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1 : 황제의 길

TRPG/제 13시대

2021. 1. 29.

320x100
반응형

 

제 13시대 - 황제의 길 :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갈등1

 

 


"안타의 16번째 생일을 위하여!"
""위하여!""
"지금 같은 날이 언젠가 또 올까?"
"너희들이 그때까지 살아만 있다면야."
"하하하! 이 중 몇이나 살아있는지 나중에 보자고."

 


 

첫번째 지령서

아도니스, 카스펜서 저택 출입, 기능판정 : d20(2)+매력(-1)+레벨(1) vs 보통(15) / 실패

이른 아침부터 저택 밖이 소란스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니 대문 앞에 아도니스가 보였다.

"아도니스! 거기서 뭐해요?"


"아나스타샤!"

아도니스가 손을 흔들며 방방 뛰었다.

 

아나스타샤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때마침 클라인이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내 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게 보였다. 그는 오늘도 품 안에 꽃을 한아름송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곤 아나스타샤와 눈이 마주치자 안고 있는게 꽃인지 미소가 꽃인지 모를 정도로 화사하게 웃었다.


"클라인."


"편하게 주무셨습니까?"

아나스타샤는 흰색 메꽃을 건네받았다.

"그럼요, 근데 밖에 아도니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클라인의 미소는 잠깐이지만 금이 갔던 것 같다.

"…들어오게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클라인이 시킨 걸 거예요~"

아도니스는 방에 들어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아나스타샤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아도니스와 주인의 허락 후에 들여보낼 수 있다고 강경하게 맞서는 집사와의 신경전이 있었다고.

"아마 고의는 아니고, 클라인은 정원에 있어서 좀 오래 기다리게 한걸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화병에 꽂아 놓은 메꽃을 슬쩍 보며 말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숙녀의 방에서 남의 뒷담화는 적당히 하시지."

개인적인 업무를 마친 클라인이 돌아왔다.

"이제 앞에 있으니까 앞담화네. 됐지?"


"하하……. 그럼 다 모였으니 지령서 확인이랑 앞으로에 대해 얘기해보죠."


"네,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기 좋을만한 곳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클라인이 안내한 곳은 작은 회의실이었다. 분위기도 좋고 모여서 이야기하기도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뒤편의 책장에는 역사나 전술 자료도 많아 보였다.

클라인은 회의실 탁자의 상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앉으시죠. 아나스타샤의 자리입니다."

아나스타샤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코스모스는 각자의 자리에 레몬밤 티를 준비해 주었다. 내려진 차를 홀짝였다. 특유의 상큼한 향을 느끼며, 지령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하나, 주둔지 지구 내 소란을 잠재워라.
서로 붙어있는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 두 부대 사이의 갈등이 심각할 정도로 커져 유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두 부대를 중재해 액시스의 치안 강화에 힘써라.

하나, 엘돌란의 황토젤리를 처치해라.
황토젤리라는 것이 엘돌란의 하수구를 막고 있다고 한다.
거리의 미화에 보태어라.

하나, 재무부를 도와라.
최근 지출 부서로 옮겨진 제국의 재무대신 돈슨 트리스의 요청이 있다.



"굉장히 간략하네요…."


"이미 지령이 떨어진 걸 의뢰자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세부사항은 직접 움직여 조사하라는 의미겠죠."

클라인은 지령서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효율적인 순서로 움직여야 합니다. 주둔지 관련 임무와 재무부 요청을 우선 하는게 좋겠군요. 주둔지 지구의 상황은 직접 확인해야겠지만, 재무대신인 돈슨 트리스는 트리스 자작의 남동생이니 제가 추후에 저택으로 직접 부르겠습니다."

아도니스 역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다음은 엘돌란이 좋겠어요. 엘돌란호라이즌 근방에 있는 소도시거든요."


"그럼 정해졌네요. 돈슨 재무대신은 저택으로 불러 내일 보기로 하고, 그다음 엘돌란. 오늘은 주둔지 지구로 바로 가볼까요?

