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4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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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4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오는 행복

- 히아신스

 


 

청갈기 용병단 잠입

청갈기 용병단의 병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주둔지 내 용병단들을 제 멋대로 가지고 놀고 이간질시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분위기였다.


사실 정말로 아무런 관련도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용병단의 불행을 연료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 좋은 행동이란 것도 아니었지만.

아나스타샤들은 잠입을 위해, 병영 근처에 경비를 서고 있는 청갈기 용병단 단원들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겼다.
병영의 후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안심한 아나스타샤는 들어가려 발을 옮겼다.

아나스타샤, 잠입, 기능 판정 : d20(10)+민첩(2)+레벨(1)+뒷전(4)+피요르(2) vs 보통(15) / 성공
코스모스, 잡입, 기능 판정 : d20(18)+민첩(-1)+레벨(1)+모험가(1)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 잡입, 기능 판정 : d20(20)+민첩(-1)+레벨(1) vs 보통(15) / 성공

 

아나스타샤, 클라인, 코스모스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아도니스, 잡입, 기능 판정 : d20(13)+민첩(0)+레벨(1) vs 보통(15) / 실패

아도니스 역시 조심스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실수로 로브를 밟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용병 단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거기 누구야!"


"칫."

아도니스는 혀를 차곤 매료 주문을 걸었다.

 


 

청갈기 용병단 견습 마법사
체력 26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아도니스, 매료, 공격 판정 : d20(11)+지능(5)+레벨(1) vs 정방(16) / 성공

 

그 남자는 성공적으로 주문에 걸렸다.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인가! 내가 부대 안을 소개시켜줄까?"

아무런 의심 없이 아도니스를 받아들일뿐더러, 상당히 친절해졌다. 매료 주문의 효과일 것이다. 아도니스는 우리들을 동료라고 소개했다.

 

매료당한 용병 단원을 따라 병영 내부로 들어왔다.

그의 뒤를 따르니, 다른 단원들도 흘깃 쳐다만 보기만 하고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누구인지 묻기 위해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럴 땐 매료당한 남자가 견학하는 신입이라며 대신 설명해 주었다.

아나스타샤는 너무 쉬운 성공에 맥없이 한숨을 쉬었다.

"잡입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매료 주문을 사용했으면 됐었던 거였네……. 마법이 이렇게 편리할 줄이야."

 

청갈기 병영의 방은 총 7개로, 아나스타샤들은 입구 쪽 방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들어간 방은 단원들의 침실이었다.

청갈기 용병단, 매료, 극복 판정 : d20(1) vs 보통(11) / 실패

 

아나스타샤들은 그들이 지낼 방을 둘러본다는 명분으로 방을 탐색했다.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침대 여러 개와 중앙에 테이블이 있는 구조였다. 테이블 위에는 케스 시합 표가 눈에 띄었다.


아나스타샤, 케스표 훔치기, 기능 판정 : d20(5)+민첩(2)+레벨(1)+뒷전(4)+피요르(2) vs 보통(15) / 실패


"응? 뭐 하는 거야?"


"아아…. 케스 시합 표가 있길래, 이게 뭔가 궁금해서요."


"아~ 우리 용병단의 돈벌이 수단 중 하나지. 곧 익숙해지면 그게 어디에 쓰는 표인지 알게 될 거야. 그냥 케스 시합이 보고 싶은 거라면 나중에 단장님께 말해 봐. 한 장 주실 거야."


"알겠어요."

아나스타샤는 표를 슬쩍하려다 실패했다. 다행히도 우리를 안내하던 남자는 아도니스의 매료에 걸려 별다른 의심 없이 친절히 설명해줬다.

'괜찮아. 표라면 암표상들을 처리하고 얻은게 있으니까. 허튼짓을 해서 의심을 사지 말자.'

 

이번엔 맞은편에 있는 침실에 들어갔다.

청갈기 용병단, 매료, 극복 판정 : d20(2) vs 보통(11) / 실패

이번 방에는 단원 두 명이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외에는, 이전 방과 다름없는 삭막한 생김새로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옆 방으로 향했다. 그 방도 침실이었다. 단원 한 명이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청갈기 용병단 매료 극복 판정 : d20(15)vs보통(11) 성공

그때, 매료 마법에 당했었던 남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어… 어……?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마법이 풀린 것 같았다.

"너희들…… 아! 너희들 신입이 아니라 침입자였었지!"

저 남자의 입을 막기 위해 쓰러트려야 할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들은 각자의 무기를 쥐었다.

