젠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 황토 젤리의 점액 일부를 옮겨 담았다. 강한 산성이기에 피부에 닿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전리품도 챙기고 전투도 완전히 끝났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장소도 장소지만 아나스타샤들의 꼴을 보면 그럴만 했다.
클라인의 양손 검은 부식되다 못해 완전히 녹아내려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비닐 로브로 보호 받지 못한 건틀렛의 일부도 녹슬었다. 코스모스의 방패에도 점액질이 덕지덕지했으며, 모닝스타도 머리부분의 흔적을 잃었다.


그들은 지상으로 올라가며 엉망진창인 비닐 로브를 벗어던졌다.


"황토 젤리의 점액이 맞네요. 이걸로 경비 슬라임의 연구를 계속 할 수…… 아, 보수는 여기서 바로 드릴게요."

'방금 슬라임을 경비로 사용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나스타샤는 엘돌란의 미래를 걱정하며 보수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장비나 새로 맞춰야 겠네요. 근데 지상의 쥐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황토 젤리 때문에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온 거잖아요."

샤리사는 유리 시험관과 보고서를 번갈아 보다가,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아직도 안갔냐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런 부분까지 신경써야 되나요? 뭐, 도시일은 경비대인 은방패대가 알아서 처리하겠죠."
"…………."

 

엘돌란의 거리 위생 상태가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샤리사의 무책임한 말에 더 이상의 할 말을 잃은 채, 그냥 교정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령서에는 '황토 젤리'를 처리해 거리 미화에 힘쓰랬지, 쥐를 잡아서 거리 미화에 힘쓰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쥐가 번식하면 나중엔 귀족들도 피해 볼텐데 말이지. 하지만 본인들이 거리 미화에 관심없다는데.'

 

잘 관리 된 거리에서만 지낸 샤리사가 쥐들의 생태에 알 턱이 없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번식력이 뛰어난지, 얼마나 병균을 옮기고 다니는지.

 

만약 용 황제의 후계자가 된다면 이 도시도 아나스타샤가 돌봐야 할 도시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엘돌란의 사람들을 내버려 두는게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금은 일개 후보자였다. 이 이상의 간섭은 과한 간섭일 것이다. 집집마다 들려서 쥐덫을 놓으라고 말하고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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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4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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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4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오는 행복

- 히아신스

 


 

청갈기 용병단 잠입

청갈기 용병단의 병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주둔지 내 용병단들을 제 멋대로 가지고 놀고 이간질시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분위기였다.


사실 정말로 아무런 관련도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용병단의 불행을 연료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 좋은 행동이란 것도 아니었지만.

아나스타샤들은 잠입을 위해, 병영 근처에 경비를 서고 있는 청갈기 용병단 단원들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겼다.
병영의 후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안심한 아나스타샤는 들어가려 발을 옮겼다.

아나스타샤, 잠입, 기능 판정 : d20(10)+민첩(2)+레벨(1)+뒷전(4)+피요르(2) vs 보통(15) / 성공
코스모스, 잡입, 기능 판정 : d20(18)+민첩(-1)+레벨(1)+모험가(1)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 잡입, 기능 판정 : d20(20)+민첩(-1)+레벨(1) vs 보통(15) / 성공

 

아나스타샤, 클라인, 코스모스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아도니스, 잡입, 기능 판정 : d20(13)+민첩(0)+레벨(1) vs 보통(15) / 실패

아도니스 역시 조심스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실수로 로브를 밟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용병 단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거기 누구야!"


"칫."

아도니스는 혀를 차곤 매료 주문을 걸었다.

 


 

청갈기 용병단 견습 마법사
체력 26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아도니스, 매료, 공격 판정 : d20(11)+지능(5)+레벨(1) vs 정방(16) / 성공

 

그 남자는 성공적으로 주문에 걸렸다.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인가! 내가 부대 안을 소개시켜줄까?"

아무런 의심 없이 아도니스를 받아들일뿐더러, 상당히 친절해졌다. 매료 주문의 효과일 것이다. 아도니스는 우리들을 동료라고 소개했다.

 

매료당한 용병 단원을 따라 병영 내부로 들어왔다.

그의 뒤를 따르니, 다른 단원들도 흘깃 쳐다만 보기만 하고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누구인지 묻기 위해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럴 땐 매료당한 남자가 견학하는 신입이라며 대신 설명해 주었다.

아나스타샤는 너무 쉬운 성공에 맥없이 한숨을 쉬었다.

"잡입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매료 주문을 사용했으면 됐었던 거였네……. 마법이 이렇게 편리할 줄이야."

 

청갈기 병영의 방은 총 7개로, 아나스타샤들은 입구 쪽 방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들어간 방은 단원들의 침실이었다.

청갈기 용병단, 매료, 극복 판정 : d20(1) vs 보통(11) / 실패

 

아나스타샤들은 그들이 지낼 방을 둘러본다는 명분으로 방을 탐색했다.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침대 여러 개와 중앙에 테이블이 있는 구조였다. 테이블 위에는 케스 시합 표가 눈에 띄었다.


아나스타샤, 케스표 훔치기, 기능 판정 : d20(5)+민첩(2)+레벨(1)+뒷전(4)+피요르(2) vs 보통(15) / 실패


"응? 뭐 하는 거야?"


"아아…. 케스 시합 표가 있길래, 이게 뭔가 궁금해서요."


"아~ 우리 용병단의 돈벌이 수단 중 하나지. 곧 익숙해지면 그게 어디에 쓰는 표인지 알게 될 거야. 그냥 케스 시합이 보고 싶은 거라면 나중에 단장님께 말해 봐. 한 장 주실 거야."


"알겠어요."

아나스타샤는 표를 슬쩍하려다 실패했다. 다행히도 우리를 안내하던 남자는 아도니스의 매료에 걸려 별다른 의심 없이 친절히 설명해줬다.

'괜찮아. 표라면 암표상들을 처리하고 얻은게 있으니까. 허튼짓을 해서 의심을 사지 말자.'

 

이번엔 맞은편에 있는 침실에 들어갔다.

청갈기 용병단, 매료, 극복 판정 : d20(2) vs 보통(11) / 실패

이번 방에는 단원 두 명이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외에는, 이전 방과 다름없는 삭막한 생김새로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옆 방으로 향했다. 그 방도 침실이었다. 단원 한 명이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청갈기 용병단 매료 극복 판정 : d20(15)vs보통(11) 성공

그때, 매료 마법에 당했었던 남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어… 어……?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마법이 풀린 것 같았다.

"너희들…… 아! 너희들 신입이 아니라 침입자였었지!"

저 남자의 입을 막기 위해 쓰러트려야 할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들은 각자의 무기를 쥐었다.

 



청갈기 용병단 견습 마법사
용병단에 입단했지만 아직 많이 미숙합니다.
보통 1레벨 병사 [인간형]
행동순서 : +3
미약한 마력의 지팡이 +5 vs 장갑 : 4 피해
순수짝수 명중 또는 빗나감 _ 졸개가 이전투에서 가하는 다음공격은 +6 피해를 줍니다.
체력 26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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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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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24),아도니스(21),코스모스(12),적(9),클라인(2)

아나스타샤, 적에게 단검 하나를 던져 원거리 공격, 5피해.
아도니스, 적에게 냉기광선, 15피해.
코스모스, 적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적, 아나스타샤에게 접근, 아나스타샤 공격, 4피해.
클라인, 적에게 접근, 적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만회의 일격, 5피해
적, 전투불능


전리품 : 쾌검 표식이 찍힌 단검, 아나스타샤의 단검



아나스타샤가 먼저 남자에게 단검을 던졌다. 이어서 아도니스의 냉기 광선으로 치명타를 입히고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꽁꽁 얼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소리 없이 처리한 덕에, 방 안에서 자고 있던 단원도 깨어나지 않았다.
클라인은 기절한 그를 방 안 침대로 끌고 가 뉘였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소지품도 뒤져 보죠."

 

기절한 남자의 무기 주머니에는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찍힌 단검이 있었다.

"이 단검은………."


"그냥 얘네가 범인인데요?"


"분명 병영에 더 있을 거예요. 증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왕 들어온 거 계속 찾아보죠."

아나스타샤들은 이 이상,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남은 방은 조심히 수색하기로 했다.

 

곧바로 맞은편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증거가 될만한 물건들도 없었다.

 

빠르게 나와, 옆 방으로 들어갔다.

 

잠입 발각, 극복 판정 : d20(17) vs 보통(11) / 성공

그 방에도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찾을 수 없었다.


"휴……. 계속 침실, 침실………. 용병단의 병영이 아니라 순 여인숙이구만."

 

또 방을 나와 맞은편 방의 손잡이를 돌렸다. 이 방이, 복도 끝의 제일 큰 문을 가진 방 이외에 남은 마지막 방이었다.

 

하지만 문이 잠긴 건지 덜컥거리기만 할 뿐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문 손잡이에 열쇠 구멍이 있었다.


아도니스가 다 해결 방법이 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제가 해제 마법을 쓸까요?"


"그런 마법이 있어요?"


"네! 마나를 점토 같은 재질로 변화시켜서 이 열쇠 구멍 안에 흘려보낸 다음, 그 구멍에 맞게 조물조물해서 열쇠 모양을 만드는 거죠."

자신 있게 원리를 설명하고는 문에 해제 소마법을 걸었다.


아도니스, 소마법, 기능 판정 : d20(16)+지능(5)+레벨(1)+수석(3) vs 어려움(20) / 성공

큰 소리로 달칵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문이 쉽게 열렸다.

"와, 진짜 그냥 열리네! 이거 완전 위험한 능력인데요!"

내뱉은 말과는 달리, 아나스타샤는 활짝 웃고 있었다.

 

'도둑질도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왜 마법사 도둑은 없지? ……아, 애초에 마법을 배우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데, 돈이 많은 사람이 굳이 도둑질할 필요가 없지. 허허.'

 

……이런 상상이 아나스타샤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아도니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 활짝 웃는 모습에 수줍게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잠입 발각, 극복 판정 : d20(18) vs 보통(11) / 성공

잠긴 문 너머는, 무척 캄캄했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무로 된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고 여러 번 옮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상자의 내용물은 단순한 예비용 무기와 갑옷, 로브, 건식량 등 그런 것들이었다.

"그냥 창고였던 건가……."

아나스타샤는 포기 않고 다른 증거를 찾으려 상자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던 중, 상자 하나에서 익숙한 갑옷 하나를 발견했다.

"이 갑옷, 쾌검 용병단 갑옷과 비슷하지 않아요?"

청갈기 용병단의 유니폼도 쾌검 용병단과 같은 푸른 계열의 천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옷은 바깥의 단원들과 입고 있는 것과 디자인이 달랐다.

후드 없이 세워진 목깃, 판금으로 되어 은색으로 빛나는 어깨 갑옷과 흰 실로 수놓아진 소매의 아르누보 자수. 마법사들이 대부분이라는 청갈기 용병단이 이런 무거운 경갑 ─ 마법사들에게는 소량의 금속만 덧대어진 경갑이나 체인 메일, 미늘 갑옷의 경우에도 무겁다고 여기는 경우가 다수였다 ─ 을 입을 리 없었다.

……사실 결정적으로, 소매 끝에 달린 은색의 커프스(Cuff links)에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이걸 입고 붉은 흙 보병대를 공격한 거겠군요. 그쪽은 당연히 쾌검 용병단의 부하일 거라 생각해서 시비에 걸려든 것일테고 말입니다."

 

"이 갑옷도 한 벌 챙겨 놓는게 좋겠어요."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가방에 갑옷을 말아 넣었다. 갑옷의 크기 덕분인지 가방이 상당히 부풀어 올랐다.

 

챙길만한 것을 전부 챙긴 뒤에 창고에서 나와 마지막 문 앞에 섰다.

"이제 이 방만 남았네요. 들어갈까요?"

 

청갈기가 두 용병단을 이간질한 범인이며, 그들의 싸움으로 이득을 보았다는 증거는 전부 얻었다. 그래서 조사를 더 할지 끝낼지에 대한 여부는, 같이 잠입해준 이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네. 아주 끝장을 보죠. 솔직히 그 암표 좀 팔아서 뭘 한다고 갑옷 제작에, 무기 위조에, 살인까지……. 수익이야 낼만큼 내겠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할만한 거냐는 거죠. 분명 엄청 큰 걸 숨기고 있을 거예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나스타샤."

 

웬일로 아도니스와 클라인은 의견이 맞았다. 코스모스도 별 불만 없어 보였다.

 

"그럼 조사를 계속하죠."


"제일 큰 방이니, 안에 사람들이 모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는게 좋겠습니다."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열었다.

잠입 발각, 극복 판정 : d20(6) vs 보통(11) / 실패

문을 살짝 열자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으로 보이는 화려한 로브를 입은 사람과 3명의 단원이 보였다.

그러다 단장으로 보이는 자와 아나스타샤의 눈이 마주쳐 버렸다. 바로 정면에 떡하니 서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던 아나스타샤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내버렸다. 덕분에 다른 단원들도 아나스타샤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크게 얼굴을 찡그리며 의자 옆에 세워둔 지팡이를 들었다.

"누구냐!!"

 



청갈기 용병단 단장
용병단을 이끌어가는 단장이지만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2배위력 1레벨 리더 [인간형]
행동순서 : +3
원.기력의 지팡이 +6 vs 장갑 : 10 피해, 단거리의 리더가 아닌 인간들은 다음번 명중하는 공격으로 +3피해를 더 줍니다.
순수짝수 빗나감 _ +4 피해
체력 52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청갈기 용병단 신입 마법사
용병단에 막 입단했습니다.
조무래기 1레벨 [인간형]
행동순서 : +2
낡은 지팡이 +5 vs 장갑 : 3 피해
날랜몸 : 이들은 물러서기 판정에 +4를 받습니다.
체력 7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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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      |
|    신1 신2    |
|      신3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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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20),아도니스(18),클라인(16),신입2(15),신입1(14),신입3(8),코스모스(5),단장(5)

아나스타샤, 아도니스 쪽으로 물러섬, 단장에게 장궁으로 원거리 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단장에게 산성화살, 빗나감, 5지속 부식피해.

클라인, 신입3에게 접근, 신입3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신입2,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에게 공격, 빗나감.
신입1,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에게 공격, 3피해.
신입3, 클라인에게 공격, 3피해.
코스모스, 클라인 옆으로 이동, 신입2에게 응징 선언, 신입2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6추가피해.
신입2, 전투불능.
단장, 코스모스에게 원거리공격, 10피해.

 

아나스타샤는 발각되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애초에 아나스타샤의 주특기는 활이었다. 지난번 암표상과의 전투에서는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근접전을 펼쳤지만, 지금은 달랐다. 꽤 거리가 됐기에, 클라인과 코스모스가 적들에게 달려드는 사이, 활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아도니스 역시 아나스타샤와 같이 클라인과 코스모스를 엄호했다.

 

적들은, 검과 모닝스타로 공격해오는 이들을 막으랴, 화살비와 마법으로 된 산성비를 막으랴, 정신이 없었다.

 

결국 단원 중 한 명이 쓰러졌다.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단장에게 원거리공격, 9피해.
아도니스, 앞으로 약간 전진, 단장에게 냉기광선, 15냉기피해.
클라인, 신입1에게 공격, 빈틈만들어짐, 11피해, 신입3에게 이어베기, 6피해.
신입1, 전투불능.
신입3, 전투불능.
코스모스, 단장에게 신앙의 투창, 5신성피해.
단장,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10피해.

 

한 명이 쓰러지자, 적들은 작전을 바꿨다. 누가 자신을 공격하든 말든, 한 명만 집중해서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 대상은 클라인이었다. 아무리 클라인이 강하고 저들이 마법을 쓰는 시늉만 한다고 한 들, 혼자서 셋을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클라인은 그들의 공격을 버텨내는게 고작이었다.

 

"어이, 너 몸 하나는 튼튼하잖아. 계속 버텨보라고!"

 

아도니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클라인이 쓰러지기 전에 적들을 쓸어버릴 큰 마법을 시전 하기 시작했다.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단장에게 원거리공격, 6피해.
아도니스, 단장에게 냉기광선, 치명타 30피해.
단장, 전투불능.

 

커다란 냉기 광선이 방 안을 덮쳤다.

 

전리품 : 추천장

 


 

적들은 전부 얼어버렸다.

하지만 제일 앞에서 적들의 공격을 받아냈던 클라인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 아나스타샤는 그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부축했다.

"어떡해…….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당신이 부상을 입지 않으셨다면야……."

클라인은 단장의 방에 있던 침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코스모스가 다가가, 전과 같은 안수(按手)
치료를 시작했다. 클라인의 몸은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아까처럼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아, 일어나지 말아요. 클라인은 더 쉬는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대신 저보다는 방의 조사를 우선 부탁드립니다."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이곤, 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코스모스와 아도니스 역시 상자와 테이블, 침대 밑 같은 곳을 살펴보았다. 그때, 코스모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 책상 서랍 속에 수상한 종이가 있습니다."

아도니스가 코스모스와 같이 종이를 확인했다.

"아니스 용병단에 지원하는 서류예요."


"그건 우리가 부대 사무소에서 받아온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나요?"


"이 신청서 외에도 몇 장 더 있어요."

첫 번째는 아니스의 용병단에 그들을 추천하는 추천장이었다. 단순히 경비 역할뿐만 아니라 '특별한' 일을 맡길 수도 있다는 내용까지 쓰여 있는. ……그 특별한 일이란 건, 원래 이들의 주 업무였던 탈세를 위한 장부 조작 같은 일이었겠지.

 

두 번째는 이번 사건의 지령서였다. 아니스가 가진 기존 부대를 이간질하는 방법부터 약소한 물자 지원 유통 경로, 아니스를 회유할 수 있는 그의 약점까지. 마지막에는 지령서를 태워 없애라고 쓰여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기에 여기 남아 있는 걸 거다.

지령서는 익명으로 되어있긴 했지만, 어느 세력에서 보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추천장을 써준 자와 같을 거란 걸.

 

아나스타샤는 이해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체 이런 허접한 건달 놈들의 뒤를 봐주는게 누구야, 정말?"

 

"음……. 추천장을 봐서는 투장인 것 같은데요."

 

"엑, 투장 같은 자가 왜요?"

 

그 질문에는 클라인이 대신 답했다.

 

"분명 액시스 내, 암흑의 신의 신도를 늘이려는 계획이었을 겁니다. 건달들이야말로 법과 정의보다는 검과 무력에 가깝고, 암흑의 신 추종자들이 돈과 명성을 준다는 이유로 쉽게 회유할 수 있는 대상일테니 말입니다."


클라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덧붙였다.

"분명 그 추천장과 지령서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겁니다. 아마도 청갈기 용병단의 단장은 계획이 실패했을 때, 투장의 하수인들을 끌어들일 요량으로 남겨둔 것이겠죠. 하지만 그들은 쉽게 당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내부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표면적으로는 용 황제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자이니, 제국은 투장의 편을 들어줄 겁니다. 고작 건달 집단 한둘의 일로 무너질 관계는 아니니까요."


"결국 이 일이 밝혀져서 무너지는 것은 이 녀석들뿐이겠네요."

투장이 관계되었다는 말과, 그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에, 코스모스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사제는 아니지만, 빛의 신이 직접 창조했다고 여겨지는 종족인 신성족인만큼, 암흑의 신을 섬기는 집단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직 시작이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어도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투장이 심연에서 나오는 악귀들을 처리해주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과연 이 관계를 일방적으로 그만둘 수 있는 걸까요?"

 

"……그러게. 하지만 결국 악귀 문제만 아니라면 유지할 필요도 없다는 거잖아. 어차피 해결해야 할 문제야. 임무를 하다 보면, 아니, 임무가 끝나서도 악귀를 해결할 방법을 계속 찾아보면 돼. 그들을 처리할 만큼 힘을 기르거나. 좀 허황된 얘기지? 아~ 어쩜 갈수록 허풍만 느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무표정한 모습의 코스모스는, 보기 드물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 보기 드문 정도가 아니라……

 

"나 코스모스가 웃는 걸 처음 봤어."

 

"네? 코스모스가 웃어요?"

 

추천장과 지령서를 꼼꼼히 확인하던 아도니스도, 침대에 기대앉아 방 안을 둘러보던 클라인도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요, 아닙니다. 다들 마저 할 일 하시길 바랍니다."

 

코스모스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정말 밝은 빛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아가씨랑 있으면 저도 모르게 웃게 되네요. 하지만 저는 아가씨의 말들이 허세나 허풍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왠지 모두가 생각만 하는 그런 이상적인 일들을, 반드시 이루어내고 말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당신께는 그런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아, 아니, 코스모스도 아도니스에게 옮았나…. 자꾸 날 칭찬 감옥에 가두려고 하네……."

 

아나스타샤는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들이 각자 대화를 나누거나 서류를 확인하는 사이, 방 안을 살피던 클라인은 테이블 밑에 깔린 곰 가죽 러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러그 아래의 바닥이 살짝 튀어나온 것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왠지 바닥에도 무언가 숨겨놓은 것 같았다.
그는 러그를 발로 밀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래엔 잠긴 다락 문이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바닥을 보고 놀라 다가왔다.

"러그 아래에 이런 문이……"

 

아도니스가 이번에도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제가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아도니스, 소마법, 기능 판정 : d20(5)+지능(5)+레벨(1)+수석(3) vs 어려움(20) / 실패

하지만 기세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덜그럭거리는 소리만 내고는 문을 열지 못했다. 클라인의 비웃음 소리와 아도니스의 자존심에 금이 간 소리는 덤이었다.

"음, 지금은 락픽(Lockpick)이 없는데. 역시 이럴 땐…… 발로 부숴서 열어야죠."

아나스타샤, 문 부수기, 기능 판정 : d20(17)+근력(0)+레벨(1) vs 어려움(20) / 실패

 

하지만 문은 끄떡없었다.

"와, 이게 안 부서지네. 얼마나 단단한 거야?"


