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의 황토 젤리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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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하수도의 황토 젤리

 



"방금 저 웅덩이 움직이는 거 너도 봤어?"


 

엘돌란으로

이른 아침부터 카스펜서 저택 앞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클라인이 엘돌란에 가기 위해 준비해둔 마부와 마차였다.


엘돌란은 마법 도시 호라이즌에서 북동쪽으로 30km정도 떨어져 있는, 호주머니만(彎)에 인접한 도시였다. 이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차를 타고 지름길인 대로(大路)를 통한다고 해도 반나절은 더 걸렸다.
도착한다면 지낼 숙소도 알아보고 짐도 정리해야 하고 지리도 파악해야 되기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했다.

 

아나스타샤들은 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액시스의 성문을 지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익숙한 건물들의 풍경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창문 밖 경치에 눈을 떼지 못 했다.

 

"아도니스는 용 제국의 이곳 저곳을 다녔지 않아요?"

"네, 그래도 용 제국의 웅장한 자연은 언제봐도 경이롭네요."

 

여전히 시선은 창 밖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 바깥에 흰 색 물체가 눈에 띄었다. 마차를 따라 날아오던 피요르가 아도니스가 내다보던 창가 쪽으로 접근해 온 것이었다.

 

"헤헤, 이젠 피요르가 저를 경계하지 않나 봐요."

 

아도니스는 피요르가 도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아나스타샤 쪽을 보았다.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아나스타샤는 반대편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했었기에 몰랐었는데, 아나스타샤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나스타샤의 맞은 편에 앉은 클라인도 평소였다면 '짜증나게도' 아나스타샤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시선을 내린 채로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두 명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그들이 밤동안 싸우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아나스타샤가 클라인에게 화가 난 거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엘돌란에 도착하고 평민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숙소를 하나 구했다. '달'이라는 여관으로 주점없이 숙박업만 진행하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여관은 조용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나무로 된 내부는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가격 역시 합리적이였는데 2인실이 14sp였다.

아나스타샤는 코스모스와 같이 방을 쓰게되어 두근거렸다. 평소에는 하인된 몸으로 주인과 같은 방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여관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클라인과 아도니스였는데, 두 명의 반발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들은 각자 개인실을 쓰기로 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개인실은 20sp로 2인실보다 약간 더 비쌌다.


아나스타샤들은 방에 짐을 풀고서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수구 입구의 위치를 파악해 뒀다. 시간이 늦어 바로 들어갈 일은 없었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러면서 둘러 본 엘돌란은 나름대로의 독특함이 있는 도시였다. 소도시다보니, 당연히 수도인 액시스랑 비교 안 될 정도로 작았지만, 그래도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고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은 곳이었다.

 

엘돌란은 마법 도시 호라이즌에 가깝기 때문인지, 신비한 느낌이 있었다. 완전히 별세계인 호라이즌처럼 미로 같다든가, 건물이 있으면 안 될 곳에 세워져 있다든가, 형형색색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익숙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마법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이 숙박하는 도 그렇고, 이곳의 건물들에는 보호진(保護陳)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대마도사의 기후 조절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어서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상적인 날씨가 유지되는 도시였다.

하늘에는 편지가 마구마구 날아다녀 피요르를 어깨에 앉혀 쉬게 할 정도였는데, 아도니스의 말에 따르면 마법을 이용한 편지 배달이라고 했다. 저러다 누군가 가로채는게 아닌지 걱정하자, 수신인이 아닌 자에게는 잡히지 않게 열심히 도망다니니 괜찮다던가. 생물도 아닌 편지에게 측은감이 들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붉은 로브를 입은 점등사(點燈士)들이 도시 곳곳을 돌며 가로등에 불을 붙이는 것도 엘돌란만의 특별한 점이긴 했다.

보통의 도시, 특히 평민들이 사는 곳에는 가로등이 이곳처럼 많지 않을뿐더러, 우연히 지나가는 순찰병이나 근처 거주하는 사람이 '진짜 불'을 이용해 가로등을 밝히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하지만 이곳은 점화 마법을 사용해 번지지 않는 마법 불로 가로등들을 켜는 '점등사'가 별도로 존재했다. 어쩌면 늦은 밤의 치안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이 곳이 조금 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경비대들이 밤중의 평민 구역의 경비를 허술하게 했기에 별 반 차이는 없었지만.

모든 도시들이 전부 그렇 듯이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거리에 쥐가 많았다는 것이다. 더러운 골목이나 쓰레기통이 아닌데도 길거리에서 간간히 쥐가 보였다.

어쩌면 이건 하수구에 생겼다는 문제 때문에 생긴 일일수도 있었다. 하수구를 황토 젤리가 막고 있고, 거리의 미화에 힘쓰라고 했으니까. 거리의 미화가 쥐를 말하는 걸 수도 있었다.

쥐 말고도, 아나스타샤가 생각하기에 또 다른 단점은 각 도시 내의 각 구역이 높은 절벽과 성벽으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었다. 그 성벽은, 이 도시가 얼마나 계급 간 왕래가 없는지와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으니까. 반대로 상류층의 입장에서야, 이 단점이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층민과 섞이는 걸 극도로 꺼려하니까 말이다.


