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길 - 교살하는 바다4

TRPG/제 13시대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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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 (自業自得)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간다.



 

초라한 만찬 위의 소원

"사과의 의미로 차린건 없지만 많이들 먹으렴."

모리유의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정말 건조시킨 해초 몇 개와 맥주가 전부였다.

"맥주에 독 같은건 안 탔으니 걱정말거라."
"아니, 그건 아니고…. 식량은 없으면서 잘도 술은 있네 싶어서. 이쪽이 더 구하기 힘들지 않나."
"간단하단다. 우린 콩코드로 가는 '쥐'라는 무역선이였기 때문이지."
"……어쩐지 해적치고는 전투 실력이 영…."
"흐음, 우리도 바다를 누비면서 어느정도 잔뼈는 굵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나보구나."

아나스타샤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음, 꽤 괜찮은 맥주잖아? 드워프제라도 수입하고 있었나보지?"
"하, 아가씨. 잘 아는데? 이 맥주로 우리가 고향에서 돈 좀 만졌지."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백발의 중년 노움이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표류당해서 이젠 전부 빚이지……."

배 밖의 싸움에서 제일 먼저 쓰러져 입을 놀리던 하플링 남자의 중얼거림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클렌데논! 분위기를 이 따위로 만들어야 겠냐!"
"해스크, 사실이잖느냐."
"하지만 선장……!!"
"그래도 지금은 영원히 갚지못할줄 알았던 빚을 어떻게든 갚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지."
"하,하,하. 빚을 진게 이렇게 행복할줄이야…."
"하, 속도 좋으시지."

그렇게 다시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클렌데논이라는 하플링 남자는 다시 한번 분위기를 뒤집어 놓았다.

"그래서 선장 대리인 모리유가 자리를 비우면 누가 우리를 통솔하지?"
"뭔……. 얼마나 자리를 비운다고 통솔 타령이야?"

다른 쥐 선원들은 그를 정말 귀찮아 했지만 해스크라는 하프오크는 더 했다. 귀찮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싫어하는 것 같았다. 사사건건 지적을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선장이 없는 배라니, 상상도 할 수 없잖아! 누군가는 임시라도 선장 대리를 맡는게 좋지 않겠어?"
"너, 또 그 소리냐! 지겹지도 않은건지."
"애초에 당신이 '부선장 대리' 아닌가요? 부선장이 있음 됐지 뭣하러 선장의 대리의 임시를 만드는건가요?"

듣고 있던 바를로가 정확한 지적을 했다.

이들의 진짜 선장과 부선장은 배가 표류될 당시, 바다에서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배를 지휘해 항해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따라서 항해사인 모리유가 선장 대리를 맡는것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단 한 명, 클렌데논만 제외하고.
일등 선원이였던 클렌데논도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 였지만, 그러기에 그는 부하들에게 신뢰가 부족했다. 그나마 밀어주던 이들이 선장과 부선장이였는데 그들이 없는 지금,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럼에도 모리유는 그의 실력을 높이 사, 부선장 대리로 추천했다. 모두들 반발했지만 모리유의 설득에 나름대로 납득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클렌데논은 부선장 대리도 성에 차지 않았다. 이대로 육지에 돌아가는 것에 성공하면, 만에 하나의 경우로 선장과 부선장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모리유가 진짜 선장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왜 선원들이 차기 부선장, 그리고 선장이 될 일등선원인 자신이 아니라 모리유를 따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기도 맡기만 한다면 자신있는데 말이다.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잖아?"
"꼭 선장이 잘못되길 바라는 것 같다?"

모리유는 클렌데논의 말에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였다.

"하하하! 그래, 선장이 하고 싶으면 하거라. 내가 없는 동안 배와 선원들을 잘 돌봐줘야 한단다. 그래, 임시 부선장 대리는 웨호이가 맡는게 좋겠다."
"예? 갑자기 저요?"
"너만큼 감정에 안 휘둘리고 잘 보조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이고, 거 참.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임시 부선장 대리를 맡게 됐잖아, 클렌데논 양반."