코스모스, 문 부수기, 기능 판정 : d20(15)+근력(4)+레벨(1) vs 어려움(20) / 성공


옆에 있던 코스모스도 아나스타샤에 이어, 자물쇠를 강하게 내려 밟았다. 자물쇠는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코스모스는 강력한 철제 자물쇠를  한 번에 부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아가씨."


단장의 방 지하에 숨겨져 있던 곳은 개인 대장간이었다. 있을 설비는 다 있었고, 작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수완이 꽤 좋았나 보네요. 병영 안에 이런 곳이 있을 정도면. 어쩐지 위층이 너무 여관 같더라. 여기 다 있었네."

아사스타샤는 지하 대장간을 훑어보다가 모루 옆의 주조틀 하나를 집었다. 틀의 모양은 어딘가 익숙했다.


"아나스타샤, 여기 이런게 있어요."

아도니스가 보여준 것은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새겨진 인장과 틀이었다. 표식이 새겨진 인장과 익숙한 모양의 주조틀. 항구의 수입 내용에서 걸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무기를 직접 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치밀함이라니, 역시 투장이 관계가 되었던 일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마법 실력이 형편없었기에 아나스타샤들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들킨 것이겠지만. 실력마저 출중했다면, 아무리 전직 궁정마법사와 제국 기사 사단장이 있더라도 4명이서 용병 1부대를 쓸어버리기란 힘들었겠지.

 

이제 이곳에서 얻을만한 건 더 없어 보였다.

 

세 명은 주조틀을 챙기고 단장의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기대어 쉬던 클라인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계속해서 클라인의 건강 상태를 걱정했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계속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가 출구를 찾아봤는데 저 문이 밖으로 이어져 있더군요. 위치 상으로는 병영 옆 골목으로 이어져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왔던 길로 다시 나가면 밖에 있던 단원들이 쫓아오겠죠? 여기로 나가는게 좋을 것 같네요."


아나스타샤는 문의 빗장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이어진 곳은 클라인 말대로 청갈기 용병단 병영의 왼 편에 있는 골목이었는데, 단장만 사용하는 문이었던 건지 쥐 한 마리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전말을 밝히다

무사히 빠져나온 아나스타샤는 쾌검 용병단을 찾아갔다. 갤러스에게 붉은 흙 보병대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붉은 흙 보병대 쪽은 같이 찾아가 달라고 부탁했다간, 오히려 화가 난 상태의 부라타가 쾌검 용병단 병영까지 도끼 들고 부수러 찾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아나스타샤는 두 용병단을 모아서 증거를 보여주고 전말을 밝힐 생각이었다. 전달만 했다가 지금까지처럼 또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직접 대면해 완전한 해결을 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어서, 범인을 잡았거든요. 내용을 말이나 문서로 전달 받는 것보다 직접 대면해서 화해도 하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근데 제가 거기 병영에 갔다가 못 돌아오는게 아닐까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데……. 혹시 고도의 함정 아닙니까?!"

 

"제가 그런 함정을 왜 파겠어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래도 그 녀석들을 완전히 못 믿겠습니다. 걔네 본거지가 아니라 한 중간쯤에서 만난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뭐, 그래요. 그러면 잿빛 기사단 근처에 있는 사자 분수 쪽에서 만나죠."


쾌검 용병단을 설득했던 것처럼 부라타에게도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부라타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엄청나게 흥분했다.

 

"뭐?! 그 자식들과 화해?!! 아니, 증거를 잡아서 족치고 오랬더만 뭔 헛소리야!!"

 

"아니, 아니, 진정하시고……. 그냥 화해가 아니라… 범인이 따로 있으니, 서로 앙금도 풀고 대화를 나눠보자는 거죠."

 

부라타는 여전히 씩씩거렸다.

 

"범인이 따로 있다고?"

 

"네!"

 

"증거는?"

 

"물론 여기 가지고 있어요. 청갈기 용병단이라고. 저기 사자 분수로 가서 다 같이 모였을 때, 제대로 설명해 드릴게요. 갤러스 씨도 오기로 했어요."

 

"갤러스 그 새끼가 오는 거냐!! 좋아, 청갈기 용병단………. 뭔 잡놈들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당장 가자고! 납득 못할 증거라면, 거기서 갤러스의 목을 쳐버리겠다!"

 

무시무시한 선전포고에, 절대 실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 어디,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들어보자고."


"저희가 범인이 아니란 증거를 가져온 거겠죠?"


"하, 이게 자꾸 뺀질거리는게 머리통을 그냥……"

두 명의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아나스타샤가 나서서 둘을 말렸다.

"자자자, 좀 진정들 하시고. 이야기나 마저 들은 다음에 싸웁시다. 그 뒤에는…… 저도 안 말릴게요, 네. 이야기를 듣고서도 싸우고 싶으시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부라타는 여전히 갤러스 쪽을 노려봤지만, 더 이상 무기를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아! 여기가 내 용병단들이 모여 있다는 곳인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때, 두 용병단의 단장과 대장, 아나스타샤들이 모인 사자 분수 쪽으로 쾌검 용병단 단복을 입은 호위 몇 명을 이끌며, 긴 은발을 찰랑거리는 미남자가 나타났다.

 

"……!! 아니스 님!"

 

"아니스 님 어서오십쇼!"

 

살벌한 기운을 내뿜던 두 명이 갑자기 얼굴에 환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호위를 맡아주는 쾌검 용병단의 단원들이, 우두머리끼리 맞대결을 펼치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걱정이 되어서 와봤네. 여긴 검투장도 아닌데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워선 안되지 않은가!"

 

"……누가 쾌검 용병단 아니랄까 봐 뭔 헛소리를 싸지르고 왔어?"

 

"아니스 님 계시는데 말조심해!"

 

"참………. 나는 두 용병단에게 공정하게 대우했다 생각했는데 왜들 서로 싸우는지. 이러다 한 부대가 해체라도 한다면 어찌해야 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어차피 해체되었을 때 고용할 새 용병단을 구인하는 중이면서…….'

 

아나스타샤는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뒤늦게서야 나타난 아니스에게 불만이 많았다.

 

'애초에 본인이 해결할 문제를 주둔지가 소란스러워져서 알아서 황궁에 소식이 들어갈 때까지 가만 놔둔 거 자체가, 처음부터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이 분들은 누구신가? 익숙한 분도 계시는군."

 

"아, 황궁에서 저희 단원들을 죽인 자가 붉은 흙 보병대라는 걸 밝혀주기 위해 파견된 분입니다."

 

"죽은 건 우리 대원인데 뭔 소리냐?!"

 

"아니, 오늘 안 죽었다고 우리 멤버가 한 명도 안 죽은게 아니잖아?! 우리도 피해 봤거든!"

 

"자자, 아니스 씨가 계시잖아요? 진정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아니스' 핑계는 꽤 잘 먹히는 핑계였다. 그제야 완전히 잠잠해진 덕에, 사건 관련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저희가 의심되는 곳, 여기저기를 조사해봤어요. 당신들에게 악감정이 있을법한 용병단들이요. 그러다 재밌는 자료를 얻었어요."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에게 청갈기 용병단 병영에서 얻은 지령서를 건넸다.

"청갈기 용병단에서 찾아낸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지령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읊어줬다.


하지만 부라타는 내용을 들을수록, 그 지령서가 의심스럽다는 듯 굴었다.

"그 내용이 진짜라는 걸 어떻게 믿지?"


"이 검은 뭔지 아시겠죠?"


"저 녀석들의 검이잖아."


"무슨 소리야, 우리가 쓰는 검이 아니라고!"

다시 시작된 싸움에 이번에는 아도니스가 끼어들었다.

"아니, 쾌검 용병단 말대로야. 이 주조틀이랑 인장 보이지? 청갈기 녀석들이 지하에서 이런 걸 주조하고 있더라고."

갤러스는 눈이 커졌다.

"맙소사, 우리 용병단 표식을 위조하다니……!"


"……그래, 저 녀석들 표식이야 단순하니까 위조하기 쉽다 쳐."

 

"뭣……!"

 

"하지만 단검뿐이 아냐. 우리는 우릴 공격한 녀석들이 저 녀석들의 단복을 입은 걸 봤다고!"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갑옷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겨놓고 있더라구요. 뭐, 후원자에게 지원받은 거겠죠. 아, 정말인지 의심되면, 지금 당장 쳐들어가도 나쁘지 않고. 그 녀석들이 증거를 빼돌리기 전에 찾아가려면 여기서 싸울 시간은 없을 걸요?"

분위기는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두 명은 자신들을 이간질하던 것이 영문 모를 녀석들이었다는 것에 허탈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아니스였다.

"이거 참. 결국 이상한 놈들의 이간질로 내 용병단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거로구만! 청갈기 용병단이랬나? 그 녀석들 나한테 지원했었던 용병단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내가 지령서처럼 그들을 채용하리란 보장도 없을 건데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원."

 

"새 용병단의 지원을 받고 있었단 말입니까?!"

 

부라타가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새 용병단을 구하고 있었지. 자네들이 이 일로 피해를 많이 입은 것 같아서 말이네. 그래서 자네들의 업무를 지원해주고, 동시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를 중재해 줄 제 3의 용병단을 찾고 있었지."

 

'정말? 그 정도로 고용한 용병단의 케어를 해준다고? 부자 상인들은 죄다 악덕 업주인 줄로만 알았는데. 뒤에서 뭘 자꾸 빼돌리니까 돈이 많은 거라고.'

 

아나스타샤가 놀란 것처럼, 부라타와 갤러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결국 갤러스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저희는… 저희 중 한 부대를 대신할 용병단을 고용하시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게 깊은 뜻이……!"

 

"역시 아니스 님!"

 

갤러스와 부라타는 언제 싸웠었냐는 듯,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아니스에 대해 칭송하며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허……. 사이좋구만."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는 아나스타샤에게, 아니스가 말을 걸어왔다.

 

"황궁에서 나오신 분이라 하셨소? 그래서 당신들은 청갈기 용병단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고 있소?"

 

"아, 그거라면 추천장을 보시면 알 거 같아요. 투장의 추천장이 있으니, 당신에게 고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죠. 그리고 이 암표. 두 용병단의 싸움으로 웃돈 주고 표를 팔아 겸사겸사 득 좀 보고요."

 

거기다 투장을 뒷배로 얻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나스타샤가 암표를 꺼내자, 아니스를 칭송하던 부라타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다.

 

"이게 뭐야!"


"청갈기들이 암표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실마리는 이것 덕분에 잡았지만. 당신들이 얘네들에게 표 팔아달라고 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부라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감히 날 가지고 놀아?!"


"혼자서 쳐들어가서 되겠어? 나도 억울한게 많은데 화풀이라도 해야 되겠는데."


"맘대로 해!!"

부라타와 갤러스는 사이좋게 청갈기 용병단 병영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아나스타샤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조사한답시고 한 번 휘젓고 왔는데, 저 둘이 또 가면 완전히 난장판이 되겠네요."


"자업자득이죠. 나머지는 법무부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이걸로 저들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임무를 완료했다고 생각한 아나스타샤는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추천장의 내용을 읽던 아니스가 또 질문을 해왔다.

 

"여기 써있는 '특별한 일' 이 뭔지, 당신들은 아시오?"

 

"아, 그거. 청갈기 용병단은 탈세 브로커 역할도 맡고 있었거든요. 뭐, 장부 조작? 그런 거겠죠."

 

"뭐라…! 감히 날 뭘로 보고! 장부 조작이라니! 나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번 돈은 극도로 혐오하오. 온건한 방식으로만 사업을 진행해도 큰돈을 버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건만. 쯧, 이런 걸 추천이라고 하다니, 역시 투장 아니랄까 봐 정직한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군."

 

'정직한 인간이라….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인 건 사실일 것 같네. 부하들에게 저런 인망을 얻기란 쉽지 않지.'

 

아니스는 정중한 예법으로 아나스타샤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고맙소. 사실 당신들이 이 일을 해결해주지 않았으면 솔직히, 청갈기 용병단을 채용했을 것 같소. 추천장이랑 이력만 보면 정말 괜찮은 곳 같아 보이니까. 설마 이게 위조 이력일 거라곤…. 만약 채용했다면 또 다른 분쟁의 시작이었겠지. 내 일을 해결해 줘서 정말 고맙소. 답례를 하고 싶소만……."

 

"답례요?"

 

"내가 금테 지구에서 가구 상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당신들에게는 특별히! 특별 할인 가격으로 모시도록 하겠소."

 

아나스타샤는 김이 빠졌다.

 

"아뇨, 당장 가구를 살 일이 없어서요."

 

'애초에 집도 없는데요.'

 

"가구란 건 살 일이 있어야 사는게 아니라오. 궁전 지구에서는 기분에 따라 침대를 바꾸는게 유행인데……."

 

답례를 하겠다는 건지 영업을 하겠다는 건지 모를 상황이 되어갔다.

 

"아뇨, 저는 그런 사치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별 수 없지. 대신 신혼집 가구는 꼭 우리 마이더스 핸드에서 제작하시오."

 

"신혼집? 애초에 결혼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걸요."

 

"응? 뒤에 계신 백작님이 연인 아니었소?"

 

궁전 지구의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자여서 그런지, 클라인의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의 사생활까진 알지 못할 테니 잘못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 충격적인 오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아나스타샤도 클라인도 아닌 아도니스였다. 

 

"아니야!!!"

 

"그, 그렇구먼. 이거 오해해서 죄송하게 됐소. 아무튼 꼭 마이더스 핸드에 들려주시게!"

 

아니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도니스를 보고, 불똥이 튀겠다 싶었는지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하필 임무를 받아도 저딴 눈이 삔 녀석을 도와주는 임무를 했다니, 젠장……."


그날 저녁, 요 이틀간 처리한 주둔지 내의 소란은 클라인이 보고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아나스타샤가 보고서 관련 내용으로 클라인의 집무실에 찾아갔을 땐, 이미 그가 모든 정리를 끝낸 뒤였다. 결국 아나스타샤는 완성된 내용의 검수만 진행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완벽했다. 만약 아나스타샤가 썼더라면 이런 퀄리티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빠른 처리에 감탄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떠넘긴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아나스타샤의 속내를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클라인이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을 시키라고 제가 있는 것입니다."

무척이나 당연하다는 그 시원스런 대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아나스타샤는 저에게 명령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나스타샤는 입을 붙였다 떼었다 한참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클라인은 저에게 너무 잘해줘서 좀 사양할 필요가 있어요."


"아나스타샤는 제 은인이니까요."


"모든 은인에게 이렇게 해주시는 건 아닐 거잖아요."


"…."


"그러면 안 돼요. 저 같은 뒷전 출신에는 사람의 선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클라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아나스타샤는 어쩔 줄 몰랐다. 자신이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걸까 싶어서.

 

'클라인이 애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을텐데. 너무 가르치는 투로 말했나?'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클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나스타샤, 당신이어서 그런 겁니다."


"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이 저를 마음껏 이용해 줬으면 해서 그런 겁니다."

아나스타샤는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거기다 저희는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잖아요.
"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나스타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져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호감을 들킨다면 이용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니까. ……그렇지만 스스로 그것을 자처하는 이의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아나스타샤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아나스타샤는 원래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첫눈에 반했다든지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이라든지. 요새 부쩍 제 주변에 그런 운명론자들이 많이 늘어난 기분이지만, 어쨌든 원래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랬는데, 그런 운명론적인 말에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 거리는 걸까.

 

어쩌면 클라인을 처음 본 순간, 아나스타샤도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전혀 믿지 않는 그런 운명을, 그 순간에, 자신도 느꼈으니까.


"저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영혼이 이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

 

어쩌면 아도니스가 말했던 것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영혼의 끌림.


아나스타샤가 생각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 클라인은 그것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애처롭게 흔들렸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 것이기에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길 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계속 당신 곁에 있을 수 있을테니까요."

클라인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 넘기며 마른세수를 하며 표정을 감추려던 것이겠지만, 여전히 씁쓸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아나스타샤께 부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절대 이런 식으로 전하고 싶지 않았는데."

 

클라인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승낙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볍게 승낙하고 가볍게 끝나는 그런 사랑들을 많이 해왔다. 그와의 관계도 그런 식으로 시작해서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근본적으로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살아온 삶과 인간관계가 그렇게 만들었다.

뒷전 지구에서 어제까지 있던 집이 불에 타 사라지는 건 흔한 일이오, 평생을 모은 돈을 소매치기당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상을 지내다가 심심하면 찾는 간식거리였다. 어제까지 만났던 사람이 질렸다면 헤어지고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났다.

한때는 아나스타샤도 열렬한 순애보 같은 사랑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도 같지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생각했다. 지금 이 마음을 받아들였다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금방 열정이 식는 것이 아닐까.

그를 믿지 못하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의 애정은 손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건, 같이 있으면서 직접 느꼈으니까. 하지만 과연 자신도 그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엔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변덕스러운 자신에게 실망해 그가 돌아선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먼저 쉽게 변한 것은 자신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클라인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이란 사람을, 한 순간의 감정에 취해 영영 잃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사람들에겐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자신도 모르게 서로 터놓게 되는 마법 같은 날. 그것이 사랑을 말하는 것이든, 감사를 말하는 것이든, 원망을 말하는 것이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밤이 있었다는 것도 잊게 될, 더 이상 오지 않을 비밀의 시간.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지금, 둘만의 이 밤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나스타샤는 끝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아나스타샤는, 이번 감정은 좀 더 복잡하고 진지한 감정이었음을, 쉽게 변하지 않을만한 감정이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법이니까.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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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3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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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3

 


"자, 싸구려 맥주 2cp, 통밀빵 10cp, 마지막으로 친절한 말투 5cp까지 총 17cp야."

 



"하암~ 진짜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었네."


아나스타샤는 밤 중에 늦게까지 술을 마신 것 치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는 침대 옆의 사이드 테이블에, 하녀들이 새벽에 가져다 놓은 세숫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선 옷을 갈아입으려던 중 클라인이 자신의 옆자리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녀들도 클라인이 여기 있는 걸 봤을 거 아냐?! 미쳤다, 미쳤어.'

 

황급히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사라진 클라인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우선 옷부터 갈아입었다.

 

똑똑─

"아나스타샤, 제가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클라인이었다.

'언제 돌아갔대. 하긴, 클라인도 깼을 때 어지간히 당황했겠지. 거기다 불미스러운 소문이라도 퍼지면 클라인의 평판에도 좋지 못하니까…. 내가 너무 취해서 그런 생각을 못 했네.'

괜찮다고 대답하자, 클라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팔 안에는 붉은 패랭이꽃이 들려있었다.


 

재무부를 위해 봉사하기

아도니스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스펜서 저택에는 손님이 도착했다. 재무대신인 돈슨 트리스였다.

"하하, 이거 카스펜서 백작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임무를 맡는 건 백작이 아니라 아나스타샤겠지."

아도니스는 돈슨이 아니꼬운 것 같았다. 하지만 돈슨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최근에 지출 부서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작위를 잇지 않았다 보니 다른 쪽으로 출세의 욕심이 있어서요."

그는 여러모로 솔직한 사람이었다. 출세에 관심 있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후계자 후보보다는 '카스펜서 백작' 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거겠지.

"…때문에 부서를 옮긴 지금이 인상을 남기기 좋은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군용 곡물 공급에 추가분을 확보한다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곡물 생산량은 정해져 있으니, 억지로 군용 곡물을 늘였다간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텐데?"

클라인이 정확한 부분을 지적하자, 그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인데, 옛날에 이니고 샤프라는 자와 인연이 있었습니다. 서로 적당히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죠. 당시에 이니고가, 제분소의 밀가루 생산량을 최대 23%까지 늘일 수 있는 기계를 고안했다고 했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발명인데……."

클라인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죠!! 그래서 이니고 샤프에게 그 기계 제작을 의뢰할 생각이었습니다."


쇼파에 구겨져 앉아서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던 아도니스마저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니고 샤프? 그자라면 제국 마법 부대 소속의 마법사 아냐? 내가 궁정 마법사로 있던 때, 부하 중에 그런 사람이 있던 것 같은데."


"아! 궁정마법사로 있으셨군요. 맞습니다. 이니고는 황궁에서 마법사로 일했었죠. 뛰어난 발명가이자 건축가로 황제 폐하께 스카웃되었었습니다."

마법 부대 출신이란 이야기에, 클라인도 뭔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아, 나도 기억나는군. 오크두령의 침략군을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값싼 마법 함정을 고안해 냈지. 하지만 이미 죽었지 않나? 1년 전, 오크들이 그의 요새를 침략하는 바람에……. 안타까운 일이었지."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서 말입니다."

봉인이 뜯긴 편지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피리긴이라는 순회(巡廻) 마법사가 황궁 구조물 건축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로 최근, 이니고 샤프를 신뢰할 수 있는 이로 소개한 내용이고요. 건축 비용에 관해 확인하다 보고서에 같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를 데려와 황궁에서 보호해야 합니다. 밀가루 생산량을 늘리는 기계도 기계지만, 그는 유능한 인재니까요."

아나스타샤는 의뢰 내용을 이해했다.

"그렇군요. 그럼 이니고 샤프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어디죠?"


"……편지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편지를 썼던 피리긴이라는 자가 이니고의 소식을 알고 있으니, 그를 찾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뉴 포트와 상어이빨 협만(峽灣) 사이에 있는 은색만(銀色彎)이라는 외딴곳에 살고 있습니다. 방문해 본 자의 말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흰색에 매우 둥근 집이라고 했는데요. 아무튼 은색만에 가면 눈에 띄기 때문에 찾기 쉬울 거랍니다."


"은색만인가……. 액시스에서 거리가 좀 되는데. 당장은 해결할 일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바로 해결될 문제라 생각은 안 했습니다.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이 임무는 동선상으로 생각했을 때, 엘돌란에 들렸다 가는게 좋겠어.'

아나스타샤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돈슨은 방문했을 때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이건 제 작은 성의입니다."

