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길 - 푸른 보석

TRPG/제 13시대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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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쌍검 훈련

"여기를 이렇게 잡고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이렇게 말인가요?"

바를로는 황금 요새에서 새 무기를 얻은김에 새 전투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지금까지는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잡고 휘두르는 길거리 싸움 방식을 고수해왔는데, 이번에 무기를 다루는 악귀들과의 싸움 이후로 그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에 계속 모험을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는 배울 수 있는 무술이 한정되어 있었다. 마법이야 애초부터 때려친지 오래고, 코스모스나 클라인처럼 정식으로 검술을 구사하기엔 쉬워보여도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였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스타샤의 사냥꾼 스타일의 레인저 검술은 바를로가 원래 가지고 있던 무기다루는 법과 흡사해, 스승삼기 좋았다. 본인이 그를 존경하는 것과 더불어 그의 검술을 배우는 이유로서는 충분했다.

요새를 떠나고 반나절이 훌쩍 지나 해가 떨어진 때, 바를로는 아나스타샤에게 검술 강습을 요청했다.
아나스타샤는 자신은 검을 가르칠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다며, 처음엔 거절했지만 바를로의 계속되는 회유에 결국 못이기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휙휙-

"제법인데? 원래 몸이 민첩해서 그런가, 좀 더 연습하면 단검 다루는건 나도 못따라 가겠어."
" 후후, 이게 다 스승이 좋아서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말은 잘해."

아나스타샤는 침낭 속에 몸을 뉘였다.

"너도 이제 적당히 하고 자. 내일도 늦게 일어나면 진짜 두고 갈거야?"
"네, 걱정마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를로는 아나스타샤가 잠에 빠진 이후에도 연습에 시간을 보냈다.
생전 이렇게까지 열심히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바를로 자신도 본인의 모습이 신기했지만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외견이 다가 아니다

넓게 펼쳐진 평지가 끝나고 점차 바닥의 고도가 제멋대로로 걷기 힘든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걸었을까, 임시거처로 보이는 판자로 만든 집들이 하나 둘 눈에 띄였다. 판잣집에는 장기적으로 쉬어가는 모험가나 상인들이 짐을 풀고 장사를 하거나 널부러져서 잠을 자는 등, 상당히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중앙의 높은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석조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아졌으며 판잣집에 불과했던 구조물들도 제법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요새의 망루로 보이는 높다란 건물은 저물어가는 때인데도 찬란하게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어, 마치 황금 요새가 옆에 있다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에 띄게 다른점이 있다면 망루의 옆에 초라해보이는 여관이 하나 붙어 있다는 점이였다. 그 여관은 초라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이 여관이 주변의 다른 오두막이나 판잣집 외에 요새의 주인들이 '공식적으로' 여행자들에게 제공한 숙박업소 같았다. 여관의 간판에는 한 눈에도 익숙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황금거룡의 표식이였다.

"여기가 황금 망루인가 보네요."

사람들을 헤치고 건물의 문을 열자, 안 쪽도 밖과 마찬가지로 인산인해였다. 테이블은 저마다 사람으로 가득했고, 종업원들도 바쁜듯이 종종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들은 빈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남는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어서오세요, 지금은 1층 자리는 만석이라 2층 룸과 숙박 예약만 받고 있습니다."

입구의 아나스타샤들을 눈치 챈건지 갑옷 위에 앞치마를 두른 남성이 다가와 안내했다. 아마 기사단 중 한 명인것 같았다.

'기사들이 나서서 장사를 도울 정도면 엄청 잘되나보네.'

"저희는 심부름 때문에 온 거에요. 황금요새에 있는 드미트리씨가 소울포지씨에게 물건을 전해달라해서요. 아, 물론 숙박도 할게요."
"소울포지씨요? 지금은 바쁘셔서 1층 마감 후인 9시 이후에 만나실 수 있을것 같네요. 방은 사람이 많아서 6인실 하나로 드려야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죠?"
"네."
"여기 열쇠 있습니다. 9시에 1층에 내려오시면 소울포지씨를 만날 수 있을거에요."

아나스타샤는 열쇠를 받아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아나스타샤와 바를로는 방 안에서 피요르에게 먹이를 주며 누워있었다. 아도니스는 주문 정리를, 코스모스는 명상을, 클라인은 요새 근처의 상인들에게 구한 것인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동안 완전히 캄캄해졌을 때, 코스모스가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했다.