 



청갈기 용병단 견습 마법사
용병단에 입단했지만 아직 많이 미숙합니다.
보통 1레벨 병사 [인간형]
행동순서 : +3
미약한 마력의 지팡이 +5 vs 장갑 : 4 피해
순수짝수 명중 또는 빗나감 _ 졸개가 이전투에서 가하는 다음공격은 +6 피해를 줍니다.
체력 26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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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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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24),아도니스(21),코스모스(12),적(9),클라인(2)

아나스타샤, 적에게 단검 하나를 던져 원거리 공격, 5피해.
아도니스, 적에게 냉기광선, 15피해.
코스모스, 적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적, 아나스타샤에게 접근, 아나스타샤 공격, 4피해.
클라인, 적에게 접근, 적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만회의 일격, 5피해
적, 전투불능


전리품 : 쾌검 표식이 찍힌 단검, 아나스타샤의 단검



아나스타샤가 먼저 남자에게 단검을 던졌다. 이어서 아도니스의 냉기 광선으로 치명타를 입히고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꽁꽁 얼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소리 없이 처리한 덕에, 방 안에서 자고 있던 단원도 깨어나지 않았다.
클라인은 기절한 그를 방 안 침대로 끌고 가 뉘였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소지품도 뒤져 보죠."

 

기절한 남자의 무기 주머니에는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찍힌 단검이 있었다.

"이 단검은………."


"그냥 얘네가 범인인데요?"


"분명 병영에 더 있을 거예요. 증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왕 들어온 거 계속 찾아보죠."

아나스타샤들은 이 이상,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남은 방은 조심히 수색하기로 했다.

 

곧바로 맞은편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증거가 될만한 물건들도 없었다.

 

빠르게 나와, 옆 방으로 들어갔다.

 

잠입 발각, 극복 판정 : d20(17) vs 보통(11) / 성공

그 방에도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찾을 수 없었다.


"휴……. 계속 침실, 침실………. 용병단의 병영이 아니라 순 여인숙이구만."

 

또 방을 나와 맞은편 방의 손잡이를 돌렸다. 이 방이, 복도 끝의 제일 큰 문을 가진 방 이외에 남은 마지막 방이었다.

 

하지만 문이 잠긴 건지 덜컥거리기만 할 뿐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문 손잡이에 열쇠 구멍이 있었다.


아도니스가 다 해결 방법이 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제가 해제 마법을 쓸까요?"


"그런 마법이 있어요?"


"네! 마나를 점토 같은 재질로 변화시켜서 이 열쇠 구멍 안에 흘려보낸 다음, 그 구멍에 맞게 조물조물해서 열쇠 모양을 만드는 거죠."

자신 있게 원리를 설명하고는 문에 해제 소마법을 걸었다.


아도니스, 소마법, 기능 판정 : d20(16)+지능(5)+레벨(1)+수석(3) vs 어려움(20) / 성공

큰 소리로 달칵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문이 쉽게 열렸다.

"와, 진짜 그냥 열리네! 이거 완전 위험한 능력인데요!"

내뱉은 말과는 달리, 아나스타샤는 활짝 웃고 있었다.

 

'도둑질도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왜 마법사 도둑은 없지? ……아, 애초에 마법을 배우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데, 돈이 많은 사람이 굳이 도둑질할 필요가 없지. 허허.'

 

……이런 상상이 아나스타샤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아도니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 활짝 웃는 모습에 수줍게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잠입 발각, 극복 판정 : d20(18) vs 보통(11) / 성공

잠긴 문 너머는, 무척 캄캄했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무로 된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고 여러 번 옮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상자의 내용물은 단순한 예비용 무기와 갑옷, 로브, 건식량 등 그런 것들이었다.

"그냥 창고였던 건가……."

아나스타샤는 포기 않고 다른 증거를 찾으려 상자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던 중, 상자 하나에서 익숙한 갑옷 하나를 발견했다.

"이 갑옷, 쾌검 용병단 갑옷과 비슷하지 않아요?"

청갈기 용병단의 유니폼도 쾌검 용병단과 같은 푸른 계열의 천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옷은 바깥의 단원들과 입고 있는 것과 디자인이 달랐다.

후드 없이 세워진 목깃, 판금으로 되어 은색으로 빛나는 어깨 갑옷과 흰 실로 수놓아진 소매의 아르누보 자수. 마법사들이 대부분이라는 청갈기 용병단이 이런 무거운 경갑 ─ 마법사들에게는 소량의 금속만 덧대어진 경갑이나 체인 메일, 미늘 갑옷의 경우에도 무겁다고 여기는 경우가 다수였다 ─ 을 입을 리 없었다.

……사실 결정적으로, 소매 끝에 달린 은색의 커프스(Cuff links)에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이걸 입고 붉은 흙 보병대를 공격한 거겠군요. 그쪽은 당연히 쾌검 용병단의 부하일 거라 생각해서 시비에 걸려든 것일테고 말입니다."

 

"이 갑옷도 한 벌 챙겨 놓는게 좋겠어요."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가방에 갑옷을 말아 넣었다. 갑옷의 크기 덕분인지 가방이 상당히 부풀어 올랐다.