모두들 동의하고, 일행은 바로 남부 주둔지 지구로 향했다.


액시스의 주둔지 지구

주둔지 지구는 액시스에서 가장 넓은 지구답게 그 안에는 수많은 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웅장한 건물부터 천막으로 이루어진 캠프까지. 외에도 각종 길드와 사무소, 주점이 즐비해 있었다.


이곳은 실제로 그렇게 나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북부와 남부 주둔지 지구를 구별해서 부르곤 했다.

그 이유로는 북부는 주로 투장 같은 표상들의 사절단, 고위 귀족의 사병, 도심을 순찰하는 제국의 3, 4 기사단 등이 자리했고, 남부는 주로 용병들이나 모험가 길드들이 주로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남부 주둔지 지구에도 유서 깊은 부대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주로 액시스에 갓 자리 잡은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일반 부대로 생각되는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는 남쪽에 자리했을 거라 생각하고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둔지 지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도니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곳에서 특정 부대를 찾는 것도 일이네요."


"이럴 때는 부대 사무소를 찾아가면 돼요."

용병 일을 하며 터득한 지혜였다.

"와, 역시 아나스타샤는 박식하시네요!"

아나스타샤는 부대 사무소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의 표지판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의 귀에 익숙한 단어가 들어왔다.


"하……. 일찍부터 줄 섰으니 이번에야말로 쾌검이랑 붉은 흙의 케스 표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암표를 사야 하나……."

쾌검과 붉은 흙. 그들이 찾던 부대의 이름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말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나스타샤?"

아도니스는 아나스타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군중 속에 섞여 들려온 혼잣말을 들은 사람은 아나스타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잠시만요."

아나스타샤, 소리 진원지 탐색, 기능판정 : d20(16)+통찰(0)+레벨(1)+뒷전 출신(4) vs 보통(15) / 성공

아나스타샤는 근원지를 단숨에 찾아냈다. 뒷전에 전전하며 소매치기를 하든 소매치기를 잡든 했었던 수색 실력이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한다는 쾌검이랑 붉은 흙의 케스…… 어디서 하는지 알아요?"


"어? 으음… 그건 왜 물어?"

"아~ 사실 그 케스 경기 보는게 처음인데, 아무래도 첫 경기는 인기 있는 걸 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입소문 좀 탔길래~"

"처음? 하하, 이 아가씨 처음이라는 사람 치고 제대로 골랐네~ 그래그래, 지금 예정된 경기 중에는 굽은날에서 하는 쾌검붉은 흙의 대결이 가장 볼만할 걸!"


남자는 정말 귀한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좋아했다.

"투기 종목들은 말이지, 솔직히 대부분이 돈 벌려고 짜고 치는 수작질이지. 난 그런 '가짜' 에는 관심 없단 말씀이야. 하지만 쾌검 용병단붉은 흙 보병대? 얘넨 진짜지."

 

"진짜?"

 

'역시 쾌검과 붉은 흙이 용병단을 말하는 거였어. 좋아, 잘 찾았다!'


"요즘 그 녀석들 사이가 무시무시하거든. 아마 검투장에서 케스로 부대끼리 맞붙을 생각인가 봐. 이렇게 된 이상, 한 부대가 전멸할 때까지 싸울걸? 그러니까 '진짜'라는 거지. 뭐, 이제 표는 구하기 어렵겠지만. 나도 못 구했거든."


"그래요? 아쉽게 됐네."

 

남자는 신입처럼 보이는 아나스타샤에게 케스에 대해 마음껏 알은체 할 수 있어 기분 좋아 보였다. 투기라는게 늘 그렇듯이, 이쪽도 워낙 고인물이 많은 곳이니까.