도시를 처음 봤을 때는 신비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점점 이유모를 찝찝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날 저녁, 다른 이들이 엘돌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아도니스는 하수도의 입구 위치만 파악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준비할 것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액시스에서의 전투에서 느낀 바로는, 전투에서 아군이 상대에게 피해를 입는 빈도가 많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이번 임무는 토벌 임무다보니 전투가 필수 불가결로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낙하 주문 같은 기능성 주문 대신, 잔상 주문을 익혀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도니스는 필요한 마법 재료를 챙기고 마법서를 본 후,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나에 주문들을 새겨놓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부디 자신의 마법이 아나스타샤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엘돌란의 학교 구역

전투에 있어서 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아나스타샤들은 '황토 젤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신비의 지배자들의 학파 건물로 향했다.

이 의뢰는 엘돌란을 나누는 세 학파 중 하나인 신비의 지배자들이 직접 황실에 의뢰한 것이었다. 단순 토벌 의뢰를 모험가 길드나 용병 길드 같은 곳에 맡기는게 아니라 황실에 의뢰한 것을 보면, 아마 황궁의 높은 사람들과 연줄이 있어서겠지.

세 학파들의 연구소(Laboratory)가 있는 학교 구역의 교정으로 가기 위해선 안장 구역에 들어가 '샤줄의 문'을 통과해야 했는데, 평민 구역에서 안장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 통행료를 내야했다. 같은 도시 내에서 통행료를 받는다는게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어쨌든 인당 2cp의 통행료를 지불했다.

안장 구역 동쪽의 샤줄의 문은, 여러 마법 장치와 보호막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물론 보호막이 있다고 해서 문지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통행료를 받는 안장구역을 입장할 때보다 철통보안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돈을 낸다고 입장할 수 있는게 아닌, '볼 일'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학교 구역이라길래 단순히 부잣집 자제들의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왠지 관청 구역보다도 이곳이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 짐작됐다.

 

아나스타샤는 문지기들에게 지령서를 보여주며, 황명임을 알리고 문을 통과했다.


샤줄의 문을 통과하고, 북쪽으로 길게 나 있는 큰 길을 따라갔다. 학교 구역의 가장 높은 곳에서 웅장하게 자리한 건물이, 그들이 찾고 있던 건물임이 쉽게 짐작이 되었다.

높은 사람은 높은 곳에 산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이 도시에 참으로 어울리는 말 아닌가 싶다.


길을 따라 올라가며 학교 구역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 도시에 살지 않기 때문에 이번 임무만 아니라면, 엘돌란에 또 온다고 하더라도 학교 구역에는 다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 구역은 엘돌란의 마법 학파들의 마법사들이 제자를 받아 가르침을 주었던 곳이 커져서 생긴 구역이었다. 그만큼, 주거지가 밀집된 일반적인 도시의 지역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다수의 건물들이 교실과 기숙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학업 장소로서의 용도 뿐 아니라, 주점이나 여관, 상점들도 존재했고, 학생들이 휴식을 보낼만한 장소도 존재했다.

호라이즌의 제국 마법 아카데미 출신인 아도니스는 익숙한 풍경에 감회가 새로운 듯 했다.

"아도니스, 구경하고 싶으면 교정에 들렀다가 돌아갈 때 잠깐 둘러볼까요?"
"앗……!"

 

아도니스는 정말 구경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아나스타샤를 쳐다봤다.

 

"아니에요, 임무로도 바쁜데 시간을 허비할 수 없죠."

 

애써 관심 없는 척 했지만, 전부 숨길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그의 그런 모습이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곳이 굉장히 신기한걸요? 잠깐 구경해요~"
"……네! 배려해줘서 고마워요, 아나스타샤."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준다는게 기뻤다. 마치 데이트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물론 군식구가 딸려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코스모스야, 아나스타샤의 하녀이니 그렇다 치고, 클라인마저 따라오는 것은 솔직히 별로였다.


교정은 샤줄의 문보다 훨씬 강한 마법적 보호를 받고 있어, 외부인인 아나스타샤들끼리 함부로 출입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샤줄의 문에서 마법 전령을 통해 보고 받은 내부 사람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은 '신비의 지배자들'의 교수 중 하나로, 아나스타샤들을 석좌 교수인 샤리사 다크볼트에게로 안내했다.

 

신비의 지배자들의 연구실은 주로 하이엘프와 하프엘프로 구성 된 곳이었다. 그들은 전부 기하학적인 은색 룬이 자수로 들어간 푸른 로브를 입고 있었기에, 그 사이에서 아나스타샤들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샤리사 다크볼트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소속의 마법사 하나가 슬라임(Slime)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법사의 관리 미숙으로 그 실험에서 만들어진 황토 젤리 하나가 탈출해 버렸죠. 처음엔 금방 찾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희끼리 조용히 해결하려 했는데 못 찾겠더라고요. 도시 내에서도 봤다는 사람도 없고 문제도 없으니 내버려 두기로 하고, 이제 한 달 정도 됐나……. 어느 기점으로 엘돌란의 하수구가 막혀, 비가 오는 날이면 역류하고 쥐들이 하수구를 빠져나오더군요."