 

챙길만한 것을 전부 챙긴 뒤에 창고에서 나와 마지막 문 앞에 섰다.

"이제 이 방만 남았네요. 들어갈까요?"

 

청갈기가 두 용병단을 이간질한 범인이며, 그들의 싸움으로 이득을 보았다는 증거는 전부 얻었다. 그래서 조사를 더 할지 끝낼지에 대한 여부는, 같이 잠입해준 이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네. 아주 끝장을 보죠. 솔직히 그 암표 좀 팔아서 뭘 한다고 갑옷 제작에, 무기 위조에, 살인까지……. 수익이야 낼만큼 내겠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할만한 거냐는 거죠. 분명 엄청 큰 걸 숨기고 있을 거예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나스타샤."

 

웬일로 아도니스와 클라인은 의견이 맞았다. 코스모스도 별 불만 없어 보였다.

 

"그럼 조사를 계속하죠."


"제일 큰 방이니, 안에 사람들이 모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는게 좋겠습니다."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열었다.

잠입 발각, 극복 판정 : d20(6) vs 보통(11) / 실패

문을 살짝 열자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으로 보이는 화려한 로브를 입은 사람과 3명의 단원이 보였다.

그러다 단장으로 보이는 자와 아나스타샤의 눈이 마주쳐 버렸다. 바로 정면에 떡하니 서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던 아나스타샤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내버렸다. 덕분에 다른 단원들도 아나스타샤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크게 얼굴을 찡그리며 의자 옆에 세워둔 지팡이를 들었다.

"누구냐!!"

 



청갈기 용병단 단장
용병단을 이끌어가는 단장이지만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2배위력 1레벨 리더 [인간형]
행동순서 : +3
원.기력의 지팡이 +6 vs 장갑 : 10 피해, 단거리의 리더가 아닌 인간들은 다음번 명중하는 공격으로 +3피해를 더 줍니다.
순수짝수 빗나감 _ +4 피해
체력 52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청갈기 용병단 신입 마법사
용병단에 막 입단했습니다.
조무래기 1레벨 [인간형]
행동순서 : +2
낡은 지팡이 +5 vs 장갑 : 3 피해
날랜몸 : 이들은 물러서기 판정에 +4를 받습니다.
체력 7 / 장갑 17 / 신방 11 / 정방 16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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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      |
|    신1 신2    |
|      신3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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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20),아도니스(18),클라인(16),신입2(15),신입1(14),신입3(8),코스모스(5),단장(5)

아나스타샤, 아도니스 쪽으로 물러섬, 단장에게 장궁으로 원거리 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단장에게 산성화살, 빗나감, 5지속 부식피해.

클라인, 신입3에게 접근, 신입3에게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신입2,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에게 공격, 빗나감.
신입1, 클라인에게 접근, 클라인에게 공격, 3피해.
신입3, 클라인에게 공격, 3피해.
코스모스, 클라인 옆으로 이동, 신입2에게 응징 선언, 신입2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6추가피해.
신입2, 전투불능.
단장, 코스모스에게 원거리공격, 10피해.

 

아나스타샤는 발각되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애초에 아나스타샤의 주특기는 활이었다. 지난번 암표상과의 전투에서는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근접전을 펼쳤지만, 지금은 달랐다. 꽤 거리가 됐기에, 클라인과 코스모스가 적들에게 달려드는 사이, 활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아도니스 역시 아나스타샤와 같이 클라인과 코스모스를 엄호했다.

 

적들은, 검과 모닝스타로 공격해오는 이들을 막으랴, 화살비와 마법으로 된 산성비를 막으랴, 정신이 없었다.

 

결국 단원 중 한 명이 쓰러졌다.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단장에게 원거리공격, 9피해.
아도니스, 앞으로 약간 전진, 단장에게 냉기광선, 15냉기피해.
클라인, 신입1에게 공격, 빈틈만들어짐, 11피해, 신입3에게 이어베기, 6피해.
신입1, 전투불능.
신입3, 전투불능.
코스모스, 단장에게 신앙의 투창, 5신성피해.
단장, 클라인에게 원거리공격, 10피해.

 

한 명이 쓰러지자, 적들은 작전을 바꿨다. 누가 자신을 공격하든 말든, 한 명만 집중해서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 대상은 클라인이었다. 아무리 클라인이 강하고 저들이 마법을 쓰는 시늉만 한다고 한 들, 혼자서 셋을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클라인은 그들의 공격을 버텨내는게 고작이었다.

 

"어이, 너 몸 하나는 튼튼하잖아. 계속 버텨보라고!"

 

아도니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클라인이 쓰러지기 전에 적들을 쓸어버릴 큰 마법을 시전 하기 시작했다.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단장에게 원거리공격, 6피해.
아도니스, 단장에게 냉기광선, 치명타 30피해.
단장, 전투불능.