 

아나스타샤는 이왕 잡은 기회, 놓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우리 같은 구경꾼이야 그렇다 치지만, 그들은 그렇게 싸워서 얻는게 뭔데요? 돈과 자존심?"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경기가 끝나면 더 얼굴 맞댈 일 없다는 점 때문 아닐까? 게네들, 부대만 붙어 있는게 아니라 같은 고용주 아래서 일한다고 들었거든."


"그렇구나. 뭐, 알려줘서 고마워요."


"헤헤, 한 명이라도 더 투기 종목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늘면 나야 좋거든. 특히 아가씨처럼 귀여운 엘프가 먼저 말 걸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겠어? 아, 내 이름은 글래디야. 혹시 내가 싸우는 졸에서 그 케스 표를 구해오면 같이 보러 갈래?"

글래디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갑작스럽게 작업을 걸어왔다.

그 광경을 멀리서 묵묵히 지켜보던 클라인과 아도니스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글래디를 쳐다봤다. 물론 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음, 평소였다면 심심하니까 한 번 정도는 같이 보러 갔을 텐데. 지금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니에요. 지금은 일행이 있어서."


"아아, 그런가. 아쉽네…."

 

정보를 얻을 만큼 얻었다고 생각한 아나스타샤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래도 보답은 하는게 좋겠지. 빚지고 사는 건 싫으니까.'


"당신도 아무리 그게 괜찮은 경기래도 굳이 암표까진 사지 마요. 암표는 환불도 못 받을 텐데, 취소되면 돈이 아깝잖아요?"

글래디는 뭔가 알고 있는게 있냐고 물어봤지만, 아나스타샤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쾌검 용병단붉은 흙 보병대요, 아무래도 케스 경기가 잡혀 있는 것 같아요."

 

"케스요?"

 

아도니스가 물음표를 띄웠다.

 

"케스(Khess)는, 쉽게 말하자면 진짜 사람이 말 역할을 맡은…… 체스(Chess) 같은 거예요. 우두머리의 전술 실력을 보기 위한 작은 전쟁이죠."

 

"흐음, 결국 두 용병단이 사이가 어떻건 검투장 내에서 싸우는 '경기'라는 거잖아요? 별문제 아닌 것 같은데 굳이 황실까지 나서서 중재해야 하나?"

 

"듣기로는 같은 고용주 밑에서 일한다고 하던데요. 제가 용병 일을 해봐서 아는데, 이런 경우엔 서로 공적을 가져가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하거든요. 지금껏 사사로운 분쟁이 있었던 거겠죠. 결국 케스로 마지막 승부를 내기로 한 거겠고. 경기 전까지도 상대 인원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암투 중일 거예요."


"검투장 밖에서까지 싸움이 연장되어 분란을 만드는게 문제라는 거군요."

설명을 들은 아도니스는 금세 납득했다. 그 사이, 부대 사무소에 도착했다.


사무소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무소의 파티션 안쪽에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하는 이, 책상에 앉아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와 접수대의 직원에게 화를 내는 누군가와 연신 죄송합니다를 읊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깥쪽도 마찬가지였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각자의 용무를 처리하는 이들, 무언가 풀리지 않는 건지 연신 씩씩거리는 이도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은 접수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아나스타샤는 책상 위 서류에 파묻힌 채로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적갈색 머리의 접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쾌검 용병단과 붉은 흙 보병대의 병영 위치를 알고 싶은데요."

하지만 접수원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접수원의 가슴에 있는 명찰을 보았다.

"아비시니안 씨, 병영 위치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잖아요? 아니면 대략적인 위치가 기재된 최근 지도라도 주시면 좋겠는데."


"하……. 바빠 죽겠는데 여기서 그런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 써 드려야 하나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갈 수도 있잖아요."

퉁명스러운 대답에 살짝 열이 올랐지만, 더 화가 난 아도니스를 말리느라 오히려 차분해졌다.

 

두 명이 접수원을 회유하기 어려워 보이자, 뒤에서 지켜보던 클라인이 나섰다.