 

가방 안에는 목걸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아도니스는 그 물건을 알아본 것 같았다.

"생명석의 목걸이……. 마법 물품이네."


"역시, 전 궁정마법사님은 알아보시는군요!"

생명석의 목걸이는 착용자를 쉽게 죽음에 빠트리지 않게 하는 마법이 걸린 물품이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그 '뇌물'에 가까운 선물이 반갑지 않았다.

"이렇게 주고서 임무가 잘 안 되면 뭘 어쩌려고……."

그런 아나스타샤 대신, 클라인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보수는 황궁에 전달했을 거 아닌가?"


"하하, 이건 의뢰와 별도로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 받아주십시오."

 

'그렇구만. 그에게 클라인과 마주할 기회는 거의 없으니까, 이참에 얼굴도장 찍고 싶다는 거였구만.'


"알겠어요. 어쨌든 이니고 샤프를 찾게 되면, 보고 전에 당신께 먼저 별도로 연락드리죠."

돈슨은 고개를 꾸벅이곤 응접실을 나갔다.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며, 돈슨이 두고 간 생명석 목걸이 상자를 들어 올렸다.

"이 목걸이…… 어쩔까요?"

아도니스는 목걸이를 집어 아나스타샤에게 걸어주었다.

"생명석 목걸이는 착용자의 생명의 위기 때마다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이 목걸이는 아나스타샤가 착용하고 있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동의합니다."

결국 생명석 목걸이는 아나스타샤가 걸게 되었다.


암표상을 찾아라

아나스타샤들은 암표상 조사를 위해 글래디 만나러 검투장 지구로 갔다.

 

"검투장 지구에 오긴 했는데, 아무리 검투 경기 마니아라고 해도 늘 죽치고 있지는 않겠죠…?"

 

"그 남자가 갈 법한 곳에 대해 생각나는게 더 없으신가요?"

 

클라인의 물음에, 갤러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혹시 내가 싸우는 졸에서 그 케스 표를 구해오면 같이 보러 갈래?'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고 보니 '싸우는 졸'에서 암표를 구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

 

"싸우는 졸인가요."

 

의외로 클라인이 아닌, 코스모스가 그곳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검투장 지구에 있는 주점입니다. 케스의 관객이나 선수들이 많이 모이며, 이름도 케스의 졸(卒)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곳은 종목 특성상 투기와 도박판이 많이 열려서 건달들이 많긴 하지만, …그만큼 암표상 같은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 것 같습니다."

 

"들어보니 확실히 그렇겠네요. 코스모스도 검투 경기에 관심 많나 봐요."

그는 살짝 미소 지었다.


"경기보다는 베팅(Betting)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아나스타샤는 곧 이해하고는 말을 아꼈다.

'이 바닥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려면 이것저것 해야 되니까'.


싸우는 졸은 생각한 것보다 평범한 분위기에 가게가 무척 넓었다. 경기의 열기가 식지 않은 관객들과 훌리건(Hooligan)이 넘치기 때문에 사람은 무척 많고 소란스러웠지만,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진 않았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구석의 가장 소란스러운 테이블로 눈을 돌려보면, 불량해 보이는 인간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주점에는 그들이 찾던 글래디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나스타샤의 충고에 암표를 구할 생각이 없어져 오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글래디 말고도 케스에 관심 있어 보이는 사람은 충분히 많았다. 아나스타샤들은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해 일행이 아닌 것처럼 각각 나뉘어 앉기로 했다.

 

클라인은 불량해 보이는 이들의 근처 테이블에 혼자 앉았고, 아도니스와 코스모스는 단순히 술을 마시러 온 사람들처럼 연기하며 출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아나스타샤는 바(Bar) 테이블에 가서 케스 시합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는 두 남자 근처에 앉기로 했다.

 


 

아도니스와 코스모스는 자리에 앉아, 포도주 한 잔과 아이스티 한 잔, 그리고 치즈 크래커 한 접시를 주문했다.
하플링 종업원은 좋은 옷을 곱게 차려입은 주제에 주점에서 꼴랑 아이스티 한 잔만 주문한 아도니스를 못마땅하게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 없이 순순히 주문한 것을 내왔다.

"그렇게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네."


"자기가 암표상이라고 하면서 다니진 않을테니, 출입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 놔야 할 거예요."

아도니스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런 것 정도야 별거 아니지."

애초에 마법사를 하려면 웬만큼 머리가 좋아야 하는게 아니니까, 라고 덧붙이며 코스모스의 크래커를 집어 먹었다.

"음…… 코스모스, 궁금한게 있는데……."


"편히 말씀하시죠."


"그, 저택에 있을 때 아나스타샤랑 클라인 사이 어때? 좋아 보여?"


"네."

코스모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도니스는 그 반응속도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역시……… 아나스타샤를 거기 머물게 해선 안 됐는데!"

코스모스는 아도니스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러면 번거롭지 않게 아도니스 님께서도 카스펜서 저택에 머물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왜 그 자식 집에…!"

아도니스는 코스모스에게 화낼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다시 차분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클라인 녀석도 안 받아줄걸."


"아나스타샤 님의 부탁이라면 들어주실 겁니다."

아도니스는 눈썹을 찌푸리며 별다른 대답 없이 아이스티로 목을 축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출입구를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그때, 남자 한 명이 바 근처로 향하는 걸 목격했다.

 


 

클라인은 싸구려 맥주를 마시며, 뒷자리 남자들의 말에 집중했다.


자신의 외모가 눈에 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검투 경기를 보러 온 떠돌이 용병인 척하고 있었다. 저택을 나설 때 가져온 누덕누덕한 로브를 몸에 걸치고서. 그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수배지를 보며 대화를 엿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인의 얼굴을 힐끗힐끗 보는 사람은 존재했다. 그는 애써 그 시선들을 무시했다.

주변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은 별말이 없었다. 이런 자들이 할 법한 도박, 여자, 술, 투기 종목, 딱 그 정도 주제였다.


그러다 누군가 익숙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클라인은 그 소리에 집중했다.

"아, 역시 열심히 사는 건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거라니까."


"새삼스럽게 왜?"


"걔 있잖아. 저번에 용병단 하나 만든다고 설치던 녀석. 용병단 이름이 청갈기랬나? 걔네 용병단이 아니스인지 예스인지 하는 부자 밑에 들어가서 일한다잖아."


"캬, 막살아도 출셋길이 탄탄대로구만!"


"청갈기? 걔네 나름 실력 있는 애들 아니었어?"


"실력? 야,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라. 거기 단장이 마법 조금 쓸 줄 알았지, 순 양아치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뒷전 지구 왈패(曰牌) 중 하나였는데, 뭘. 그게 다 남의 공적 가로채거나 안 좋은 건 떠넘기고, 남이 차려놓은 밥상 주워 먹어서 그런 거지. 저번엔 부자들 탈세도 도와준다고 하던데? 역시 입 좀 잘 나불대니까 가만있어도 아주~"


"히야……. 나도 거기 한 번 꽃아 달라고 해봐?"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아니스, 청갈기, 공적 가로채기……….

 

그는 그들의 대화에 계속 집중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런 그의 앞에 갑자기 맥주 한 잔이 내려놓아 졌다. 의아한 표정으로 종업원을 쳐다보자, 그는 흘러내리는 긴 녹색 머리칼을 쓸어 올리곤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 쪽 신사 분이 보낸 드워프제 맥주입니다."

종업원의 손 끝을 따라가자 남자 한 명이 수줍게 클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아나스타샤이길 기대했던 클라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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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무 아쉽다니까요!"

 

탕—


아나스타샤는 맥주잔을 바에 강하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 곁에 있는 건, 최근 예정된 케스 시합에 대해 한참 떠들고 있던 남자들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어느새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그들은 투기 종목에 관심 있는 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인 사람들이었다. 특히 아나스타샤같이 곱상하게 생긴 금발의 엘프라면 더더욱.

 

아나스타샤는 그들에게 일종의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다. 투기 종목에 관심 가지게 되었는데 붉은 흙과 쾌검의 케스 시합 표를 구하지 못해 짜증 난다는 그런 이야기.

"조금 더 일찍 관심이 생겼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아쉽게 됐어, 아가씨!"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성이 아나스타샤를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이어, 그 옆의 드워프 남성이 호쾌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케스 시합 말고, 터스크(
Tusk)는 어때? 1대 다수로 싸우는 거라 호쾌하고 볼 만하다고!"


"터스크요?"


"어이, 이 사람 좀 보게! 여기 와서 웬 터스크야! 아가씨, 터스크는 그냥 연극이나 마찬가지라고. 실감 나는 투기 종목과는 거리가 멀어. 차라리 극장이나 가게."


"뭐라고? 연기라니! 당장 따라 나오게. 내 오늘 터스크 경기 보여주지!"

아무리 그들이 여자에 관심이 있다 한들, 검투 경기만큼은 아니었다. 두 남자는 금세 터스크 얘기에 빠져, 투덕거리며 주점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아나스타샤는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쏟은 기운에 비해 건진게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고 맥주나 홀짝였다.

"거기, '진짜' 케스 시합에 관심 있나?"

갑작스럽게 속삭이듯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검은색의 카스케트(casquette)를 푹 눌러쓴 남자가 헤실헤실 웃으며 아나스타샤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다시 붙임성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띄웠다.

"당연하죠. 처음 보는 시합인데, 시시한 것 따위를 볼 순 없잖아요? 웃돈이라도 얹어서 최대한 좋은 걸 봐야죠."


"지금 예정된 경기 중에 가장 인기 있는게 뭔지는 아나?"


"이 주점에 있는 사람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붉은 흙과 쾌검의 경기잖아요. 하……. 필요 없는 표를 양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허탕이네요."

그 말에 남자는 더더욱 기분 나쁘게 헤실거렸다.

"뭐, 열심히 찾아보면 있겠지. 힘내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돈도 꽤 있어 보이는데."


"네네, 감사해요."

그 남자는 자신의 맥주를 한 입에 꿀꺽꿀꺽 삼키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점을 나갔다.

'의미심장하게 운을 떼어 놓고선 별말도 안 했네. 그럴 거면 왜 말 건 거지…….'

아나스타샤는 남자가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다 그 남자가 앉아 있던 의자에 쪽지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남자가 놓고 간 건가?'

쪽지를 돌려주고 싶어도 남자는 이미 나간 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엔 내용이 궁금했던 터라 쪽지를 주워 펼쳐보았다.

 


 

billet, 싸우는 졸, back

 



공용어와 고대 인간어가 섞어진 막연한 단어 3개가 쓰여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누가 봐도 수상한 그 쪽지를 가지고 주점 밖으로 나갔다.

 


 

아나스타샤가 주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세 명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주점 밖으로 나갔다.


제일 먼저 나온 아도니스가 아나스타샤에게 말을 걸었다.

"아나스타샤, 무언가 알아냈나요?"


"그런 것 같아요."

뒤이어, 클라인까지 전부 밖으로 나왔다.

 

클라인의 얼굴을 마주한 아도니스는 갑자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아~ 나 다 봤어. 너 인기 많던데? 웬 남자도 윙크하지 않나. 큭큭."

 

"…………."

 

"응? 뭐예요??"

 

"아니 글쎄, 아까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클라인에게 술 한 잔 사는 거 있죠? 거기다가 막 윙크까지, 킥, 하고, 푸하하!"

 

"오, 역시 마성의 남자."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랑 달리 정말 순수하게 감탄하는 거였다.

 

"큭큭, 마성의 남자!"

 

"그만하지, 마법사."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웃는 아도니스를 뒤로하고, 아나스타샤는 다른 이들에게 뭔가 수확이 있었는지 물었다.

코스모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클라인은 용병단의 평판에 대해 들은게 있다고 했다.

 

"청갈기 용병단이 건달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가 보더군요. 주로 공적 가로채기나 탈세 브로커(broker) 일 위주로 실적을 쌓는다고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라는 건가."

 

아나스타샤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 용병단이 질이 안 좋은게 이 사건과 관련 있는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고, 우선 이 쪽지 좀 보실래요?"

주점에서 주운 쪽지를 세 명에게 보여줬다.

"제 왼편에 앉았던 카스케트를 쓴 남성이 떨어트리고 간 거예요."

 

콜록대느라 말하지 못하는 아도니스를 대신해, 코스모스가 대답했다.


"들어오자마자 곧장 아가씨 옆으로 갔다가, 금방 나갔던 사람 말씀이군요."

 

"맞아요. 근데 이 쪽지, 간단한 단어이긴 한데 두 언어를 섞어 썼어요. 한눈에 바로 읽히지 않게."

 

아도니스가 드디어 진정하고 쪽지를 읽었다.

 

"싸우는 졸, back은 뒤쪽이나 되돌아가다. 은어로는 연줄도 될 테고, billet은 임시 막사(幕舍)? 아니면 철 봉?"

 

"싸우는 졸 임시 막사의 연줄?"

 

"싸우는 졸 뒤쪽 임시 막사군요."

 

"싸우는 졸 철 봉 쪽으로 되돌아가다……."

 

아도니스는 클라인이 내놓은 단어 조합을 비웃었다.

 

"허, 정말 싸우는 졸 뒤쪽 임시 막사라고 생각하는 거야? 주점 뒤에 임시 막사가 왜 있어?"

 

"……그럼 임시 막사의 연줄도 아니겠네요."

 

공격이 먹힌 건 아나스타샤 쪽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철 봉은…… 이 주변에 그런 자재는 없어 보이는데. 주점 뒤에 있는 건 뒷골목 정도?"

 

"어쩌면 저희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저 골목을 말하는 걸지도요."

 

코스모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담 billet이 뭐냐는 건데……."

 

불현듯,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배웠던 엘프어가 생각났다.

 

"어…? 어쩌면 이거, 인간어가 아닐지도 몰라요. 사실 그 남자와 대화하기 전에, 아저씨 두 명이랑 케스 티켓에 관한 얘기를 했거든요. billet이 티켓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엘프어로 표나 티켓, 짧은 편지…… 이런 의미가 있거든요."

 

"처음부터 아나스타샤를 위한 쪽지였군요."

 

"그럼 이 쪽지는, 제가 티켓을 사고 싶다면 싸우는 졸 뒤에서 만나자는 내용이겠네요."


"어쩌시겠습니까, 아나스타샤. 혼자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

클라인의 걱정에 아나스타샤는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기도 했지만, 착용하고 있는 생명석 목걸이가 그의 기질을 더 그렇게 만들었다.

모든 마법 물품에는 일종의 기벽이 있는데, 생명석 목걸이는 자기보다 마법적 보호 수단이 적은 사람이 위험한 일을 하려 하면 나무라는 성격이었다.

"적어도 제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어요. 그래도 위험하다 싶으면 피요르를 날려 보낼게요."

 

"근처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겠습니다."


부당 이득

아나스타샤는 곧바로 싸우는 졸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은 건물들의 지붕이 서로 달라붙어 하늘을 거의 가리고 있었기에,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흐흐……. 역시 나올 줄 알았어."

카스케트를 쓴 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마치 마약이라도 팔 것처럼 구시네요."


"오, 아냐 아냐. 이건 고작 표를 '양도' 하는 것뿐이라고. 약간의 수고비만 받고 말이지. 마약 판매라니, 너무하네."


"그래서 표는 진짜 가지고 있죠?"

남자는 뒷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다.

"돈을 드리기 전에……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 표, 구하기 어렵잖아요. 어떻게 구한 거예요?"


"다 내 능력이지. 영업비밀이야."

아나스타샤, 암표상 떠보기, 기능 판정 : d20(17)+통찰(0)+레벨(1)+뒷전출신(4) vs 어려움(20) / 성공

"당신이 투기장에 고용된 직원이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허? 아, 그래그래. 좀 암표에 빠삭한가 봐? 근데 그걸 알아서 뭘 어쩔 건데? 뭐, 투기장 매니저에게 꼬지르려고? 크크, 별 의미 없을텐데."

'뭘 언급해야 반응할까? 적벽? 청갈기?'

 

클라인이 말해줬던게 떠올랐다.

 

'청갈기 용병단이 건달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가 보더군요.'

"예를 들자면, 청갈기 용병단이라던가."


"………!!!"

카스케트를 쓴 암표상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너 뭐야? 그냥 표 사려는게 맞긴 해? 설마 짭새냐?!"

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 한 명이라면 나 혼자서 충분히 제압 가능하겠어.'

안이한 생각이었다. 암표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자의 등 뒤 너머, 반대쪽 골목 끝에서 남자 3명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눈살을 찌푸리며 피요르를 날려 보냈다.

 

"어이 아가씨,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는 거 아냐?"


"우리 뒤를 캐고 다니는 거지? 여기서 처리해, 후환을 남겨두지 않겠어."


암표상을 포함한 건달들은 4명이서 아나스타샤의 주위를 포위했다. 좁은 골목을 앞 뒤로 막고 있었기에 꼼짝없이 갇힌 꼴이 되었다.


하지만 피요르의 신호를 받은 클라인과 아도니스, 코스모스가 금세 달려와 주었다.
아나스타샤의 등 뒤에는 적 2명과 동료 3명. 눈앞에는 적 2명. 그는 등 뒤를 동료들에게 맡기고 눈앞의 적
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암표상
암표상을 하는 자 입니다. 청갈기 용병단과 관계가 있어보입니다.
보통 1레벨 병사 [인간형]
행동순서 : +3

미약한 마력의 완드 +5 vs 장갑 : 5 피해
- 순수짝수 명중 또는 빗나감 _ 이 전투에서 가하는 다음공격은 +6 피해를 줍니다.
체력 25 / 장갑 17 / 신방 14 / 정방 13


배치

| 암1 암2  |

|   아나    |
| 암3 암4  |
|              |
|
아도 |

 


 

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23), 아도니스(21), 암표상4(19), 암표상1(13), 암표상2(13), 클라인(9), 암표상3(8), 코스모스(1)


아나스타샤, 암표상1에게 쌍수공격, 빗나감, 2피해
.

 

아나스타샤는 곧바로 단검을 꺼내 들어 양손에 각각 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카스케트를 쓴 암표상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적은 그 공격을 손쉽게 피했다.
아나스타샤가 공격하는 순간을 노려, 뒤에 있던 수염 난 암표상은 마력으로 강화한 완드로 습격했다.

 

아도니스, 창성학, 암표상4에게 냉기광선, 18냉기피해.

 

암표상이 아나스타샤를 공격하는 모습을 본 아도니스는, 증폭 마법을 사용한 냉기 광선으로 수염 난 암표상을 맞췄다.

 

암표상4, 냉기광선에 느려져 행동순서가 늦춰짐.

 

냉기광선에 맞은 적은 큰 추위로 덜덜 떨며 공격하지 못했다.
아도니스의 마법에 적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마, 마법사……! 게다가 우리보다 실력이 좋아!"


암표상1,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쳇, 쫄지 말라고! 그래 봤자 마법사 한 명에 전사 한 명이야! 나머지는 계집애들이라고! 쪽수로 밀어붙여!"

 

카스케트를 쓴 암표상은 그렇게 말하며 아나스타샤에게 반격을 시도했지만, 공격은 빗나갔다.

 

"쳇, 쥐새끼 같긴!"


암표상2,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5피해.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피한 방향에는 다른 적이 지키고 서있었고, 약한 스파크에 감전되어 피해를 입었다.


클라인, 암표상3 뒤로 이동, 강타선언, 암표상3에게 근접공격, 14피해, 4추가피해.

암표상3, 클라인에게 공격, 5피해.
코스모스, 암표상4 뒤로 이동, 암표상4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과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 뒤를 지키던 암표상들에게 접근해 각자 한 명씩 도맡아 대치하고 있었다.

 

"젠장, 이 녀석들 뭐 이리 잘 싸워!"


암표상4,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순수짝수 명중, 5피해.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암표상1에게 쌍수공격, 빗나감, 2피해.

 

아나스타샤는 감전 마법으로 인한 고통에 비틀거렸다. 가까스로 힘을 짜내어 검을 휘둘러 보지만 힘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아도니스, 암표상4에게 냉기광선, 6냉기피해.

암표상4, 전투불능.

 

냉기에 고통받는 암표상은 덜덜 떨며, 감전된 아나스타샤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멀찍이 상황을 바라보던 아도니스는 다시 한번 똑같은 마법 주문을 걸었다. 결국 그는 완전히 얼어붙어 쓰러졌다.


암표상1,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가변공격, 6피해.

 

카스케트를 쓴 남자는 동료가 쓰러지자 여유가 사라졌다. 눈앞의 하프엘프를 빨리 쓰러트리고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덕분에 크게 조급해져 휘두른 지팡이는 아무에게도 맞지 않았다.


암표상2,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 암표상3에게 공격, 묵직한 일격, 2피해.
암표상3, 클라인에게 공격, 5피해.
코스모스, 암표상3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뒤를 돌아봄, 암표상3에게 쌍수공격, 대성공, 7피해.

암표상3, 전투불능.

 

감전이 풀린 아나스타샤는 카스케트의 공격을 피하자마자, 빙글 돌아 뒤에 있던 적을 쓰러트렸다.

아도니스, 아나스타샤 옆으로 이동, 적1명에게 색채분사, 암표상2 맞음, 7정신피해.
암표상2, 정신피해로 뒤로 한걸음 이동.

 

아도니스는 왼편의 적이 전부 쓰러지자, 골목의 오른편으로 달려가 남은 암표상 2명에게 정신계열 마법인 색채분사 마법을 시전 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던 건지, 코 앞의 적 1명에게만 유효했다.

"젠장, 내가 이런 실수를…!"

적은 약간의 착란이 일어나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암표상1,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가변공격, 6피해.

 

카스케트를 쓴 암표상은 자신의 동료가 두 명이나 당하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더 이상 전투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저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동료를 미끼로, 도망갈 생각만 가득해 보였다.

그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대로 다른 동료에게 돌아가게 둔다면 더 많은 지원군이 올 것이다.


