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2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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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Prologue2

 

 

새싹가지가 움트는 13번째 아침.

새로운 생명이 알에서 태어나는 날.

 


 

첫인상은 중요한 법

선발대회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아나스타샤는 긴장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겨루는 걸까? 검술? 지식? 교양?

황궁은커녕 귀족 사회의 문턱도 밟아 본 적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귀족인 클라인의 도움을 받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선 자신의 일이니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반드시 후계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황제에게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대외적으로 하프엘프는 제국과 엘프의 화합의 증표라곤 하지만, 실상은 아나스타샤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엘프 사회에서도 배척받으며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때문에 아나스타샤의 어머니는 하프엘프인 자신을 낳게 되어 반강제로 여왕의 숲을 떠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찾아 액시스로 왔지만, 가진게 아무것도 없고 검조차 들지 못했던 연약했던 엘프에게 인간세상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결국 어린 아나스타샤를 어떻게든 먹여 살리기 위해, 그 고고한 하이엘프가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선 구걸하고 몸을 팔며 연명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나스타샤는 용 제국의 밑바닥 인생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돈 이전에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곁눈질로 용병들의 무예를
익혀왔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지켜야 할 그의 어머니는 결국 병으로 일찍 죽고 말았다.


아나스타샤는 14살에 세상에 혼자 던져지게 되었다. 하지만 근 10년간 용병이나 모험가
생활을 하며 적당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배운 힘이었으니까.

 

목표랄 것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던 아나스타샤는, 평생을 자신이 의미 없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황제의 그 말 한마디라면, 지금까지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분명 부모가 자신을 원했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라고.

 

어차피 후계자는 다른 더 뛰어난 이가 될 것이다. 가령, 황제의 적자라던가. 황제에게는 황후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것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지만 어쩌겠는가, 황후의 자리는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래, 나는 후계자 욕심은 없어. 난 그저 확인만 하면 돼.'

하지만 제 아무리 욕심이 없더래도 누구나 첫인상은 괜찮게 보이고 싶은 법이다.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현재 복장을 확인하고, 클라인과 이 저택의 고용인들이 입었던 옷을 생각해냈다. 지금
자신의 차림새는 저택의 고용인들보다 나을까, 싶은 차림새였다.


대체 무슨 옷을 입어야 되는
걸까? 귀족들은 옷을 어디서 맞추는 거지?

곰곰이 생각하던 아나스타샤는, 평생 경험한 적 없던 일이니 혼자 상상해 내기란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이 일만은 클라인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나스타샤는 방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서 있던 하녀에게 물었다.

"클라인은 어디 있죠?
"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의 집무실로 안내받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있던 하인이  문을 두드리니, 들어오라는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인이 열어준 문을 지나 집무실에 들어가자 서류를 보는 클라인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있구나.'

클라인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그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용건을 물어왔다. 아나스타샤는 하인이 대답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익을 열었다.

 

"바쁘다면 나중에 찾아올게요."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클라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고개를 든 그는 꽤 당황한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나스타샤. 아침에 먼저 찾아와 주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나중에 올 걸 그랬네요. 별로 급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나스타샤의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저에겐 우선순위입니다. 부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나스타샤는 진지하게 경청하려는 그의 모습에 머뭇거리며 말했다.

"정말 별 거 아닌데…. 음…… 그러니까 클라인, 지금 제 차림새가 어떻나요?"


"………? 무척 편하고 익숙해 보이십니다. 많은 기사나 전사들이 간편하게 입는 복장이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휴식할 땐 종종 입는 스타일입니다."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힘이 빠졌다.

"너무… 편해 보인단 말씀이시죠?"

 

'연회에 입고 갈 차림은 아니라는 거지.'

클라인은 금세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아……. 제 생각이 짧았군요. 저는 아나스타샤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다른 옷이 입고 싶을 수도 있었을텐데…… 단순한 기성복만 준비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곤 고용인을 부르려는 듯 책상 위의 종에 손을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디자이너를 부를테니 원하시는 예복이나 드레스가 있다면 맞춰드리겠습니다. "


"아, 아니에요! 예복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냥 그, 백작님 같은 분들은 어디서 옷을 사 입으시는 걸까 궁금했어요."

아나스타샤가 황급히 클라인의 손을 잡아 말렸다.

"저는 보통 디자이너를 자택으로 부릅니다만……. 금테 지구의 의상실에 직접 가서 맞춤으로 제작하거나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필요하신 거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맞춤 의상을 입기엔 당장에 필요한 거라서요. 또 첫 예복이니까 제 돈으로 사고 싶고요. 서, 설마 제게 옷 한 벌 살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시진 않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없었다. 금테 지구의 의상들은 얼마나 비쌀지 감도 안 잡혔다.

 

하지만 갚지도 못할, 계속되는 남의 호의를 무작정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옛 말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했던가? 그는 빚을 지는게 싫었다.