"레이디, 바쁘시겠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물어가기에는 주둔지가 복잡하니, 아비시니안 양이 도와준다면 수월할 것 같습니다."

클라인, 접수원 설득, 기능판정 : d20(14)+매력(1)+레벨(1)+귀족(3)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은 능숙한 예법으로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접수원은 아나스타샤가 그랬었듯, 웬 레이디 소리인가 싶었는지, 안경을 고쳐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비시니안은 놀랐다. 잘생겨서. 그의 취향이었다. 갑옷 입은 기사치고 깔끔하고 훤칠한 저 인상이. 다정한 목소리와 미소가. 아니, 저렇게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저리 다정한 눈빛으로 웃을 수 있지?


접수원은 갑자기 목소리와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그 정도야, 뭐... 주둔지에 낯선 사람을 안내하는 일도 접수원의 일이죠. 지도는, 여기 있어요."

아래쪽 서랍을 뒤적이는 듯싶더니 곧바로 지도가 나왔다. 확인하기 쉽도록 두 용병단의 표식(標識) 역시도 같이 주었다.

"그곳에 찾아가시는 거라면 조심하는게 좋을 거예요. 최근 가장 분쟁이 많은 용병단들이거든요. 싸움에 휘말릴지도 몰라요."


조언을 받고 부대 사무소를 나왔다. 아나스타샤는 클라인에게 달라진 접수원의 태도에 대해 조용히 속삭였다.

"미인계가 효과적이네요."

클라인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아나스타샤에게도 통할까요."


"네? 어, 네???"

통한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 저런 녀석의 마수에 빠지면 안 돼요! 미인계라면…… 저도, 자신 있어요!"

 

아도니스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미인계라……. 클라인이 인상이 짙고 강렬한 미남이라면, 아도니스는 섬세하게 조각된 가련한 미남이지….'

"자기 주도적이고 활동적인 아가씨에게는 오히려 조신하고 내조를 잘하는 사람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말씀만 하신다면 언제든지 그런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겠습니다."

……라고 신성족다운 고고한 품새로, 전혀 고고하지 않은 말을 했다.

'조신하고 내조를 잘하는 사람은 코스모스…? 본인을 데려오겠다는 걸까.'

계속해서 세 명의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결국 아나스타샤는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려 등을 돌렸다.

"잘생기고 의지 되는 분들이 곁에 있으니 참 든든하네요! 하하! 빨리 용병단 부대로 가죠!"

아나스타샤는 어색하게 삐걱 거리며 발을 옮겼다.

 

300x250

붉은 흙 보병대와 쾌검 용병단

아나스타샤들은 제일 먼저 붉은 흙 보병대로 향했다. 병영에 도착할 즈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주변을 감쌌다. 여기저기 흐트러진 보급용 박스, 부서진 집기, 군데군데의 혈흔.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피요르를 날려 보내 주위를 살펴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요르는 따라오라는 듯 빙빙 돌며 신호를 보냈다. 무언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나스타샤들은 피요르를 따라 발을 옮겼다.

피요르를 따라간 골목엔 시체 두 구가 있었다. 죽고 시간이 꽤 흘렀는지 피가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아나스타샤, 시체 조사, 기능판정 : d20(1)+통찰(0)+레벨(1)+뒷전(4) vs 보통(15) / 실패

 

"왠 시체지……."

 

아나스타샤는 눈살을 찌푸렸다.


클라인, 시체 조사, 기능판정 : d20(20)+통찰(0)+레벨(1)+사단장(2) vs 보통(15) / 성공

클라인은 제국 기사단으로서 각종 범죄의 수사에도 참여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현장을 둘러봤다.

"이 옷은… 표식을 봐서는 붉은 흙 보병대의 유니폼일 겁니다. 그리고 상처 부위에 찔린 검은
쾌검 용병단의 표식이 새겨져 있군요."