암표상2, 아도니스에게 공격, 빗나감, 1피해, 가변공격, 6피해.
클라인, 아나스타샤 왼편으로 이동, 암표상1에게 공격, 묵직한일격, 3피해.

코스모스, 아나스타샤 뒤편으로 접근, 아나스타샤 안수치료, 12회복, 암표상2에게 신앙의 투창, 5신성피해.
암표상2, 이상없음.

 

고조주사위3
아나스타샤, 뒤쪽으로 이동, 활을 들어 시위를 겨눔, 암표상2에게 원거리공격, 9피해.
아도니스, 암표상1에게 냉기광선, 11냉기피해.
암표상1, 냉기로 느려져 행동순서 늦춰짐.
암표상2, 아도니스에게 접근, 공격 5피해, 가변공격 6피해.
클라인, 암표상1
에게 공격, 빈틈만들기, 대성공 범위19, 빗나감, 1피해.
코스모스, 아도니스 안수치료, 5회복, 암표상2 앞으로 이동, 암표상2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암표상1, 클라인에게 공격, 순수짝수명중, 5피해, 가변공격, 6피해.


고조주사위4
아나스타샤, 암표상1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3명에게 색채분사, 12정신피해.
암표상1, 전투불능.
암표상2, 전투불능.


클라인도 그가 도망칠 거란 걸 눈치챘는지 재빨리 타겟을 변경해 카스케트를 쓴 암표상을 공격했다. 남자는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적은 코스모스가 쓰러트렸다. 아직까지도 아도니스가 걸어놓은 정신 마법에 휘청이고 있었으므로 어렵지 않았다.

 

"아, 이 녀석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려 했었는데 쓰러트리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아도니스 님."

 

"별 수 없죠. 고마워요, 다들."

 

전리품 : 케스 암표

 



그렇게 아나스타샤들은 암표상 무리를 완전히 처치했다. 기절한 그들을 두고 4명은 숨을 돌렸다. 날아갔었던 피요르는 전투가 끝나자 돌아왔다.

 

"아가씨, 많이 다치셨습니다."

 

"뭐, 이 정도는 좀 쉬면 나아."

 

코스모스는 자신의 상처에 무신경하게 대하는게 계속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상처를 보겠습니다."

 

"응? 그, 그래……."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의 상처부위를 확인하는게 아니라, 머리에 손을 얹더니 눈을 감은채 짧은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약한 빛이 아나스타샤의 몸을 감싸더니 상처가 아물었다.


"이럴 수가, 상처가 나았어……."


아도니스도 살짝 놀라며 이리저리 둘러보며 상처를 확인했다.

 

"코스모스, 고마워요. 당신이 치유를 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전 신성족이니까요."

'신성족이 전부 치유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닐텐데…….'

코스모스는 황궁 하녀를 하기 전에 뭘 했던 걸까. 빛의 사도로서 악과 싸웠다고 했는데, 성기사였던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코스모스의 과거보다 중요한게 있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청갈기 용병단이란 이름에 반응했어요."


"결국 가장 의심스러운 건 청갈기 용병단이라는 소리겠네요."

 

"어쩔까요. 당초 목적이었던 범인을 특정할 물증은 얻었지만……. 이 암표를 증거로 청갈기 용병단을 조사할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불법적인 목적으로 개설된 부대이니만큼 조사에 쉽게 협력하지 않을 겁니다. 켕길게 이 암표 말고도 많을테니."


"그렇겠죠. 거기다 그들이 꼬리 자르기를 해버린다면, 어렵게 얻은 증거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테니까요. 그렇게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버리면 두 번째 조사는 영영 어려워지겠죠."

아나스타샤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무모한 소리란 건 알지만, 우리 청갈기 용병단에 잠입해서 증거를 더 캐내 봐요!"

세 명은 잠입이란 소리에 눈이 커졌다.
코스모스는 잠입이란 방식에, 클라인은 아나스타샤가 위험에 처할까 봐, 아도니스는 미처 생각 못 했던 부분이라서, 각자 다른 부분에 놀랐다. 코스모스와 클라인은 반대했지만, 강경한 투는 아니었다. 이러나 저러나 그 이외의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아나스타샤의 방식에 동의하게 되었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아나스타샤들은 청갈기 용병단의 병영으로 향했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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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2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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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2

 

 

刺客奸人(자객간인)
남을 몰래 찔러 죽이거나 이간질하는 사람.
마음씨가 몹시 모질고 악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남은 죽었던 연애세포도 되살린다

우리는 아비시니안에게 클라인을 보냈다.

"목록은 여기 있어요. 신생 (新生) 용병단은 창립 6개월 이내로 정리했고, 아니스에게 접수한 용병단은 개인정보라 함부로 내어드리는게 아닌데……"

아비시니안은 수줍게 클라인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클라인 님은 황궁에서 일하시는 분이시잖아요. 당연히 드려야죠."

클라인이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비시니안 양."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아비시니안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용병단의 부대 위치를 물어봤을 때 이 남자에게 넘어가긴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었으니까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니스에게 제출된 고용 지원서 사본을 보여주는 것은 달랐다.
용병들의 개인 이력이야, 캐내면 금방 나오는 정보이니 상관없었다. 내가 유출한지도 모를 것이다. 지원자들 중에서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고용주인 아니스는 상당한 자산가였다. 이 경우는 용병들만의 정보가 아니라 아니스의 정보이기도 했다. 이런 이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위험했다.

아니스의 용병단 구인 글을 사무소 앞의 게시판에서 보고 경쟁자들을 파악하려 그런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아니스에게 지원한 용병단에 관해서도 물어왔을 때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클라인의 어두워진 표정에 마음이 아팠지만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그러다 잠시 고민하던 클라인은 갑옷 안쪽에서 표식 하나를 꺼냈다. 제국 기사단의 표식이었다.
그는 제국 기사단의 사단장 클라인 카스펜서라고 밝혔으며, 공무 중으로 협조 부탁한다 말했다.

아비시니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이 남자가 그 유명한 카스펜서 백작이라고? 백작이란게 보통 이렇게 젊은 사람이 하나?


그는 클라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잘생겼다.

아비시니안은 서류를 준비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라도 이 일로 무슨 문제가 생기거든, 제 이름을 대시면 됩니다. 사례는 사무소에 보내겠습니다."


"네에………."

사례라는 이름의 뇌물을 약속하고 클라인이 사무소를 나가려 하자, 그는 은색의 안경줄이 흔들릴 정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 클라인 님! 잠시만요!"

아비시니안의 큰 소리에 이목이 쏠릴까 싶었는지, 클라인은 발걸음을 멈춰 접수대 쪽을 돌아보았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저와 다음에 차 한잔하실 수 있나요?"

수줍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그에게 클라인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곤 그는 일행과 밖으로 나갔다.

아비시니안은 깔끔하게 차였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차일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연애에는 통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자신이 연애에 관심 없는게 아니라 마음에 차는 사람이 지금껏 없었던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차 정도는 같이 마시지 그랬어요~"

"아나스타샤…."

"하하……. 뭐, 꼭 날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을 받아줘야 된다는 법은 없죠. 그냥 그런데 나가서 놀다 오는 거 재밌잖아요~ 저는 그런데…. 거기다 거절할 땐 거절하는 걸 보니,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그 사람, 널 엄청 좋아하던데."

 

옆에서 아도니스가 키득거리며 말하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던 클라인의 눈빛은 순식간에 무섭게 바뀌었다.

 

'아앗……. 이 분위기를 만든 이번 원인은 난가. 이런…….'

 

머리를 긁적이며 클라인이 받아온 서류를 내려다 보았다.


아나스타샤들은 조금 한산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근처 벤치에 앉은 아나스타샤의 머리 위에 피요르가 올라앉아 같이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서류 내용에 따르면, 6개월 이내의 창단한 부대로 청갈기 용병단과 금사자단이 있네요. 부대 설명을 보면, 청갈기 용병단은 마법사들 위주로 편성된 곳인가 봐요. 이력은 신생 치고는 상당한데요? 새 용병단에게 이런 임무를 맡기는 곳도 있구나……."


"흠, 보통 지인이 있지 않고서야 얻기 힘든 임무들이군요."


"그리고 금사자단은 근접 전투원 위주로 인원이 편성된 부대네요. 대부분이 전사예요. 이력은…… 딱 창단된 지 6개월 차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청갈기뿐이려나?"


"아니요, 근접 마법도 있으니 금사자단도 마법사가 아예 없지는 않을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서류를 보았다. 아니스에게 지원한 용병단들이 적힌 서류였다.

 

갤러스가 이번 일로 인해 아니스가 새 용병단을 구하려 했다고 했었던가? 마침 부대 사무소 게시판에도 구인 글이 있기에, 혹시나 해 가져왔다.

"그다음, 아니스에게 지원한 용병단인데요. 갤러스 씨가 말한 적벽 화격대랑 잿빛 기사대, 청갈기 용병단이 있네요. 이곳에 지원한 걸 보니 청갈기 용병단은 신생인데도 실력에 꽤 자신 있나 봐요. 아까 이력도 그렇고."


"처음부터 숙련된 자들만 모은 걸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화려한 이력도 이상하지 않군요. 용병 일을 하며 쌓아둔 인맥이 있을테니."


"그럴지도요. …적벽 화격대의 일부 구성원은 붉은 흙 보병대에서 일했던 이력이 있는 저격수들이네요. 전체적으로는 레인저 하프오크들이 많아요. 저격수라면, 꼭 활이 아니더라도 원거리 마법사가 있을 수 있겠죠?"

아도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잿빛 기사대. 이쪽은 경력이 특이한데, 근위대나 제국 기사단에서 일했다가 정년퇴임을 한 자들이 주를 이루네요. 연령대도 높아요. 이쪽도 마법을 쓸까요?"


"근위대나 기사단은 보통 마법을 쓰지 않습니다. 마법 부대가 별도로 있으니까요."


"맞아요."

클라인의 말에 아도니스가 동의했다.

"그럼 잿빛 기사단은 제외해도 되겠네요. 애초에, 황궁에서 일했던 기사씩이나 되는 분들이,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치졸한 짓을 했다고 믿고 싶지도 않고요."

아나스타샤는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나스타샤가 일어나자, 피요르 역시 날아올라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청갈기 용병단과 금사자단, 적벽 화격대. 일단 3곳인가. 음……. 현시점에서 쾌검이랑 붉은 흙을 공격할 법한 부대는 대강 추려냈지만, 이 서류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네요. 용의자를 더 좁혀야 하는데."

고민하는 아나스타샤에게 클라인이 말했다.

"검을 구입한 용병단을 조사하는 건 어떨까 싶군요. 갤러스가 이 검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검이랬죠, 액시스에서는 양산형 검을 취급하는 대장간은 없습니다. 무기점에 판매하는 것들은 타지에서 들어온 것이죠. 그렇다면 부두에서 무역으로 들어온 검일 겁니다. 부두에서 대량의 검을 주문해 받은 용병단을 조사하면,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네요. 그럼 부두 지구로 가요."


 

권력은 어려운 난관도 해결한다

액시스의 거대한 사화산 암벽은, 부두 지구에서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는 탁 트인 바다와 하늘만이 반겨줄 뿐이었다. 해는 벌써 지기 시작해, 점차 색이 변해가고 있었다.
부두 지구에는 여러 선박이 오고 가거나 정박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항구 외에도 많은 곳이 있었는데, 주점, 부두 길드, 낚시용품 상점, 소규모 주거지나 하숙집, 조선소 (造船所) , 물류 창고 등 다양한 건물들이 자리했다.

아나스타샤들에게 각 항구의 화물들을 일일이 검사할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바로 부두 관리소로 향했다.

 

부두 관리소의 사람들도 주둔지 지구의 부대 사무소처럼, 다들 바빠 보였고, 인부들 역시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게 있다면 부대 사무소보다 훨씬 너저분하다는 점일까.


아나스타샤는 접수대로 갔다.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특정 용병단들의 수입 명세를 알고 싶은데요."

접수대에 앉아있던 무뚝뚝한 인상의 하프엘프 남자는, 아나스타샤를 올려다보았다.

"그 부대의 단원이 아니라면 알려드릴 수 없는데요."

아나스타샤, 접수원 설득, 기능판정 : d20(18)+매력(2)+레벨(1) vs 보통(15) / 성공

"……지금 황실 임무 중에 있거든요. 주둔지 지구의 소란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해요. 다른 곳에 유출하지 않을테니 부디 한 번만 예외를 둬 주실 수 없을까요?"


"흠……."

접수원은 아나스타샤를 유심히 보았다.

"오늘 아침 기사에 이런 걸 봤거든요. '황궁에서 자라지 않은 황제의 하프엘프 사생아, 후계자 선발 대회의 참가 자격을 얻다!' 뭐, 이런 거."

'그게 뭐람. 벌써 소문이 났어? 연회홀에 기자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솔직히, 우리 같은 평민들은 누가 황태자가 되어도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별로 상관없긴 한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르죠. 이제 그 사람은 평민들과 하프엘프들의, 일종의 빛 같은 존재예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당신이 아나스타샤 님인가요?"


"……맞아요."


"그랬군요…."

접수원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사실 무기 수입 명세 같은 것은, 그 부대의 전력이 드러날 수 있는 사항이다 보니 사본은 안 만들어요. 애초에 제가 도움을 주고 싶어도 못 드린다는 얘기죠."


"아………. 그럼 원본은요?"


"원본은 작성 후에 황궁에 보내져요. 하지만 서류가 아니어도 확인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 방법이 뭔가요?"


"화물 검사관 수크르스 씨를 찾아가 보세요. 그분이 입항하는 배의 화물들을 하나씩 확인하거든요. 꼼꼼하고 기억력이 좋으신 분이니 알고 계실 거예요. 음…… 이 시간이면, 2번 부두 쪽을 확인해 보세요."

아나스타샤는 정말 기쁜 표정으로 그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보면 아시겠지만, 저 역시 평민 하프엘프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이 가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칠흑같이 새까만 눈동자가 미소 지었다.


아나스타샤들은 2번 부두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거대한 선박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에서 짐을 전부 내린 후인지, 항만 인부들은 아무 데나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서류철을 들고 있는 가장 덩치가 우람한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그가 화물 검사관 수크르스일 것이라 추측했다.

"수크르스 씨 맞으시죠?"

항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아나스타샤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

"무슨 일이지?"

아나스타샤, 검사관 설득, 기능판정 : d20(16)+매력(2)+레벨(1) vs 어려움(20) / 실패

 

"이 서류에 나온 용병단의 최근 무기 수입 명세를 알고 싶어서요. 어려운 일이란 건 알지만 기억나신다면 부탁드려요."


"흥, 그런 걸 알려줘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결국 내 책임인데."

수크르스는 불쾌한 듯 고개를 휙 돌렸다. 


클라인, 검사관 설득, 기능판정 : d20(19)+매력(1)+레벨(1)+사단장(2) vs 어려움(20) / 성공


그러자 클라인이 앞으로 나서 신분을 밝혔다.

"제국 1기사단 사단장 클라인 카스펜서다. 공무 진행 중이니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수크르스의 눈이 커졌다.

"아니, 사단장님이 어찌 이런 곳에…… 흠흠, 뭐가 필요하다고요?"

그는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클라인을 바라봤다.

'일을 잘한다는 여부와는 별개로, 속이 너무 훤히 보이는 사람이네….'

아나스타샤는 신생 용병단 부대와 아니스에게 지원한 부대가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적힌 부대와 추가로,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최근 한 달 무기 수입 여부 좀 알려주세요."


"음… 청갈기 용병단이랑 적벽 화격대랑 잿빛 기사대, 그리고 붉은 흙 보병대 정도입니다. 아, 적벽 화격대랑 잿빛 기사대는 무기가 확실할 거고요. 게네들, 어디에 지원한댔는데…… 뭐, 그래서 적당한 새 무기를 대량으로 주문한 거겠죠."


"무슨 무기인지는 모르죠?"


"내용물을 하나하나 열어보진 않으니까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의심스러운 것 몇몇만 확인하죠."

수크르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청갈기랑 붉은 흙은요?"


"거기까진 모르겠군요. 아무튼 뭔가를 수입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무기는 아닌가요?"


"글쎄요, 용병단들에게 필요한게 꼭 무기뿐만은 아니니까…… 갑옷일 수도 있고, 식료품일 수도 있고, 암튼 그렇죠."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하하, 별말씀을……."

대화가 끝났음에도 수크루스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지, 클라인 쪽을 힐끗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아뇨, 아뇨!! 그저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일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듣거든요. 제가 아주 물류 관리나 직원 관리에 빠삭합니다, 헤헤…."

 

'뭐, 접수원도 그랬으니까 일을 잘한다는 건 사실이겠지…….'

 

"하지만 행정이라든가 다른 중요한 일도 잘할 수…… 아, 이거 저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군요. 아무튼, 필요한게 있으면 앞으로 저, 수크루스를 찾아주십시오!"

'내무부에서 일하고 싶으니, 말을 잘해달라는 소리군.'

실실 웃는 수크르스를 뒤로 하고, 아나스타샤들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할 겸, 2번 부두 근처의 주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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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지 않은 피쉬 파이도 있다

들어간 주점은 '피쉬 파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부두의 주점답게 가게 안에는 부두의 인부와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의외로 술을 마시는 사람보다는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많아 런치 메뉴를 파는 식당으로 보일 정도였다. 너무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그런 밝은 분위기. 주점의 조명 역시 그렇고.


아나스타샤들은 구석의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아가씨, 지금껏 식사를 못하셨는데 드셔야지요. 아무래도 이곳은, 이름처럼 피쉬 파이(Fish Pie)가 명물인 듯합니다."


"그래? 얼마나 맛있고 자신 있으면 주점 이름이 피쉬 파이일까? 한번 먹어보자. 클라인과 아도니스는 드실 거세요?"


"아나스타가 드신다면."


"저도 피쉬 파이를 먹을게요!"


"코스모스는?"


"네, 아가씨. 그럼 제가 피쉬 파이 4개,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이렇게 시켜서 미안하지만, 거기에 피요르가 먹을 야채 스틱이랑 맥주도 추가해줄래? 맥주는 피쳐(Pitcher)
로."

 

"괜찮습니다. 제가 할 일인 걸요."

 

코스모스는 싱긋, 미소를 보이고는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려구요?"


"엑, 맥주가 술이에요?"

 

아나스타샤의 반문에 아도니스는 당황했다.


"그, 그럼요. 저는 맥주도 못 마시는걸요…."


"그렇구나…. 괜찮아요, 못 마실 수도 있죠. 그리고 저 역시, 못 마시는 사람에게 억지로 마시게 하는 취미는 없어서."

갑자기 전생을 기억하는 마법사인 아도니스를 보니,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궁금한데, 저는 전…… 에도 술을 잘 마셨어요? 지금은 완전 주당인데."

 

클라인이 있어, 전생에 관해서는 말을 흐렸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딱히 숨길 의지가 없어 보였다.


"글쎄요. 사실 제가 술을 못 마시니까 같이 술을 마셨던 일이 없었어요. 저는 항상 주류(酒類)에 약했거든요. 그래도 아나스타샤가 취한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어쩌면 영혼 속까지 새겨진 주당일 수도 있다는 건가, 히히.
클라인은? 클라인은 잘 마셔요?"


"잘 마십니다."


"자신감이 넘치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왠지 클라인의 취한 모습이 꼭 보고 싶네요."

클라인은 당황하기는커녕, 씨익 웃었다.

"아가씨, 음식이 도착했습니다."

코스모스가 맥주와 야채스틱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주점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남빛 머리의 남자가 큰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들의 앞에 그릇이 하나씩 놓여졌고, 접시에는 커다란 피쉬 파이 한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와……. 진짜 맛있네요. 이렇게 맛있는데 왜 별로 안 유명하지?"


"음, 부두 지구 사람들은 생선을 지겹게 보다 보니, 피쉬 파이란 이름 때문에 잘 안 오는 거 아닐까요?"


"오……. 설득력 있는데요?"

아도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뒤, 아나스타샤는 남은 맥주를 마저 마시며 말을 꺼냈다.

"적벽이 사유도 충분하고 무기 수입도 했고… 역시 수상하지 않나요?"

 

아도니스가 거기에 동조했다.

"거기다 붉은 흙 보병대도 수입 이력이 있는 걸로 봐서는 더 의심스럽고요. 정말 두 부대가 연합한 걸 수도요."

하지만 클라인이 바로 반박했다.

"붉은 흙 보병대는 수입 목록이 검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흥, 그건 다른 부대들도 마찬가지야."

코스모스 역시 의견을 냈다.

"저는 식견이 짧아서 마땅한 이유는 대기 어렵지만, 이런 분쟁이 있는 때에 청갈기 용병단이 세 서류에 모두 포함이 되어 있는게 수상해 보입니다."


"현재까지론…… 붉은 흙 보병대, 적벽 화격대, 청갈기 용병단이 가장 수상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미 조사한 붉은 흙은 뒤로하면 적벽 화격대와 청갈기 용병단에 조사를 나가면 되겠네요. …하지만 대뜸 '너희가 원한이 있으니 범인이지?'라고 해봤자 아니라고 잡아뗄 텐데, 정황 증거 말고 확실한 물증 없으려나……."

 

증거 부족으로 고민하던 차에, 클라인이 입을 열었다.

"오전에 아나스타샤께서 말씀 나누던 남자 말 입니다만……."

아나스타샤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쾌검과 붉은 흙의 케스 시합 표를 구하지 못했던 이 말입니다."


"아아, 글래디요? 그 사람이 왜요?"


"그가 표를 구하지 못해서 암표를 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암표라는게, 팔기가 쉽지 않습니다. 판매하려면 표의 물량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거든요."

 

"그래요? 그냥 줄을 좀 일찍 선 게 아닌가요?"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투기장의 매니저들이 검투 일정과 선수를 관리하기 때문에, 그들과 유착관계가 있는 이들이 표를 빼돌려서 고가에 판매하는게 암표입니다. 한 마디로 암표 역시, 투기장의 직원이 관여되어 있다는 거지요."