하지만 클렌데논은 임시 선장 대리가 되었단 것에 기뻐 다른 사람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것 같았다. 그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사사건건 시비를 걸지 않았고, 아나스타샤들은 먹을 것은 없었지만 쥐의 선원들과 즐겁게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아나스타샤들은 쥐들과의 술 파티가 끝나고, 잠자리를 안내받았다. 낡은 해먹은 몸 전체를 감싸,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로웠다. 해먹 사이를 가린 건조된 해초를 걷어 다른 사람들을 보아하니, 다들 비슷한 상태에서 잘 자는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잠이 들기까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했다. 아직 찾지못한 이니고 샤프, 섬에 안전하게 정착하고 싶어하는 고블린들과, 육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쥐의 선원들. 고블린들이야 이들과 남쪽의 이들이 육지로 돌아간다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이니고를 그들이 데리고 있는게 맞다면 아나스타샤들의 임무도 해결되겠지. 하지만 쥐의 선원들…….
그들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이 저주받은 섬에 쥐들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어짜피 구조선을 보낼텐데도.

'부디 남쪽에 정박한 사람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있기를…….'

그는 남몰래 소원했다. 아마 아나스타샤말고도 다른 이들도 같은 마음일것이다.


 

코끼리 물범

"으……. 이게 뭐야."

쥐의 난파선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는 대부분 황량한 해초 평지였는데, 그 북쪽 끝에 눈에 띄는 산이 존재했다. 굳이 가까이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쓰레기 더미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자연적으로 생긴 쓰레기 산은 아니였다. 적어도 이 해조류 섬에 머무른 누군가 중엔 범인이 있을 것이다.

"누가 그랬던 나에게 시간이 없는게 범인에게는 다행이겠네. 난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아무데나 버리는 것도 별로 안좋아하거든."
"…일단 우린 아니라고 말하고 싶구나."

모리유가 아나스타샤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러기에는 쓰레기들 사이에서 쥐의 상징이 새겨진 천이 언뜻 보였지만 애써 모른척 해주기로 했다. 쥐의 선원들이 저 쓰레기 산을 만드는데 한 몫 했겠지만 전부 한 그룹에서 나온 양은 아닐테니까.

아나스타샤들은 쓰레기 산에서 떨어져 발길을 돌렸다.

"………!……!!"
"저 쓰레기더미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클라인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쓰레기 산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아, 섬에서 나가기 싫지 않냐는 소리가 들리긴 하죠."
"아뇨, 그런 소리는 아닙니다."

클라인은 상당히 진지해 보였다. 여러가지 소리로 혼란스러웠던 아나스타샤는 정신을 쓰레기 산 쪽으로 집중시켰다.

"……!!………!"
"정말 뭔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흠, 그럼 제가 마법을 써서 쓰레기 더미를 치워볼까요?"
"청소 마법이라도 있어요…?"
"아뇨, 굳이 정확히 따지자면 염동력을 써서 치우는거에요. 의식주문으로 증폭시키면 될 것 같은데, 어려운 주문도 아니고 의식재료는 남아 있으니까 바로 할 수 있어요."

쓰레기 속을 뒤지기 싫었던 아나스타샤들은 마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도니스는 준비를 위해 쓰레기 더미 근처에 마법진을 그리려 할 때였다.

뿌에엑-!

"응??"

쓰레기 더미의 남쪽에서 햇빛을 쬐고 있던 코끼리 물범이 화난듯한 경고를 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수는 총 5마리.
물범은 코끼리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거대한 몸을 이끌고 다가왔다. 그리곤 아나스타샤들을 쓰레기 더미쪽을 중심으로 포위했다. 그것들의 엉덩이에는 진흙과 기생충으로 보이는 거대한 곤충이 달라붙어 있었다.

"으……. 저것들과는 쓰레기 더미만큼이나 맞서기 싫은데."
"하지만 밀치고 지나가기엔 코끼리 물범은 덩치뿐만 아니라 상상이상으로 힘이 강하단다. 제일 작은것도 1t정도 될텐데?"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기생충을 신경 쓸 때가 아니란 소리네. 빨리 쓰러트리죠."



코끼리 물범
평범한 이 4 ~ 5 톤의 짐승은 자신의 영토를 침입하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쓰레기 산은 그들의 영토입니다.
1레벨 강적 [짐승]
행동순서 : +3
몸통박치기 +9 : 5피해.
순수 16+_공격 대상과 계속 교전하는 동안 코끼리 물범은 근처에있는 다른 상대에게도 3피해를 입힙니다.
돌연변이 : 이 코끼리 물범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비틀 거림에 대한 반응으로, 긴 돌연변이 코끼리 코를 펼치고 끈적거리고 유독한 고름을 뿌립니다.
근.코끼리 물범 고름 +9 vs. 신방 (비틀거리는 체력) : 5지속 독 피해 및 혼란 (둘 다 극복 가능)
제한사항_전투당 1회, 자유 행동으로 사용가능.
체력 27 / 장갑 14 / 신방 11 / 정방 8