"하수구를 막는게 그 황토 젤리라는 거군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샤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요."

"어딨는지 알게 됐는데, 왜 직접 가시지 않으시고요? 학생들을 시켜도 될 것 같은데."

"우리 중에는 하수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뭔……. 하수구에 들어가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발견한다면 그 황토 젤리는 처치해도 괜찮아요. 다만, 연구 지속을 위해 일부를 이 시험관에 넣어주시면 좋겠네요."


아나스타샤는 유리 시험관을 받아들였다.

"그 황토 젤리가 진짜 '젤리'라도 되나요?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면 좋을텐데요."

아나스타샤가 알기에는 황토 젤리라는 몬스터는 없었다. 슬라임이야 대체로 특징이 비슷하긴 했지만,, 마법사들이 연구한 실험체인만큼 단순히 황토색의 점액체가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갖췄을 수도 있었으니 알아두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샤리사가 웃기 시작했다.

"슬라임을 본 적 없으신가 봐요? 황궁에서 왔다길래 기대했는데, 이거 괜찮으려나."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아나스타샤는 기분이 나빠졌다.

"슬라임이라면 알고 있죠. 전 단지 황토 젤리라길래, 연구한 실험이라는 것이 먹던 노란색 젤리에 발이라도 다는 실험이라도 됐던 건지 궁금했던 거에요."

아나스타샤의 빈정거림에 샤리사의 표정은 자신의 차가운 눈색처럼 굳었다. '하프'인 엘프에게 무시당한게 하이엘프의 자존심이라도 건드린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그 모습에, 그가 이 학파에 있는 수많은 하프엘프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해졌다.

"흥, 단순히 기존의 젤리형 슬라임이 가진 검은 색상을 보기 좋게 바꾼 거에요. 이름 그대로 황토색이고 다른 슬라임이랑 다를 건 없어요. 이제 볼 일은 끝났죠? 다음에 볼 때는 임무를 완수했을 때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나스타샤들은 샤리사에게 쫓겨나 듯이 밖으로 나왔다.


교정을 나온 아나스타샤들은 학교구역 양 끝에 밀집된 상점가를 둘러보았다.
아도니스는 샤리사에게 문전박대 받던 기억은 금세 잊고, 신이 나 제일 먼저 달려나갔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사온 건지 솜사탕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왔다.

"아나스타샤, 여기요!"
"고마워요. 냠."

아나스타샤는 솜사탕을 받아들어 한 입 물었다. 설탕의 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단 음식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처럼 신이 난 아도니스의 얼굴을 보면, 솜사탕도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가 아도니스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편해진 것처럼 아도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솜사탕을 베어물고, 자신을 향해 작게 눈웃음 짓는 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보다도 솜사탕이 훨씬 달게 느껴졌다.

 

아나스타샤는 솜사탕을 다 먹고, 형형색색의 로브를 파는 상점을 바라보았다. 마법학교의 구역이다 보니 로브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방어구 상점이 있는것 같았다.

옷장 모양을 모티브한 것 같은 상점은, 건물 모양도 모양이지만 안에 팔고 있는 로브의 색상들이 화려해서 작은 상점임에도 눈에 확 띄었다.


"저기 가볼까요? 마법사의 옷장……? 점액체 몬스터를 퇴치하는거면 방어구 좀 바꾸고 싶은데."


상점에 들어가자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여자가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찾으시는게 있으신가요?"
"비닐로 된 로브나 겉옷은 없나요?"

점액체류의 몬스터는 강한 산으로 되어 있어 살가죽을 녹이고 금속을 부식시킨다. 하지만 모든걸 녹이는 건 아닌지라, 비닐과 유리는 산에 대한 대항책으로 쓰였다. 샤리사 유리로 된 시험관을 준 이유였다.
애초에, 슬라임이 위험하기는 해도 뭐든지 녹이는 생물이었다면, 그 생명체가 지나는 땅들도 전부 녹아서 진작 지하에 처박혔을 것이다. 그런 생물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악귀가 아니라 슬라임들이 제일가는 재앙이었겠지.

"특이한 걸 찾으시네요~ 우비로 쓰시려면 방수 마법이 걸린 로브도 있는데……. 하지만! 놀랍게도 저희 가게엔 그런 특이한 로브도 잔뜩 있답니다! 짠!!"

주인은 상점의 안 쪽에서 로브가 걸린 의상 행거를 끌고 나왔다. 행거에는 비닐로 된 투명한 로브부터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다채로운 비닐 로브가 걸려있었다.

"이렇게까지는……"

마치 준비라도 해놓은 것마냥, 화려한 비닐 로브들의 향연에 당황스러웠다.

 

"우와……. 이건 별 무늬에요. 비닐에 굳이 이런 무늬를 새기다니, 마력 낭비………."

 

하는 말과는 다르게 흥미로워 하는 표정이었다.

 

"어머, 고객님도 로브에 마법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고 계시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아도니스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못들은 척, 로브를 구경했다.