 

아도니스가 턱을 괸 채 짜증을 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안 그래도 조사할 것도 많은데 투기장까지 조사를 나가자는 건가?"

 

"말은 끝까지 좀 듣지, 마법사."

 

"클라인이 뜬금없이 암표 얘기를 꺼냈을 리 없잖아요, 계속 얘기해 보세요."

 

타박을 들은 아도니스는 뾰로통 해져서는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투기장들은 국립 검투장인 제국 콜리세움을 제외하고는 각자 용병단들을 고용해 경호를 맡기고는 합니다. 그들이 표를 빼돌리기도 하지요. 만약, 현재 용의 선상에 있는 부대 중 하나라면………"

 

"그 용병단이 범인일 확률이 높겠네요."

 

"맞습니다. 그 암표만으로도, 단순한 감정적 증거가 아니라 두 부대 사이를 이간질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관한 충분한 물적 증거가 될 테니까요."

 

"더불어서 위조 검까지 찾으면 더 좋을테고요."


'내일 글래디를 한 번 찾아봐야겠어.'


"음,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해산하고, 내일은 암표상을 찾는 걸 목표로 해요."


미남과 브랜디, 그리고

늦은 밤, 아나스타샤는 자기 전에 피요르의 깃을 골라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피요르, 나 오늘 정말 크게 느꼈어. 내 말재주나 설득 실력이 아직 부족하구나… 하고. 지금껏 토벌이나 탐험만 하다가 이런 의뢰를 하니까 힘든 거 있지? 다른 후보자들은 이런 의뢰들쯤은 쉽게 해결하고 있을텐데……. 역시 황제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구나, 싶더라. 대체로 클라인이 신분을 앞세워줬기에 해결된게 많았어. 하지만 그것도 용 황제의 손 밖인 곳으로 나가면 통하지 않을테니, 정말 후계자가 되고 싶다면 노력해야겠지?"

피요르는 좋은 음색의 울음소리를 내며, 우울해 보이는 아나스타샤를 위로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문 쪽을 보았다. 코스모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가씨, 클라인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할까요?"


"응응."

코스모스가 물러나고 클라인이 들어왔다.

"레이디의 방에 늦은 시간 찾아온 무례를 용서 부탁드립니다."


"아, 하, 하…. 괜찮아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레이디란 단어에, 어색하게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클라인의 손을 보았다.

"음……. 오늘은 꽃이 없네요."


"아… 죄송합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궁금했던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어느새 자신은 클라인의 꽃에 익숙해졌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쉽긴 하네요."


"그럼 다음부턴 빠지지 않고 꼭, 챙겨 오겠습니다."

왜인지, 그는 기뻐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그 말에 클라인은 문 쪽을 돌아보며 시중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평소에 나와 코스모스의 보조를 해주는 갈색머리 하녀가 서빙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그 카트에는 브랜디
(Brandy)와 과일이 놓여있었다.

"브랜디네요? 병이 처음 보는 건데."


"저희 가문의 브랜디입니다. 엘프의 것보다는 떨어지겠지만 나름대로 자부하는 술입니다. 아나스타샤가 술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에 선물로 드리고자 준비해 왔습니다."


"와………. 백작가에서 증류한 술이면 확실히 기대되네요. 고마워요."


"원하신다면 몇 병 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시중인들은 카트의 내용물을 방 안의 테이블에 옮기고서 밖으로 나갔다. 클라인 역시, 용건은 그게 전부였는지 뒤로 돌아섰다.

"그냥 가시게요?"


"제가 이런 시간, 방에 오래 머물면 불편해하실까 싶어…."


"아니에요."

아나스타샤는 씨익 웃으며 브랜디 병을 흔들었다.

"주셨으니 같이 맛보고 가셔야죠."

클라인은 곤란한 듯 짧은 신음을 내었지만 거절하진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선반에 비치된 술잔을 2개 챙겨 와 클라인과 마주 앉았다. 그는 아나스타샤에게 술잔 두 개를 건네받은 뒤, 병을 집어 능숙하게 따랐다.

"짠해요, 짠."

클라인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아, 클라인은 이런 거 모르려나. 평민들은 다 같이 술을 마실 때 첫 잔에 이런 거 하거든요. 건배라고, 이렇게 잔을 부딪히는 거예요."

짠─

그는 자신의 잔을 클라인의 잔에 살짝 부딪혔다.

"이러면 짠 소리가 나서……. 하하, 뭐…… 그냥 마셔요. 습관이 되어서 무의식 중에 그런 거라."


"재미있네요. 건배에는 의미가 있습니까?"

 

"예?! 유래요……? 아니, 그런 걸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누가 귀족 아니랄까 봐, 세상에……. 나와 교양의 수준이 용 제국의 동서(東西)의 끝 마냥 차이 나네……. 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건배라서 건배를 했던 건데 제게 건배는 왜 건배라 물으시면 어쩌시나요.'

 

"아,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자리는 익숙지 않아서 대화 주제가 잘못됐던 것 같네요."

 

"정말요? 친구들이랑도 같이 술을 마신 적 있을 거 아니에요."

 

"네, 하지만…… 그들도 귀족인지라 대화 주제라 해봤자, 업무적인 내용을 말하거나 자신의 양조장 자랑을 듣거나 하는 겁니다. 솔직히 격을 차리지 않을 만한 상황을 만났던게 적었던 것 같군요."

 

"하하, 어쩐지……. 방금 그 질문, 굉장히 소믈리에(Sommelier)랑 대화하는 귀족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와인은 몇 년산입니까.', '24년산입니다.', 이런 느낌."

 

"그랬군요……."

 

클라인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하하, 제멋대로인 제 부탁을 들어줘서 술자리를 갖게 된 거니까, 오늘만큼은 클라인 스타일대로 맞춰볼게요. 음, 건배의 유래에 대해… 물어보셨죠?"

 

아나스타샤는 곤란한 표정을 하고선 말을 이었다.

"어…… 굳이 유래를 따지자면, 오감으로 술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누가 그랬는데, 색을 보고 향을 맡고 맛을 보고 소리를 듣는다고 했었나…. 술의 청각화?
동방의 도시, 그러니까 경성이나 뉴 포트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드워프들의 문화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어요."


"청각적으로도 즐기기 위해서라니, 운치 있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나름대로의 궤변이 꽤 설득력 있던 모양이었다. 아나스타샤가 멋쩍게 웃자, 그도 따라 미소 지었다. 두 명은 술잔을 금세 비워냈다.

"제가 아까 저녁 식사 때, 클라인이 취한 모습이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한 번 마셔볼까요, 클라인이 취할 때까지?"

클라인이 곤란해했다.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클라인이 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릴 시간 정도는 있어요."


"저도 그렇지만…… 아나스타샤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것 참. 제가 또, 술을 기깔나게 잘 마셔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나스타샤는 모처럼의 술 대결에 흥이 올랐다.

아나스타샤 vs 클라인, 술 대결, 대항판정 : d20(11)+건강(4)+레벨(1)+술꾼(3) vs d20(5)+건강(3)+레벨(1) / 아나스타샤 성공

두 명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비워내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술을 마시며 클라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새삼 그의 외모가 실감 났다.

"새삼스럽지만 이렇게 보니 잘생겼네요. 인기 많은 이유가 있네."

그 말에 클라인의 귀 끝이 붉어졌다.

"음, 그 말을 들으니 좀 빨리 취하는 기분이군요."

'클라인은 칭찬에 약한 편일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은 뛰어난데, 의외네.'

두 명은 계속해서 잔을 비워나가, 결국 가져온 병들이 바닥을 드러냈다.

"술이 일반 브랜디보다 더 독하지만, 향도 좋고 상당히 맛있었어요. 특히 이건 포도가 아니라 다른 거 같은데."


"살구로 만들었습니다."


"아아, 살구구나~ 어쩐지 술술 들어가네요."

 

"더 가져오라 지시할까요?"

 

"네, 끝을 봐야죠. ……아, 그런데 이런 술은 일 년에 몇 병 주조 안 하지 않아요?"


"네, 그렇긴 합니다."

 

"음………. 브랜디는 됐어요. 이러다 제가 하루 만에 백작가 양조장을 거덜 내겠네요."

클라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침대 밑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보드카(Vodka) 병이 꽉꽉 채워진 궤짝 하나가 나왔다.

"일전에 코스모스에게 부탁해 가져다 놨는데요……. 자기 전에 조금씩 마시려고요."

클라인은 궤짝을 처음 꺼냈을 때,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조금이 아닌데요."

 

"아무튼, 브랜디는 아껴서 마시기로 하고 이걸로 끝까지 가보죠."

클라인이 약간 망설이고 있는 것 같기에 말을 덧붙였다.

"섞어 마시는 건 자신이 없나요?"


"……아닙니다. 보드카로 마시죠."

도발이 먹혀든 건지, 그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곤 병 하나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보드카 10병째를 비워 낼 때였다.
클라인의 얼굴은 흐트러짐 없이 멀쩡했지만, 그래도 처음과 비교하면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언제나 무결해 보이는 그가 취하는 모습은, 이런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척 귀했다. 아나스타샤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민망한 듯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신기하게도 얼굴색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나스타샤는 정말로 검투장에 가 본 적이 없으신가요?"


"네. 정말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액시스에서 평생 것 살아왔으면서요. 특이하죠? 근데 클라인은 검투장 암표에 대해서도 잘 알고, 투기 종목에 관심이 많나 봐요."


"암표상도 몇 번 잡아 본 적 있고, ……그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간간이 검투 경기를 관람하곤 합니다. 물론 투기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검투 경기지, 투기 종목이 아니니까요."


"오……."

클라인은 한 템포 정도 말을 쉬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데, 언제 한 번 저와 같이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좋아요."

아나스타샤의 빠른 대답에 살짝 놀랐지만, 어쨌든 그것이 수긍의 대답이었던지라 클라인은 만족했다. 그가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아나스타샤가 조금 더 빨랐다.

"…아도니스랑 코스모스랑 클라인이랑 다 같이 보러 가면 재밌을 것 같아요. 임무를 전부 마치고 시간이 남으면
보러 가는 거 어때요?"

'다 같이'. 클라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네, 재밌겠군요. 그때 보러 가죠."

그 말을 끝으로 남은 보드카를 계속해서 마셨다.

 

하지만 결국 궤짝으로 향한 아나스타샤의 손이 허공을 휘젓게 되는 순간이 왔다. 궤짝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어, 어…… 다 마셨네…."

나름 액시스의 술꾼으로 유명했던 아나스타샤는 취기가 상당히 올라온 상태였다. 클라인이 본인의 생각보다, 잘 마신 탓도 있으리라.


아나스타샤는 술을 가져다 더 마실 건지 묻기 위해 클라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취해서 잠들었나 보네. 제가 술 대결에선 이겼네요, 클라인. 하암…."

그 역시 잠이 오는지 하품이 절로 나왔다.

"근데 여기서 이렇게 자면 목 아플텐데……."

의자에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꾸벅이는 클라인을 들어 어깨에 들쳐 메어 침대에 조심히 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클라인은 꽤 깊게 잠든 건지, 잠에서 깨지 않았다.

 

"음…… 적당히 옆에 누워 자도 괜찮겠지."

 

전혀 괜찮을 리 없었으나, 그런 생각을 할 정신은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그 옆에 몸을 던져 엎드린 채로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넓으니 두 사람이 누워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자리에 눕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감겨가는 눈꺼풀 사이로 클라인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그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단순한 기분 탓 일거라 여기곤 눈을 감았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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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1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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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1

 

 


"안타의 16번째 생일을 위하여!"
""위하여!""
"지금 같은 날이 언젠가 또 올까?"
"너희들이 그때까지 살아만 있다면야."
"하하하! 이 중 몇이나 살아있는지 나중에 보자고."

 


 

첫번째 지령서

아도니스, 카스펜서 저택 출입, 기능판정 : d20(2)+매력(-1)+레벨(1) vs 보통(15) / 실패

이른 아침부터 저택 밖이 소란스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니 대문 앞에 아도니스가 보였다.

"아도니스! 거기서 뭐해요?"


"아나스타샤!"

아도니스가 손을 흔들며 방방 뛰었다.

 

아나스타샤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때마침 클라인이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내 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게 보였다. 그는 오늘도 품 안에 꽃을 한아름송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곤 아나스타샤와 눈이 마주치자 안고 있는게 꽃인지 미소가 꽃인지 모를 정도로 화사하게 웃었다.


"클라인."


"편하게 주무셨습니까?"

아나스타샤는 흰색 메꽃을 건네받았다.

"그럼요, 근데 밖에 아도니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클라인의 미소는 잠깐이지만 금이 갔던 것 같다.

"…들어오게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클라인이 시킨 걸 거예요~"

아도니스는 방에 들어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아나스타샤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아도니스와 주인의 허락 후에 들여보낼 수 있다고 강경하게 맞서는 집사와의 신경전이 있었다고.

"아마 고의는 아니고, 클라인은 정원에 있어서 좀 오래 기다리게 한걸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화병에 꽂아 놓은 메꽃을 슬쩍 보며 말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숙녀의 방에서 남의 뒷담화는 적당히 하시지."

개인적인 업무를 마친 클라인이 돌아왔다.

"이제 앞에 있으니까 앞담화네. 됐지?"


"하하……. 그럼 다 모였으니 지령서 확인이랑 앞으로에 대해 얘기해보죠."


"네,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기 좋을만한 곳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클라인이 안내한 곳은 작은 회의실이었다. 분위기도 좋고 모여서 이야기하기도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뒤편의 책장에는 역사나 전술 자료도 많아 보였다.

클라인은 회의실 탁자의 상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앉으시죠. 아나스타샤의 자리입니다."

아나스타샤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코스모스는 각자의 자리에 레몬밤 티를 준비해 주었다. 내려진 차를 홀짝였다. 특유의 상큼한 향을 느끼며, 지령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하나, 주둔지 지구 내 소란을 잠재워라.
서로 붙어있는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 두 부대 사이의 갈등이 심각할 정도로 커져 유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두 부대를 중재해 액시스의 치안 강화에 힘써라.

하나, 엘돌란의 황토젤리를 처치해라.
황토젤리라는 것이 엘돌란의 하수구를 막고 있다고 한다.
거리의 미화에 보태어라.

하나, 재무부를 도와라.
최근 지출 부서로 옮겨진 제국의 재무대신 돈슨 트리스의 요청이 있다.



"굉장히 간략하네요…."


"이미 지령이 떨어진 걸 의뢰자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세부사항은 직접 움직여 조사하라는 의미겠죠."

클라인은 지령서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효율적인 순서로 움직여야 합니다. 주둔지 관련 임무와 재무부 요청을 우선 하는게 좋겠군요. 주둔지 지구의 상황은 직접 확인해야겠지만, 재무대신인 돈슨 트리스는 트리스 자작의 남동생이니 제가 추후에 저택으로 직접 부르겠습니다."

아도니스 역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다음은 엘돌란이 좋겠어요. 엘돌란호라이즌 근방에 있는 소도시거든요."


"그럼 정해졌네요. 돈슨 재무대신은 저택으로 불러 내일 보기로 하고, 그다음 엘돌란. 오늘은 주둔지 지구로 바로 가볼까요?

모두들 동의하고, 일행은 바로 남부 주둔지 지구로 향했다.


액시스의 주둔지 지구

주둔지 지구는 액시스에서 가장 넓은 지구답게 그 안에는 수많은 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웅장한 건물부터 천막으로 이루어진 캠프까지. 외에도 각종 길드와 사무소, 주점이 즐비해 있었다.


이곳은 실제로 그렇게 나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북부와 남부 주둔지 지구를 구별해서 부르곤 했다.

그 이유로는 북부는 주로 투장 같은 표상들의 사절단, 고위 귀족의 사병, 도심을 순찰하는 제국의 3, 4 기사단 등이 자리했고, 남부는 주로 용병들이나 모험가 길드들이 주로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남부 주둔지 지구에도 유서 깊은 부대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주로 액시스에 갓 자리 잡은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일반 부대로 생각되는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는 남쪽에 자리했을 거라 생각하고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둔지 지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도니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곳에서 특정 부대를 찾는 것도 일이네요."


"이럴 때는 부대 사무소를 찾아가면 돼요."

용병 일을 하며 터득한 지혜였다.

"와, 역시 아나스타샤는 박식하시네요!"

아나스타샤는 부대 사무소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의 표지판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의 귀에 익숙한 단어가 들어왔다.


"하……. 일찍부터 줄 섰으니 이번에야말로 쾌검이랑 붉은 흙의 케스 표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암표를 사야 하나……."

쾌검과 붉은 흙. 그들이 찾던 부대의 이름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말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나스타샤?"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군중 속에 섞여 들려온 혼잣말을 들은 사람은 아나스타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잠시만요."

아나스타샤, 소리 진원지 탐색, 기능판정 : d20(16)+통찰(0)+레벨(1)+뒷전 출신(4) vs 보통(15) / 성공

아나스타샤는 근원지를 단숨에 찾아냈다. 뒷전에 전전하며 소매치기를 하든 소매치기를 잡든 했었던 수색 실력이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한다는 쾌검이랑 붉은 흙의 케스…… 어디서 하는지 알아요?"


"어? 으음… 그건 왜 물어?"

"아~ 사실 그 케스 경기 보는게 처음인데, 아무래도 첫 경기는 인기 있는 걸 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입소문 좀 탔길래~"

"처음? 하하, 이 아가씨 처음이라는 사람 치고 제대로 골랐네~ 그래그래, 지금 예정된 경기 중에는 굽은날에서 하는 쾌검붉은 흙의 대결이 가장 볼만할 걸!"


남자는 정말 귀한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좋아했다.

"투기 종목들은 말이지, 솔직히 대부분이 돈 벌려고 짜고 치는 수작질이지. 난 그런 '가짜' 에는 관심 없단 말씀이야. 하지만 쾌검 용병단붉은 흙 보병대? 얘넨 진짜지."

 

"진짜?"

 

'역시 쾌검과 붉은 흙이 용병단을 말하는 거였어. 좋아, 잘 찾았다!'


"요즘 그 녀석들 사이가 무시무시하거든. 아마 검투장에서 케스로 부대끼리 맞붙을 생각인가 봐. 이렇게 된 이상, 한 부대가 전멸할 때까지 싸울걸? 그러니까 '진짜'라는 거지. 뭐, 이제 표는 구하기 어렵겠지만. 나도 못 구했거든."


"그래요? 아쉽게 됐네."

 

남자는 신입처럼 보이는 아나스타샤에게 케스에 대해 마음껏 알은체 할 수 있어 기분 좋아 보였다. 투기라는게 늘 그렇듯이, 이쪽도 워낙 고인물이 많은 곳이니까.

 

아나스타샤는 이왕 잡은 기회, 놓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우리 같은 구경꾼이야 그렇다 치지만, 그들은 그렇게 싸워서 얻는게 뭔데요? 돈과 자존심?"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경기가 끝나면 더 얼굴 맞댈 일 없다는 점 때문 아닐까? 게네들, 부대만 붙어 있는게 아니라 같은 고용주 아래서 일한다고 들었거든."


"그렇구나. 뭐, 알려줘서 고마워요."


"헤헤, 한 명이라도 더 투기 종목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늘면 나야 좋거든. 특히 아가씨처럼 귀여운 엘프가 먼저 말 걸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겠어? 아, 내 이름은 글래디야. 혹시 내가 싸우는 졸에서 그 케스 표를 구해오면 같이 보러 갈래?"

글래디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갑작스럽게 작업을 걸어왔다.

그 광경을 멀리서 묵묵히 지켜보던 클라인과 아도니스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글래디를 쳐다봤다. 물론 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음, 평소였다면 심심하니까 한 번 정도는 같이 보러 갔을 텐데. 지금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니에요. 지금은 일행이 있어서."


"아아, 그런가. 아쉽네…."

 

정보를 얻을 만큼 얻었다고 생각한 아나스타샤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래도 보답은 하는게 좋겠지. 빚지고 사는 건 싫으니까.'


"당신도 아무리 그게 괜찮은 경기래도 굳이 암표까진 사지 마요. 암표는 환불도 못 받을 텐데, 취소되면 돈이 아깝잖아요?"

글래디는 뭔가 알고 있는게 있냐고 물어봤지만, 아나스타샤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쾌검 용병단붉은 흙 보병대요, 아무래도 케스 경기가 잡혀 있는 것 같아요."

 

"케스요?"

 

아도니스가 물음표를 띄웠다.

 

"케스(Khess)는, 쉽게 말하자면 진짜 사람이 말 역할을 맡은…… 체스(Chess) 같은 거예요. 우두머리의 전술 실력을 보기 위한 작은 전쟁이죠."

 

"흐음, 결국 두 용병단이 사이가 어떻건 검투장 내에서 싸우는 '경기'라는 거잖아요? 별문제 아닌 것 같은데 굳이 황실까지 나서서 중재해야 하나?"

 

"듣기로는 같은 고용주 밑에서 일한다고 하던데요. 제가 용병 일을 해봐서 아는데, 이런 경우엔 서로 공적을 가져가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하거든요. 지금껏 사사로운 분쟁이 있었던 거겠죠. 결국 케스로 마지막 승부를 내기로 한 거겠고. 경기 전까지도 상대 인원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암투 중일 거예요."


"검투장 밖에서까지 싸움이 연장되어 분란을 만드는게 문제라는 거군요."

설명을 들은 아도니스는 금세 납득했다. 그 사이, 부대 사무소에 도착했다.


사무소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무소의 파티션 안쪽에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하는 이, 책상에 앉아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와 접수대의 직원에게 화를 내는 누군가와 연신 죄송합니다를 읊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깥쪽도 마찬가지였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각자의 용무를 처리하는 이들, 무언가 풀리지 않는 건지 연신 씩씩거리는 이도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은 접수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아나스타샤는 책상 위 서류에 파묻힌 채로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적갈색 머리의 접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병영 위치를 알고 싶은데요."