"관리소에서 두 용병단의 표식을 줬었죠. 정확히 일치하네요."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습격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고 보니 이 검, 상처 위에 한 번 더 찌른 것 같습니다. 두 상처의 크기가 다른 거로 봐서 첫 습격은 이 검으로 한 게 아닐테지요."


"음, 확인 사살 차 한 번 더 찌른 걸까요?"


"그럴지도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죠."

아도니스, 시체 조사, 기능판정 : d20(14)+통찰(1)+레벨(1) vs 보통(15) / 성공

아도니스도 무언가 발견했는지 클라인의 옆에서 거들었다.

"미약하지만 시체에서 마력이 느껴져요. 첫 상처는 마법으로 인한 상처란 소리겠죠."


"범인은 마법사인가……."

그때,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체와 같은 옷을 입은 하프오크 3명이었다.

"아까 입구 쪽 봤어? 또 침입자가 있던 모양인데."

 

"보나 마나 쾌검의 쥐새끼들이겠지. 아직 숨어있는 거 아냐? 그게 녀석들이 제일 잘하는 짓이잖아."


"어? 저 시체는…? 너희 뭐야!"

아나스타샤, 붉은 흙 보병대 설득, 기능판정 : d20(5)+매력(2)+레벨(1) vs 보통(15) / 실패

 

"아, 저희는……"

 

셋 중 하나가 아나스타샤의 말을 자르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설마 쾌검 용병단 녀석들이냐!? 이 녀석들, 우리들 앞에서 잘도…… 뻔뻔하군!"


클라인, 붉은 흙 보병대 설득, 기능판정 : d20(17)+매력(1)+레벨(1)+사단장(2) vs 보통(15) / 성공

"눈이 있다면 제대로 보는게 좋겠군. 나는 제국 기사단의 사단장이다."

클라인이 아나스타샤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갑옷을 본 그들은 저들끼리 쑥덕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황궁에서 쾌검 용병단을 처리해줄 사람을 보내준댔어."


"그랬었나?"


"맞아, 이 멍청아!"

 

하프오크치고 얍삽하게 생긴 남성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고 헤실거리며 다가왔다.

 

"황궁에서 오신 분들이셨군요, 하핫…. 대장님께 볼 일이 있으신 거라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만, 그 시체는 대체……"


"우리가 왔을 땐 이미 죽어있었어. 피를 보면 죽은 지 꽤 됐다는 것쯤은 너희도 알겠지? 조사 차 보고 있던 것뿐이야. 범인은 잡아야 하잖아?"

 

아나스타샤는 그가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든 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무례한 사람에게  굳이 예의를 지키려 노력하진 않았다. 지금처럼.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동료의 시체를 묻어주러 가겠습니다."

 

아나스타샤들은 그들이 시체를 수습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골목에서 나왔다.

"그럼 보병대 대장을 만나러 가보죠."


보병대의 대장은 아랫 송곳니가 눈에 띄는, 부라타라는 이름의 하프오크였다. 그는 부하 두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끝까지 화나 있는 상태였다.

"젠장!! 쾌검 용병단 자식들…. 하다 하다 내 부대 코앞에서 일을 벌여?!"


"쾌검 용병단 표식의 검이 있긴 했었죠. 이 일에 대해서는 저희가 가서 조사해보도록 할게요."


"조사는 무슨 조사? 이미 증거가 있잖아! 당장 때려 부숴도 시원찮을 판국에!"

아나스타샤는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래서 저희가 가보겠다는 겁니다. 부라타 씨는 지금 너무 흥분해 있어요. 대외적으로는 붉은 흙 보병대가 과격하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용병에게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대장인 부라타 씨가 더 잘 아실 거잖아요."

부라타는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더 이상 막무가내로 가겠다고 우기진 않았다.

그가 어느 정도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아나스타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몇 가지 물어볼게요. 그들이 공격하는 사유에 대해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요?"