배치

코1
코2
클 모
코3
아나 쓰렉 아도
코5
코4



행동순서 판정 : 아나스타샤 (27), 아도니스 (21), 바를로 (20), 코스모스 (13), 클라인 (12), 물범1~5 (12), 모리유

아나스타샤, 짧은행동으로 물범3에게 조준, 원거리공격, 빗나감 1피해.
아도니스, 물범5에게 냉기광선, 창성학 사용, 명중 14냉기피해.
바를로, 물범5에게 접근, 회피의 일격, 명중 8피해, 기세획득, 뒤로 이탈.
코스모스, 물범4에게 접근, 근접공격, 명중 12피해.
클라인, 물범2에게 접근, 근접공격, 빗나감 1피해, 자유행동으로 만회의 일격, 빈틈만들기 성공, 빗나감 1피해.
물범1, 클라인에게 접근, 공격, 5피해.
물범2, 클라인에게 공격, 5피해.
물범3, 아나스타샤에게 접근, 공격, 5피해.
물범4, 코스모스에게 공격, 5피해.
물범5, 아도니스에게 접근, 공격, 5피해.


고조주사위1
아나스타샤, 짧은행동으로 무기교체, 물범3에게 쌍수 근접공격, 명중 1피해.
아도니스, 이동행동으로 물범5에게 물러서기, 판정실패, 근접공격, 명중 6피해.
물범5, 전투불능.
바를로, 물범4에게 접근, 확실한 베기, 빗나감 1피해, 암습 6추가피해.
코스모스, 물범4에게 근접공격, 명중 10피해.
물범4, 전투불능.
클라인, 물범2에게 근접공격, 명중 6피해,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성공, 뒤로 물러남.
물범1, 클라인에게 접근, 5피해.
물범2, 아도니스에게 접근, 5피해, 순수 16이상 명중, 클라인에게 3피해.
물범3, 아나스타샤에게 공격, 5피해, 순수 16이상 명중, 코스모스에게 3피해.

고조주사위2
아나스타샤, 물범3에게 쌍수 근접공격, 명중 5피해, 이동행동으로 물러서기, 판정실패.
아도니스, 물범2에게서 물러서기, 판정성공, 뒤로 이탈, 색채분사, 4명에게 명중 12정신피해.
바를로, 물범3에게 접근, 확실한 베기, 명중 11피해, 암습 1추가피해.
물범3, 전투불능.
코스모스, 물범1에게 접근, 근접공격, 응징선언, 빗나감 1피해, 응징 5추가피해, 자유행동으로 후광비춤.
클라인, 물범1에게 근접공격, 명중 12피해.
물범1, 전투불능.
클라인, 자유행동으로 이어베기, 명중 13피해.
물범2, 전투불능.




물범의 육중한 몸은 한 명을 상대하면서도 꼬리를 이용해 근처의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주었고, 때때로 무게에 밀려 물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덕분에 전투가 끝나있을땐, 상처때문이 아니라 진흙과 오물, 바닷물로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역사상 이렇게 찝찝한 전투는 얼마 없을거에요."
"쓰레기장 뒤지는건 미루고 근처 해변에서 대충 오물을 씻어내고 옷을 말리는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솔직히 한 시가 급한건 아니였기 때문에 모두들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짧은 휴식겸 해안가로 향했다.

 

 


이니고 샤프

"그럼 의식을 할게요."

아도니스 의식마법 발동시간 : 1d4(3)분


쓰레기 산을 중심으로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아래에 마법진을 하나 그린 아도니스는 몇 분간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마법을 쓰던 여느 때처럼, 마법진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오……."

아도니스의 의식을 처음 보는 모리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쓰레기 산을 이루는 쓰레기들은 하나씩 공중에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였다.

"응?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공중에 뜬 쓰레기와 잡동사니들 사이에 '목소리가 날 만한 무언가'는 없었다.


"그 대신에 팔면 돈이 될만한 골동품은 있긴 하군요."

전리품 : 20gp 정도의 값어치 있는 골동품 5개(작은 보석 박힌 성배, 작은 보석 박힌 악세서리함, 은제 거울, 금색 술잔, 은제 회중시계)

바를로는 그 와중에도 공중에 떠 있는 작은 보석이 박힌 성배를 낚아챘다.

"어딜 보는거냐! 날 봐! 여기 있잖아!"
"으허억?!?!"