하지만 접수원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접수원의 가슴에 있는 명찰을 보았다.

"아비시니안 씨, 병영 위치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잖아요? 아니면 대략적인 위치가 기재된 최근 지도라도 주시면 좋겠는데."


"하……. 바빠 죽겠는데 여기서 그런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 써 드려야 하나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갈 수도 있잖아요."

퉁명스러운 대답에 살짝 열이 올랐지만, 더 화가 난 아도니스를 말리느라 오히려 차분해졌다.

 

두 명이 접수원을 회유하기 어려워 보이자, 뒤에서 지켜보던 클라인이 나섰다.

"레이디, 바쁘시겠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물어가기에는 주둔지가 복잡하니, 아비시니안 양이 도와준다면 수월할 것 같습니다."

클라인, 접수원 설득, 기능판정 : d20(14)+매력(1)+레벨(1)+귀족(3)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은 능숙한 예법으로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접수원은 아나스타샤가 그랬었듯, 웬 레이디 소리인가 싶었는지, 안경을 고쳐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비시니안은 놀랐다. 잘생겨서. 그의 취향이었다. 갑옷 입은 기사치고 깔끔하고 훤칠한 저 인상이. 다정한 목소리와 미소가. 아니, 저렇게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저리 다정한 눈빛으로 웃을 수 있지?


접수원은 갑자기 목소리와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그 정도야, 뭐... 주둔지에 낯선 사람을 안내하는 일도 접수원의 일이죠. 지도는, 여기 있어요."

아래쪽 서랍을 뒤적이는 듯싶더니 곧바로 지도가 나왔다. 확인하기 쉽도록 두 용병단의 표식(標識) 역시도 같이 주었다.

"그곳에 찾아가시는 거라면 조심하는게 좋을 거예요. 최근 가장 분쟁이 많은 용병단들이거든요. 싸움에 휘말릴지도 몰라요."


조언을 받고 부대 사무소를 나왔다.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에게 달라진 접수원의 태도에 대해 조용히 속삭였다.

"미인계가 효과적이네요."

클라인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아나스타샤에게도 통할까요."


"네? 어, 네???"

통한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 저런 녀석의 마수에 빠지면 안 돼요! 미인계라면…… 저도, 자신 있어요!"

 

아도니스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미인계라……. 클라인이 인상이 짙고 강렬한 미남이라면, 아도니스는 섬세하게 조각된 가련한 미남이지….'

"자기 주도적이고 활동적인 아가씨에게는 오히려 조신하고 내조를 잘하는 사람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말씀만 하신다면 언제든지 그런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겠습니다."

……라고 신성족다운 고고한 품새로, 전혀 고고하지 않은 말을 했다.

'조신하고 내조를 잘하는 사람은 코스모스…? 본인을 데려오겠다는 걸까.'

계속해서 세 명의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결국 아나스타샤는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려 등을 돌렸다.

"잘생기고 의지 되는 분들이 곁에 있으니 참 든든하네요! 하하! 빨리 용병단 부대로 가죠!"

아나스타샤는 어색하게 삐걱 거리며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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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흙 보병대와 쾌검 용병단

아나스타샤들은 제일 먼저 붉은 흙 보병대로 향했다. 병영에 도착할 즈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주변을 감쌌다. 여기저기 흐트러진 보급용 박스, 부서진 집기, 군데군데의 혈흔.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피요르를 날려 보내 주위를 살펴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요르는 따라오라는 듯 빙빙 돌며 신호를 보냈다. 무언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나스타샤들은 피요르를 따라 발을 옮겼다.

피요르를 따라간 골목엔 시체 두 구가 있었다. 죽고 시간이 꽤 흘렀는지 피가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아나스타샤, 시체 조사, 기능판정 : d20(1)+통찰(0)+레벨(1)+뒷전(4) vs 보통(15) / 실패

 

"왠 시체지……."

 

아나스타샤는 눈살을 찌푸렸다.


클라인, 시체 조사, 기능판정 : d20(20)+통찰(0)+레벨(1)+사단장(2)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은 제국 기사단으로서 각종 범죄의 수사에도 참여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현장을 둘러봤다.

"이 옷은… 표식을 봐서는 붉은 흙 보병대의 유니폼일 겁니다. 그리고 상처 부위에 찔린 검은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새겨져 있군요."


"관리소에서 두 용병단의 표식을 줬었죠. 정확히 일치하네요."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습격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고 보니 이 검, 상처 위에 한 번 더 찌른 것 같습니다. 두 상처의 크기가 다른 거로 봐서 첫 습격은 이 검으로 한 게 아닐테지요."


"음, 확인 사살 차 한 번 더 찌른 걸까요?"


"그럴지도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죠."

아도니스, 시체 조사, 기능판정 : d20(14)+통찰(1)+레벨(1) vs 보통(15) / 성공

아도니스도 무언가 발견했는지 클라인의 옆에서 거들었다.

"미약하지만 시체에서 마력이 느껴져요. 첫 상처는 마법으로 인한 상처란 소리겠죠."


"범인은 마법사인가……."

그때,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체와 같은 옷을 입은 하프오크 3명이었다.

"아까 입구 쪽 봤어? 또 침입자가 있던 모양인데."

 

"보나 마나 쾌검의 쥐새끼들이겠지. 아직 숨어있는 거 아냐? 그게 녀석들이 제일 잘하는 짓이잖아."


"어? 저 시체는…? 너희 뭐야!"

아나스타샤, 붉은 흙 보병대 설득, 기능판정 : d20(5)+매력(2)+레벨(1) vs 보통(15) / 실패

 

"아, 저희는……"

 

셋 중 하나가 아나스타샤의 말을 자르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설마 쾌검 용병단 녀석들이냐!? 이 녀석들, 우리들 앞에서 잘도…… 뻔뻔하군!"


클라인, 붉은 흙 보병대 설득, 기능판정 : d20(17)+매력(1)+레벨(1)+사단장(2) vs 보통(15) / 성공

"눈이 있다면 제대로 보는게 좋겠군. 나는 제국 기사단의 사단장이다."

클라인이 아나스타샤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갑옷을 본 그들은 저들끼리 쑥덕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황궁에서 쾌검 용병단을 처리해줄 사람을 보내준댔어."


"그랬었나?"


"맞아, 이 멍청아!"

 

하프오크치고 얍삽하게 생긴 남성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고 헤실거리며 다가왔다.

 

"황궁에서 오신 분들이셨군요, 하핫…. 대장님께 볼 일이 있으신 거라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만, 그 시체는 대체……"


"우리가 왔을 땐 이미 죽어있었어. 피를 보면 죽은 지 꽤 됐다는 것쯤은 너희도 알겠지? 조사 차 보고 있던 것뿐이야. 범인은 잡아야 하잖아?"

 

아나스타샤는 그가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든 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무례한 사람에게  굳이 예의를 지키려 노력하진 않았다. 지금처럼.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동료의 시체를 묻어주러 가겠습니다."

 

아나스타샤들은 그들이 시체를 수습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골목에서 나왔다.

"그럼 보병대 대장을 만나러 가보죠."


보병대의 대장은 아랫 송곳니가 눈에 띄는, 부라타라는 이름의 하프오크였다. 그는 부하 두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끝까지 화나 있는 상태였다.

"젠장!! 쾌검 용병단 자식들…. 하다 하다 내 부대 코앞에서 일을 벌여?!"


"쾌검 용병단 표식의 검이 있긴 했었죠. 이 일에 대해서는 저희가 가서 조사해보도록 할게요."


"조사는 무슨 조사? 이미 증거가 있잖아! 당장 때려 부숴도 시원찮을 판국에!"

아나스타샤는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래서 저희가 가보겠다는 겁니다. 부라타 씨는 지금 너무 흥분해 있어요. 대외적으로는 붉은 흙 보병대가 과격하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용병에게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대장인 부라타 씨가 더 잘 아실 거잖아요."

부라타는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더 이상 막무가내로 가겠다고 우기진 않았다.

그가 어느 정도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아나스타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몇 가지 물어볼게요. 그들이 공격하는 사유에 대해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요?"


"후………. 본래 한 고용주가 두 용병단을 고용하는 이유는 일종의 경쟁심을 부추겨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지. 근데 우린 싸울 일이 없어. 할당된 업무 자체가 다르거든. 그런데도 이런 짓을 벌인다는 건 우리가 아니꼽다는 의미일 거다. 우리가 하프오크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니까. 하프오크들이 인간인 자기들이랑 같이 일하는게 싫다는 거겠지. 빌어먹을 종족 차별자 자식들."

부라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제국은 여러 종족들을 수용하고 아우른다곤 하지만 실상은 달랐으니까. 드라켄할 같은 괴물들의 도시가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었다. 그나마 인간형 종족들에게나 조금 나은 정도일까.

 

하프오크는 괴물형 종족 중에 가장 인간들에게 호의적인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파악하려 한다면, 인간들이 주를 이루는 제국의 주적 중 하나인 오크두령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하프오크와 달리 오크들은 오염된 땅에서 전염병 퍼지듯 자연 발생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오크두령은, 그 오크들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오크이자 수장이고.

 

오크들은 분명, 오크두령을 따르지만 하프오크들은 모두가 그를 따르지 않는다. 하프오크들은 엘프나 드워프처럼 신성한 곳에서 자연 발생하거나 그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이들이다. 그래서 각자의 신념과 사상에 따라, 큰드루이드를 섬기기도 하고 붉은 흙 보병대처럼 제국의 도시에 모여 황제의 휘하에서 용병 일이나 여러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프오크들과 오크들이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 인간들을 배신하고 오크 두령 휘하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면서.

애초에 그들은 하프엘프가 엘프와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들은 황제나 대마도사, 대사제 같은 제국의 균형들 아래에 있지만은 않는다. 그림자 대공 아래에서 일하는 인간도 있고, 인류를 배신해 시체왕 같은 악의 표상 휘하에서 일하는 인간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인간을 보면서 언젠가 시체왕의 힘에 빠져 배신할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이종족(異種族)들에게 내리는 판단은, 너무 쉽게 진행되곤 한다.

……어쨌든 부라타가 차별을 근거로 삼는 이유는 충분했다.

"흠, 그런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라타는 아직도 뭐가 더 남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죽은 부하들이요. 검에 찔리기 전에 마법적인 흔적이 남아있더라고요. 쾌검 용병단이 마법을 쓸 수 있나요?"


"하, 글쎄. 그 인간 녀석들이 마법을 쓰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근데 세상에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야 많잖아? 걔네도 마법사 한 명 정도는 있겠지."


"그렇군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해결해서 다시 찾아올게요."


"……그래. 우리가 피해자라는걸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주라고."


붉은 흙 보병대 다음은 쾌검 용병단이었다. 한쪽의 의견과 정황만 확인할 수 없으니까. 아나스타샤들은 바로 쾌검 용병단 병영으로 향했다.

"지금까지의 얘기만 들어보면 확실히 쾌검 용병단이 수상하긴 하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아나스타샤의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었다.

'진짜 범인이라면, 과연 자신의 용병대 표식이 새겨진 검을 남겨두고 갈까? 일부러 잡으러 오라고 하는 것 같아.'

쾌검 용병단의 병영은 붉은 흙 보병대의 병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으니, 지나가며 얼마나 으르렁댔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아나스타샤들은 단원들의 안내를 받아, 단장인 갤러스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붉은 흙 보병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관련해서 조사 차 왔습니다."


"왜, 그 녀석들이 우리가 범인이랍니까? 하! 미치겠네. 누명 좀 작작 씌우라고 해주십쇼. 누구는 피해 안 본 줄 알겠네."

갤러스는 정말로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가짜라면 완벽한 연기자일 거다.

"곤란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주변인들 조사는 필요하니까요. 바쁘시겠지만 협조해 주세요. 아니라고 판명되면 더 이상 소란에 휘말리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휴……. 뭡니까, 그래서."


"죽은 이들에게서 이 단도가 나왔거든요. 이걸로 두어 번 찔린 거 같은데, 본 적 있는 검인가요?"

이들이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엔 아직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혹시 모르니 이번 사건의 내용의 일부를 숨기기로 했다.

"허, 이거 우리 표식이네? 뭐야… 전혀 본 적 없는 검인데? 저희는 안 씁니다, 이런 검."


"위조품일까요?"


"그렇겠죠. 표식 정도야 병영 앞 깃발에도 그려진 거 아닙니까. 하지만 검은 저희의 설계도를 이용해 액시스의 대장간에 의뢰해 만들어 냅니다. 저희에게 검은 중요하니까, 이런 막검에 굳이 표식까지 박아서 쓰진 않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검 말고 다른 무기는 안 쓰나요? 활이라든가, 지팡이라든가."


"하하, 저희 용병단 이름이 왜 쾌검 용병단이겠습니까. 이곳의 인간들 전부 검을 쓰는 녀석들입니다. 마법을 쓰지 못해도! 신성력을 쓰지 못해도! 검 한 자루로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정말 아무도 마법을 못 쓴다면 아도니스가 말해줬던 흔적은 뭐지? 역시 제 3자? 아니면…….'

"그럼 갤러스 씨 생각엔 누가 이 사건의 범인 같다고 생각하세요?"

아나스타샤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 녀석들이 우릴 쫓아내기 위해서 자작극을 벌인 거 같은데요.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자식들, 벌써 몇 번째 피해를 봤다고 우겨대는지, 원."

지난 일들을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당신들을 쫓아내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저희 고용인이 아니스란 남자인 건 아십니까? 그 사람은 굉장한 부자로, 용병들에게 주는 보수도 짭짤하기로 유명하죠. 게다가 일도 쉬운 편이고…. 어떤 부대던 아니스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한달까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붉은 흙 녀석들과 친한 부대 중에서 적벽 화격단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 녀석들, 좋은 물주를 필요로 하던데… 분명 그 녀석들과 짜고 치는 걸거라고요."

아나스타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아니스가 부대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또 구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


"아뇨, 그 사람에겐 정확히 2부대가 필요합니다. 저희가 나가떨어지면, 붉은 흙 보병대가 아니스 님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적벽 화격대를 채용하리란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죠. 하……. 그래요, 붉은 흙 녀석들이랑 분쟁 때문에 아니스 님이 새 용병단을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시합에서 진다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데………."


"적벽 화격대인가……. 그럼 붉은 흙 보병대랑 적벽 화격대를 제외하고, 당신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부대나 사람은요?"


"음, 글쎄요. 너무 많아서……."


"너무 많다?"

아나스타샤는 놀라 되물었다.

"아무래도 신생 부대들은 전부 기존의 부대들에게 불만이 있겠죠. 주둔지 지구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기존 부대들 때문에 병영이 조각조각 나 있는 곳도 있고, 아예 부지를 빌리지 못하는 곳도 있고 그럽니다. 그런 놈들은 저희가 아니라 누구든 나가면 얼씨구나 좋다 하겠지만요."

납득가는 내용이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요."


"별말씀을. 아무튼 저희는 잘못 없으니까 누명만은 씌우지 말아 주십쇼!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갤러스 씨 덕분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게 됐네요."


"그러게요, 자작극일 수도 있다니. 부라타란 오크,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 말고도 다른 용의자도 있었지."

아나스타샤는 두 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정확한 목록을 수집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코스모스가 의견을 제시했다.

"신생 부대 목록을 얻으시려면, 다시 부대 사무소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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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4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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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Prologue4

 


당신의 15번째 열의.
꺼지지 않는 작은 희망.

 



용비늘 연회홀의 문지기는 아나스타샤의 초대장을 확인하곤 들여보내 주었다. 피요르도 데리고 갈 수 있나 궁금했는데 문지기들에겐 작은 새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복도로 들어가 연회홀의 내문 !(內門) 근처로 가자, 황성의 시종장으로 보이는 귀족이 아나스타샤를 맞이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듯 귀족의 눈썹이 씰룩였다.

"반갑습니다. 다리오 비녹스입니다. 제가 식견이 짧사오니, 영애의 가문과 존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나스타샤. 하이엘프 오델리 캄랜드의 딸이며, 밝힐만한 가문이나 작위는 없습니다."


귀족은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귀족도 아닌 자가 후계자 선발 대회에 초청받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다리오는 뛰어난 시종장이었다.  그는 큰 문제를 만들지 않으며 사교계에서 상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데 능수능란했다.

다리오는 자신의 뒤에 대기하고 있는 시종이 아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여자 한 명을 불렀다. 신성족이었다.

"이 사람은 네가 보필하며 안내해라."


"네, 반갑습니다. 아가씨. 황궁에서 일하는 하녀 코스모스 페레즈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는 미천한 신분이니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 그래요, 아니, 알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는 이에게 하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경험도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지. 이곳의 규칙에 따르자. 나는 선발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니까.'


아나스타샤는 잠자코 안내하는 코스모스를 따라갔다.


기대가 클수록

안내받은 곳은 홀의 가장 가장자리였다. 이곳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앉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좌(御座)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단순히 자신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인사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라 여겼다.


홀을 둘러보면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제각기 무리 지어 모여서 홀에 마련된 핑거푸드를 먹거나 샴페인을 마셨다.

대부분이 이런 곳이 익숙해 보이는 이들로, 쭈뼛거리며 서있는 아나스타샤와 대조되었다. 구석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는 아나스타샤는 제법 눈에 띄었는지, 간간히 사람들이 흘긋 쳐다봤다. 아나스타샤는 그럴 때마다 일행을 기다리는 척 입구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느껴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어제 옷이라도 맞추길 잘한 것 같아. 옷마저도 평소처럼 주워 입었으면 더 눈에 띄었을지도.'

지금의 그는 화려한 귀족까지는 아니어도 궁전 지구에서 근무할 법한 병사나 기사처럼 보이기는 했다. 사실 아나스타샤의
얼굴은 차려입기까지 해서 그런지 눈에 확 띄는 외모였다. 즉, 아나스타샤가 시선을 받는 이유는 비단 낯선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란 소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입구 복도의 방향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러더니 문이 열리고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가 팡파르 소리와 함께 등장하였다.

황제 부부가 한걸음 내디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아나스타샤도 황제가 지나가는 순간에 맞춰 눈치껏 인사를 표했다.


황제의 뒤에는 액시스 내에서 볼 수 있었던 제복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모양의 제복을 입은
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근위기사대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앞서 말한 익숙한 제복을 입은 제국기사단이 있었다.

 

기사단의 맨 앞에는 아나스타샤가 잘 아는 얼굴이 있었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의 회청색 눈동자.

"클라인…?"

그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했지만,
이내 클라인이 황궁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애초에 이곳까지 그와 같이 왔었다.

많은 기사들을 이끌고 어좌에 도착한 황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모여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전부 차기 후계자에 맞는 자격이 있으며, 또한 그 자리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겠지."

다들 숨죽이고 울려 퍼지는 말에 집중했다.

"후계자 선발은 짐뿐만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조건으로 뽑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원이 많아서야 오늘 안으로 한 명을 가려낸다는 건 불가능할 테지. 오늘 모여달라고한것은 참가를 희망하는 후보들 중에서 일부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그 말에 갑자기 연회홀 안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시작도 전에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일까.

"조용히 하시오!!"

황제 옆,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늙은 남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주변의 반응으로 보아 저 인물이 황궁의 궁내경인듯했다.


연회홀이 잠잠해지자 황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정이 되었다면, 한 명씩 나와 내 앞에 자신을 소개하라."

황제의 말이 끝나자 화려한 의상을 입은 금발의 남성이 제일 먼저 황제의 앞으로 나섰다.

"제국의
용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본인은 바실리 스테판 타치야나 폐하와 다리아 슬라바 타치야나 폐하의 아들, 그레고리 슬라바 타치야나입니다. 소신, 폐하께서 내려주신 일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뛰어난 성과를 보여 제국의 이름을 영광에 떨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레고리 슬라바 타치야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황제와 황후 소생의 제국의 1황자였다.

정돈되고 겸손한 소개로 다들 역시 황태자의 재목이라며 소곤거렸다.

그가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자, 다음 황자가 뒤를 이었다. 아무래도 그들끼리의 암묵적인 순서가 있는 듯했다.

 

귀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아나스타샤는 그저 적당한 순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맨 마지막에 할지언정, 중간에 잘못 끼었다가는 흐름을 완전히 망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나스타샤를 제외한 후보들의 소개가 끝이 났다.
후보들은 서로의 순서가 끝나자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 마무리 하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제국의 용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앞선 귀족들의 말을 인용했다.

 

연회홀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겐 생판 처음 보는 존재가 후보랍시고 나선 것 같아 보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궁내경은 기사 한 명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를 저지했다.

"이곳에 들어와 있다는 건 궁정마법사가 확인 후 초대장을 보냈단 의미겠지. 우선 들어보고 판단해 보겠다. 말해 보아라."

황제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황제 폐하와 하이 엘프 오델리 캄랜드의 딸입니다. 밝힐만한 이름이 없는 집안입니다만, 폐하께서 주신 아나스타샤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황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 것 같았다.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황제의 사생아는 황후에게 썩 달가운 소식은 아닐테니까.

"기회만 주신다면 저 역시 실망시켜 드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을 끝낸 아나스타샤에게 보내지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아버지란 존재와의 첫 대면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분명 저를, 아니 어머니를 기억해 주시겠죠? 황제라는 직책과 사정이 있어서 딸이 있는지 찾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겠죠?'

"아…… 그런 사람도 있었지.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그 엘프에게 자식도 있었나? 그래, 자넬 보니 있었던 모양이지."

그리고는 살면서 엘프와도 만나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라고 바로 옆의 황후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소곤거렸다. 황후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황제는 모를 것이다. 아나스타샤가 제법 귀가 밝다는 것을. 그 작은 소리조차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음을.

 

아나스타샤는 숙인 고개처럼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도 같이 착 내려앉았음을 느꼈다.

"그래, 아직 결과는 모르지만 떨어지더라도 상심 말거라. 이곳에는 쟁쟁한 이들이 많으니."