"후………. 본래 한 고용주가 두 용병단을 고용하는 이유는 일종의 경쟁심을 부추겨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지. 근데 우린 싸울 일이 없어. 할당된 업무 자체가 다르거든. 그런데도 이런 짓을 벌인다는 건 우리가 아니꼽다는 의미일 거다. 우리가 하프오크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니까. 하프오크들이 인간인 자기들이랑 같이 일하는게 싫다는 거겠지. 빌어먹을 종족 차별자 자식들."

부라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제국은 여러 종족들을 수용하고 아우른다곤 하지만 실상은 달랐으니까. 드라켄할 같은 괴물들의 도시가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었다. 그나마 인간형 종족들에게나 조금 나은 정도일까.

 

하프오크는 괴물형 종족 중에 가장 인간들에게 호의적인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파악하려 한다면, 인간들이 주를 이루는 제국의 주적 중 하나인 오크두령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하프오크와 달리 오크들은 오염된 땅에서 전염병 퍼지듯 자연 발생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오크두령은, 그 오크들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오크이자 수장이고.

 

오크들은 분명, 오크두령을 따르지만 하프오크들은 모두가 그를 따르지 않는다. 하프오크들은 엘프나 드워프처럼 신성한 곳에서 자연 발생하거나 그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이들이다. 그래서 각자의 신념과 사상에 따라, 큰드루이드를 섬기기도 하고 붉은 흙 보병대처럼 제국의 도시에 모여 황제의 휘하에서 용병 일이나 여러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프오크들과 오크들이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 인간들을 배신하고 오크 두령 휘하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면서.

애초에 그들은 하프엘프가 엘프와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들은 황제나 대마도사, 대사제 같은 제국의 균형들 아래에 있지만은 않는다. 그림자 대공 아래에서 일하는 인간도 있고, 인류를 배신해 시체왕 같은 악의 표상 휘하에서 일하는 인간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인간을 보면서 언젠가 시체왕의 힘에 빠져 배신할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이종족(異種族)들에게 내리는 판단은, 너무 쉽게 진행되곤 한다.

……어쨌든 부라타가 차별을 근거로 삼는 이유는 충분했다.

"흠, 그런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라타는 아직도 뭐가 더 남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죽은 부하들이요. 검에 찔리기 전에 마법적인 흔적이 남아있더라고요. 쾌검 용병단이 마법을 쓸 수 있나요?"


"하, 글쎄. 그 인간 녀석들이 마법을 쓰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근데 세상에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야 많잖아? 걔네도 마법사 한 명 정도는 있겠지."


"그렇군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해결해서 다시 찾아올게요."


"……그래. 우리가 피해자라는걸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주라고."


붉은 흙 보병대 다음은 쾌검 용병단이었다. 한쪽의 의견과 정황만 확인할 수 없으니까. 아나스타샤들은 바로 쾌검 용병단 병영으로 향했다.

"지금까지의 얘기만 들어보면 확실히 쾌검 용병단이 수상하긴 하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아나스타샤의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었다.

'진짜 범인이라면, 과연 자신의 용병대 표식이 새겨진 검을 남겨두고 갈까? 일부러 잡으러 오라고 하는 것 같아.'

쾌검 용병단의 병영은 붉은 흙 보병대의 병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으니, 지나가며 얼마나 으르렁댔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아나스타샤들은 단원들의 안내를 받아, 단장인 갤러스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붉은 흙 보병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관련해서 조사 차 왔습니다."


"왜, 그 녀석들이 우리가 범인이랍니까? 하! 미치겠네. 누명 좀 작작 씌우라고 해주십쇼. 누구는 피해 안 본 줄 알겠네."

갤러스는 정말로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가짜라면 완벽한 연기자일 거다.

"곤란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주변인들 조사는 필요하니까요. 바쁘시겠지만 협조해 주세요. 아니라고 판명되면 더 이상 소란에 휘말리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휴……. 뭡니까, 그래서."