 

커다란 냉기 광선이 방 안을 덮쳤다.

 

전리품 : 추천장

 


 

적들은 전부 얼어버렸다.

하지만 제일 앞에서 적들의 공격을 받아냈던 클라인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 아나스타샤는 그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부축했다.

"어떡해…….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당신이 부상을 입지 않으셨다면야……."

클라인은 단장의 방에 있던 침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코스모스가 다가가, 전과 같은 안수(按手)
치료를 시작했다. 클라인의 몸은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아까처럼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아, 일어나지 말아요. 클라인은 더 쉬는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대신 저보다는 방의 조사를 우선 부탁드립니다."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이곤, 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코스모스와 아도니스 역시 상자와 테이블, 침대 밑 같은 곳을 살펴보았다. 그때, 코스모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 책상 서랍 속에 수상한 종이가 있습니다."

아도니스가 코스모스와 같이 종이를 확인했다.

"아니스 용병단에 지원하는 서류예요."


"그건 우리가 부대 사무소에서 받아온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나요?"


"이 신청서 외에도 몇 장 더 있어요."

첫 번째는 아니스의 용병단에 그들을 추천하는 추천장이었다. 단순히 경비 역할뿐만 아니라 '특별한' 일을 맡길 수도 있다는 내용까지 쓰여 있는. ……그 특별한 일이란 건, 원래 이들의 주 업무였던 탈세를 위한 장부 조작 같은 일이었겠지.

 

두 번째는 이번 사건의 지령서였다. 아니스가 가진 기존 부대를 이간질하는 방법부터 약소한 물자 지원 유통 경로, 아니스를 회유할 수 있는 그의 약점까지. 마지막에는 지령서를 태워 없애라고 쓰여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기에 여기 남아 있는 걸 거다.

지령서는 익명으로 되어있긴 했지만, 어느 세력에서 보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추천장을 써준 자와 같을 거란 걸.

 

아나스타샤는 이해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체 이런 허접한 건달 놈들의 뒤를 봐주는게 누구야, 정말?"

 

"음……. 추천장을 봐서는 투장인 것 같은데요."

 

"엑, 투장 같은 자가 왜요?"

 

그 질문에는 클라인이 대신 답했다.

 

"분명 액시스 내, 암흑의 신의 신도를 늘이려는 계획이었을 겁니다. 건달들이야말로 법과 정의보다는 검과 무력에 가깝고, 암흑의 신 추종자들이 돈과 명성을 준다는 이유로 쉽게 회유할 수 있는 대상일테니 말입니다."


클라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덧붙였다.

"분명 그 추천장과 지령서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겁니다. 아마도 청갈기 용병단의 단장은 계획이 실패했을 때, 투장의 하수인들을 끌어들일 요량으로 남겨둔 것이겠죠. 하지만 그들은 쉽게 당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내부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표면적으로는 용 황제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자이니, 제국은 투장의 편을 들어줄 겁니다. 고작 건달 집단 한둘의 일로 무너질 관계는 아니니까요."


"결국 이 일이 밝혀져서 무너지는 것은 이 녀석들뿐이겠네요."

투장이 관계되었다는 말과, 그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에, 코스모스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사제는 아니지만, 빛의 신이 직접 창조했다고 여겨지는 종족인 신성족인만큼, 암흑의 신을 섬기는 집단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직 시작이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어도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투장이 심연에서 나오는 악귀들을 처리해주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과연 이 관계를 일방적으로 그만둘 수 있는 걸까요?"

 

"……그러게. 하지만 결국 악귀 문제만 아니라면 유지할 필요도 없다는 거잖아. 어차피 해결해야 할 문제야. 임무를 하다 보면, 아니, 임무가 끝나서도 악귀를 해결할 방법을 계속 찾아보면 돼. 그들을 처리할 만큼 힘을 기르거나. 좀 허황된 얘기지? 아~ 어쩜 갈수록 허풍만 느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무표정한 모습의 코스모스는, 보기 드물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 보기 드문 정도가 아니라……

 

"나 코스모스가 웃는 걸 처음 봤어."

 

"네? 코스모스가 웃어요?"

 

추천장과 지령서를 꼼꼼히 확인하던 아도니스도, 침대에 기대앉아 방 안을 둘러보던 클라인도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요, 아닙니다. 다들 마저 할 일 하시길 바랍니다."

 

코스모스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정말 밝은 빛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아가씨랑 있으면 저도 모르게 웃게 되네요. 하지만 저는 아가씨의 말들이 허세나 허풍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왠지 모두가 생각만 하는 그런 이상적인 일들을, 반드시 이루어내고 말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당신께는 그런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아, 아니, 코스모스도 아도니스에게 옮았나…. 자꾸 날 칭찬 감옥에 가두려고 하네……."