아나스타샤의 철벽 같은 거절에 그는 중얼거리듯 그렇군요, 라고 대답하며 풀이 죽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함이 절로 올라오게 만드는 외모와 표정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다른 부탁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러면 제가 괜찮은 곳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이게 웬 걸? 클라인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상관은 없는데 왜 그러시나요?"


"……제가 10시부터 황궁에 근무를 해서 잠시 휴가를 낸다고…"


"아니요! 괜찮아요!"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다급하게 말했다.

"일이 우선이죠. 저 때문에 휴가까지 낼 필요는 없어요. 아! 생각해보니까 혼자서도 괜찮을 것 같아요! 뭐, 낯선 곳도 아니고 어차피 액시스인데."

클라인은 포기하지 않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그래도 클라인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아나스타샤는 눈을 피해 고개를 꾸벅이곤 집무실을 나왔다.

아직도 눈앞에 클라인의 표정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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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 지구로 나온 아나스타샤는 괜찮아 보이는 의상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디든 전부 괜찮아 보이긴 했지만.

금테 지구의 의상실은 땀쟁이 지구나 뒷전의 상점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곳에서의 옷 판매란, 잡화점에서 곁들어 파는 물건 중 하나였고, 작은 재봉실이나 세탁소에서 주인 없는 옷들을 파는 것이었다. 아니면 고물상에 아무도 입지 않을 법한 옷가지 사이에 가끔 괜찮은 옷이 올라오는 정도. 그 외엔 굳이 의상실이라 할만한 것은 매음굴 사람들이 주로 찾는 홀복 전문 의상실 정도였다.

때문에 의상실에 대해 들어는 봤어도 가본 적은 없어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었다.


그때, 아나스타샤의 눈에 한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의상실의 유리창 너머에 진열되어 있는 푸른색의 드레스. 그 드레스는 마치 밤하늘의 모습을 닮아있었는데, 특히 가슴선에서 떨어지는 하늘하늘한 치맛단은 은하수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종류의 옷은 입어본 적 없는데. 과연 나한테 잘 어울릴까?'


"이 드레스도 물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후계자 선발 대회에 입고 갈 옷이라면 바지 예복이 더 나을 거예요. 황제는 그런 의상을 좋아하거든요."

아나스타샤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피요르는 놀랐는지 어깨 위에서 펄쩍 날아갔다.


말을 건 이는 금빛으로 수가 새겨진 - 금실로 수를 놓은게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어쩌면 마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흰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로브를 벗으니 길고 부드러운 백금발과 진한 보라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 찬란한 남자는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가득했다.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아나스타샤는 잠시 그 남자를 넋 놓고 봤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무던한 말투로 질문했다.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아~ 혹시 황궁에서 일하시는…"


"네, 궁정마법사입니다. 지금은 전직이지만."


"그런 분이 저에게 무슨 볼일이죠?"

자신을 궁정마법사라고 소개한 이는 로브 안쪽을 뒤적이더니 편지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이 편지, 10년 동안 기록 보관실에 묻혀 있었더라구요."

 

아나스타샤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편지를 받아 들었다.

'배달부도 아니고, 고작 이걸 주려고 나타난 건 아닌 것 같은데.'

 


경애하는 황제 폐하,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이 편지 역시도 전달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을 가져보겠습니다.


낳은 아이는 떠날 당시 남겨주셨던 아나스타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폐하의 아이를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어린 자식에게 한 줌의 자비라도 내어주시길.


- 오델리 캄랜드-



오델리 캄랜드.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이 편지와 안에 든 사진을 보고 당신에게도 선발 대회 초대장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직접 대화해 보고도 싶었구요."


"……이런 거 누군가 사기 치는걸 수도 있잖아요. 뭐, 인생 역전의 기회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실제로 그런 기회를 잡게 됐으니 실패하진 않았네요."

자신을 최대한 삼류 속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상대방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거리를 두는 방식이 아나스타샤식 자기 방어였다.

 

어머니가 거짓 편지를 보낼 리 없지만, 동시에 의심이 떨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가 자신의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혼자 남겨질 자신을 위해 편지를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정말
아버지가 황제라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편지 역시 거짓이라면? 내가 초대장을 받고 너무 들떠 있었나 봐. 주제도 모르고 황제의 자식이라니 좋았던 거지. 아, 전부 거짓이라면 차라리 뻔뻔해지자.'

남자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아나스타샤의 기고만장한 태도와는 다른, 고민과 불안에 휩싸인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걱정 말아요. 초대장을 보내기 전에 후보들의 간단한 호구조사는 물론, 후보가 황제의 자녀라면 친자 검사 정도는 하거든요. 아, 물론 몰래 머리카락을 가져가기 위해 좀 힘들긴 했었죠."


"……그래요?"

고민과 불안을 싹 가시게 하는 명쾌한 대답이었다. 몰래 머리카락을 가져갔다는 부분이 신경 쓰이지만.

"저에게 초대장을 보내주신 것도, 제가 황제의 자식이라고 확신을 주신 것도 고맙긴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저를 도와주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방금도 의상에 대해 조언을 해주시고."

남자는 숨을 고르고선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이 후계자, 그러니까 황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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