물건을 낚는 중 청동 머리 하나가 말을 시작하자, 바를로는 놀린 자빠졌다.


"뭘 그렇게 놀라는게야!"

청동머리는 금속으로 된 눈을 소켓 안에서 데굴데굴 굴리고, 입을 위아래로 딸깍거리며 유령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청동 머리 안에서 울려퍼지는게, 꼭 축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마법을 쓰던 아도니스 역시 말하는 청동머리에 당황해 집중력을 잃어 그대로 마법사의 손을 응용한 염동력 마법이 끊겨버렸다. 수많은 쓰레기들이 다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고, 청동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악!! 나 죽네!"
"뭐야, 저 머리는??"

바를로는 떨어지는 머리를 붙잡았다.

"아, 저거……."

모리유는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시끄러워서 가져다 버렸는데 아직도 움직이는구나. 건전지가 남아있나?"
"건전지라니! 그러고보니 너 그 해적 두목이잖아! 나한테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느냐!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재 발명가이자 건축가이자 기술자이며, 당대에 둘도 없는 연금술사와 마법사인 이니고 샤프라고!"

두서가 길긴 했지만 단 하나는 똑똑히 들려왔다. 이니고 샤프. 아나스타샤는 놀라, 바를로가 안고있는 청동머리에 다가갔다.

"네가 이니고 샤프라고??"
"너희가 찾던 이니고 샤프가 깡통이였니? 난 사람인줄 알았는데."

모리유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답했다.

"아니, 기계인이라는 소리는 못들었는데…. 그는 인간일거야."
"그럼 저 깡통 머리가 헛소리를 하는거겠구나. 어디 녹음장치라도 틀어놓은건가?"
"헛소리! 내가 이니고 샤프가 맞다! 난 인간이라고!!"
"네가 인간이라고? 어딜봐도 몸을 잃어버린 기계인이잖아."
"으윽…, 이 몸은… 그저 임시일뿐이다!"
"흐음, 이것도 이니고가 만든 발명품 같은걸까요?"
"내 말을 무시하지마!!!"

아도니스의 말에 머리는 버럭 화를 냈다. 물론 얼굴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래, 네가 이니고 샤프라 치고, 그럼 인간인 이니고가 왜 이렇게 된건데?"

아나스타샤의 질문에, 그는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능력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언제나 못마땅해 했다. 황제 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땐, 이제야 자신이 크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을거라 생각했지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었고 초라한 삶과 허망함밖에 없었다.

이니고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크게 인정받고 유명해질까 생각했다.
어쩌면 황제와 그의 부하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부업으로 다른 표상들을 위해 발명품을 만들어주며 연을 쌓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고객들과의 관계는 항상 비슷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크게 인정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가 실망하는 식의 반복일뿐이였다.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건 자신에 대한 환멸뿐이였다.
그러다 그는 불사의 연구를 완성시키면 그땐 정말 누구도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그는 사비를 털어 액시스 바깥에 자신만의 연구실을 만든 다음, 그 곳에서 내 영혼과 의식이 죽지않고 금속 골렘의 몸에 이동할 수 있는 불멸 장치를 연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불사 연구를 위한 자금이 황궁에서의 돈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대사제나 투장 등 물불 가리지 않고 의뢰를 받았으며, 때로는 악한 표상들에게 파괴적인 발명품을 만들어주고 때로는 그 발명품에 대항할 무기를 개발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는 오크두령의 부하에게 제국을 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주고, 제국에는 그것에 대항하는 마법함정을 만들어준게.

때문에 오크두령은 큰 전력 손실을 입었다. 결국 오크 두령의 부하가 그의 연구실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니고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불안정한 상태임에도 부랴부랴 미완성인 영혼을 옮기는 기계를 작동시켰고, 그의 육신은 죽고 영혼은 황동 머리로 옮겨졌다. 다행히도 오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떠났지만, 미완성이다보니 나머지 신체 부분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연구실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 찰코라는 연구실의 막내 조수가 학살이 벌어진 연구실을 방문했고, 그는 이니고가 황동머리에 갇힌것을 알게됐다. 이니고는 자신을 위해 찰코에게 몸을 만들 것을 명령했지만, 그가 이니고의 머리를 다른 표상들에게 팔아 돈을 벌기로 작정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이니고는 화를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하지만 찰코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니고는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팔려가진 않았다. 결국 찰코의 계획은, 끔찍한 폭풍이 그의 배를 침몰시키며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가라앉은 그와 달리, 이니고는 이 기계 머리의 혁신적인 부력 덕분에 스트랭글 해역의 어느 섬에 표류할 때까지 파도를 따라 흘러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것이 이 섬이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섬에 갇혀 옴짝달짝 못하고 있을 때, 섬이 소란스러워 졌다.