 

아나스타샤는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들이 각자 대화를 나누거나 서류를 확인하는 사이, 방 안을 살피던 클라인은 테이블 밑에 깔린 곰 가죽 러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러그 아래의 바닥이 살짝 튀어나온 것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왠지 바닥에도 무언가 숨겨놓은 것 같았다.
그는 러그를 발로 밀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래엔 잠긴 다락 문이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바닥을 보고 놀라 다가왔다.

"러그 아래에 이런 문이……"

 

아도니스가 이번에도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제가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아도니스, 소마법, 기능 판정 : d20(5)+지능(5)+레벨(1)+수석(3) vs 어려움(20) / 실패

하지만 기세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덜그럭거리는 소리만 내고는 문을 열지 못했다. 클라인의 비웃음 소리와 아도니스의 자존심에 금이 간 소리는 덤이었다.

"음, 지금은 락픽(Lockpick)이 없는데. 역시 이럴 땐…… 발로 부숴서 열어야죠."

아나스타샤, 문 부수기, 기능 판정 : d20(17)+근력(0)+레벨(1) vs 어려움(20) / 실패

 

하지만 문은 끄떡없었다.

"와, 이게 안 부서지네. 얼마나 단단한 거야?"


코스모스, 문 부수기, 기능 판정 : d20(15)+근력(4)+레벨(1) vs 어려움(20) / 성공


옆에 있던 코스모스도 아나스타샤에 이어, 자물쇠를 강하게 내려 밟았다. 자물쇠는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코스모스는 강력한 철제 자물쇠를  한 번에 부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아가씨."


단장의 방 지하에 숨겨져 있던 곳은 개인 대장간이었다. 있을 설비는 다 있었고, 작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수완이 꽤 좋았나 보네요. 병영 안에 이런 곳이 있을 정도면. 어쩐지 위층이 너무 여관 같더라. 여기 다 있었네."

아사스타샤는 지하 대장간을 훑어보다가 모루 옆의 주조틀 하나를 집었다. 틀의 모양은 어딘가 익숙했다.


"아나스타샤, 여기 이런게 있어요."

아도니스가 보여준 것은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새겨진 인장과 틀이었다. 표식이 새겨진 인장과 익숙한 모양의 주조틀. 항구의 수입 내용에서 걸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무기를 직접 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치밀함이라니, 역시 투장이 관계가 되었던 일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마법 실력이 형편없었기에 아나스타샤들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들킨 것이겠지만. 실력마저 출중했다면, 아무리 전직 궁정마법사와 제국 기사 사단장이 있더라도 4명이서 용병 1부대를 쓸어버리기란 힘들었겠지.

 

이제 이곳에서 얻을만한 건 더 없어 보였다.

 

세 명은 주조틀을 챙기고 단장의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기대어 쉬던 클라인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계속해서 클라인의 건강 상태를 걱정했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계속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가 출구를 찾아봤는데 저 문이 밖으로 이어져 있더군요. 위치 상으로는 병영 옆 골목으로 이어져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왔던 길로 다시 나가면 밖에 있던 단원들이 쫓아오겠죠? 여기로 나가는게 좋을 것 같네요."


아나스타샤는 문의 빗장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이어진 곳은 클라인 말대로 청갈기 용병단 병영의 왼 편에 있는 골목이었는데, 단장만 사용하는 문이었던 건지 쥐 한 마리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전말을 밝히다

무사히 빠져나온 아나스타샤는 쾌검 용병단을 찾아갔다. 갤러스에게 붉은 흙 보병대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붉은 흙 보병대 쪽은 같이 찾아가 달라고 부탁했다간, 오히려 화가 난 상태의 부라타가 쾌검 용병단 병영까지 도끼 들고 부수러 찾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아나스타샤는 두 용병단을 모아서 증거를 보여주고 전말을 밝힐 생각이었다. 전달만 했다가 지금까지처럼 또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직접 대면해 완전한 해결을 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어서, 범인을 잡았거든요. 내용을 말이나 문서로 전달 받는 것보다 직접 대면해서 화해도 하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근데 제가 거기 병영에 갔다가 못 돌아오는게 아닐까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데……. 혹시 고도의 함정 아닙니까?!"

 

"제가 그런 함정을 왜 파겠어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래도 그 녀석들을 완전히 못 믿겠습니다. 걔네 본거지가 아니라 한 중간쯤에서 만난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뭐, 그래요. 그러면 잿빛 기사단 근처에 있는 사자 분수 쪽에서 만나죠."


쾌검 용병단을 설득했던 것처럼 부라타에게도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부라타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엄청나게 흥분했다.

 

"뭐?! 그 자식들과 화해?!! 아니, 증거를 잡아서 족치고 오랬더만 뭔 헛소리야!!"