 

'저 별 무늬랑 아도니스의 로브 무늬가 같은 취급 당했어……. 마력 낭비 문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디자인의 문제에 관심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평소엔 잘 반박하면서 왜 반박을 안하는 거에요, 아도니스.'

 

"뭐, 실용적인 기능이 아니더라도 마법이 쓰여진게 좋으니까… 저는 이 로브로 할게요."

 

아도니스는 다른 로브를 구경하는 척 하다가, 다시 직전의 별 무늬 로브를 들어올렸다.

 

아나스타샤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설마 이 로브 디자인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네, 괜찮지 않나요?"

"지금 입은 옷이랑 차이가 좀 심하지 않아요? 너무 화려한 것 같은데."

 

지금 아도니스의 로브는, 처음 만났을 때 입은 그 로브였다. 고급스러운 민무늬 흰 색 천에 화려한 금빛 무늬가 새겨졌던.

하지만 지금 들어올린 비닐 로브는 쨍한 청보라빛 색에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형광 핑크 별이 잔뜩 새겨진 것이었다.

 

"그런가요…. 지금 입은 거랑 느낌이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음, 아도니스 본인이 좋다면 좋은 거겠죠."

 

'마법사들의 미적 감각은 다… 저래……?'

 

아나스타샤가 아도니스의 옷 고르는 센스를 보고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코스모스가 대신 의문을 풀어줬다.

 

"아마 아도니스 님이 말씀하신 비슷한 느낌은 로브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말하는 것일겁니다. 마법사들은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현실을 인식하는 눈이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고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건 외관의 미감을 따진다면, 마법사들에겐 그것이 잘 보이지 않고 자연의 마나 흐름, 물건에 짜여진 마력의 모양 같은 것이 대신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럼 아도니스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네? 겉모습이 안 보인다면 대체 마법사들은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는거야?"

"겉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 건 아닐겁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도 길을 걸을 때 개미가 몇마리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쪽에만 신경을 집중하면 알 수 있겠지만요. 설사 외관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사람과 물건마다 그 흐름과 모양이 전부 달라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도니스 님 기준에서 저 별 무늬 로브는 입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마력이 정교하게 짜여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말씀을 하신걸겁니다."

 

코스모스의 자세한 설명에,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가 자신의 영혼만큼은 알아볼 수 있다고 했던게 떠올랐다.

 

'아도니스에게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걸까.'

 

"근데 코스모스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거야? 코스모스도 마법의 조예가 있나?"

"마법은 아니지만, 저도 신성을 다루지 않습니까. 신성 사용자도 마법사들과 비슷한 감각으로 세상이 보입니다."

"그렇구나……."

 

아나스타샤는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이번 일이 아니라면 몰랐을 지식이었다.

 

'아직도 용 제국엔 내가 모르는 것이 많구나.'

 

아나스타샤는 아도니스의 취향에 대해 어느정도 의문점이 풀리고, 자신도 로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도니스의 로브 옆에 걸려있던 반투명한 연두색 로브를 집었다. 로브의 형태는 모자와 단추가 달린 사파리 코트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거기다 생각 외로 두툼하고 질긴, 폴리염화비닐(PVC) 비닐 재질이었다.
클라인과 코스모스 역시 옆에서 비닐로브를 집어들었다. 그들은 각각 무난한 검은색과 흰색을 들었다.

"가격은 각각 1gp입니다~"

아나스타샤와 아도니스는 돈을 지불하자마자 입어보았다.

"귀여워요, 아나스타샤."
"생각한 것보단 맘에 드네요. 다들 안 입고 가요?"

코스모스는 자신의 로브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아무래도 가서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클라인도 코스모스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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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 저 가게 구경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금세 학교 구역의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아나스타샤는 너무 아쉬웠다. 흔치 않은 조합인, 전직 궁정마법사와 제국 기사단 사단장, 황궁 하녀가 함께하는 이 휴식은, 정말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계속 함께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샤줄의 문으로 향하려 할 때, 코스모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저기 있는 골동품 가게에 들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응? 당연히 괜찮지. 근데 골동품점엔 왜?"
"지금 가진 제 방패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바꾸고 싶습니다."

코스모스가 등 뒤에 메고 있는 방패는 철 방패였다. 점액체와 싸우게 된다면 부식되거나 녹을 것이다.

 

"응, 바꾸는게 좋겠네."


아나스타샤들은 골동품점인 유물 사냥꾼에 들어갔다. 출입문의 바로 왼쪽에 있는 카운터에는, 머리 위가 벗겨진 늙은 마법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아나스타샤들이 들어오자, 자신의 회색이 섞여있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반갑게 맞이했다.

"아, 손님이신가요? 저는 유물 사냥꾼을 운영하는 가라도스입니다."

코스모스는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방패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우선 이 방패를 팔고, 다른 방패를 보고 싶습니다.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코스모스, 흥정, 기능 판정 : d20(14)+매력(1)+레벨(1)+모험가(1) vs 보통(15) / 성공

 

가라도스는 카운터 뒤에서 모노클을 꺼내더니 코스모스의 방패를 유심히 보았다.