큰 반응을 기대했던 것도 또 무언가 바랐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반응을 원한 것은 아녔을 것이다.

 

고개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는 아나스타샤의 뒤로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조소가 들려왔다.

'주제에 한몫이라도 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곧이곧대로 왔나 보지?'


'어미는 어디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엘프였을 거야. 타고난 얼굴만 적당히 반반한 그런……'


'문명도 모르는 미개한 종족.'

아나스타샤를 마지막으로 후보자들의 소개가 완전히 끝이 났다. 황제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각 기사단과 근위대에서 20명 정도의 인원을 데려왔다. 지원한 
자들과 직접 선발한 이들이지. 예외적으로 이리 많은 기사들을 데려온 사유는, 이들에게 대회 동안 자네들의 호위를 맡게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20명. 연회홀에 모인 후보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었다. 왜 20명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기사들은 자신이 충성할 후보에게 맹세를 하여라. 그리고 후보는 기사를 받아들일지 선택하여라."

황제의 명에 클라인이 제일 먼저 움직였다. 이 쪽 역시도 후보자들처럼 나름대로의 순서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되든 말든, 아나스타샤에게는 대회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뭘 기대한 거지…….'

그저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신경 쓰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수군거림이 전부 맞는 말 같았다.


그렇게 수치심과 우울감,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 클라인이 아나스타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내밀었다.

"클라인……?"


"아나스타샤, 제가 당신의 기사가 될 수 있게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모두들 클라인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주목했었다. 그는 북부왕관의 영웅이며, 백작위를 계승한 사람이고, 제국의 제 1기사단 사단장이었다. 휘황찬란한 수식어가 붙는 이 남자를 주목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다. 거기다 사단장인 그가 선발 대회를 위해 선별되어 나올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 못 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선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나스타샤였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자가 뭐길래? 황제도 존재조차 잊은 사생아 아닌가?

 

당황스럽기는 아나스타샤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인, 저는…… 저보다는 당신이 충성을 맹세할만한 고귀한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을까요?"


"제게는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아나스타샤 눈 속의 그늘진 녹음이 다시 빛을 발하며 흔들거렸다. 하지만 클라인 눈의 말간 하늘빛보다 더 반짝일까? 그의 회청색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더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그 눈빛에 기대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클라인은 아나스타샤의 손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 광경에 연회장이 크게 술렁였다. 놀라움, 궁금함, 다양한 감정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질투였다.

 

그중에서도 이 두 명을 제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가 있었다.

 

10황자 줄리엣 타치야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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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타치야나

줄리엣은 클라인 카스펜서가 백작위를 잇기 전부터 꽤 맘에 들었었다.

 

자신의 언니 질리엇은 언제나 우아했고 기품 있었다. 그런 언니는 언제나 모두의 선망을 받았으며, 결혼 뒤에는 더욱 날아올라 사교계의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다. 황제의 총애받는 후궁인 벨리타 타치야나의 딸이라 불릴만했다.
그의 또 다른 딸인 줄리엣도 그랬다. 한 송이 꽃과 같은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는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정원을 가볍게 통통 튀며 거닐면 온 주변을 화사하게 만들었고, 귀엽게 재잘거리면 듣는 이들을 달콤하게 녹였다. 그는 이미 주변의 모든 것들이 충분했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언니를 보고 바뀌었다.

정략결혼이지만 프로소 공작과 결혼한 언니는 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 단순히 성숙해져 한 층 무르익게 된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소 공작은 이미 그 작위와 재산, 인망만으로도 충분한데도, 그는 상냥했고 다정했고 무척이나 귀족다웠다. 그런 그와 함께하는 언니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그 행복 안에 존재하는 언니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졌다.


줄리엣은 그것을 동경했다. 자신 역시도 프로소 공작 같은 완벽에 가까운 사람과 만나,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존재함으로써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었다.

그런 줄리엣의 눈에 들어온 남자는 클라인 카스펜서였다.

 

그는 뭇 영애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손에 꼽히는 미남이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수심이 비치는 눈빛, 오랜 기사 생활로 만들어진 탄탄한 몸. 이렇듯 그의 외모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무예 실력이라 함은 이미 10대 때부터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출중했다.

그리고 20세 때에는 북부왕관의 전쟁 영웅 중 하나로서 온 제국민들에게 칭송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전쟁 중에 돌아가시고 카스펜서 백작이 되었을때에도, 황제가 더 높은 작위를 하사하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게다가 명문가인 카스펜서 출신답게 언변과 예의범절이 뛰어났다. 레이디들에게도 살갑진 않을지언정, 부드럽고 정중했다.

돈, 명예, 권력, 외모, 성격 중 어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는, 그야말로 용 제국의 여성들이 탐하는 완벽 그 자체의 남자였다.

 

문제는, 그가 일반적인 귀족들의 결혼 적령기를 지났음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점에 있었다.

 

줄리엣은 그 점을 보고, 클라인이 자신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청혼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일 거라고 착각했다.

 

줄리엣은 클라인이 자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자신이 연 사교 모임이나 티 파티에 가끔이지만 참여한다는 점과 데뷔탕트 때 파트너였다는 점, 자신이 참가하는 연회에 그 역시 참석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실상은,
어린 줄리엣을 대신해 어머니 벨리타가 주최한 파티였으며, 명색이 황족이 연 모임이었기 때문에 예의상 간간히 얼굴을 비춘것이였다.

데뷔탕트의 경우는, 질리엇과 클라인이 동갑인지라 우연히 데뷔탕트의 시기가 맞아 서로의 파트너를 해주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것을 들은 줄리엣이 언니에게 부탁해 그 인연과 황제의 요청으로, 파트너로서 참가했던 것이었다.아이러니하게도 사교계에 회자됐던 건, 고작 스쳐가며 춤 한번 춘 예카테리나와의 염문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연회가 겹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 클라인이 참여하는 연회나 무도회를 줄리엣이 사전에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줄리엣을 사람들이 칭송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클라인은, 줄리엣을 칭송하는 사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분명했다.


줄리엣의 착각은 혼인이 가능한 16살이 훌쩍 넘어, 20살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어쩌면 클라인이 수줍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줄리엣이 용기를 내어 단 한 번만이라도 클라인에게 관심 있다는 뉘앙스를 보였더라면, 확실하게 거절당했을텐데.

하지만 줄리엣은 사랑받을 줄만 알았지 먼저 사랑을 주는 쪽이 아니었다. 때문에 줄리엣의 짝사랑은 클라인 본인도 모른 채 계속되었다.

 



그것이 흐르고 흘러 현재에까지 도달했다.


그는 후계자 선발 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기품 있고 뛰어난 면모를 온 귀족들에게 더 어필할 생각이었다. 그 대상에는 클라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딱히 황태자 자리에 관심 있던 것도 아니었다. 황후의 자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될 수도 없을테고.


그러던 중, 대회 전 날에 클라인이 선발 대회의 호위기사로 급하게 자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자신이라면 기사들이 앞다투어 호위를 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클라인이 있다면 그런 다툼은 벌어지지 않겠지. 왜냐하면 기사단의 서열 순서대로 기사의 맹세를 할테고, 1기사단의 사단장인 클라인이 첫 번째로 걸어 나와 자신이 충성을 맹세할 주군에게 갈 테니까. 자신은 그저 제일 먼저 다가온 기사의 맹세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클라인의 기사의 맹세를!

줄리엣은 클라인이 자신의 기사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면 클라인은 자신의 호위기사가 되기 위해 자원한 걸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패배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황후 폐하의 소생이며, 동갑내기인 예카테리나에게조차 일말의 열등감을 느껴본적 없는 줄리엣이었다.

예카테리나의 지위가 그보다 조금 더 뛰어난다 한 들, 자신이 더 예쁘고, 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용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자신의 오빠들에게 밀려서 되지도 못할 황제의 자리에 한심하게 시간을 쏟고 있으니까. 괴팍하게 힘만 세고 예민하며 날뛰기만 하는 얘 하고는 차원이 다른 나니까. 마지막으로 용 제국의 모두가 되고 싶어 하는 카스펜서 백작 부인은 내가 될 거니까.

그 정도의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카테리나 정도는 출신이 좋으니 아주 조금이라면 자신의 라이벌로 인정은 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예카테리나도 아니고 뭔데 저 하프엘프는?

클라인은 금발의 하프엘프에게 지금껏 본 적 없었던 다정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줄리엣은 상황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나스타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꼭 클라인을 내 것으로 만들겠어."

 


 

새로운 목표

20명의 기사들이 모두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당연하게도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기사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기사의 맹세가 끝나고, 황제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좋다. 호위기사가 없는 후보자들은 이만 돌아가도 괜찮다."

선택받지 못한 후보자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이 대회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어필할 생각이었겠지만, 시작도 전에 떨어진 것이다.


대부분은 황제에게 입양된 자들이었고 권력의 위치에서 밀려난 친척들이나, 나이가 너무 많거나 어린 경우였다.

이런 이들은 기사들이 충성을 맹세할 만큼의 지위와 명성을 찾기 전에, 애초부터 일면식이 없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과였다. 후계자 선발 대회라는 이 정통성 있는 대회는 '공정성'을 표방하며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모두 황태자가 될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황실 내에서 이미 권위와 입지가 있는 이들에게 유리한 대회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나도 저들 중 하나였겠지. 이 황궁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으니. 클라인과 연이 닿은 것도 순전히 천운이었어. 여기 오기 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떨어진 후보자들이 결국 아쉬움과 실망감을 뒤로하고 연회홀을 나갔다. 참가하게 된 20명의 후보와 20명의 기사들만 남게 되자, 황제는 앞으로에 대해 설명했다.

"후계자 선발은, 임무를 지령하면 해당 임무를 최대한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될 것이다. 무릇 황제라면 자신이 다스리는 곳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할만한 힘도 갖추고 있어야 하지. 하지만 누구라도 혼자서는 힘든 법이다. 따라서 참가자들에게 조력자를 붙여준 셈이니라.
"

궁내경은 20개의 지령서를 카트에 쌓은 채 끌고 왔다. 그리고 지령서를 하나씩 후보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안에는 3개의 임무가 있다. 반드시 전부 수행할 필요는 없지만, 완수한다면
전리품 및 보고서를 작성하여 내무부에 올리도록. 이 지령서를 수행할 기한은 한 달이다."

임무는 평소에도 용병일이나 길드 일을 하면서 종종 하는 것이지만, 확실히 이번만큼은 책임이 막중했다.

"그럼 조화의 달의 열다섯 번째 날에 보지."


"여러분의 앞 날에 선대들과 황금거룡의 축복이 깃들길."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황제와 황후는 근위대와 같이 돌아갔다. 연회홀에 남겨진 다른 후보자들도 더 이상의 볼 일은 없는지, 하나둘 자리를 떴다.


"이제 한동안은 같이 있을 수 있게 됐군요,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와 클라인, 그리고 코스모스는 연회홀 밖으로 나와 마차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는 약간 들떠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얼굴을 바라보면, 평소와 같은 덤덤하고 온화한 미소가 거기 있었다.

"다 클라인 덕분이죠. 항상 저를 도와주시네요."


"제가 아나스타샤를 도와드린게 아니라 아나스타샤가 저를 선택해주신 겁니다. 지금껏 저에게는 거절당한다는 전제가 없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긴장되었습니다."


"하하, 이 사람 참. 자신감이 넘치시네."

마차 대기소에는 클라인과 타고 왔었던 마차가 보였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익숙한 인형(人形)이 있었다.

"아도니스!"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에게 달려갔다. 그에게 실망했던게 바로 어제 일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막상 그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피요르 역시 아도니스가 반가운지 곁을 맴돌았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나스타샤. 호위기사는……"

아도니스는 또다시 어제처럼 표정이 굳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사단장이라는 사람이 할 일도 없나?"


"내가 할 소리다. 궁정마법사를 관두더니 할 일도 없나 보군. 오늘은 내 마차에 수작을 부렸나 보지?"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도니스를 바라봤다.

"……진짜예요?"


"아, 아니에요! 여기에 있던 건 순전히 우연으로…… 사실 클라인이 호위기사가 될 줄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긴 했는데……… 제발 빗나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고개를 숙인 아도니스는 울먹이는 것처럼 웅얼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클라인이 싫어도 다시는 그런 짓 안 할 거예요…. 아나스타샤가 슬퍼하니까."

아나스타샤는 미안한 표정으로 클라인을 바라봤다.

"다시는 안 그러겠대요. 클라인도 당한게 있으니까 아도니스를 용서해달라거나 사이좋게 지내라는 건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같이 있을 때만큼은 서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될까요? 아도니스는 후계자 선발 대회나 임무를 도와준다고 했었거든요."

클라인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아나스타샤, 제가 있다면 이 자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호오, 네가 마법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나 봐? 후계자들은 곁에 기사나 시녀 외에도 마법사 한 두 명쯤 두는게 상식이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녔는지 클라인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마차의 문을 열어 아나스타샤를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맞은편에 클라인이, 옆에는 아도니스가 앉았다. 그 두 명은 애써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아도니스의 맞은편에는 코스모스가 올라탔다. 연회홀에 입장할 때 안내역 겸 시중을 들어주었던 사람이었다.

"코스모스라고 했죠? 당신도 따라오는 건가요?"


"저는 아가씨에게 붙여진 하녀입니다. 임무를 수행하실 때 동행하며 도와드리는 것이 제 일이죠."

아도니스가 거들었다.

"선발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의 시중을 드는 시종들은 후보자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보필하기로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전투 센스가 있는 시종들 위주로 선발해서 도움이 될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대회 참가 자격을 받았으니까 동행하는게 맞아요."


출발 이후, 클라인이 코스모스에게 말을 걸었다.

"후보자들은 입양되지 않거나 작위가 내려지지 않았어도, 혈연관계라면 결국은 황족. 그렇다면 귀족이 보좌하는 것이 맞거늘, 방금 전 하녀라고 하지 않았나?"


"네, 저는 평민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성족인 것이 눈에 띄어 시녀분들을 보좌하는 황궁 하녀로 일하게 됐지요."


"……비녹스 남작 짓이군."


클라인뿐만 아니라 아도니스의 표정 역시 안 좋아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데…."

 

"시녀면 어떻고 하녀면 뭐 어때요. 전 코스모스가 좋은걸요."

 

"아나스타샤가 괜찮으시다면 상관없겠지만, 보통의 하녀들은 후계자 선발 대회를 위해 선별된 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이 없다시피 합니다. 분명 남작은 당신이 떨어질 것이라 넘겨짚고 황족에게 하녀를 붙이는 짓을 벌인 것이겠지요."

 

"…그 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다행히도 저는 황궁 하녀로 일하기 전에는 빛의 사도로서 악과 싸웠던 경험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시종장님께서는 제 전투 능력에 대해 모르셨겠지만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하지만 아도니스는 여전히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흥, 비녹스인지 뭔지, 맘에 안 들어……. 단순히 기사만 어떻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방금 뭐라고 했지?"


"아아~ 아나스타샤를 참가시키기 위해 기사 한 명을 매수했거든. 아나스타샤께 기사의 맹세를 해달라고."


"매수? 제국의 기사에게 무슨 짓을…… 그러지 않아도 어차피 내가 아나스타샤의 것이다."


"무슨 짓이긴. 매수당하는 쪽이 잘못한 거지. 사단장이 클라인 같은 녀석이니 기강이 해이해질만도~"

두 명이 말다툼을 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다. 특히 지금처럼 붙어있는 마차 안에서는 더더욱.


그 죽을 분위기를 잠재운 건 코스모스의 질문이었다.

"아가씨께서는 반드시 황제가 되실 것이죠?"


"당연하지! 난 아나스타샤를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으로 만들 거야. 그러려고 다방면에 손을 쓰는 거고."

그 질문에 먼저 답한 건 아도니스였다. 그는 아나스타샤를 반드시 황제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 당연한게, 전생을 전부 기억한다면 그 기억 속의 아나스타샤는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도 놓인 적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 속에 던져두는 것보다는 최고의 자리를 안겨주는 쪽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후계자 선발 대회에 참가하려 했던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하는 클라인은 별 말이 없었다. 다만 아나스타샤를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 눈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대로 포기하면 지금까지처럼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모험하고, 싸우고,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같이 모험을 다니든 정착하든, 없으면 혼자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고. 아주 좋지 않았던 시기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현재의 아나스타샤에게 남겨진 삶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삶은, 자신을 기억해 주어야 할 그 남자에게 기억받지 못한 채로 쭉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남자 외의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지겠지.

그래선 안된다.

그와 어머니는 그렇게 잊혀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며,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황제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 이런 삶에 익숙해졌지만, 사실은 더 이상 무시받기 싫었다. 그래. 썩 나쁘지 않은 삶이, 맘에 드는 좋은 삶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아직도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누리지 못하고 굶어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가난은, 사람에게 선이냐 악이냐가 아닌, 기본적인 윤리마저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하게 만든다.
아직도 세상은,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이 많다. 무력으로 이룬 이 세계는 무력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살아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아직도 세상은, 태생적 한계로 능력을 제한시키고 있다. 평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천대받으며 출세하지 못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결혼과 내조가 귀감이라고 여겨지며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인간 이외의 종족이기 때문에 무시받으며 사회에 떨어져 살고 있다.

 

이 밑바닥들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가 황제가 되어 그들을 잊혀지지 않게 만들 것이다.
이런 세상을 바꿀 것이다. 오늘의 황제가 아나스타샤가 가지고 있는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돼야죠. 황제."

잠깐의 침묵 후, 말을 이었다.

"정점을 노리는 밑바닥의 몸부림, 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세상에 불만이 많았는데 오늘 확실해졌어요.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전부 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낡은 가치관, 풍습, 제도. 그런 것들."

아도니스는 미소 지었다.

"어디 한번 제가 황제가 되면 정말로 세상이 바뀌긴 하는지 봐야죠. 근데 적어도 다른 이들보다 제가 다스리는 세상은 지금의 세상보단 재밌지 않을까요? 쭉 평민으로 살던 이가, 그것도 인간이 아닌 하프엘프가 황제가 됐는데 재미없을 리가."

클라인은 다정한 눈빛으로 아나스타샤를 바라봤다.

"그곳에선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굶어가는 아이가 없도록 하고, 어린아이가 학대당하지 않으며, 신분, 성별, 귀 모양, 피부색, 몸의 크기로 조롱받지 않을 거예요."

코스모스의 무표정한 입에 미소가 살짝 걸리는 듯했다.

"…일단은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다 이루진 못해도 꿈은 크게 가지라니까."

 

아나스타샤는 누구에게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내일 다시 방문할게요! 이제 바빠질테니 푹 쉬세요!"

마차에서 내린 아도니스는 밝게 인사하곤, 카스펜서 저택을 떠났다.


윗전 지구에서 궁전 지구까지 왔다 갔다 할, 아도니스를 생각하니 측은감이 들었다. 이 저택에서 다 같이 머무른다면 좋을텐데.

하지만 이곳은 클라인의 집이었다. 거기다가 아나스타샤가 허락할 수 있는 처지고 아니고 간에, 두 명이 붙어 하루 종일 싸울 생각을 하면 역시 지금 상황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나스타샤는 저번에 지냈던 방으로 안내받았다. 그가 씻는 동안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의 몇 없는 짐을 풀어 정리하고는 차를 준비했다.

 

찻주전자에 라벤더 꽃잎이 떠올랐다.

 

아나스타샤가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엘프들은 본능적으로 꽃과 나무에 끌린다고 했다. 게다가 심신의 안정을 위해선 허브 종류만한게 없었다.

 

아직 그에 대해 모르는게 많지만,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그의 곁에 있을 시간을 생각한다면, 오늘 하루는 찰나나 마찬가지니까.

코스모스는 아주 오랫동안 아나스타샤를 보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 생각으로 황제에 어울리는 사람은 그였으니까. 

 

그는 좀처럼 웃는 일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코스모스의 입가에는 만연한 미소가 띄워졌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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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3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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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Prologue3

 

 

비록 당신이 절 사랑하지 않는다 하여도,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 아네모네

 



"황태자? 하, 저 말이죠? 이름 모를 그쪽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아나스타샤는 황당해서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전직 궁정마법사를 사칭하는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초면에 이런 말, 믿기 어렵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정말 진심이에요. 무슨 이득을 바라고 있거나, 다른 후보의 사주를 받았다던가,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사주라…… 아, 그렇구나.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겠네. 그래요, 오히려 방해 공작이라도 펼치려고 접근했다는 쪽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데요."

 

"그런…!"


"거기다 그 쪽이 저에 대해 일방적으로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잔뜩 경계하는 아나스타샤를 남자는 아련하게 쳐다봤다.

"……아니에요. 당신도 분명 저를 알고 있었어요. 지금은 기억 못 하겠지만요. 저희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어요."


"제가 그 쪽을?"


아나스타샤는 미심쩍었지만 말을 들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그래요. 그럼 저한테도 당신에 대해서 알려줄래요? 이름이 뭐예요, 마법사님?"

아나스타샤가 경계심을 푼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제 이름은 아도니스 밀러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아도니스의 조언을 받아, 붉은 금실과 휘장 같은 화려한 브로치가 장식된 짧은 감색 겉옷과 연한 회색빛이 감도는 흰색 바지가 세트인 예복을 골랐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옷이라 사이즈 확인을 위해 시착했지만 원래부터 아나스타샤의 옷인 마냥 몸에 꼭 맞았다. 그 위에 붉은색의 짧은 케이프를 걸치니 제법 궁중 연회에 어울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나스타샤가 옷을 입어보는 동안, 아도니스는 도망갔다 돌아온 피요르의 경계심을 풀어보려 애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들은 믿기 어려운 것들 뿐이었다.

"마법사들은 다들 전생을 기억해요?"

아도니스는 자신의 모든 전생을 기억한다고 주장했으며, 자기가 생각하는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지금까지 쭉 자신을, 지금은 아나스타샤라고 불리는 자신을 좋아했다고 했다.