 

"아니, 아니, 진정하시고……. 그냥 화해가 아니라… 범인이 따로 있으니, 서로 앙금도 풀고 대화를 나눠보자는 거죠."

 

부라타는 여전히 씩씩거렸다.

 

"범인이 따로 있다고?"

 

"네!"

 

"증거는?"

 

"물론 여기 가지고 있어요. 청갈기 용병단이라고. 저기 사자 분수로 가서 다 같이 모였을 때, 제대로 설명해 드릴게요. 갤러스 씨도 오기로 했어요."

 

"갤러스 그 새끼가 오는 거냐!! 좋아, 청갈기 용병단………. 뭔 잡놈들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당장 가자고! 납득 못할 증거라면, 거기서 갤러스의 목을 쳐버리겠다!"

 

무시무시한 선전포고에, 절대 실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 어디,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들어보자고."


"저희가 범인이 아니란 증거를 가져온 거겠죠?"


"하, 이게 자꾸 뺀질거리는게 머리통을 그냥……"

두 명의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아나스타샤가 나서서 둘을 말렸다.

"자자자, 좀 진정들 하시고. 이야기나 마저 들은 다음에 싸웁시다. 그 뒤에는…… 저도 안 말릴게요, 네. 이야기를 듣고서도 싸우고 싶으시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부라타는 여전히 갤러스 쪽을 노려봤지만, 더 이상 무기를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아! 여기가 내 용병단들이 모여 있다는 곳인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때, 두 용병단의 단장과 대장, 아나스타샤들이 모인 사자 분수 쪽으로 쾌검 용병단 단복을 입은 호위 몇 명을 이끌며, 긴 은발을 찰랑거리는 미남자가 나타났다.

 

"……!! 아니스 님!"

 

"아니스 님 어서오십쇼!"

 

살벌한 기운을 내뿜던 두 명이 갑자기 얼굴에 환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호위를 맡아주는 쾌검 용병단의 단원들이, 우두머리끼리 맞대결을 펼치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걱정이 되어서 와봤네. 여긴 검투장도 아닌데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워선 안되지 않은가!"

 

"……누가 쾌검 용병단 아니랄까 봐 뭔 헛소리를 싸지르고 왔어?"

 

"아니스 님 계시는데 말조심해!"

 

"참………. 나는 두 용병단에게 공정하게 대우했다 생각했는데 왜들 서로 싸우는지. 이러다 한 부대가 해체라도 한다면 어찌해야 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어차피 해체되었을 때 고용할 새 용병단을 구인하는 중이면서…….'

 

아나스타샤는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뒤늦게서야 나타난 아니스에게 불만이 많았다.

 

'애초에 본인이 해결할 문제를 주둔지가 소란스러워져서 알아서 황궁에 소식이 들어갈 때까지 가만 놔둔 거 자체가, 처음부터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이 분들은 누구신가? 익숙한 분도 계시는군."

 

"아, 황궁에서 저희 단원들을 죽인 자가 붉은 흙 보병대라는 걸 밝혀주기 위해 파견된 분입니다."

 

"죽은 건 우리 대원인데 뭔 소리냐?!"

 

"아니, 오늘 안 죽었다고 우리 멤버가 한 명도 안 죽은게 아니잖아?! 우리도 피해 봤거든!"

 

"자자, 아니스 씨가 계시잖아요? 진정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아니스' 핑계는 꽤 잘 먹히는 핑계였다. 그제야 완전히 잠잠해진 덕에, 사건 관련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저희가 의심되는 곳, 여기저기를 조사해봤어요. 당신들에게 악감정이 있을법한 용병단들이요. 그러다 재밌는 자료를 얻었어요."

코스모스는 아나스타샤에게 청갈기 용병단 병영에서 얻은 지령서를 건넸다.

"청갈기 용병단에서 찾아낸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지령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읊어줬다.


하지만 부라타는 내용을 들을수록, 그 지령서가 의심스럽다는 듯 굴었다.

"그 내용이 진짜라는 걸 어떻게 믿지?"


"이 검은 뭔지 아시겠죠?"


"저 녀석들의 검이잖아."


"무슨 소리야, 우리가 쓰는 검이 아니라고!"

다시 시작된 싸움에 이번에는 아도니스가 끼어들었다.

"아니, 쾌검 용병단 말대로야. 이 주조틀이랑 인장 보이지? 청갈기 녀석들이 지하에서 이런 걸 주조하고 있더라고."

갤러스는 눈이 커졌다.

"맙소사, 우리 용병단 표식을 위조하다니……!"


"……그래, 저 녀석들 표식이야 단순하니까 위조하기 쉽다 쳐."

 

"뭣……!"