"뭔가 특별한 점이 더 없나 봤지만, 그냥 흔한 철 방패군요. 이런거면 돈을 거의 쳐드릴 수 없겠는데요. 한 10cp 어떠십니까?"
"액시스제입니다. 액시스의 방패는 제국 최고의 품질이죠. 타 지역에서는 액시스의 수입무구는 비싸게 팔텐데요? 10sp에 사셔서 2gp에만 팔아도 물건 볼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살 겁니다."

코스모스는 자연스럽게 1gp가 아닌 10sp로 단위를 바꿔말해 가격을 많이 올리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동시에 판매 예상금액은 gp를 이용해 가격이 높아보이도록 혼동시키는 기술을 사용했다. 예사롭지 않은 흥정방법이였다.

"하지만…… 여긴 학교구역이에요."

코스모스가 아무리 흥정 실력이 뛰어난들, 가라도스는 골동품을 계속 팔아왔다. 그는 단순한 잔꾀가 아닌 제대로 된 이유로 반박했다.

"학교 구역에서 중장갑이나 철 방패 같은걸 쓰는 마법사는 드뭅니다. 제가 이익을 보기전에 이 방패는 애초부터 잘 팔리지 않을거에요."
"황궁의 병사가 쓰던 물건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가라도스는 무슨 말인가 싶어 코스모스를 쳐다봤다.

"저는 황궁의 하녀입니다. 기사가 아니다보니 보급 무기를 받을수도, 받았어도 팔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기사나 병사들과 안면은 있겠죠. 그들에게 자신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조언받아 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겁니다."

코스모스의 말은 청산유수였다.

"황궁의 사람들이 아무 무기나 쓰겠습니까? 필시 좋은 품질의 무구겠지요. 무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가치를 알아보고 반드시 살 겁니다. 그게 아니여도, 황궁의 사람이 쓴다는 이름이 있다면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마법사라고 해도 말입니다. 황궁에 관심 가지는 자들은 많은 건 가라도스 씨도 알지 않습니까."

가라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5sp로 하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들은 평민구역의 하수도 입구로 향했다.

그러는동안 코스모스는 유물 사냥꾼에서 산 나무방패를 앞치마로 닦았다. 일회용으로 쓰기 위해 산거라, 낡기도 했거니와 얼룩도 군데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도스라는 자는 마법사이지 무구를 관리하는 자가 아니였을테니, 괜찮은 무구 관리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이 방패를 코스모스에게 판매할 때는, 가라도스 본인도 재고처리를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2gp라는 방패치곤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흥정을 정말 잘하네요."
"모험을 하며 여러 장사꾼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분 정도면 그 사기꾼들과 비교하기 실례입니다만."

아나스타샤는 언젠가 꼭 코스모스에게 흥정의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얻을게 없는 싸움

하수구의 입구에 도착해 원형의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자, 길이 끊기고 양 옆으로 탁 트인 터널같은 공간이 보였다. 끊긴 길 아래를 내려다보니, 터널의 진행 방향으로 나 있는 길 하나가 사다리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수구 자체의 어두컴컴한 분위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수질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저기에 빠지고 싶진 않았다. 하수구의 물은 결국, 빗물을 받아 내리는 것 외에도 가정 폐수도 섞여 있을테니까.

 

아나스타샤들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왼쪽으로 먼저 향할지 오른쪽으로 먼저 향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왼쪽 길 끝에서 무수한 발톱 소리가 들려왔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을 보아 쥐로 예상되었지만, 문제는 한 두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질색했다.

 

"으……. 쥐 떼………. 그냥 피해 갈까요? 놔두면 하수구 밖으로 나가겠죠. 도시 안에서 쥐를 보는 것도 찝찝하긴 한데, 그래도."

 

하지만 반대편에서도 무언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소리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둔탁한 짐승의 발소리였다. 왠지 그 짐승은 자신들을 발견한다면 바로 달려들 것만 같았다.

 

"……피할 수 없겠군요."

아나스타샤들은 정체모를 짐승에 대비해 무기를 준비했다.



괴수 쥐
큰 놈들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목을 물어뜯을 수 있습니다.
1레벨 조무래기 [짐승]
행동 순서 : +2
더러운 이빨 +5 vs 장갑 : 4지속피해
흉포 : 괴수 쥐의 공격은 빗나갔을 때, 자기 레벨만큼의 피해를 줍니다. 비틀거릴 때는 빗나가는 공격이 자기 레벨의 2배만큼의 피해를 줍니다.
떼거리 공격 : 공격 대상마다 접전중인 다른 괴수 쥐 하나마다, 공격에 +1 보너스를 받습니다.
체력 6 / 장갑 15 / 신방 15 / 정방 10 