솔직히 사랑 고백도 이 정도로 맥락 없고 허무맹랑하면 남 얘기 듣듯이 들을 수 있었다. 전생이라니,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훨씬 현실적이고 납득 갈 정도 아닌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제 쪽이 특별한 거겠죠. 이 능력은 운명이에요. 당신을 매 생마다 만나기 위한 운명 같은 능력!"


"뭐…… 그래요. 마법사님이 전생을 기억한다 치자고요. 그래, 저도 환생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보는 거예요? 환생해도 얼굴이나 그런 게 안 바뀌나?"

그러자 아도니스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아나스타샤, 전 당신이 어떤 모습이어도 당신의 영혼만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요. 생각해보세요. 세상은 매번 빠르게 바뀌잖아요. 저희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 어떤 종족이냐, 심지어는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서 성격도 가치관도 평판도 달라지고요."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님이 알던 전생의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같나요? 생긴 것도, 성격도, 상황도?"


"아니요…."

아니라는 말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거 봐요. 사람은 내적인 부분이든 외적인 부분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갈 가진 사람에게 호감이 가죠. 한 사람이 모두를 좋아하기 어려운 건 사람들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전 매 생마다
성격도 외모도 취향도 모두 달랐을텐데 과연 그런 사람이 마법사님이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좋아했던 부분이 아예 없어졌을 수도 있을텐데요."

아나스타샤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전생은 전생이고 현생은 현생이라는 거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도니스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지 바로 대답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했죠? 저에겐 그것이 아나스타샤, 당신의 영혼에 새겨진 성품이에요.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거죠."

성품이란 말에 아나스타샤는 더욱더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하는 마법사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당신의 말대로 사람은 후천적인 환경이 사람을 바꿔놓아요. 하지만 타고나는 점이 있는 것도 경험한 사실이에요.
모든 사람이 같은 처지에 놓인다 해도 다 똑같지는 않잖아요. 쌍둥이마저도 다른 것처럼요. 아나스타샤, 당신은 근본적인 건 변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지금 삶이 어떻든 적어도 약자를 져버리지 않을 거잖아요. 그리고 정의라는게 상대적이긴 하지만… 결국 결단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개 중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정의로운 쪽을 선택할 거잖아요?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래왔 듯."

아나스타샤는 애써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누구든 웬만하면 좋은 쪽이 되고
싶을 거잖아요. 단지 그게 관철하기 어려워서…… 아니, 아니지. 본인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자화자찬이지 않나…. 하아, 묘하게 돌려서 칭찬을 잘하시네요."

하지만 아도니스는 그가 애써 둘러대려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후후, 그게 특별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아요. 금덩어리 하나를 그냥 얻는 선택과 가난한 농부의 1sp를 빼앗는 선택 중 후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하, 맞아요. 하지만 전 마법사님이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가난하게, 또 좋은 꼴도 보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제가 나쁜 짓은 또 얼마나 많이 했게요."

 

"나쁜 짓이라면?"

"…주로 도둑질……?"

아나스타샤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저질렀던 일들 중 가장 가벼운 일이고, 부자들조차 가난한 자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그림자대공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도둑이 판치는 세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도니스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거리의 굶어가는 자들에게 관심 없는 세상이니, 그 사람들의 세계에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죠. 게다가 저는 아나스타샤가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에게서 물건을 훔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성품에 대해 확신할 수 있으세요? 그리고 이것마저도 언젠가 변하지 않을 거라고도?"

그는 진지하게 단언했다.

"저는 전생의 여러 모습의 당신을 수 없이 봐왔어요. 이것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그런 변하지 않는 점을 좋아합니다."

저렇게까지 말을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아나스타샤는 뒷전을 전전하며 믿지 못할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유 없이 수상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특히 아도니스라고 불린 저 마법사는 자신을 뒷조사하고 말하지 않은 개인사를 알고 있던 사람 아닌가. 실질적으로 자신이 도움을 줬던 클라인 때와는 다르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 말들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호감을 내비치는 그가.

"……솔직히 이렇게까지 확신하며 절 믿어준다는게 조금 감동이기까지 하네요. 사실 아직까지도 잘 믿기지는 않지만요. 그래도 마법사님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네요. 계속 의심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음, 마법사님은 그…… 말씀하신 것처럼 저를 좋아한다는게 진심이시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초면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머뭇거리는 아나스타샤의 모습에 아도니스는 금세 의중을 눈치챘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지금의 아나스타샤가 저를 다시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이번 생은 여기가 시작이니까요.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요, 우리."

아나스타샤는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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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이 끝나고, 아도니스가 배웅을 해주겠다며 아나스타샤 뒤를 따랐다.

"궁전 지구에 머물고 있나요? 머무는 곳이 없다면 윗전 지구의 저희 집에 초대해드리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제가 운 좋게 귀족 한 분을 도와드린 일이 있었거든요."

아도니스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어야 됐는데……. 제가 아나스타샤보다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사실 이번에는 찾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요?"


"네……. 그래서 궁정마법사가 된다면 정보 수집이 빨라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되려 일이 바빠서 시간내기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이러나 저러나 궁정마법사가 되었기 때문에 후계자 선발 대회에 간섭할 수 있어서 어떻게든 찾았으니 다행이에요. 이번 생은 글렀나 싶었거든요."

 

"찾지 못한 적도 있는 모양이네요."

 

"부끄럽게도…… 네, 그렇습니다."

아도니스는 팔자 눈썹이 된 채로 입을 삐죽였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매번 저를 찾는 것도 일이겠네요. 그래도 이젠 해결됐으니 본업에 집중하시겠네요?"


"아뇨, 그만뒀어요."


"네??"

그는 자신이 지금 무직 상태라고 했다.

"돈은요? 재산도 환생되나…?"

제일 먼저 돈 걱정이 들었다.

"걱정 마세요. 적당히 모아놓아서 먹고살 만큼은 있어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후에 수입이 들어올 곳이 있거든요."

아나스타샤가 궁금한 듯 쳐다보자, 그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발 대회를 하면 각종 임무를 하게 될 거예요. 제가 아나스타샤를 따라다니며 도와드릴 거고……"


"의뢰비를 나누자?"

아도니스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 그런 건 아니고 제가 만든 마법 물품들을 의뢰인에게 팔 생각이었어요!"


"괜찮아요. 같이 동행하면 의뢰비도 나누는게 상도덕이지."


"정말 그런게 아닌데……."

얼마쯤 걸었을까, 카스펜서 저택에 도착했다.

 

"도착했어요. 이제 마법사님도 돌아가셔야죠."

하지만 아도니스는 카스펜서 저택을 보고 크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곳에서 머무시는 건가요?"


"네, 왜요?"


"여기서 지내지 마세요!"

아도니스는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

깜짝 놀란 아나스타샤가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때에 마침, 저택의 대문이 열리고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들어갔다. 그러다 중간에 무슨 신호를 받았는지 마차는 정원 한 복판에 멈추고는 문이 열렸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클라인이었다.

"아나스타샤, 돌아왔군요."

클라인은 마차를 마저 보내곤 아나스타샤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그 옆의 아도니스를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이 쪽은……"

아도니스 역시 얼굴을 구겼다.

"궁정마법사군."


"전직이다. 보고가 느린 모양이야, 카스펜서 백작."


"아, 그래? 그럼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해 지금 당장 황실 법정으로 회부해도 상관없겠군?"


"잠깐, 잠깐만요!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두 분 아는 사이세요?"

클라인은 살벌한 표정으로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악연이죠."


"너와 내가 언제부터 연(緣)이라는게 붙는 사이였다고."


"너에겐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가 보겠지만, 난 아냐."

아나스타샤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쨌든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차피 멀쩡하잖아? 크게 다칠 거라곤 기대도 안 했지만 낙마해서 다리라도 부러지는 정도는 기대했는데."


"하, 죽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난 너 때문에 아끼는 종마를 잃었는데."


"아도니스, 이 말이 사실이에요?"

비아냥거리던 아도니스는 내 가라앉은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는 옷자락을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네, 맞아요.
저 녀석의 말에 혼란을 걸어놓았어요. 하지만 다 이유가……"


"아도니스."

아도니스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


"아도니스, 정말 죽을 뻔했어요."

그를 타박하는 아나스타샤를 지켜보던 클라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나스타샤, 전 괜찮으니 들어가죠."


"……제가, 잘못했어요. 아나스타샤, 용서해주시겠어요?"


"용서할 사람은 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아나스타샤, 정말로 저 녀석은 나쁜 녀석이에요. 같이 있으면 아나스타샤까지 불행해질 거예요. 절대로 믿지 마세요."

그가 악담을 퍼붓자, 클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더 이상 헛소리는 그만해."

 

아도니스는 클라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용비늘 연회홀에서 기다릴게요. 오늘 일은 정말 죄송했어요."

그 말만을 남기고 얼굴에 원망보단 슬픔을 머금은 마법사가 자리를 떠났다.

오늘 그와 같이 다니며 느낀 점은, 그가 수많은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 치고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만큼 순수한 사람이며, 선의를 가잔 영혼을 사랑한다는 말처럼 악의와도 거리가 먼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나스타샤는 그가 이런 짓을 했다는게 의외였다. 동시에 클라인에게 왜 그런 말을 한건 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큰 사정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어디에나 있는 선의도 악의도 가진 그런 사람을,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단 이유로 애써 좋게 보려는 것일 수도 있고.

 

고민해봤자 현재로써는 알 방도가 없었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라면 언젠가 자신도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겠지.

 


 

후계자 선발 대회

아나스타샤는 카스펜서 저택을 떠나기 위해 풀어놓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대회에 입을 의상, 갑옷과 무기, 모험 도구들, 피요르의 모이. 며칠간 이곳에 있었지만 나의 짐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들고 온 것이 없었으니까. 방도 거의 그대로야. 내 흔적이 금방 사라져 버리네….'

한창 부산스럽게 방 안을 돌아다니다 잠시 감상에 빠졌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클라인이었다.

"오늘은 물망초네요."

아나스타샤는 흰색 물망초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클라인은 흰색을 좋아하나 봐.'

"좋아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짐을 싸시는 건가요?"


"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동안 머물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별 일 아닌데요. 떠난다니 아쉽군요……."


"언제까지고 신세 질 수 없으니까요."

클라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아나스타샤는 그 표정에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음, 그리고 사실 황궁의… 후계자 선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거든요."


"그렇군요…."


"별로 안 놀라시네요?"


"사실 이름을 들었을 때, 어렴풋이 짐작했습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름이니까요.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습니다만… 네, 황제 폐하의 소생이시군요."

아나스타샤(Анастасия)의 이름은 용들이 지을 법한 이름으로 황족이나 용인족이 아니고서야 드문 이름이었다. 이 이름 때문에 비웃음도 많이 받았었지.

"섭섭하세요? 이후에도 자주 놀러 올게요. 아, 대회에서 떨어지고 나면 일하느라 바쁠테니까 자주는 힘드려나."


"될 수도 있습니다."

단언하는 그는 상당히 진지해 보였다.

"하하, 클라인, 농담도. 거기다 아직까진 후계자 자리에 욕심도 없는걸요. 그냥 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 없으니까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도울 의향이 있습니다."

그냥 격려였겠지만 덕분에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선발 대회 아침, 옷을 갖춰 입은 아나스타샤는 카스펜서 저택을 나섰다.

"무척 아름다우십니다."


"별말씀을 다……. 하, 하하…."

오늘도 황궁 근무를 하는 클라인과 같이 마차를 탔다. 마차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연회홀의 근방에 멈춘 마차에서 내린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에게 작별의 말을 고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클라인."


"네, 그럼 또 보도록 하죠."

'또? 단순히 다음에 보자는 인사치레겠지?'

손을 흔들자 클라인을 태운 마차는 멀리 떠나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뒤를 돌아 연회홀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나스타샤는 용비늘 연회홀의 계단에 드디어 한 걸음 내디뎠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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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2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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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Prologue2

 

 

새싹가지가 움트는 13번째 아침.

새로운 생명이 알에서 태어나는 날.

 


 

첫인상은 중요한 법

선발대회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아나스타샤는 긴장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겨루는 걸까? 검술? 지식? 교양?

황궁은커녕 귀족 사회의 문턱도 밟아 본 적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귀족인 클라인의 도움을 받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선 자신의 일이니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반드시 후계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황제에게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대외적으로 하프엘프는 제국과 엘프의 화합의 증표라곤 하지만, 실상은 아나스타샤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엘프 사회에서도 배척받으며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때문에 아나스타샤의 어머니는 하프엘프인 자신을 낳게 되어 반강제로 여왕의 숲을 떠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찾아 액시스로 왔지만, 가진게 아무것도 없고 검조차 들지 못했던 연약했던 엘프에게 인간세상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결국 어린 아나스타샤를 어떻게든 먹여 살리기 위해, 그 고고한 하이엘프가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선 구걸하고 몸을 팔며 연명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나스타샤는 용 제국의 밑바닥 인생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돈 이전에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곁눈질로 용병들의 무예를
익혀왔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지켜야 할 그의 어머니는 결국 병으로 일찍 죽고 말았다.


아나스타샤는 14살에 세상에 혼자 던져지게 되었다. 하지만 근 10년간 용병이나 모험가
생활을 하며 적당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배운 힘이었으니까.

 

목표랄 것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던 아나스타샤는, 평생을 자신이 의미 없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황제의 그 말 한마디라면, 지금까지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분명 부모가 자신을 원했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라고.

 

어차피 후계자는 다른 더 뛰어난 이가 될 것이다. 가령, 황제의 적자라던가. 황제에게는 황후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것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지만 어쩌겠는가, 황후의 자리는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래, 나는 후계자 욕심은 없어. 난 그저 확인만 하면 돼.'

하지만 제 아무리 욕심이 없더래도 누구나 첫인상은 괜찮게 보이고 싶은 법이다.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현재 복장을 확인하고, 클라인과 이 저택의 고용인들이 입었던 옷을 생각해냈다. 지금
자신의 차림새는 저택의 고용인들보다 나을까, 싶은 차림새였다.


대체 무슨 옷을 입어야 되는
걸까? 귀족들은 옷을 어디서 맞추는 거지?

곰곰이 생각하던 아나스타샤는, 평생 경험한 적 없던 일이니 혼자 상상해 내기란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이 일만은 클라인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나스타샤는 방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서 있던 하녀에게 물었다.

"클라인은 어디 있죠?
"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의 집무실로 안내받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있던 하인이  문을 두드리니, 들어오라는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인이 열어준 문을 지나 집무실에 들어가자 서류를 보는 클라인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있구나.'

클라인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그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용건을 물어왔다. 아나스타샤는 하인이 대답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익을 열었다.

 

"바쁘다면 나중에 찾아올게요."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클라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고개를 든 그는 꽤 당황한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나스타샤. 아침에 먼저 찾아와 주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나중에 올 걸 그랬네요. 별로 급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나스타샤의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저에겐 우선순위입니다. 부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나스타샤는 진지하게 경청하려는 그의 모습에 머뭇거리며 말했다.

"정말 별 거 아닌데…. 음…… 그러니까 클라인, 지금 제 차림새가 어떻나요?"


"………? 무척 편하고 익숙해 보이십니다. 많은 기사나 전사들이 간편하게 입는 복장이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휴식할 땐 종종 입는 스타일입니다."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힘이 빠졌다.

"너무… 편해 보인단 말씀이시죠?"

 

'연회에 입고 갈 차림은 아니라는 거지.'

클라인은 금세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아……. 제 생각이 짧았군요. 저는 아나스타샤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다른 옷이 입고 싶을 수도 있었을텐데…… 단순한 기성복만 준비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곤 고용인을 부르려는 듯 책상 위의 종에 손을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디자이너를 부를테니 원하시는 예복이나 드레스가 있다면 맞춰드리겠습니다. "


"아, 아니에요! 예복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냥 그, 백작님 같은 분들은 어디서 옷을 사 입으시는 걸까 궁금했어요."

아나스타샤가 황급히 클라인의 손을 잡아 말렸다.

"저는 보통 디자이너를 자택으로 부릅니다만……. 금테 지구의 의상실에 직접 가서 맞춤으로 제작하거나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필요하신 거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맞춤 의상을 입기엔 당장에 필요한 거라서요. 또 첫 예복이니까 제 돈으로 사고 싶고요. 서, 설마 제게 옷 한 벌 살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시진 않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없었다. 금테 지구의 의상들은 얼마나 비쌀지 감도 안 잡혔다.

 

하지만 갚지도 못할, 계속되는 남의 호의를 무작정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옛 말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했던가? 그는 빚을 지는게 싫었다.


아나스타샤의 철벽 같은 거절에 그는 중얼거리듯 그렇군요, 라고 대답하며 풀이 죽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함이 절로 올라오게 만드는 외모와 표정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다른 부탁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러면 제가 괜찮은 곳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이게 웬 걸? 클라인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상관은 없는데 왜 그러시나요?"


"……제가 10시부터 황궁에 근무를 해서 잠시 휴가를 낸다고…"


"아니요! 괜찮아요!"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다급하게 말했다.

"일이 우선이죠. 저 때문에 휴가까지 낼 필요는 없어요. 아! 생각해보니까 혼자서도 괜찮을 것 같아요! 뭐, 낯선 곳도 아니고 어차피 액시스인데."

클라인은 포기하지 않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그래도 클라인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아나스타샤는 눈을 피해 고개를 꾸벅이곤 집무실을 나왔다.

아직도 눈앞에 클라인의 표정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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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 지구로 나온 아나스타샤는 괜찮아 보이는 의상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디든 전부 괜찮아 보이긴 했지만.

금테 지구의 의상실은 땀쟁이 지구나 뒷전의 상점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곳에서의 옷 판매란, 잡화점에서 곁들어 파는 물건 중 하나였고, 작은 재봉실이나 세탁소에서 주인 없는 옷들을 파는 것이었다. 아니면 고물상에 아무도 입지 않을 법한 옷가지 사이에 가끔 괜찮은 옷이 올라오는 정도. 그 외엔 굳이 의상실이라 할만한 것은 매음굴 사람들이 주로 찾는 홀복 전문 의상실 정도였다.

때문에 의상실에 대해 들어는 봤어도 가본 적은 없어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었다.


그때, 아나스타샤의 눈에 한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의상실의 유리창 너머에 진열되어 있는 푸른색의 드레스. 그 드레스는 마치 밤하늘의 모습을 닮아있었는데, 특히 가슴선에서 떨어지는 하늘하늘한 치맛단은 은하수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종류의 옷은 입어본 적 없는데. 과연 나한테 잘 어울릴까?'


"이 드레스도 물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후계자 선발 대회에 입고 갈 옷이라면 바지 예복이 더 나을 거예요. 황제는 그런 의상을 좋아하거든요."

아나스타샤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피요르는 놀랐는지 어깨 위에서 펄쩍 날아갔다.


말을 건 이는 금빛으로 수가 새겨진 - 금실로 수를 놓은게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어쩌면 마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흰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로브를 벗으니 길고 부드러운 백금발과 진한 보라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 찬란한 남자는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가득했다.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아나스타샤는 잠시 그 남자를 넋 놓고 봤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무던한 말투로 질문했다.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아~ 혹시 황궁에서 일하시는…"


"네, 궁정마법사입니다. 지금은 전직이지만."


"그런 분이 저에게 무슨 볼일이죠?"

자신을 궁정마법사라고 소개한 이는 로브 안쪽을 뒤적이더니 편지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이 편지, 10년 동안 기록 보관실에 묻혀 있었더라구요."

 

아나스타샤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편지를 받아 들었다.

'배달부도 아니고, 고작 이걸 주려고 나타난 건 아닌 것 같은데.'

 


경애하는 황제 폐하,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이 편지 역시도 전달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을 가져보겠습니다.


낳은 아이는 떠날 당시 남겨주셨던 아나스타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폐하의 아이를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어린 자식에게 한 줌의 자비라도 내어주시길.


- 오델리 캄랜드-



오델리 캄랜드.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이 편지와 안에 든 사진을 보고 당신에게도 선발 대회 초대장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직접 대화해 보고도 싶었구요."


"……이런 거 누군가 사기 치는걸 수도 있잖아요. 뭐, 인생 역전의 기회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실제로 그런 기회를 잡게 됐으니 실패하진 않았네요."

자신을 최대한 삼류 속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상대방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거리를 두는 방식이 아나스타샤식 자기 방어였다.

 

어머니가 거짓 편지를 보낼 리 없지만, 동시에 의심이 떨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가 자신의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혼자 남겨질 자신을 위해 편지를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정말
아버지가 황제라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편지 역시 거짓이라면? 내가 초대장을 받고 너무 들떠 있었나 봐. 주제도 모르고 황제의 자식이라니 좋았던 거지. 아, 전부 거짓이라면 차라리 뻔뻔해지자.'

남자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아나스타샤의 기고만장한 태도와는 다른, 고민과 불안에 휩싸인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걱정 말아요. 초대장을 보내기 전에 후보들의 간단한 호구조사는 물론, 후보가 황제의 자녀라면 친자 검사 정도는 하거든요. 아, 물론 몰래 머리카락을 가져가기 위해 좀 힘들긴 했었죠."


"……그래요?"

고민과 불안을 싹 가시게 하는 명쾌한 대답이었다. 몰래 머리카락을 가져갔다는 부분이 신경 쓰이지만.

"저에게 초대장을 보내주신 것도, 제가 황제의 자식이라고 확신을 주신 것도 고맙긴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저를 도와주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방금도 의상에 대해 조언을 해주시고."

남자는 숨을 고르고선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이 후계자, 그러니까 황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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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길 프롤로그1 13시대 1230년 열의의 달 3월 10~15일
붉은흙1~2 3월 16일, 붉은흙3 3월 17일
황토젤리 3월 18~19일
엘돌란1~3 20일, 엘돌란3~7 21일, 엘돌란8~10 22일
황금요새1~2 23~24일 황금요새3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