 

"하지만 단검뿐이 아냐. 우리는 우릴 공격한 녀석들이 저 녀석들의 단복을 입은 걸 봤다고!"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갑옷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겨놓고 있더라구요. 뭐, 후원자에게 지원받은 거겠죠. 아, 정말인지 의심되면, 지금 당장 쳐들어가도 나쁘지 않고. 그 녀석들이 증거를 빼돌리기 전에 찾아가려면 여기서 싸울 시간은 없을 걸요?"

분위기는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두 명은 자신들을 이간질하던 것이 영문 모를 녀석들이었다는 것에 허탈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아니스였다.

"이거 참. 결국 이상한 놈들의 이간질로 내 용병단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거로구만! 청갈기 용병단이랬나? 그 녀석들 나한테 지원했었던 용병단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내가 지령서처럼 그들을 채용하리란 보장도 없을 건데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원."

 

"새 용병단의 지원을 받고 있었단 말입니까?!"

 

부라타가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새 용병단을 구하고 있었지. 자네들이 이 일로 피해를 많이 입은 것 같아서 말이네. 그래서 자네들의 업무를 지원해주고, 동시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를 중재해 줄 제 3의 용병단을 찾고 있었지."

 

'정말? 그 정도로 고용한 용병단의 케어를 해준다고? 부자 상인들은 죄다 악덕 업주인 줄로만 알았는데. 뒤에서 뭘 자꾸 빼돌리니까 돈이 많은 거라고.'

 

아나스타샤가 놀란 것처럼, 부라타와 갤러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결국 갤러스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저희는… 저희 중 한 부대를 대신할 용병단을 고용하시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게 깊은 뜻이……!"

 

"역시 아니스 님!"

 

갤러스와 부라타는 언제 싸웠었냐는 듯,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아니스에 대해 칭송하며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허……. 사이좋구만."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는 아나스타샤에게, 아니스가 말을 걸어왔다.

 

"황궁에서 나오신 분이라 하셨소? 그래서 당신들은 청갈기 용병단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고 있소?"

 

"아, 그거라면 추천장을 보시면 알 거 같아요. 투장의 추천장이 있으니, 당신에게 고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죠. 그리고 이 암표. 두 용병단의 싸움으로 웃돈 주고 표를 팔아 겸사겸사 득 좀 보고요."

 

거기다 투장을 뒷배로 얻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나스타샤가 암표를 꺼내자, 아니스를 칭송하던 부라타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다.

 

"이게 뭐야!"


"청갈기들이 암표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실마리는 이것 덕분에 잡았지만. 당신들이 얘네들에게 표 팔아달라고 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부라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감히 날 가지고 놀아?!"


"혼자서 쳐들어가서 되겠어? 나도 억울한게 많은데 화풀이라도 해야 되겠는데."


"맘대로 해!!"

부라타와 갤러스는 사이좋게 청갈기 용병단 병영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아나스타샤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조사한답시고 한 번 휘젓고 왔는데, 저 둘이 또 가면 완전히 난장판이 되겠네요."


"자업자득이죠. 나머지는 법무부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이걸로 저들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임무를 완료했다고 생각한 아나스타샤는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추천장의 내용을 읽던 아니스가 또 질문을 해왔다.

 

"여기 써있는 '특별한 일' 이 뭔지, 당신들은 아시오?"

 

"아, 그거. 청갈기 용병단은 탈세 브로커 역할도 맡고 있었거든요. 뭐, 장부 조작? 그런 거겠죠."

 

"뭐라…! 감히 날 뭘로 보고! 장부 조작이라니! 나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번 돈은 극도로 혐오하오. 온건한 방식으로만 사업을 진행해도 큰돈을 버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건만. 쯧, 이런 걸 추천이라고 하다니, 역시 투장 아니랄까 봐 정직한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군."

 

'정직한 인간이라….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인 건 사실일 것 같네. 부하들에게 저런 인망을 얻기란 쉽지 않지.'

 

아니스는 정중한 예법으로 아나스타샤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고맙소. 사실 당신들이 이 일을 해결해주지 않았으면 솔직히, 청갈기 용병단을 채용했을 것 같소. 추천장이랑 이력만 보면 정말 괜찮은 곳 같아 보이니까. 설마 이게 위조 이력일 거라곤…. 만약 채용했다면 또 다른 분쟁의 시작이었겠지. 내 일을 해결해 줘서 정말 고맙소. 답례를 하고 싶소만……."

 

"답례요?"

 

"내가 금테 지구에서 가구 상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당신들에게는 특별히! 특별 할인 가격으로 모시도록 하겠소."

 

아나스타샤는 김이 빠졌다.

 

"아뇨, 당장 가구를 살 일이 없어서요."

 

'애초에 집도 없는데요.'

 

"가구란 건 살 일이 있어야 사는게 아니라오. 궁전 지구에서는 기분에 따라 침대를 바꾸는게 유행인데……."

 

답례를 하겠다는 건지 영업을 하겠다는 건지 모를 상황이 되어갔다.