쥐 떼

작고 날카로운 발톱 수백 개가 바닥에 부딪히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2레벨 방해자 [짐승]
행동순서 : +4
접.덮쳐오는 이빨들 +7 vs 신방 (단거리의 적 1d3명) : 3피해, 공격 후 쥐 떼가 대상 중 하나와 접전에 들어갑니다.
순수 짝수 명중_대상은 다음 자기 차례가 끝날 때까지 저해 됩니다. 대상이 쥐 떼를 공격하거나 쥐 떼가 체력이 0으로 떨어지면 저해 효과도 끝납니다.
기회 없음 : 쥐 떼는 기회 공격을 하지 못하고, 적들도 쥐 떼에게 기회 공격을 하지 못합니다.
집단 저항 :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쥐는 지난번에 자기들이 공격하지 않은 적이 주는 피해에 대해 저항 +18을 얻습니다.
체력 39 / 장갑 18 / 신방 16 / 정방 12


배치

||    떼2   |
||괴2 괴3 |
||   괴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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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1   |




행동순서 판정 : 쥐떼2(20), 괴수쥐3(18), 괴수쥐1(17), 쥐떼1(13), 클라인(12), 아나스타샤(9), 코스모스(6), 괴수쥐2(6), 아도니스(4)


쥐떼2, 쥐들의 가장 앞으로 이동.
괴수쥐3, 코스모스 앞으로 이동,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1피해.
괴수쥐1, 클라인 앞으로 이동, 클라인 공격, 4지속피해.
쥐떼1, 아나스타샤 앞으로 이동,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클라인, 괴수쥐1 근접 공격, 13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지속피해 극복판정 보통, 실패.
괴수쥐1, 전투불능.
괴수쥐3, 전투불능.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 공격,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 후광 사용, 쥐떼2에게 접근, 빗나감, 0피해.
괴수쥐2,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 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쥐떼1에게 냉기광선, 4냉기피해.

고조주사위1
쥐떼2, 코스모스 접근,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코스모스 저해됨.
쥐떼1,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아도니스도 3피해.
클라인, 4지속피해, 쥐떼2에게 강타 선언, 빗나감, 2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만회의 일격 성공, 7피해, 극복 판정 성공.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 공격,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 극복판정 성공, 쥐떼2 응징 선언, 쥐떼2 근접공격, 빗나감, 4피해.
괴수쥐2, 클라인 공격, 4지속피해.
아도니스, 쥐떼1 산성화살, 빗나감, 5부식피해.

고조주사위2
쥐떼2,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쥐떼1, 아나스타샤 공격, 아도니스도 피해, 3피해, 아나스타샤 저해.
클라인, 4지속피해, 괴수쥐2 근접공격, 9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극복판정 성공.
괴수쥐2, 전투불능.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공격, 빗나감, 2피해.
코스모스, 쥐떼2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클라인에게 안수치료, 13회복.
아도니스, 쥐떼1에게 색채분사, 12정신피해.

고조주사위3
쥐떼2, 코스모스 공격, 빗나감.
쥐떼1, 아나스타샤 공격, 3피해.
클라인, 쥐떼2 근접공격, 치명타 9피해.
아나스타샤, 쥐떼1 쌍수 근접공격, 5피해.
코스모스, 쥐떼2 근접공격, 14피해.
아도니스, 쥐떼1 냉기광선, 12냉기피해.
쥐떼1, 전투불능.

고조주사위4
쥐떼2, 코스모스 공격, 클라인과 아도니스도 피해, 3피해, 코스모스 저해.
클라인, 쥐떼2 근접공격, 빗나감, 묵직한일격, 5피해.
쥐떼2, 전투불능.

 



오른편에서 나타난 짐승은 쥐였다. 대신 어린아이의 크기만한 괴수 쥐였지만 말이다.

 

"저게 쥐라고? 대체……"

 

괴수 쥐에 한 눈 팔기 무섭게 왼편에서 달려오던 쥐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그들의 온 몸을 물어뜯었다.

아나스타샤는 기겁하며, 달라붙은 쥐를 칼로 베며 외쳤다.

 

"쥐가 사람을 봤으면 도망이나 갈 것이지, 얘넨 뭔데 이렇게 흉포해요?!"

아도니스가 쥐들을 떼어내 하수구의 물 속으로 던지며 말했다.

 

"보통 쥐가 아니에요! 이 쥐들, 마력을 품고 있어요!"

"마법 도시의 쥐는 쥐 마저도 마법의 재능을 품고 있나 보죠?!"

 

쥐들과의 싸움은 예상 외로 상당한 난전이였다. 쥐들은 작고 재빨라서 검을 휘두르는 족족 빗나갔으며, 지능이 높은지 빠르게 급소를 파악해 파고드는 통에 무기를 든 손의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공격성이 크고 민첩하긴 했지만, 솔직히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괴수 쥐의 합공과 처음에 쥐라고 방심했던 점이 실책이긴 했다. 아나스타샤들은 겨우겨우 그 떼거리 속을 빠져나와서야 처치할 수 있었다. 클라인과 코스모스의 공이 컸다.


아나스타샤는 쥐들과의 접촉으로, 아도니스는 익숙치 않은 근접전으로 인해 목표와 싸우기 전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그 두 명을 위해 하수도에 앉아 잠시나마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더러운 물이 옆에 흐르는 하수구 안이긴 했지만.

 

"다들 하수구에서 쉬고 싶지 않을텐데,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아나스타샤."