"…그러다 얼마 후 저 해적 녀석들 손에 주워져서 공처럼 발로 채이다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여기 버려졌지. 빌어먹을 놈들!"
"그래서 결국 죽었다는거지?"
"내 말을 뭘로 들은게야! 영혼을 옮겼다고 하지 않았냐!"

이니고는 아나스타샤의 말에 역정을 냈다.

"하지만 영혼을 옮기다니, 흑마법이 아니고서야 그런게 가능하긴 해? 솔직히 내가 보기엔 의식 복제에 가까워 보이는데."

아도니스의 말에 이니고는 잠시 말문이 막힌 것처럼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큰 소리 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고, 생각을 하는데! 죽었을리가 없지 않느냐, 죽었을리가!"
"…그렇다고 해줄게."

아도니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자업자득이네. 오크들의 습격을 받은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피리긴에게 언질을 했다면 그가 도와줬을 수도 있잖아? 그는 당신이 자신을 두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던데."
"……원래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거지. 뭐가 불만인게야!"

아나스타샤는 바를로에게서 이니고를 빼앗아 발로 뻥 찼다.

"으어어아악-! 뭐하는게냐!!"
"이거 그냥 두고 가자. 진짜 이니고는 어디 다른데 있겠지."

아나스타샤는 경멸의 눈빛을 내비치며 뒤를 돌았다.

"아, 아니, 어딜 가는것이야! 날 찾으러 온 게 아니냐?! 거기 서라!!"

다른 이들도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아나스타샤를 따라나섰다.

"가, 가지말래도! 돌아와! 아,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고!"

아나스타샤는 이니고가 굴러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래, 그래…, 나는 오크가 침입한 날 피리긴을 저버리긴 했다. …하지만 아군마저 완벽하게 속여야지만이 적들이 날 찾지 못할 것 같았어. 그 당시 적이 많았던 나에겐 그런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이 마저 돌아섰다.

"아니, 잠깐만! 저, 전부 내 잘못이야! 내가 어찌하면 되겠는가? 그, 그래, 피리긴에게 가서 용서도 빌겠다!"

아나스타샤는 크게 한숨을 내뱉더니 돌아와서 이니고 샤프를 주워들었다.

"피리긴이 사과는 필요없고 다신 자기 앞에만 나타나지 말랬어. 그러니까 사과는 됐고, 앞으로 다른 악한 표상들에게 제국을 안 팔아넘긴다고 약속하면 황제 폐하 밑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뢰 데려다 줄게."
"저, 정말인가? 당연하지! 당연하고 말고! 다시는 과한 욕심은 안 부리도록 하겠다!"

이니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가방 안에 그의 머리를 쑤셔넣었다.

"으윽, 여긴 너무 좁잖아…!"
"참아, 넣을데가 여기밖에 없어."

그런 그들을 모리유는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설마 너희들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우리를 나몰라라 하겠다는건 아니겠지?"

'그렇구나. 이니고를 찾았으니 고블린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지만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그렇다고 쥐 선원들까지 모른척하기엔….'

"도와준다고 했으면 끝까지 도와야지. 남쪽에 있다는 사람들한테 계속 가자."
"약속을 잘 지키는 믿음직스러운 아이군. 정말 고맙구나."

모리유를 돕는다는 소리에 아나스타샤의 가방 속에서 이니고가 꽥꽥대기 시작했다.

"뭐라고? 지금 당장 돌아가는게 아닌거냐?? 설마 저 해적을 돕겠다고 이러는건 아니겠지?!"
"해적이라니, 너무한데? 깡통머리야, 나는 평범한 항해사란다."
"깡통?? 까~앙~통???"
"아, 거 참. 이니고,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요. 두고 가기 전에."
"으으으……!!!"

어쩐지 가방 안에서 스팀이 느껴지는 기분이였다.


 

다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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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황제의길 프롤로그1 13시대 1230년 열의의 달 3월 10~15일
붉은흙1~2 3월 16일, 붉은흙3 3월 17일
황토젤리 3월 18~19일
엘돌란1~3 20일, 엘돌란3~7 21일, 엘돌란8~10 22일
황금요새1~2 23~24일 황금요새3 25일