 

"아뇨, 저는 그런 사치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별 수 없지. 대신 신혼집 가구는 꼭 우리 마이더스 핸드에서 제작하시오."

 

"신혼집? 애초에 결혼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걸요."

 

"응? 뒤에 계신 백작님이 연인 아니었소?"

 

궁전 지구의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자여서 그런지, 클라인의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의 사생활까진 알지 못할 테니 잘못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 충격적인 오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아나스타샤도 클라인도 아닌 아도니스였다. 

 

"아니야!!!"

 

"그, 그렇구먼. 이거 오해해서 죄송하게 됐소. 아무튼 꼭 마이더스 핸드에 들려주시게!"

 

아니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도니스를 보고, 불똥이 튀겠다 싶었는지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하필 임무를 받아도 저딴 눈이 삔 녀석을 도와주는 임무를 했다니, 젠장……."


그날 저녁, 요 이틀간 처리한 주둔지 내의 소란은 클라인이 보고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아나스타샤가 보고서 관련 내용으로 클라인의 집무실에 찾아갔을 땐, 이미 그가 모든 정리를 끝낸 뒤였다. 결국 아나스타샤는 완성된 내용의 검수만 진행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완벽했다. 만약 아나스타샤가 썼더라면 이런 퀄리티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빠른 처리에 감탄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떠넘긴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아나스타샤의 속내를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클라인이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을 시키라고 제가 있는 것입니다."

무척이나 당연하다는 그 시원스런 대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아나스타샤는 저에게 명령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나스타샤는 입을 붙였다 떼었다 한참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클라인은 저에게 너무 잘해줘서 좀 사양할 필요가 있어요."


"아나스타샤는 제 은인이니까요."


"모든 은인에게 이렇게 해주시는 건 아닐 거잖아요."


"…."


"그러면 안 돼요. 저 같은 뒷전 출신에는 사람의 선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클라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아나스타샤는 어쩔 줄 몰랐다. 자신이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걸까 싶어서.

 

'클라인이 애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을텐데. 너무 가르치는 투로 말했나?'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클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나스타샤, 당신이어서 그런 겁니다."


"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이 저를 마음껏 이용해 줬으면 해서 그런 겁니다."

아나스타샤는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거기다 저희는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잖아요.
"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나스타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져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호감을 들킨다면 이용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니까. ……그렇지만 스스로 그것을 자처하는 이의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아나스타샤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아나스타샤는 원래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첫눈에 반했다든지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이라든지. 요새 부쩍 제 주변에 그런 운명론자들이 많이 늘어난 기분이지만, 어쨌든 원래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랬는데, 그런 운명론적인 말에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 거리는 걸까.

 

어쩌면 클라인을 처음 본 순간, 아나스타샤도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전혀 믿지 않는 그런 운명을, 그 순간에, 자신도 느꼈으니까.


"저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영혼이 이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

 

어쩌면 아도니스가 말했던 것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영혼의 끌림.


아나스타샤가 생각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 클라인은 그것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애처롭게 흔들렸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 것이기에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길 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계속 당신 곁에 있을 수 있을테니까요."

클라인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 넘기며 마른세수를 하며 표정을 감추려던 것이겠지만, 여전히 씁쓸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아나스타샤께 부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절대 이런 식으로 전하고 싶지 않았는데."

 

클라인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승낙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볍게 승낙하고 가볍게 끝나는 그런 사랑들을 많이 해왔다. 그와의 관계도 그런 식으로 시작해서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근본적으로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살아온 삶과 인간관계가 그렇게 만들었다.

뒷전 지구에서 어제까지 있던 집이 불에 타 사라지는 건 흔한 일이오, 평생을 모은 돈을 소매치기당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상을 지내다가 심심하면 찾는 간식거리였다. 어제까지 만났던 사람이 질렸다면 헤어지고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났다.

한때는 아나스타샤도 열렬한 순애보 같은 사랑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도 같지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생각했다. 지금 이 마음을 받아들였다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금방 열정이 식는 것이 아닐까.

그를 믿지 못하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의 애정은 손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건, 같이 있으면서 직접 느꼈으니까. 하지만 과연 자신도 그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엔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변덕스러운 자신에게 실망해 그가 돌아선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먼저 쉽게 변한 것은 자신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클라인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이란 사람을, 한 순간의 감정에 취해 영영 잃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사람들에겐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자신도 모르게 서로 터놓게 되는 마법 같은 날. 그것이 사랑을 말하는 것이든, 감사를 말하는 것이든, 원망을 말하는 것이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밤이 있었다는 것도 잊게 될, 더 이상 오지 않을 비밀의 시간.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지금, 둘만의 이 밤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나스타샤는 끝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아나스타샤는, 이번 감정은 좀 더 복잡하고 진지한 감정이었음을, 쉽게 변하지 않을만한 감정이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법이니까.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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