 

아도니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쥐들이 아직도 하수구에 남아 있었네요. 전부 지상으로 빠져나온 건 아니였나 봐요."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였으면 좋겠네요. 또 나오더라도 이번엔 방심하지 말아야지……. 그냥 화살 몇 방이면 됐는데."

클라인은 쉬면서도 하수구의 양쪽 방향을 둘러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쥐들이 달려든 건, 저희가 하수도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예민해져서 그런 걸 겁니다. 그런데 왼쪽 방향에서 쥐떼가 더 적게 나왔죠."
"덩치가 어린 아이 크기 정도 됐지만요."
"그래서, 아무래도 왼쪽 방향에 쥐가 적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괴수 쥐가 나온 이유라던가."
"흠……. 쥐를 괴수로 만든 무언가라니, 상상하기 싫은데… 그것도 아니면 황토 젤리가 오른편에 있어서 쥐들을 먹어치웠을 수도……. 그럼 오른쪽 방향으로 갈까요?"


아나스타샤들은 휴식을 마치고, 쥐가 적게 나왔던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기로 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길을 걷는 내내 쥐 같은 건 더 나타나지 않았다. 하수구에는 웅덩이에 물 떨어지는 소리와 아나스타샤들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퍼졌다.
……문제는 막다른 벽에 다다를 때까지도 아무것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쥐능 커녕, 목표였던 황토 젤리도, 박쥐도, 먼지하나 없었다.

"아무것도 없네. 잘못 생각 했나봐요. 반대편으로 향하죠."

발걸음을 돌리자 무언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 육감, 기능 판정 : d20(18)+통찰(0)+레벨(1) vs 어려움(20) / 실패
코스모스, 육감, 기능 판정 : d20(11)+통찰(2)+레벨(1)+모험가(1) vs 어려움(20) / 실패
클라인, 육감, 기능 판정 : d20(19)+통찰(0)+레벨(1)+영웅(2) vs 어려움(20) / 성공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던 클라인은 본능적인 감이 무척 뛰어났다.
클라인은 불길한 예감에, 빠르게 뒤를 돌아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의 예감이 맞았다. 막다른 곳 구석에 고여있던 흙탕물이 흐물흐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형체를 잡으며 슬라임의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누가 봐도 저것이 황토 젤리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 탁한 노란색이었다.

 

클라인은 그것이 형태를 완전히 갖추기 전에 선공하려 달려들었다.



황토 젤리
"방금 저 웅덩이 움직이는 거 너도 봤어?"
대형 3레벨 강적 [점액]
행동순서 : +2
접.산에젖은 위족 +8 vs 신방 (단거리의 서로 다른 적들에게 최대 1d4회까지) : 6산피해
분열 : 황토 젤리는 처음으로 1회의 공격에 20이상의 피해를 입었을 때 보통 크기의 젤리 둘로 나뉩니다. 각각의 체력은 분열 당시 본체의 체력을 둘로 나눈 것보다 2d6 많습니다. 새 황토 젤리들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칩니다. 한 번 나뉜 젤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습니다. (살아남으면, 도로 합쳐질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체력 90 / 장갑 18 / 신방 17 / 정방 16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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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순서 판정 : 클라인, 아나스타샤(19), 코스모스(17), 아도니스(9), 황토젤리


클라인,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만회의 일격 7피해.
아나스타샤, 활시위를 겨눔, 황토젤리에게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코스모스, 황토젤리 신앙의 투창,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아나스타샤에게 잔상 주문.
황토젤리, 클라인 공격, 코스모스와 아도니스도 피해, 6부식피해.

 

황토 젤리는 클라인의 공격을 받고 약간 움츠라들었다. 하지만 황토 젤리의 체액때문에 검날이 약간 상했다. 클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활로 원호할게요."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나무 화살이 무기 손상 없이 황토 젤리에게 상처 입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뒤로 물러나 활 시위를 당겼다. 몇 발의 화살이 황토 젤리에게 박혔지만, 그것은 그저 화살을 먹이라도 되는마냥 집어 삼킬 뿐 큰 데미지는 없었다.

코스모스도 투척 무기를 준비하려다 그 모습을 보고 모닝스타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크기가 커서 화살 같이 작은 무기의 충격은 젤리형 몸으로 완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쳇……. 그럼 단검을 빼들어야 겠네요."

 

무기를 교체하는 와중에 갑자기 몸에 신비한 빛이 감돌았다.

 

"아나스타샤, 잔상 마법을 걸었어요! 이제 저 황토 젤리에게 아나스타샤가 여러 명으로 보여서 제대로 공격을 명중 못 시킬 거에요!"

 

"그, 그런 마법은 저보다는 클라인이나 코스모스에게 쓰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마법을 받으면 앞으로 돌진해야 할 것 같잖아…!!'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고 황토 젤리에게 달려들었다.


고조주사위1
클라인, 황토젤리 근접공격, 완전히 빗나감 1피해, 공격하며 3피해 입음, 빈틈만들기 성공.
아나스타샤, 황토젤리 원거리 공격, 5피해.
코스모스, 황토젤리 접근,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황토젤리 냉기광선, 12냉기피해.