"죽은 이들에게서 이 단도가 나왔거든요. 이걸로 두어 번 찔린 거 같은데, 본 적 있는 검인가요?"

이들이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엔 아직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혹시 모르니 이번 사건의 내용의 일부를 숨기기로 했다.

"허, 이거 우리 표식이네? 뭐야… 전혀 본 적 없는 검인데? 저희는 안 씁니다, 이런 검."


"위조품일까요?"


"그렇겠죠. 표식 정도야 병영 앞 깃발에도 그려진 거 아닙니까. 하지만 검은 저희의 설계도를 이용해 액시스의 대장간에 의뢰해 만들어 냅니다. 저희에게 검은 중요하니까, 이런 막검에 굳이 표식까지 박아서 쓰진 않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검 말고 다른 무기는 안 쓰나요? 활이라든가, 지팡이라든가."


"하하, 저희 용병단 이름이 왜 쾌검 용병단이겠습니까. 이곳의 인간들 전부 검을 쓰는 녀석들입니다. 마법을 쓰지 못해도! 신성력을 쓰지 못해도! 검 한 자루로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정말 아무도 마법을 못 쓴다면 아도니스가 말해줬던 흔적은 뭐지? 역시 제 3자? 아니면…….'

"그럼 갤러스 씨 생각엔 누가 이 사건의 범인 같다고 생각하세요?"

아나스타샤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 녀석들이 우릴 쫓아내기 위해서 자작극을 벌인 거 같은데요.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자식들, 벌써 몇 번째 피해를 봤다고 우겨대는지, 원."

지난 일들을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당신들을 쫓아내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저희 고용인이 아니스란 남자인 건 아십니까? 그 사람은 굉장한 부자로, 용병들에게 주는 보수도 짭짤하기로 유명하죠. 게다가 일도 쉬운 편이고…. 어떤 부대던 아니스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한달까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붉은 흙 녀석들과 친한 부대 중에서 적벽 화격단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 녀석들, 좋은 물주를 필요로 하던데… 분명 그 녀석들과 짜고 치는 걸거라고요."

아나스타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아니스가 부대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또 구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


"아뇨, 그 사람에겐 정확히 2부대가 필요합니다. 저희가 나가떨어지면, 붉은 흙 보병대가 아니스 님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적벽 화격대를 채용하리란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죠. 하……. 그래요, 붉은 흙 녀석들이랑 분쟁 때문에 아니스 님이 새 용병단을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시합에서 진다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데………."


"적벽 화격대인가……. 그럼 붉은 흙 보병대랑 적벽 화격대를 제외하고, 당신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부대나 사람은요?"


"음, 글쎄요. 너무 많아서……."


"너무 많다?"

아나스타샤는 놀라 되물었다.

"아무래도 신생 부대들은 전부 기존의 부대들에게 불만이 있겠죠. 주둔지 지구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기존 부대들 때문에 병영이 조각조각 나 있는 곳도 있고, 아예 부지를 빌리지 못하는 곳도 있고 그럽니다. 그런 놈들은 저희가 아니라 누구든 나가면 얼씨구나 좋다 하겠지만요."

납득가는 내용이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요."


"별말씀을. 아무튼 저희는 잘못 없으니까 누명만은 씌우지 말아 주십쇼!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갤러스 씨 덕분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게 됐네요."


"그러게요, 자작극일 수도 있다니. 부라타란 오크,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 말고도 다른 용의자도 있었지."

아나스타샤는 두 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정확한 목록을 수집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코스모스가 의견을 제시했다.

"신생 부대 목록을 얻으시려면, 다시 부대 사무소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이야기

 

300x250
반응형

Info

황제의길 프롤로그1 13시대 1230년 열의의 달 3월 10~15일
붉은흙1~2 3월 16일, 붉은흙3 3월 17일
황토젤리 3월 18~19일
엘돌란1~3 20일, 엘돌란3~7 21일, 엘돌란8~10 22일
황금요새1~2 23~24일 황금요새3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