"9시군요. 제가 갔다올까요?"
"그냥 다 같이 가요. 배도 고픈데 후딱 주고, 밥이나 먹죠. 창 밖으로 보니까 야시장 비슷한 곳도 있는 것 같네요."

황금 망루에 도착한 이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줄 모르는 식당의 손님들 탓에 별 다른 음식을 먹지 못한터라 아나스타샤의 말대로 다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모그림의 이야기

"아! 이거 정말 고맙네. 고향과 연결된 마지막 물건이거든. 어디 갔나 했더니 황금 요새 관리 때 놓고 온 모양이구만. 괜찮다면 식사라도 하겠나?"
"밖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대접해 주신다면야 감사히 먹어야죠."

모그림은 푸른 돌을 받고 상당히 기뻐했다. 그리고는 무언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지 고민하더니 아나스타샤들에게 식사를 권유했다. 제안을 승낙하자 주방으로 들어간 그는 잠시뒤, 엄청난 크기와 양의 고기 음식을 내왔다.

"그리고 이건 내 특제 시트러스 맥주네.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과일맥주인데 자네들에게 먼저 맛보여 주는거야."
"오~감사해요."

기쁘게 받아들여 마시는 아나스타샤완 달리 바를로는 떨떠름해 보였다.

"왜그래?"
"아뇨, 이렇게 연속으로 술을 마시긴 또 처음이라…. 오늘도 저번처럼 마시겠죠…?"

그의 눈에는 이미 영혼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마시는게 싫어? 어쩔 수 없지…."

아나스타샤는 서운한 것처럼 표정에 잠시 그늘이 졌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지 몰랐던 바를로는 당황했다.

"그, 누님이랑 마시는게 싫은게 아니라,"
"그럼 내가 다 마셔야지~!~!"
"………."

바를로는 한숨을 내쉬곤 웃기 시작했다.

"역시 누님이 이런걸로 상처받을리가 없겠죠."
"당연하지. 같이 안 마신다고 서운할리가?"

아나스타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맥주 한 컵을 들이켰다.

"와, 이 맥주 향이 장난 아닌데요? 그냥 향기만으로도 취할것 같은 느낌."
"내가 살던 곳에서는 흔한 맥주 중 하나였지."
"모그림씨가 주조한 맥주 아니였어요? 그래서 소울포지인거고."
"아아, 용 제국 말고 아예 다른 곳말이다."

클라인은 음식을 먹다가 모그림의 말에 반박했다.

"용 제국 너머엔 오크들의 땅이 있고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맞아. 오랫동안 많은 역사학자들과 탐험가들이 여러 시대동안 연구한 결과 이 세계는 구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게 밝혀졌어. 대륙을 벗어나면 철의 바다, 철의 바다를 벗어나면 대륙이야. 대륙은 저 녀석이 말한 것처럼 용 제국과 주인 없는 땅 뿐이지. 아니면 그 위험천만한 곳에서 왔다고 주장할 셈이야?"

아도니스는 정확한 이유를 대며, 용 제국 이외의 곳은 없다고 단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세계겠지. 내가 살던 곳은 마워스란 곳이였다."
"그러니까 이세계에서 왔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너희가 가져다 준 이 돌도 그 곳에서 쓰이던거지."

아도니스는 그가 허황 된 소리를 한다 생각하고 대답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돌려준 푸른 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니 이 돌. 아니 보석인가? 계속 궁금했었는데 대체 무슨 광물이야? 생전 처음 보는데. 애초에 돌이 이렇게 빛을 발할 순 없잖아. 거기다 마력의 기운까지 느껴져. 마법물품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정확하네. 마력을 품은게 맞아. 이건 마력석이라고 하네. 마법물품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 이 돌 자체엔 아무런 힘은 없지만. 일종의 보조도구거든."
"마력석?"

마력을 품고 있다는 말에 아도니스는 흥미를 가진 듯, 마력석에 눈을 떼지 못한채 모그림에게 가까이 달라붙었다.

"이 마력석은 풍차의 바람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어. 바람없이도 제분을 할 수 있고, 말 없이 움직이는 마차가…."
"네? 마차가 말 없이요?!"
"운전자, 마부가 차를 움직이는데 말대신 이 마력석의 힘으로 혼자 굴러가는거지."