황토젤리,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함, 극복판정 쉬움 성공.

 

황토 젤리는 클라인과 코스모스, 아나스타샤이 공격에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사이즈도 처음보다 많이 작아졌고 슬라임들이 가진 '핵'에도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타로 클라인이, 산으로 인해 이젠 완전히 새까매진 검으로 황토 젤리를 한 번 더 가를 때였다.

 

황토 젤리가 둘이 되었다.

 

"괜찮아! 다들 방심하지 마! 슬라임들은 위기에 처하면 마구 분열해대니까. 분열한다고 더 강해지지는 않아! 더 약해진 슬라임이 두 마리가 되는 것 뿐이지!"

 

아도니스의 말처럼 황토 젤리의 크기는 1/2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보통 남은 한 녀석은 전투에서 이탈하려고 하더라지."

 

아도니스는 도망치는 황토젤리2—아나스타샤는 속으로, 자신과 대치중인 황토젤리를 황토 젤리1, 도망치려는 황토 젤리를 황토 젤리2라고 이름붙이고 있었다—를 냉기 광선으로 얼리며 말했다.

꽁꽁 얼어 노란 얼음 덩어리가 된 황토 젤리는, 코스모스가 방패날로 내리치자 핵과 같이 산산조각나서 사라져 버렸다.


고조주사위2
클라인, 황토젤리 근접공격, 12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아나스타샤, 황토젤리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코스모스, 황토젤리 응징 선언함,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5피해.
아도니스, 황토젤리 색채분사, 빗나감.
황토젤리,
코스모스 공격, 아도니스도 피해, 6부식피해.


고조주사위3
클라인, 황토젤리를 강타한다고 외침, 황토젤리 근접공격, 빗나감 2피해, 빈틈만들기 성공.
아나스타샤, 황토젤리 원거리공격, 치명타 13피해.
코스모스, 부식피해 극복판정 실패, 6부식피해, 자신에게 안수치료, 3회복, 황토젤리 근접공격, 치명타 19피해.
아도니스, 뒤로 한걸음 물러남, 황토젤리 산성화살, 12부식피해.
황토젤리, 전투불능.

 

남은 황토 젤리는 클라인이 일격으로 죽어, 평범한 산성 점액체가 되었다. 황토 젤리가 작아져, 긴 검이 작아진 황토 젤리의 핵까지 바로 닿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리품 : 황토 젤리의 점액



아나스타샤는 가방에서 샤리사에게 받은 유리 시험관을 꺼내, 이젠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 황토 젤리의 점액 일부를 옮겨 담았다. 강한 산성이기에 피부에 닿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전리품도 챙기고 전투도 완전히 끝났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장소도 장소지만 아나스타샤들의 꼴을 보면 그럴만 했다.
클라인의 양손 검은 부식되다 못해 완전히 녹아내려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비닐 로브로 보호 받지 못한 건틀렛의 일부도 녹슬었다. 코스모스의 방패에도 점액질이 덕지덕지했으며, 모닝스타도 머리부분의 흔적을 잃었다.


그들은 지상으로 올라가며 엉망진창인 비닐 로브를 벗어던졌다.


"황토 젤리의 점액이 맞네요. 이걸로 경비 슬라임의 연구를 계속 할 수…… 아, 보수는 여기서 바로 드릴게요."

'방금 슬라임을 경비로 사용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나스타샤는 엘돌란의 미래를 걱정하며 보수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장비나 새로 맞춰야 겠네요. 근데 지상의 쥐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황토 젤리 때문에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온 거잖아요."

샤리사는 유리 시험관과 보고서를 번갈아 보다가,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아직도 안갔냐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런 부분까지 신경써야 되나요? 뭐, 도시일은 경비대인 은방패대가 알아서 처리하겠죠."
"…………."

 

엘돌란의 거리 위생 상태가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샤리사의 무책임한 말에 더 이상의 할 말을 잃은 채, 그냥 교정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령서에는 '황토 젤리'를 처리해 거리 미화에 힘쓰랬지, 쥐를 잡아서 거리 미화에 힘쓰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쥐가 번식하면 나중엔 귀족들도 피해 볼텐데 말이지. 하지만 본인들이 거리 미화에 관심없다는데.'

 

잘 관리 된 거리에서만 지낸 샤리사가 쥐들의 생태에 알 턱이 없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번식력이 뛰어난지, 얼마나 병균을 옮기고 다니는지.

 

만약 용 황제의 후계자가 된다면 이 도시도 아나스타샤가 돌봐야 할 도시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엘돌란의 사람들을 내버려 두는게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금은 일개 후보자였다. 이 이상의 간섭은 과한 간섭일 것이다. 집집마다 들려서 쥐덫을 놓으라고 말하고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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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황제의길 프롤로그1 13시대 1230년 열의의 달 3월 10~15일
붉은흙1~2 3월 16일, 붉은흙3 3월 17일
황토젤리 3월 18~19일
엘돌란1~3 20일, 엘돌란3~7 21일, 엘돌란8~10 22일
황금요새1~2 23~24일 황금요새3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