아나스타샤의 머리 속엔 말이 있어야 할 위치에 마력석이란 돌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편리한 돌이 있다는게 말이 돼?"

아도니스는 몸을 뒤로 젖히며 조소했다.

"한 번 만져볼텐가? 지금은 마력이 거의 다한 마력석이지만 마법사라면 약간의 마혁이라도 분명 알텐데."

마력석을 드미트리에게 받아 옮긴건 아나스타샤였다. 아도니스는 돌을 특별히 만져볼 기회는 없었었다.

"흥, 이깟 빛나는 돌…."

'아까까지는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아도니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곧바로 마력석을 모그림에게서 빼앗아 들었다. 하지만 돌을 쥐어든 아도니스는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마력이 느껴지잖아??"

아도니스는 신기한듯 돌을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이런 돌…, 본 적 없어."
"하하, 이제 믿으시겠소?"
"그래. 하지만… 이렇게 편리한 물건이 있는 세상이 정말 평화로울 수 있나? 아니면 싸울 틈조차 없게 이 돌이 어마어마하게 많기라도 하는건가?"

그의 말에 모그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부정은 않겠소. 사실 이 세계에 온 이유도 끝없는 괴물과 끊이지 않는 분쟁때문에 지쳐서 그런 것이였으니…. 하지만 여기 와서 깨달았지. 마력석은 싸움을 위한 아주 큰 대의명분이지, 그것이 없다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여러 이유때문에 다툰다는걸. 결국 난 그냥 도망친거야."

그 말이 맞았다. 용 제국에는 모그림이 말한 것처럼 편리한 돌따윈 없다.
그럼에도 제국의 혼돈을 원하는 악귀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시체왕은 제국을 지배하기 위해 힘을 키우고 있었다. 큰 드루이드는 이 땅을 사랑하지만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발전하는 세계를 부정적으로 여겼고, 대마도사는 발전을 추구한 나머지 땅의 변화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오크 두령은 폭력으로 다스리는 원초적인 세계를 원했다. 용들은 자신들만이 우월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드워프와 엘프들은 자신들 외의 세상사에는 관심없었고, 대사제와 투장조차도 자신들의 신 이외에는 관심없었다. 거기에 세상엔 남의 것을 빼앗아 가는 녀석들이 어디에나 존재했고, 사람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기 위해 묶어두는 사람도 존재했다.
이 갈등과 싸움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었으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가 해결된다면 우습게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모그림이 왔다는 세계조차도 문명의 수준만 다를뿐이지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돌아갈 때가 왔는지 모르지."

모그림은 그리운 듯이 작게 읊조렸다. 그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걸까, 아나스타샤는 잔에 남은 마지막 맥주를 들이키곤 그에게 말했다.

"돌아가신다면 소울포지 맥주 맛이 그리울거에요."
"하하, 이 곳에도 뛰어난 주조쟁이들이 있는데 고작 이 맥주 하나 못마셔서 아쉬워하려고."
"술이야 어떻게 비슷한 맛이 난다해도 결국 모그림씨가 만든 소울포지 맥주는 아니니까요."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어."

모그림은 이 곳에서 만든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나스타샤들은 이른 아침부터 여관을 나섰다.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때, 익숙한 남자 한 명이 요새의 입구에 서 있었다. 모그림 소울포지였다.

"내 소중한 물건을 찾아줘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하지. 그리고 덕분에 어제 오랜만에 고향이야기를 하면서…, 새 목표도 생겼어."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소용없겠네요."
"그래, 어쩌면 여기가 우리가 만나는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 자네들도 목표하는 바를 꼭 이루게나. 나처럼 도망치지는 말고."
"네, 모그림씨도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잘 지내세요."

그들은 서로의 마지막 만남을 미소로 끝마쳤다.
아나스타샤들이 여행길에 오르자, 모그림은 그들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때, 모그림의 모습도 자취를 감추고 영영 사라졌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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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황제의길 프롤로그1 13시대 1230년 열의의 달 3월 10~15일
붉은흙1~2 3월 16일, 붉은흙3 3월 17일
황토젤리 3월 18~19일
엘돌란1~3 20일, 엘돌란3~7 21일, 엘돌란8~10 22일
황금요새1~2 23~24일 황금요새3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